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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타사의 연꽃
앞뒤가 산으로 둘러싸인 수타사는 홍천읍내에서 가자면 30분은 실히 가야할 거리로 동면 속초 리를 지나 왼쪽으로 개울을 끼고 가다 보면 소나무 숲이 우거진 곳에 이르는데 여기가 절의 입구이다.
숲에는 아름드리 소나무 수십 그루가 서있는데 나무의 밑동에서 위로 어린이 키만큼의 상처가 있으니 이는 일제 때에 일본 사람들이 소나무 송진을 받기 위해서 그두(굵은 톱)로 나무껍질을 벗기고 톱자리를 통해 내려오는 송진을 받기 위해서 만든 흔적이다.
전국의 소나무마다 이러한 상처가 나있는데 후세들은 그 원인을 모른 채 지나는 경우가 많으니 이러한 역사의 사실에 대해서 자세한 경위를 설명해주는 안내판이라도 세워놓아야 후세들이 오래도록 기억할게 아닌가.
이 소나무 숲을 지나서 수타사로 들어가자면 개울을 건너야 하는데 몇 년 전에 튼튼한 다리를 놓아서 지금은 승용차들이 거뜬히 절 앞까지 들어갈 수가 있다.
절에서 좀 떨어진 곳에는 연못이 있고 봄이 되어 새싹이 파릇파릇 올라오기 시작을 하면 연못에도 연한 녹색의 연잎들이 기지개를 켜듯이 날개를 편다.
한 여름이 되면 연이파리 주위에는 연꽃 봉오리들이 마치 사춘기 소녀들의 젖가슴 솟아오르듯 봉곳하게 멍울지기 시작을 한다,
바람이 사르르 일어 연못가에 파도가 일기 시작을 하면 소곰장이들은 꼬마들이 스케트를 저어나가듯이 뱅그르르 잘도 돌아간다.
해가 떠오르는 아침이면 매일이다 싶이 일자로 지은 요사 체를 나서는 회색갈 복색과 진흙색갈의 가사를 두르신 스님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연못가를 느린 걸음으로 돌던 스님이 의자에 앉아서 한참동안이나 연못을 들여다보더니 눈을 들어 앞산의 울창한 숲을 한없이 바라본다.
문득 지나간 과거가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치면서 아득하게 멀어져간 옛날 속으로 빠져든다.
이 세상에서 자기를 낳아주시고 사랑해주시던 부모님을 떠올려 보기도 하고 지금까지 절에서 밥을 먹게 해주시고 중으로 살도록 인도해 주신 주지스님 생각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절에 들어온 지 불과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아침의 일이다,
“ 엊저녁에 늦게 잠을 잤느냐. 왜 새벽 예불에 나오지를 않았어.”
주지스님이 말씀을 하시는데 몸 둘 바를 몰라서 그냥 잠자코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주지 스님은 좀처럼 평소에 과묵하다 할 만치 말씀을 잘 하시지 않는 분이지만 어떤 때 조금이라도 마음에 거슬리는 일이 있으면 단박에 불러서는 눈물이 쑥 빠지도록 나무라시기도 하였다.
어제 저녁에야 말로 왜 그렇게 엄마가 보고 싶은지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새벽녘이 되어서야 잠시 눈을 붙였다가 예불에 나가기 위해서 일어난다는 것이 내쳐 잠이 드는 바람에 예불시간에 대지를 못하였다.
“ 네가 속세를 벗어나서 불자가 된 것은 속세에서 있었던 일들을 모두 잊고 새롭게 불국토를 향하여 가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수심에 싸여 있는 것이 역역하니 앞으로는 각별히 주의하여라. 알겠느냐. 따지고 보면 세상 모든 것은 다 시간이 흘러가면 슬어지고 마는 것이고 그것이 부처님의 진리인 것이야. 이른 봄에 나뭇잎이 파릇파릇 올라오게 되면 얼마나 신기한 일이냐.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나뭇잎은 제 할 역할을 다 하고는 가을이 되면 만산홍엽으로 온산을 아름답게 물 드리곤 낙엽이 되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인간이 출생하여 부모님 슬하에서 자라다가 때가 되면 장가들고 시집을 가고 나면 다시 부모는 늙게 되는데 이 이치야말로 자연의 이치와 조금도 다른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제 너는 아직 나이가 어려서 인과 관계에 대한 깊이를 잘 모르겠지만 인간은 찬 라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로서 어느 날 갑자기 부처님께로 열반을 하게 되면 세상에서 맺은 인연들을 다시 찾게 되는 것이야.”
