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울음소리
제6회 작품상
최수룡
요즈음 개구리 울음소리 듣는 재미로 밤을 기다린다. 그것도 한두 마 리의 울음소리가 아니다. 떼를 지어 울어대는 개구리 울음소리는 풀벌레와 협연을 하는 듯 멀어졌다가 가까이 다가오고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지는 울음소리는 나에게 그리운 향수로 다가 온다. 이 개구리 합창소리는 얼마만에 들어보는 소리인지 아주 까마득하다. 맑은 밤 둥근 달이 중천에 걸리면 몇 번이고 창문을 여닫는다. 강바람에 찬바람이 들이닥치면 창문을 조금 닫았다가 또 개구리 소리가 멀어지면 열게 된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아내가 창문을 닫을까 물어보면 그대로 두라고 한다. 어떻게 이곳 세종시 우리 아파트 단지 내에서 개구리 울음소리를 듣게 되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내 고향은 황간에서 추풍령쪽으로 2㎞ 정도 가면 들 가운데 있는 동네이다. 태백산맥에서 소백산맥으로 이어지는 고개 추풍령은 영남에서 충청도로 올라오는 고갯길 좁은 골짜기로 김천에서부터 직지사를 지나며 가파른 오르막길로 지대가 높아진다. 추풍령에서 황간으로 넘어오는 좁은 골짜기에 넓은 들이 있다 하여 광평리라 하였는데, 실은 우리가 생각 하는 만큼 넓은 들이 아니다. 동네에서 서쪽을 보면 아름다움에 취해 달도 머물고 간다는 월류봉과 황간 향교 앞 가학루가 동양화처럼 멋진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특히 황혼녘에 해나 새벽녘에 초승달이 월류봉에 걸려있는 모습은 지금도 아련한 그리움이다.
남쪽에는 마을 앞으로 경부선 기찻길과 더 멀리 고속도로가 지나고 넓은 들이 펼쳐지며, 6·25전쟁 때 숱한 사람이 죽어서 피로 들을 물들였다는 매화골짜기 유전리 피뜰로 이어진다. 그 너머에 물한계곡을 따라 삼도봉과 민주지산이 나란히 하고 있다. 북쪽과 동쪽은 가파른 산세로 구름도 잠시 쉬었다가 간다는 추풍 령으로 이어지는 산 앞쪽으로 경부선 국도가 지나간다. 동네 앞쪽 자그 마한 동뫼에는 검붉은 적갈색의 해묵은 조선 소나무 몇 그루가 한껏 멋 을 부리고 있다. 휘늘어진 소나무 위에는 황새가 둥지를 트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 70여 호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정겨운 동네이다.
우리 집은 동네 서쪽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앞에는 두어 마지기 정도 되는 논이 있었다. 동네 가운데 들어있는 논인데 집으로 드나들 때마다 논을 거치게 되어있다. 겨울이 되면 재미있게 노는 얼음판이 되어 썰매도 타고 팽이치기, 연날리기 등 동네 놀이터였다. 또, 얼음이 녹을 즈음에는 고무얼음판이 되어 건너뛰기를 하면서 진흙으로 신발과 옷이 다 젖어서 어머니한테 꾸지람을 들었지만, 신나는 놀이에 빠져 되풀이 하곤 하였다.
봄이 되면 새까맣게 먹물을 풀어 놓은 것 같은 올챙이떼는 장난감 이었고, 여름이면 개구리는 닭장 속의 닭먹이로 수난을 겪었다. 어떤 때에는 친구들과 어울려 개구리 뒷다리를 삶아서 소금에 찍어서 먹기는 하였지만 닝닝한 맛이 별로였다.
