여강길 걷기축제 사슴마을의 봄
2023. 5. 20 (토)
😊코스 : 주록마을 - 물구름교 - 이야기소 - 해월 최시형 묘 - 광금사 입구 - 낮은메기
- 물구름교 - 주록마을 (9.5 km)
여강길 11코스는 동학의 2대 교주 해월 최시형의 묘소가 있어 동학의길 이다
주록마을은 노루목, 도실, 아랫말, 안가지골의 자연마을이 있으며 산지로 둘러싸여
있으며 마을 앞으로 주록천이 흐른다
노루목은 노루들이 사냥꾼들에 의해 쫓기면 항상 이곳에서 만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사전공연으로 우크렐레와 주록마을의 풍물놀이가 진행되고
오늘 외부에서 온 단체들을 안내할 안내사를 소개하고 있다
여주 여강길 모델로 변신한 위원장님
출발전 준비운동
주록마을 풍물패의 공연이 이어지고
주록마을 풍물패를 선두로 걷기행사가 시작된다
동학은 그 교지가 시천주 신앙에 기초하면서도 보국안민과 광제창생을 내세운 점에서
민족적이고 사회적인 종교이다
동학이란 교조 최제우가 서교(천주교)의 도래에 대항하여 동쪽나라인 우리나라의 도를
일으킨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며 1905년 3대 교주 손병희에 의해 천도교로 개칭된다
동학은 한울에 대한 공경인 경천과 시천주 신앙을 중심으로 모든 사람이 천주(한울님)를
모시는 입신에 의하여 군자가 되고 나아가 보국안민에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경천사상을 바탕으로 나라 구제의 신앙 이었다
2대 교주 최시형에 이르러서는 사람 섬기기를 한울같이 한다는 가르침으로
발전하게 되고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자연의 산천초목에 이르기까지
한울이 내재한 것으로 보는 물물천사사천의 범전론적 사상이 널리
서민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3대 교주 손병희는 더 나아가서 사람이 곧 한울이라는 인내천을 동학의 종지로 선도 하였다
양반사회의 해체기에 농민 대중의 종교가 된 동학사상과 동학운동은 반왕조적인
사회개혁운동의 성격을 띠게 된다
주록마을 풍물패의 선도는 여기까지
이야기소에서 잠시 휴식을 하면서 오카리나 공연을 본다
히말라야에서 본 글씨체 같은데
우측에 있는 나무가 귀한 백송이란다
해월 최시형 묘소
최시형은 경주에서 태어나 5세때 어머니를 여의고 12세때 아버지 마저 세상을
떠난후 17세때 제지소에서 일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19세때 손병희의 여동생과 결혼 하였고 1861년 동학에 입문 하였고
1863년 8월 최제우로 부터 도통을 이어받아 제2대 교주가 되었다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간행하여 동학의 종교적, 이념적 기틀을 마련한 최시형은
본격적으로 교단 정비와 조직 확대에 나섰다
1878년 개접제, 1884년 육임제를 마련하여 신도들을 합리적으로 조직하고
교리 연구를 위한 집회를 만들었다
* 개접제 - 개접이란 각지의 도인이 일정한 기간을 정하여 집회하고 그 기간내에
동학교리를 연구하고 기간이 끝나면 접을 파기하는 제도이다
차츰 조직이 확 되면서 접은 면이나 읍 단위의 책임자를 일컫게 된다
1894년 전북 고부의 접주 전봉준이 주도한 동학농민운동 계획에 처음에는 반대 하였으나
전봉준, 손병희등이 계속 간청하고 따르는 무리들이 많아지자 동참하게 된다
1895년 전봉준이 체포되어 사형을 받자 논산에서 남접군과 합세하여 관군 및
일본군과 교전을 벌였으나 참패하자 몸을 숨겼다
1898년 강원도 원주에 머물던중 송경인의 밀고로 체포되어 교수형에 처해진다
1907년 박형채의 청원으로 고종의 윤허를 받아 최제우와 함께 신원이 회복 되었다
산속이다 보니 샤터속도가 느려 많이 흔들린것 같다
송화가루 날리는 임도길을 따라
여기가 낮은메기 같다
우측으로 가면 원적산 이고, 좌측으로 올라 하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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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내리막 길
앞에 보이는 다리가 물구름교 같은데 아무런 표시가 없다
참가비가 1만원 인데 500g여주쌀과 장터에서 쓸수있는 5천원 쿠폰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