비구는 주지스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하회와 같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염불을 하겠다는 결심을 하였다.
연잎 위에 올라앉았던 청개구리가 목젖을 깔딱이더니 잠깐 사이에 연못으로 풍덩 빠져 들어 간다.
비구가 처음 주지스님을 뵙게 된 것은 중학교에 다닐 때였다.
그때 그는 중학교 1학년으로 입학을 하고는 밤이면 야자를 하던 때여서 만날 밤늦도록 공부를 하고는 집으로 돌아가곤 하였다.
아버지는 농사를 지으시고 어머니는 시장에서 푸성귀를 팔아서 딸의 학비를 보태시느라 고생을 많이 하셨다.
날마다 이렇게 안팎이 고생을 하시지만 살림이 낳아진 적은 없었다. 그렇지만 비구는 토요일이나 일요일 같은 때에는 어머니가 일하시는 시장에 나가서 일을 거들어 드렸는데 시장에서는 효녀가 나왔다고 이구동성으로 칭찬을 하셨으며 이다음에 자라게 되면 며느리로 삼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는 분도 여럿이나 되었다.
그렇지만 비구의 어머니는 시장 사람들에게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말아 달래면서 시집을 보내려면 아직도 멀었다고 일축을 했다.
그런데 어느 날의 일이었다. 비구의 어머니가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기분을 느끼게 된 것이니 그것은 요의가 느껴져서 화장실엘 가게 되면 평소와는 달리 오줌이 나오지를 않고 속이 메스꺼워지기 때문이었다.
비구의 어머니는 딸 하나를 낳은 다음에 아들을 하나 증조해주시기를 바라는 기도를 날마다 칠성님께 축원을 하였지만 워낙 약골이라서 더 이상 애를 낳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본인은 잘 알고 있었다.
부인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비구의 아버지는 주부가 병이 나면 어떻게 살림을 하느냐면서 1년에 한번은 서울의 유명한 한약방에 가서 약을 지어 부인에게 주었지만 좀처럼 건강이 회복되는 것은 아니었다.
원래 비구의 어머니는 입이 짧기도 하지만 배가 고파서 막상 밥을 먹으려고 밥상에 앉게 되면 왜 그런지 밥맛은 싹 가시는 것이어서 지금까지 억지로 살기 위해서 겨우 밥을 몇 술 뜨다가 마는 때가 풀풀하였다.
더구나 밥을 먹지 못하면서도 날마다 해야 할 일은 태산 같고 일을 하고 나면 허리가 끊어지는 것 같아서 할 수 없이 병원의 약을 지어다 먹기도 하였다,
그날도 식전부터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가서 의사의 진단을 받는데 의사가 여기저기를 눌러 보더니 상상도 하지 못한 소리를 하는 것이었으니 그는 하마터면 큰 소리를 지를 번 하였다.
그 진단이란 글쎄 지금 나이가 몇인데 임신이라는 말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비구의 엄마는 이날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멍해져 있었다.
남편은 부인이 아기를 가졌다는 말을 처음에는 믿으려 하지 않다가 진단서를 보고는 사람이 아주 달라지는 것이었다.
“ 그게 정말이란 말이야. 당신이 임신을 했다는 말이 정말이라고. 햐! 우리 집에 경사치고는 대단한 경사가 났네 그려. 여보, 어서 이리 와 봐요. 내일부터는 아무 일도 하지 말고 집에서 가만히 있기만 해 알았지.”
“ 여봐요. 당신 지금 정신이 있는 사람이에요. 내 나이가 지금 몇 살인데 나더러 아이를 낳으란 말이에요.”
“ 그렇지 않으면. 당신이 임신을 한 것은 젊었을 때부터 애절하게 아들하나를 낳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였기 때문에 늦게나마 하늘에서 선물로 주신 것인데 이 선물을 받지 않겠다니. 절대로 그럴 수는 없어. 이번에 아들을 낳게 되면 외동딸인 비구가 또 얼마나 좋아하겠어.”
남편은 이날 이후 고단하게 일을 하고 돌아와서도 아내의 손목을 잡아주거나 끌어안고 어깨를 다독여주기까지 하였다.
“ 내 살이 만날 뜨거워서 싫다고 하더니 오늘은 웬일이래요,”
“ 그것도 몰라. 조선시대의 남자들도 부인이 애를 낳으려 하면 밥솥에 군불까지 때면서 마누라의 환심을 사려 하였대요 .”