모내기가 이루어지면 그 때부터는 개구리 울음소리와 함께 생활을 한다. 벼 베기가 끝나면 논은 여전히 아이들의 변함없는 놀이터로 재잘거리는 시끄러운 소리로 넘쳐났다. 우리 가족은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던 해 2월에 매화골 노천리에서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부모님이 농사를 지으며 두 살 터울의 칠남매 자식들을 양육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먹거리도 워낙 식구가 많다보니 웬만한 것은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을 터이다. 너나 할 것 없이 어려운 때이기에 음식의 양을 늘려 먹는 것이 많았다. 갱시기 나 국수는 그 당시에 음식을 늘려 먹는 방편으로 자주 해 먹었다.
어머니는 국수 만드는 솜씨가 일품이었다. 많은 식구들이 국수를 먹이려면 밀가루 반죽도 적은 양으로는 어림도 없다. 넓은 자리를 깔고 반죽한 밀가루를 여러 번 밀가루를 뿌려가며 커다랗게 밀어서 펼치는 솜씨는 그야말 로 예술이었다. 넓은 원판으로 펼친 밀가루 반죽을 여러 번 길게 접어서 칼질을 하는데, 얇고 가늘게 칼질 하는 것이 기술이었다. 국수 칼질이 끝 날 즈음에 국수 꼬투리는 잘라서 우리에게 주면 그것을 구워먹는 재미로 동그마니 옹기종기 바라보고 기다리며 앉아 있었다. 고르게 칼질을 하여 채반에 펼친 후 멸치를 우린 물에 애호박과 호박잎에 감자까지 채로 썰 어 넣은 후, 풋고추로 양념을 하여 양념장으로 입맛을 돋우게 하였다. 가마솥에 각종 양념으로 우려낸 후 국수를 넣어서 끓여낸 국수는 그야말로 최고의 맛이었다.
국수를 만들 즈음에 아버지는 마당에 멍석을 깔고 베어 놓은 풀을 가지고 오셔서 불을 피울 준비를 하신다. 집 앞에 논이 있어서 달려드는 모기를 쫓기 위한 모기향과 같은 방식으로 연기를 피우려는 것이다. 멍석 위에 상을 펴고 커다란 스테인리스 국그릇에 그득 안겨 받은 구수한 국수는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고, 또 비운 그릇을 내 놓으면 어머니는 흐믓한 미소를 지으며 퍼 주시던 모습이 아련하다. 식사 후에 멍석 위에 나란히 들어 누워서 본 하늘은 수많은 별들로 빼곡히 박혀있었다.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 금가루를 뿌려놓은 듯 별들은 개구리 울음 소리에 맞추어 반딧불이처럼 별빛이 변화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환상적인 우주쇼이었다. 개구리 울음 소리는 우리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였 에 조금도 시끄럽다는 생각을 가져 본 일이 없다. 맹꽁이 소리와 교대로 울어대던 개구리 소리가 갑자기 멈추게 되면 우리 집에 손님이 온다는 것을 감지하고 밖을 내다보게 되는 것도 개구리 소리와 함께 하였기 때문 이다. 고등학교를 이웃 소도시로 유학을 가면서 개구리 소리도 나에게는 멀어지면서 까맣게 잊고 오랜 동안 세월이 흘렀다.
퇴직을 하면서 대전의 아파트를 정리하고, 이곳 세종시 금강변 자그마한 새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아파트에서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만 틀어주 는 분수를 보며 시원하고 아름답다고 느낄 즈음, 우연히 손자 준이와 함 께 아파트 분수대 아래 연못에서 소금쟁이를 보게 되었다. 준이는 신기 한 듯 소금쟁이를 잡아서 집에서 키우겠다는 거다. 동심으로 돌아가 준이와 함께 가볍게 팔딱 팔딱 튀어 오르는 소금쟁이를 종이컵으로 잡는다며 따라다녔다. 아마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오늘 밤에도 개구리는 이 곳에서 합창을 할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흐뭇해진다. 먼 옛날 고향집에서 듣던 아련한 개구리들이 오늘 저녁에도 합창을 하며 그립고 정겹던 고향의 향수를 지펴 줄 것이다
"개굴 개굴 개굴, 개~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