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오은 지음
- 출판사
- 민음사 | 2009-03-03 출간
- 카테고리
- 시/에세이
- 책소개
- 맹랑한 동심과 명랑한 광기의 경계에서 말랑말랑한 시를 놀다 말로...
SBS 더 레드의 여자 주인공처럼
<<풍자 시리즈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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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읽어야 하는 이유? 그것은 모든 시인들이 본질을 논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분 발취한다. 시의 훌륭한 무늬 하나를 훔쳐보는 것만으로도 묘미이다. 시집 한 권 읽지 않고 인생을 논하지 말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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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잘난척 하지마~
나는 6형제(남자만!)의 5번이다. 초등에서부터 고등까지 전교 1등하는 4명의 형들에 찌그러져 소외받았다. 동생은 막내라는 특권! 내 주위엔 서울대 출신이 많다. 하필 마누라도 그렇다. 입학했다가 그만 둔 몇 안되는 여전사! 그녀는 타블로처럼 역공격을 받으며 산다. 한국인의 의식엔 서울대가 로또처럼 보이나? 그것 좀 포기하면 안되나? 심지어 나 같은 놈 만난 마누라 위 아래로 흩어보고 하는 말.
“멀쩡한데?”
“닝기미!”
여튼, 이 시집에 관해 솔직히 계속 미루고, 미루고 미뤘다. 이유는 바로 위에서 설명한 학벌 때문이다. 설날 때나 추석 때, 나를 바라보는 그 위치, 그 느낌, 내가 말하면 씨알도 안 먹히는 아놔~
시는 학벌로 쓰는 게 아니다. 학벌 때문에 특별하게 잘 쓰는 시인도 별로 없다. 이게 결론이었다. 왜 내가 돈을 지불하면서 까지 그들의 언어를 탐닉해야 돼?
제목: 식충이들
책속 한 구절: 콩밥도 먹고 나이도 먹고 그러다 운 좋게 한자리 해 먹으면 뇌물도 먹고 쓴소리에는 적당히 가는귀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쯤 되면 노예처럼 부려 먹고 배우자의 영혼도 야금야금 갉아먹을 테지
(생략)
당신은 예외라고 생각하는가?
제목: 이상한 나라의 앨리트
책속 한 구절: 앨리스는 자기가 파리에 와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저 평소보다 하루 한 끼를 더 먹고 핸드백을 탈탈 털어 코란 한 권과 합성고무로 만든 콘돔, 와이어리스 브래지어를 샀을 뿐인데, 모든 것들이, 심지어는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조차, 놀랍고도 아주 많이 두려웠습니다.
2. 나를 바라보는 그 우월의식, 허례의식, 특권의식, 셧 업!
사건은 한달 전부터 시작되었다. 시집 나오고 댓글 하나 없는 이 더러운 세상에 앉아 홀짝홀짝 맥주나 마시던 내 눈에 오은 시인이 트위터에 내 시집에 대한 글을 남기는 게 아닌가. 아놔, 처음엔 좋았다가 곧 자괴감이 밀려왔다 아, 옹졸한 나의 책 읽기여!
그가 나를 읽었는데 내가 그를 읽지 않는 것은 불쾌하기 까지 했다. 당장, 달려가 샀다. 그리고 검열을 하기 시작했다. 못 쓰기만 해봐 아주 ^^*
첫 시는 문안했다. 두 번 째 ‘말놀이 애드리브’를 읽으며 봐~ 아주 독자를 바라보는 저 우월의ㅡ식~속았다 싶었다. 그의 시집을 전부 읽어야겠다는 경쟁의식이 없었다면 덮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눈을 짜리면서 오은 시인의 시집을 읽기 시작했다.
읽으면서 묘하게 나와 닮았다는 뭐 그런 이기적인 생각^^* 서로에게 영향을 주었는지는 모르지만, 소재의 공통점이 몇 군데에서 발견되었다. 예를 들면 ( / ) 사용한 모던 타임스, ‘얼룩말’ 그 외에도 읽으면서 뭐냐? 이런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김언^^*
학벌도 좋은데 하필 시를 쓰냐? 뭐 이런 질문 많이 받지 않았을까? 서울대 출신들이 가끔 측은할 때가 있다. 그들의 어깨에는 나라의 기둥이 되어야 한다는 뭐 그런 사명감 같은 게 있는데,
“버려!”
한때, 내가 마누라에게 매일 했던 잔소리다. 이건 개체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제목: 제인
책속 한 구절: 제인은 당신이 〔제인〕으로 불러 주길 원하고 있어. 〔dƷéin〕도 아니고 〔줴인〕도 아니야, 〔죄인〕은 더더욱 아니고. 그러니 억지로 혀를 굴려 스스로를 모욕할 필욘 없잖아.
제목: 환절기
책속 한 구절: 여름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사랑을 속삭였습니. 남자의 애간장이 탈 때마다 여자는 콧대를 세우고 연막을 쳤습니다. 여간내기가 아니었습니다.