사실 형제가 많은 집이야 아이들이 귀한 줄을 모르지만 현재의 비구의 집은 식구가 너무 적어서 초파일이 되면 비구의 엄마는 부처님께 아들 하나만 증조를 해달라고 속으로 여러 번 축원을 드렸는데 젊었을 때에 그렇게도 간곡하게 축원을 하였던 기도발이 이제야 부처님께 닿았다는 말인지 전혀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나이 사십이 넘은 비구의 엄마는 남편이 하도 좋아하자 체념을 하고는 아이를 낳기로 결심을 하였고 열 달 만에 정말 바라던 대로 아들 하나를 낳게 되니 남편은 천하를 얻은 듯이 기뻐하였다.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이 시장에 알려지자 모두들 축하를 해주느라 매일같이 돌아가면서 점심을 사주는가 하면 어느 날은 시장 일을 마치고 나서 저녁을 먹을 때 술까지 한잔 씩 돌아가다 보니 할 말 못할 말들을 막걸리 잔 돌리듯이 하였다.
“ 세상에 아이를 못 낳는다면서 아래 동네를 아주 꿰매 버린 줄 알았더니 언제 다시 개방을 하였던 게야. 혹시 무슨 좋은 약이라도 먹었단 말이야.”
“ 약을 먹긴 이 나이에 무슨 약을 먹어. 하도 밥을 먹지 않으니까 언젠가 남편이 서울엘 가서 약을 몇 첩 지어 왔는데 그것을 먹은 다음에 이상하게도 조금씩 밥맛이 나긴 하더라니까.”
“ 오라 그러니까 그 약방쟁이가 그 약에다가 거시기가 살아나는 약을 첨부해서 넣었던 말이로군 그래. 그렇지 않고 어떻게 가물에 논바닥 갈라지듯이 말라있던 연못에 물이 찰 수가 있다는 말이야.”
“ 7년 가뭄에 홍수가 난다는 소리도 못 들었어. 비구 어멈이 뭣 간에 비방을 했기에 그랬을 거야. 어디 그 비방에 대해서 말 좀 해 보라구 .”
“ 정말 서울에서 지어다 먹은 약으로 효험을 보았다면 우리 모두 한꺼번에 그 약방으로 몰려가서 앞앞이 약을 지어다 먹어 보세. 누가 아나 돌아가면서 아들을 하나씩 낳을지 말이야. 하하 .”
“ 호호. 듣자 하니 아직도 너희들 모두의 마음이 콩밭에 가 있구나.”
“ 따지고 보면 그것이 말이야 듣던 중 가장 반가운 말이 아니겠어. 그렇지 않아도 밤저녁이 되면 마음으로는 아직도 거시기 생각이 나는 판인데 통 발동을 해야 말이지.”
“ 이제 말이지만 자네뿐이 아니고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말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다 같은 마음일 껄.”
“ 여보게들. 자네들 말을 들어 보니 나같이 무식한 사람은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네. 솔직하게 쉬운 말을 해보더라고.”
“ 이제껏 노다 거린 말을 못 알아듣다니 참으로 딱도 하네. 솔직히 말을 해서 사람은 다 똑같이 때가 되면 밥을 먹어야 하고 신랑각시는 저녁마다 사랑을 속삭이라는 말이야.”
“ 말을 빙그르르 돌릴게 없어. 제대로 까발려서 말을 하라구.”
“ 세상만사 다 너무 까발리면 재미가 없는 것이여.”
“ 자 오늘은 이만 내일을 위하여 고만들 합세. 너무 술을 많이 먹게 되면 모처럼 신랑이 샘골을 찾아 왔다가 그냥 돌아가는 수가 있어요. 호호 .”
“ 옳소. 옳아, 우리 반장의 말이 늘 옳다니까.”
이날 집으로 돌아오는 비구 엄마의 기분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았다.
아기는 무럭무럭 자라고 두어 살이 지나자 식구들이 업어주기 시작을 하는데 비구는 저 혼
자만 동생이 있는 양 날마다 동생을 싸고 돌았다.
비구는 일요일이 되면 동생과 같이 개울에 나가서 모래성 쌓기도 하고 어떤 때는 검은 고
무신으로 고기새끼를 잡아 와서는 사발에다 담아서 기르기도 하였다.
