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남 일대의 [줄다리기] 실태
고싸움놀이의 연원(淵源)과 유래에 대하여는 그에 관한 기록이 없으므로 상세한 것은 알 길이 없다. 다만 광주시 남구 대촌동 노인들이 전하는 말에 의하면 전승지(傳承地)인 옻돌마을은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로 와우상(臥牛相), 즉 황소가 쪼그리고 앉아 있는 상(相)이어서 터가 무척 거세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황소가 일어나 뛰어다니게 되면 전답(田畓)의 농사를 망치게 되므로 일어서지 못하게 황소의 입에 해당하는 곳에 구유(전라도 사투리로 [구수])를 상징하는 연못을 파 놓았고, 또 고삐는 할머니 당산(堂山)인 은행나무에 묶어 놓았으며, 꼬리부분에 해당되는 곳에는 일곱 개의 돌로 눌러 놓았다는 것이다.
한편 웇돌마을 노인들은 와우상 이라 터가 거세다는 방증(傍證)으로 이 마을은 개(犬)를 갖다 놓으면 곧 죽어버리기 때문에 키울 수가 없어서 부득이 개(犬) 대신 집집마다 거위(전라도 사투리로 [때까우])를 기르고 있다고 내세운다. 이에 그 거센 터를 누르기 위하여 고싸움놀이가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속설은 전남 일대의 큰 마을마다 널리 퍼져 있는 이야기 일 뿐만 아니라 이 고싸움이 옛날에는 나주시 남평면(羅州市 南平面)이나 장흥군(長興郡), 강진군(康津郡)등지에서 줄다리기 앞놀이로 [고쌈]이라는 놀이가 있었다는 점으로 보아 믿을 수가 없다.
이상과 같은 점으로 미루어 보아 [고 싸움]의 연원(淵源)과 유래는 [줄다리기]의 전희인 [고싸움]에서 시작, 이것이 변형되어 독립된 놀이로 형성된 것이라 볼 수가 있다. 2. 기록에 의한 [줄다리기]의 실태
최남선(崔南善)님의 저서(著書) 조선상식문답 풍속편(朝鮮常識問答 風俗篇) 형초시세시기(荊楚歲時記)에 한식(寒食)의 행사로 타구(打球) 추천( 韆) 시구지희(施鉤之戱)를 행하였는데 시구지희(施鉤之戱)는 죽피(竹皮) 등으로 동아줄을 꼬아 수는(數里)에 걸쳐놓고 명고호조(鳴鼓呼塞)하면서 서로 견인(牽引)하는 것이다 라 하였으며
당(唐)나라 봉연(封演)의 문견록(聞見錄) [발하(拔河)는 옛날 견구(牽鉤)라 하던 것으로 한(漢) 나라 때에는 정월망(正月望)에 죽피대색(竹皮大索)으로 하던 것을 요즘은 청명(淸明)에 마환(麻 )으로써 하여 길이 4.5십발(丈)의 양두(兩頭)에 소색(小索) 수백조(數百條)를 달고 대기(大旗)를 중간에 세워 계(界)를 삼고 진고규조(震鼓叫塞)하면서 양쪽에서 서로 견인(牽引)하여 끌리는 자가 부(負)하는 법이다] 하였으니, 이 시구(施鉤), 발하(拔河)가 필시 우리 [줄다리기] 그것임은 물론이나 다른바는 시기를 흔히 청명을 씀과 아울러 향촌뿐만 아니라 궁정(宮廷)에서도 이를 행하여 농촌 점년적(占年的) 의미가 있다는 점 등이다. 이 기록을 보면 양(梁) 나라 종늠의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보이는 시구지희(施鉤之戱)와 당나라 봉연(封演)의 견문록에 보이는 발하(拔河)는 모두 죽피(竹皮)로서 줄을 꼬아 갈쿠리(鉤)와 비슷한 [고]를 만들어 갖고 이를 연결시켜 잡아당기는 놀이란 것을 알 수가 있다.
