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 데몬 헌터스, '끼'의 실마리를 찾아서
김 관 수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변하게 하는가. 올여름, 서구에서 시작된 기묘한 한류 현상이 있었다. 서양 자본인 넷플릭스와 동양의 기술력을 지닌 소니 픽처스가 합작하여 탄생한 3D 애니메이션, 'K-POP 데몬 헌터스'가 그 중심에 섰다. 세 명의 여자 주인공이 악마와 싸워 세상을 구한다는 다소 진부한 서사였지만, 아름다운 K-POP에 이끌려 감상한 영화 속에는 놀라운 상징이 숨어 있었다. 바로 세 주인공이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무당'이라는 점이었다.
가끔 민속의 과거에서 영감을 얻는 버릇이 있어 그 뿌리를 더듬다 보니, 문득 삼신할머니의 전설과 신화가 떠올랐다. 생명의 탄생과 보호, 양육을 상징하는 거대한 여성성과 모성의 힘이, 점성학에서 말하는 물고기자리 시대를 지나 물병자리 시대로 넘어가는 세계적인 흐름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오늘날 세계를 매혹하는 우리 문화의 저력은 과연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그 뿌리를 파고들면, 수천 년간 이 땅의 정신적 기층을 이루어 온 거대한 실타래와 마주하게 된다.
한때 서구 사상의 유입으로 터부시되었던 무속 신앙은, 고등 종교가 정착하기 전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이 땅을 지배했던 토속 신앙이었다. 왕이 곧 제사장이었던 고대 사회의 제정일치 문화와는 별개로, 민중의 삶 깊숙이 스며들어 우리 문화의 원류를 형성한 지울 수 없는 흔적이었다.
어둠이 내린 광장에 수만 개의 불빛이 은하수처럼 일렁인다. 거대한 스크린에서는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영상이 펼쳐지고, 심장을 울리는 강렬한 비트가 대기를 뒤흔든다. 마침내 무대 위로 솟아오른 이들은 신화 속 인물처럼 빛을 발하며 노래하고 춤춘다. 그 몸짓과 목소리 한 자락에 수만 관중은 열광하며 하나의 공동체가 된다. 우리는 이 폭발적인 매력을 그저 '끼'라고 부른다. 재능과 훈련의 결과물이라 쉽게 단정하지만, 과연 그것만으로 무대에서 터져 나오는 거대한 에너지를 온전히 설명할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진 보이지 않는 실의 한쪽 끝을 이제야 목격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실을 따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달빛 아래 펼쳐지던 원초적인 '판'과 마주한다. 바로 무당이 주재하던 '굿판'이다. 하늘과 땅,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무당은 신의 목소리를 빌려 노래하고 영혼의 몸짓으로 춤을 추었다. 그의 몸은 신과 인간이 만나는 통로였고, 굿판은 맺힌 한을 풀고 흩어진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거대한 소통과 치유의 장이었다. 하늘의 뜻을 읽어 풍요를 기원하던 영험함이 통치의 권위가 되었던 고대의 기억은 우리 문화 유전자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이 신성한 굿판의 에너지는 시대를 건너 소리꾼의 '판소리판'으로 이어졌다. 하늘을 향했던 목소리는 이제 땅의 사람들을 향했다. 판소리꾼은 홀로 무대 위에서 수십 명의 인생을 살고 죽이며, 춘향의 억울함과 심청의 슬픔을 절절한 소리로 풀어냈다. 관객이 터뜨리는 "얼쑤!" 하는 추임새는 단순한 감탄사가 아니라, 소리꾼과 함께 판을 완성하는 창조적 교감이었다. 한때 신의 부름이라 여겨졌던 '신 끼(神氣)'는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예술가의 '끼'로 모습을 바꾸었다. 신성함이 예술로 탈바꿈했을 뿐, 그 영적인 에너지는 여전히 우리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세 번째 판을 목도하고 있다. 서울과 도쿄를 넘어 파리, 뉴욕,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전 세계가 하나의 거대한 판이 되었다. 이 판의 중심에 선 K-POP 아이돌들은 현대판 샤먼이자 소리꾼이다. 그들은 음악이라는 무기로 현대인의 불안과 소외라는 악령을 사냥하는 '데몬 헌터'이며, 감미로운 목소리로 사랑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치유자다. 세계가 그들의 몸짓에 열광하는 이유는 단지 멜로디가 감각적이고 춤이 화려해서만은 아니다. 그들의 무대에는 이성과 합리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인간 본연의 슬픔과 기쁨, 원초적 감정을 폭발시키는 '신명'이 스며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지금이 한반도에 다시 세계의 기운이 모여드는 시기라고 말한다. 마치 사계가 순환하듯, 역사의 기류가 이 땅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이다. 수천 년을 버티고 선 들판의 고인돌처럼, 잊힌 줄 알았던 고대의 기억과 힘이 깨어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이는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이야기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이 땅의 많은 이들이 그 거대한 변화의 서사를 믿고 느끼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 믿음은 또 다른 창조의 동력이 되어 세상을 놀라게 할 새로운 판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이 거대한 변화의 한복판에 서 있음을 느낀다. 아주 오래된 실이 잦아 내는 눈부신 현재와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에게 주어진 큰 축복이다. 저 무대의 환한 불빛 속에서 신을 부르던 고대의 목소리와 사람을 울리던 광대의 소리, 그리고 세상을 향해 노래하는 오늘의 함성이 하나로 겹치는 장엄한 광경을 본다. 비록 K-POP이 서구화 되어가고, 이것으로 인해 '검은 머리 외국인'이 늘어나고 혼혈인들이 늘어나는 등 한국 사회의 정체성이 변화하는 현실이 돌이키기 힘든 흐름일지라도, 이는 우리가 마주해야 할 미래 시대의 모습이기도 하며, 지금의 현실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7년 『한국작가』 수필 등단
2025년 『문학나무』 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