친구들이 동생이 귀엽다고 하면서 업어주고 싶다고 하였지만 비구는 아무에게도 동생을 업
혀 주지 않았다.
동생이 어느새 학교에 입학을 하자 비구는 동생이 지각이라도 할까봐서 일찍 서둘러서 데리
고 다녔으며 방과 후에 수업이 일찍 파할 때면 동생네 교실 앞에 서 있다가 동생을 챙겨 집
으로 데리고 왔다.
마침내 비구가 학교를 졸업을 하고 직장에 다니게 되자 전처럼 동생을 챙겨주지 못하게 되
었지만 그래도 시간이 있으면 동생의 요구를 모두 잘 들어주는 것은 누나뿐이었으니 엄마나
아빠는 그럴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을이 되자 동생네 학교에서 모처럼 가을운동회가 열리게 되자 누나는 직장에 결근을 하면
서까지 운동회에 엄마 대신 참석을 하였는데 달리기를 할 때에 동생이 일등을 하자 라인 안
으로 뛰어 들어가면서 응원까지 하자 방송에서 라인 안으로 들어간 부형께서는 어서 라인
밖으로 나가 달라는 방송까지 하였지만 누나는 동생이 일등을 한 것만 좋아서 방송 따위는
들리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운동회가 끝나고 나자 누나는 직장에서 2박3일로 떠나는 수련회에 참석을 하게 되어 동생
에게 며칠간 못 볼 것을 생각하고는 과자며 과일을 사다가 동생의 책상에 놓아주고는 떠났
다.
이날 동생은 학교에 갔다가 돌아와서는 아이들이 강가로 놀러나가자고 하여 나갔고 고기를
잡다가 아뿔싸 깊은 물웅덩이가 있는 것을 모르고 발이 빠지게 되자 소리를 질렀지만 저만
치 앞서 간 아이들은 미처 알아듣지를 못해 동생은 혼자 물에 빠진 채 나오지를 못하였다.
나중에야 동네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개울로 뛰어나갔으나 아이는 물속에 갈아 앉아 보이
지도 않는 것을 장정아저씨들이 물속을 헤집어서 겨우 시체를 찾았다.
아이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달려온 엄마와 아빠는 그 자리에서 까무러치기까지 하다가 나중
에서야 정신이 들어서는 아들의 시체를 끌어안고는 목 놓아 울었다.
“ 언놈아 네가 죽다니 이게 웬일이란 말이냐. 우리는 어찌 살라고 이렇게 가슴에 못을 박는
단 말이냐. 아이고, 불쌍해 우리 아들 어찌 할꼬. “
직장의 수련회에 참석했다가 뒤늦게 이 소식을 듣고 달려온 누나는 동생을 끌어안고는 이
웃 아저씨들을 향하여 내 동생 좀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바람에 동네 사람들도 모두가 눈물
을 흘렸다.
동네 아저씨들은 부부와 딸을 달래면서 운이 그것 밖에 되지 않아서 죽었으니 우선 파묻어
야 된다면서 소창으로 시체를 감고는 동네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공동묘지에다가 묻어 주었
다.
세상에 자기 혼자 아들을 낳은 것처럼 좋아하던 부부는 하루아침에 아들을 잃게 되자 완전
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고 동생을 너무도 사랑하던 누나도 기력을 잃고는 눕고 말았다.
그리고 1년 후 아들의 비극을 못내 잊지 못하고 날마다 마시지 않던 술을 마시던 아버지가
먼저 세상을 뜨시더니 엄마 또한 딸을 남겨놓은 채 다음 해에 돌아가시고 말았다.
갑자기 집안에 슬픔이 닥치자 비구는 회사에도 출근을 하지 않자 직장에서는 사람을 시켜
서 출근을 하라고 여러 번 독촉을 하였지만 비구는 미련 없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말았다.
비구는 이후에도 밥도 먹지 않고 집안에서 꼼짝도 하지를 않자 이를 딱하게 여긴 단 한분
의 이모님이 조카네 집으로 오셔서는 날마다 그날이 그날로 지내면 어떻게 하느냐면서 이제
는 모든 시름을 잊어버리고 다시 힘을 내어서 살아보자는 위로의 말씀을 하셨다.
이모님은 그러시더니 어디 갈 곳이 있다면서 조카의 손목을 잡아끌어 할 수없이 따라간 것
이다.
이모님이 앞장을 서서 가신 곳은 비구가 어렸을 때에 몇 번 엄마를 따라다녔던 산속에 있
는 절이었다.
