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괴물이 되어가는 인간들] /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인간은 괴물을 두려워하면서도, 괴물을 만들어낸다. 세월이 흐르면서 만들기만 하는 게 아니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괴물이 되는 경우도 있다. 세월이라는 치열한 전장 속에서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조금씩 괴물이 되어간다.
몇 년 前 전임 대통령의 친위 쿠테타 시도도 괴물들의 합창이었다. 만약 그 괴물들의 의도가 관철되었다면 지금쯤 우리 사회는 어떤 상태일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인간 도처에 괴물이 존재한다. 그래서인지 어릴 때의 친구를 수십 년 만에 만나는 일은 항상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필경 오랫동안 서로 다른 물에 살면서 서로 보지 못했다면, 십중팔구, 우리는 서로에게 괴물이 되어 있을 공산이 크다.
4년 전에 일선 학교에서 교장으로 퇴직한 대학 동아리 선배가 있다. 그를 수십년 後인 재작년에 만나본 괴물 모습은 이러했다. 고집불통 완고한 촌부(村夫)의 얼굴, 사람을 무시하는 독선주의자의 오만(傲慢),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다는 투의 비현실주의자의 망상(妄想), 열심히 이루며 살아왔다는 투의 소시민적 자만(自慢), 누구든 가르치려 드는 개무식자 투의 선생 근성, 위장된 도덕주의자의 세간적 관심(비교와 불만), 그로 인한 불통과 불편한 느낌 등등이다. 그의 젊은 시절, 약간은 새침하고 순수했던 모습은 모두 사라지고, 돈‧권력‧명예의 시정 잡배로 나타나 오랜만에 대면했을 때 큰 당혹감을 느꼈다. 그렇게 우리는 알게 모르게 괴물이 되어 있다. 그는 지금도 중소기업 공단에서 돈을 벌기 위해 공돌이로 살아가고 있다.
물론 우리 모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동안 자신의 삶을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한 전리품으로 편견과 오만, 그리고 냉소라는 갑옷을 입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마 나도 누군가에게 괴물의 모습을 지닌 답답한 꼰대일 것이 확실하다. 하지만 그 괴물 같은 껍데기 아래에는, 그저 상처받지 않고 살아남으려 발버둥 쳤던 유약한 인간이 숨어있음을 이제는 알고 있다. 내가 입은 갑옷이 무겁듯 타인의 날선 방어벽 역시 그들의 치열했던 전장(戰場)을 증명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고로 결국 우리는 모두, 상처받지 않기 위해 서로에게 괴물이 되어버린 서툰 인간들일 뿐이다. 그러니 부디, 오늘 밤만큼은 서로의 무거운 갑옷을 탓하기보다 그 무게(weight)를 견뎌온 서로의 삶을 가만히 보듬어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에 최소한의 인간 존엄을 지키는 품격은 스스로 갖추도록 노력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