제목: 모던 타임스
책속 한 구절: 그게 돈벌이가 더 돼? 아빠와 엄마는 항상 논쟁을 벌였지만 큰오빠는 근육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선반의 트로피를 바라보며 오직 양질의 고깃덩이가 되는 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3. 용기 내 봐요~ 도전해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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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에도 여러 종류의 색깔과 개성이 있다. 그 색깔은 각기 인간의 자신의 개성만큼이나 고유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 시집을 존중하면 시집이 읽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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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엘리베이터
책속 한 구절: 동료가 발을 들여놓는 순간, 우리는 반사적으로 여섯 자리가 넘는 구두의 가격을 셈하기 시작한다 사장이 들어오면 스트레스가 쌓이고 신입 사원이 들어오면 질투심이 들끓는다
제목: 이상한 곱셈
책속 한 구절: 우유 우유 우유 하면 / 젖소가 될 지경이었죠
(생략)
원숭이가 항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 잘 익은 체리가 한 알씩 떨여졌고
제목: 얼룩말
책속 한 구절: 어떤 여자는 하얀 잉크로 글을 쓴다 / 하얀 종이에 하얀 잉크로 / 젖퉁이가 투퉁 불어오를 때까지 / 다섯 손가락이 똑같이 아프고 / 똑같이 고통스러워질 때까지 /하얀 잉크 한 방울이 하얀 잉크 한 방울일 때까지 /방울방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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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의 시를 부분 발취하면서 웬만하면 마지막 문장을 적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것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여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또한, 직접 타자를 치다보니 오기가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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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성한계점
오은
나는 팽팽합니다. 더 이상 늘어나고 싶지 않습니다. 말을 짧게 끊는 법을 잊어버렸어요. 마침표가 보이지 않습니다. 간혹 갈고리 같은 쉼표가 내 몸을 절단하는 생각에 바르르 떨곤 합니다. 나는 요렇게나 시시합니다.
당신의 두 손에 온몸을 맡기겠습니다. 절대 놓지 마세요. 밀고 당기는 데 필요한 탄성계수는 내가 구하겠습니다. 나를 놓으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는 사실만 명심하세요. 당신의 뺨을 후려칠 수도 있습니다. 그게 한번 늘어난 자의 운명입니다.
당신이 처음 내 몸을 늘여 빼던 순간을 기억합니다. 내 말이 길어지기 시작했지요. '사랑해'라는 말을 '너를 사랑해'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말이 길어진 만큼 빼빼해져야만 했습니다. 이제야 나는 인어공주의 심정을 이해합니다.
늘어난다는 것은 사랑에 자신이 없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쉬지 않고 입술을 오무락거리지만, 가끔씩은 이 게임을 끝내고 싶어집니다. 의지와는 상관없는 말들이 줄줄 새고 있습니다. 방금 나는 '아름다운 너를 죽을때까지 사랑해'라고 거짓말했습니다.
더 이상 늘어날 수 없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시간은 왜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신과 나의 대화가 일방적인 것처럼 말입니다. 긴장할 이유가 없어지면 나는 순순히 운명을 거역할 겁니다. 그 순간을 기억하십시오. 툭, 소리와 함께 팽팽한 내 몸이 공중으로 솟구칠.
나는 이제 끊어지기 직전입니다. 두 개의 시시한 자신(自身)이 되어 당신으로부터 까마득하게 멀어지겠습니다. 눈썹처럼, 갈매기처럼 날아가겠습니다. 우리가 사랑하기를 포기했다는 사실은 부디 잊어버리십시오. 마침표는 그렇게 함부로 찍는 것이 아닙니다.
갈고리가 날아옵니다. 3음절의 기다림과 1음절의 비명. 바르르, 툭,
이 시가 좋았는데 친철하게도? 인터넷에 있었음^^*
시집 읽는 게 어렵다고 하소연 하는 댓글이 많아서 다음과 같은 방법론을 제시한다.
1. 시집은 자기 주도적으로 읽는 것이다. 해설에 기대어 읽지 말 것! 소설처럼 본문부터 읽으면 된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시는 좋은 시다. 시는 다면적 해석이 가능하다. 따라서 각기 개성이 존재하는 것처럼 마음에 드는 시를 중심으로 이해하면 된다. 다시 말해 시를 느끼면 된다. 수험생도 아닌데 꼭 고등학교 때처럼 해설하고 완벽히 이해하려 든다. 그것은 평론가의 몫이지 독자의 몫은 아니다^^*
2. 시집은 몇 년씩 걸친 노력의 산물이다. 술이나 마시다가 뚝딱 만들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해될 때까지 천천히 자신이 아는 모든 시의 형식이나 내용을 버리고 무심의 마음으로 읽어보시길. 어떤 시인은 시 하나 쓰는데 한 달이 걸리기도 하고 일 년이 걸리기도 한다.
3. 요즘 시집들은 새로운 화법을 가지고 등장한다. 그러면 그 시인의 화법에 맞추면서 읽으면 된다. 처음엔 인내가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화법에 물들듯이 조금씩 전진하면 된다. 그러다보면 조금씩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4. 시집 한권은 소설 백 권 읽는 것보다 유익하다^^* 시는 정신이나 본질을 다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게 풍자시든, 연애시든, 서정시, 새로운 형식의 시든, 그러니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도 이해할 수 없다면 최후의 방법! 소리 내서 읽어보시길! 시청각이 동원되어 조금 더 빨리 이해된다.
5. 경험상의 이야기다. 우울하거나 사기를 당했거나 아주 힘들 때 시집을 꺼내보면 왜 그렇게도 잘 이해되는지 모르겠다. 다시 말해 시집은 자만하거나 용기로 가득찬 목소리나 마음으로 다가가면 잘 열리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다가가면 바로 와서 닿는다.
6. 자기 수준의 시집을 고르시길. 나이와 상황에 맞게 고르는 것이야말로 제일 중요한 기준이다. 시집도 천차만별이다. 제목이나 내용을 통해 연애 시인지, 사회비판적인지, 삶에 대한 것인지 알 수 있다.
7. 시집에 대한 맹목적인 애정이 있으면 읽을 수 있다. 주변 있는 시인들의 아버지는 초등학교 밖에 안나왔지만, 하루도 안되어 모두 읽었다 한다. 물론, 나의 아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