언젠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절에 갈 때에는 연꽃이 활짝 피어났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4월초파일로 부처님 오신 날이었다.
저마다 연등 앞에서 합장을 하고는 기도를 드리던 모습을 지금까지 잊지 않고 있다. 그날
식당으로 가니 커다란 양푼 같은 그릇에다 밥을 주었는데 언뜻 살펴보니 밥 위에는 도라지
며 호박나물 콩나물 고사리에 오이까지 잘게 썰어서 얹어 주는 비빔밥이었다.
밥의 양이 꽤 많았지만 그날 그것을 다 먹고 나서 배가 얼마나 불렀는지 집에 와서 저녁도
먹지를 않았다.
이모님이 이곳으로 데리고 온 것은 무언가 조카로 하여금 마음을 잡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모님은 절에 도착을 하자 바로 주지스님이 계시는 요사체로 데리고 들어
가는 것이었다.
이모님이 앞서서 들어가시고 비구가 따라 들어가자 아랫목에 앉아 계시던 분은 물끄러미 두
사람을 번갈아 보시더니 얼굴에 미소를 띠시면서 어서 자리에 앉으라고 하셨다.
스님은 비구를 보시더니 너에 대해서 이미 들어서 알고 있다면서 누구에게나 시름은 있는
법이라면서 너무 지나간 일에 대해서 집착을 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는 필연코 이
모님께서 스님에게 비구의 집안사정을 알려드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람이 나고 죽는 것은 본인의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운명이라는 굴레에 의해서 정해
져 있는 것이니 너무 슬퍼할 것도 그렇다고 너무 세상일을 좋아할 일도 아니다. 오늘 네가
여기에 온 것도 본인의 의지와는 다르게 온 것이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혹 이 절집 사람이
될지도 모르는 것이니 기왕에 여기에 온 이상 마음을 가다듬어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슬픔
과 번뇌. 욕심과 갈등. 시기와 질투 등을 깨끗이 씻어버리기를 바란다. “
비구는 이날 이모님을 뒤따르면서 어머니를 따라왔던 옛날을 회상하며 고향에 온 것 같은
아늑한 분위기를 느꼈다.
비구야말로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지금까지는 어떻게 마음을 잡을 수가 없어서 그날
그날을 허송세월을 보냈는데 주지스님을 뵙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이었다.
그뿐 아니라 이날을 계기로 마음 한편으로는 이곳 절에 들어와서 살면 어떨까 하는 생각
까지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이모님에게 그 의향을 말씀을 드리자 이모님은 한참을 생각하시더니 네 뜻대로 하는
것도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게다가 방을 나올 때에 하신 스님의 말씀은 더욱 더 마음속에 파도를 출렁거리게 하였다.
“ 옛날에 네가 엄마와 같이 절엘 많이 다녔다니 지금 너의 마음 한가운데에는 엄마와 함께
했던 추억의 강물이 흐르고 있을 것이다.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에서라도 여기에서 얼마동안
을 지나보는 것도 좋을 것이야. “
이튿날 이모님과 함께 주지스님을 다시 찾아뵙고 평생제자로서 소임을 다 하겠다는 맹서를
하였으니 이렇게 해서 비구의 운명은 하루아침에 속세를 결별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마침내 주지스님의 허락을 받고 불자로 입적을 함과 동시에 요사 체에서 생활을 하게 되었
으니 난생 처음으로 절에서 밤을 보내자니 만감이 교차하였다.
비구가 처음으로 절로 들어오자 거기에서 생활하는 모든 사람들이 슬금슬금 비구에 대해서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는 것 같았다.
그들은 비구가 걸음을 걷거나 밥을 먹을 때의 습관에 대해서 단점을 알아내려고 무진 애를
쓰는 것 같았지만 비구야말로 눈치도 빠르고 매사에 세심한 까닭에 단 한 번도 그들에게 책
을 잡히지 않았다.
비구가 마침내 만조라는 스님의 직함을 얻고 나니 지금까지 절에서 고생했던 일들이 주마
등처럼 머리를 스쳐 지나가고 있었는데 뜻밖에 사안이 일어난 것이니 그것은 지금까지 모시
던 주지스님이 다른 절로 가신다는 것이었다.
비구는 막상 주지스님이 떠나신다고 하자 부모님을 여의었을 때보다도 더 허전하고 도저히
주지스님을 떨어져서는 살수가 없을 것 같아서 저녁에 주지스님을 찾아뵙고는 하소연을 드
렸다.
“ 뭐라고 네가 나를 따라가겠다고? 나는 예서 천리밖에 있는 수타사로 가게 되었는데 거기
를 가겠다니 다시 생각을 해보아라. 내가 극구 말리고 싶은 것은 너는 아직도 이 절에 대해
서 누구보다도 애착을 가지고 있으며 더구나 이 절은 네가 어머니와 함께 다니던 절로서 이
절의 곳곳에는 네 어머니의 체취가 남아 있다. 그런데 한번 떠나면 다시 못 오게 될 이 절
을 떠난다니 다시 한 번 생각을 하고 결정을 하거라. “
비구는 주지스님의 말씀을 듣고는 밤새워 고민을 하다가 이튿날 주지스님에게 다시 말씀을
드렸다.
“ 스님을 따르겠나이다.”
스님을 따라 나서자 지금까지 알고 지나던 동네 분들이 매우 섭섭해 하시며 주지스님에게
선물을 마련해 주시는가 하면 비구도 함께 떠난다고 하자 많은 젊은 불자들이 못내 아쉬워
하면서 이다음에 기회가 되면 주지스님이 되어서 오라고까지 하였다.
그것이 벌써 10년 전의 일이고 주지스님은 오시던 다음 해 겨울에 어느 날 새벽예불을 드
리고 나신 후에 얻으신 감기로 인하여 한 달간을 입원하셨다가 그해 겨울눈이 많이 내리던
새벽에 다시 못 오실 곳으로 입적을 하셨다.
스님이 돌아가시자 비구는 부모를 여읜 것처럼 슬퍼하였으니 자신을 돌보아 주시던 단 한분
마저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이다.
연못을 둘러싸고 있는 야산에 진달래가 활짝 피기 시작하자 이내 벚나무에는 벚꽃이 자지러
지게 피어나기 시작을 하였다.
산 꿩이 울어 예는 이른 아침 오늘도 어제처럼 비구는 연못으로 나와서는 연잎들을 살피다
가 저만치 생겨난 분홍색갈의 연꽃 봉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 엄마 엄마. 나 연꽃 한 송이 따주면 안 돼.”
“ 연꽃이 갖고 싶은 게냐. 연꽃을 함부로 꺾는 것이 아니란다.”
4월 초파일이 가깝던 어느 날 어머니를 따라서 절에 가다가 연못에 연꽃을 보고 꺾어 달라
고 하였을 때에 어머니는 연꽃에 대해서 설명부터 해주셨다.
연꽃은 원래 더러운 물속에서도 뿌리를 내려 물을 깨끗하게 하는 정화력(淨化力)을 가지고
있으며 굵은 줄기를 세워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데 불교에서는 이 꽃을 불
교의 상징으로 삼으며 해마다 사월초파일이 되면 절마다 연꽃등을 만들어서 사람들의 소원
을 이루도록 한다는 것이었으니 그러고 보면 연꽃은 신비한 꽃이라 할 수 있다.
썩은 물속에서도 뿌리를 내린다는 것은 다른 어느 식물보다도 강인하다는 교훈을 주는 것이
며 연꽃의 상징으로 삼는 ‘순결’ ‘청결’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어머니의 그때의 말씀은 비구가 자라면서 늘 마음에 새기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연꽃을 보게 되면 어머니의 말씀이 귀에 쟁쟁 울리고 있다.
연못 가득 메우고 자라는 연꽃들의 화려한 장관을 볼 때마다 마음에 일어나는 작은 파도!
그것은 어머니가 살아생전에 자식을 염려하시는 마음의 울림이 지금까지도 파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저 연꽃에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보시(報施)의 뜻이 담겨 있어 함부로 근접할 수 없는 꽃
이라는 인식을 갖게 하였다.
해마다 4월초파일 날이면 어머니 손에 이끌려 집에서 멀리 떨어진 절로 가다가 다리가 아
프다고 하자 엄마가 업고 갔던 일이 생각이 난다.
그때는 만나는 사람들마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면서 참으로 예쁘게 생겼다면서 어쩌면 얼
굴 생김새가 동자처럼 고우냐고 하던 말씀들이 인연이 되어 지금 절집에서 밥을 먹게 된 것
인지도 모른다.
뻐꾹새가 앞산의 숲에서 흥겹게 노래를 부르자 멀리서 꾀꼬리도 낭랑하게 은방울을 굴리면
서 산을 넘고 있다.
金 斗 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