일본의 대림태량(大林太良)님의 문화인류학이란 편저 「수도경작(水稻耕作) 어로민(漁撈民) 문화와 줄다리기」 중국에서의 줄다리기는 수도 재배민 문화(水滔栽培民 文化)를 배경삼고 있다. 현재도 마카오의 북방인 광동성 [아공구]에서는 신년에 약자숙(若者宿)끼리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한다. 6세기에서 9세기의 기록에는 호남, 호북의 양성(兩省) 방면에서 성행된 것이 기록에 보이며, 호북의 양양(襄陽)에서는 정월만월에 행하는 것이 상례였다. 그리고 그 기원(起源)에 대하여 초(楚), 오(吳), 양국이 싸울 때에 발원됐다고 전하는 점으로 보아 양자강을 따라서 하구지방까지 분포돼 있었을 것 같다. 호북에서는 죽은 용(龍)을 상징하며 줄다리기는 년점(年占)의 의미가 있었다. [에에바하르트]가 이것을 수도경작을 기반으로 하는 [타이문화]의 정월 15일의 행사 일부로서 파악한 것은 기본적으로 옳은 것이라 생각된다. 줄다리기가 동남아시아 [오세아니아]에도 점점이 분포되어 있는 것은 [후레이저]나 [담]의 연구에 의해서 알려져 있으나 봄에 행하는 년점행사로서의 성격, 줄과 뱀 또는 관계, 여자편이 이기게 되어 있는 일, 그리고 성적인 의미들의 특징이 뚜렷한 것은 수도재배민 특히 인도지나의 타이계통의 제민족(諸民族)의 지역이다. [라오스]의 [루아푸라방] 지방에서는 봄 파종직전에 농경의례가 있다. 저녁에 남녀 별개의 줄(列)을 지어 춤을 추는데 줄은 각기 한 마리의 뱀을 나타내며, 한쪽의 뱀이 다른 쪽의 뱀을 쫓으며 이것은 비가 가뭄에 이기는 것을 상징한다. 이것이 끝나면 줄다리기를 하는데, 이것도 남조(男組)와 여조(女組)로 나뉘고, 여조가 이기면 금년은 행운이지만 남조가 이기면 재액(災厄)이 온다고 믿는다. 실은 이 줄다리기의 줄도 뱀을 상징하고 있으며, 여조가 이기면 비가 잘 내린다는 이치인 것이다. 이 기록에 의하면 줄다리기는 동남아 일대에 널리 유포되어 있고, 또 이 줄다리기가 내포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의 실체가 우리 한국의 경우와 흡사함을 알 수가 있다.
장주근(張湊根)님의 논문 [한국문화인류학]에 [줄다리기에 대하여] 여기서 그 실제와 의의 문제를 필요 부분만 항목별로 열거 기술하고 있는데 그것을 항목만 소개하면 첫째, 성행위의 의의. 둘째, 여자편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는 것. 셋째, 장소문제. 넷째, 줄을 용(龍)에 관련시켜 생각하는 점. 다섯째, 그 시기문제. 여섯째, 여기에 따른 속신(俗信) 문제들을 들고 있다.
이상 인용한 여러 기록에 나타나는 [줄다리기]의 실태와 전남 일대의 [줄다리기] 실태를 살펴 본 결과 [줄다리기]와 [고싸움]은 여러 가지 면에서 깊은 관련성을 맺고 있다는 것이다.
3. 고싸움이 줄다리기와 유사한 점
- 놀이시기가 봄, 더 자세히 말하면 정월보름 아니면 2월 1일로 같고
- 상촌(上村) 즉 동부(東部)가 남성을 상징하면 하촌(下村) 즉 서부(西部)가 여성을 상징하는 것이 같으며,
- 서부 즉 여성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는 점풍적(占豊的)인 성격을 띄우고 있는 것이 같고,
- 줄은 용이나 뱀과 깊은 관련성을 맺고 있는데 [고]는 마치 도마뱀과 같은 형상이며 특히 [고싸움]을 할 때 [용을 틀어 갖고 돌아 다닌다]라는 소문이 퍼질 정도로 깊은 관련성을 지니고 있고,
- [줄다리기]를 하기 전에 부락을 일주한 연후에 놀이를 전개하는데 [고싸움]도 이와 같은 행사를 하며,
- 전남에서의 [줄다리기]는 도서지방에서는 남녀별 대항, 육지지방에서는 상, 하촌 부락 대항전인 점이 같으며,
- 농악대가 참여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농악을 치면서 응원하며,
- 줄다리기를 하기 전에 반드시 당상신(堂上神)에게 인사굿을 치고 하는데 [고싸움]도 그러며,
- [고싸움]의 놀이 기구를 만들 때는 대나무(竹)를 넣어서 둥근 [고] 모양의 머리를 만드는데 시구지희(施鉤之戱)와 발하(拔河)에서 죽피(竹皮)로 놀이기구를 만든다는 것과 깊은 관련성을 맺고 있다는 점 등등을 들 수 있다.
4. 고싸움이 줄다리기와 다른 점
- 줄을 잡아 당겨서 승부를 내는 것이 아니라 [고]를 맞부딛혀 상대방의 [고]머리를 땅에 닿게 한 연후 이것을 짓눌러야만 승부가 난다는 것이 다르며,
- 지휘자가 올라타서 지휘하는 것이 다르고,
- [줄다리기]에서는 볼 수 없는 세 종류의 노래가 불리어진다는 점이 다르며,
- 달밤인데도 횃불을 켜들고 껑충껑충 춤을 추면서 응원하는 것이 다르고,
- [줄다리기]처럼 그 날 하루에 승부를 내는 것이 아니라 무려 20여일에 걸쳐 계속된다는 점이 다르며,
- [줄다리기]나 그 어떤 민속놀이보다도 악착스러운 투지와 일사불란(一絲不亂)한 통제력과 강철같은 협동심 내지는 단결심 그리고 강한 의지력을 필요로 하는 격렬한 놀이라는 점 등등이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5. 결론
- 이상 [줄다리기]와 [고싸움]과의 유사점과 그 상이점을 비교해 본 결과 대체적으로 그 기본적인 실제는 같으나 놀이 방법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선천적인 그 바탕은 같으나 후천적인 성장과정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므로 이 두 놀이는 애당초에는 동일한 놀이였거나 또는 동일 계열의 놀이였던 것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형, 형성된 놀이라 할 수 있다.
- 그 형성과정을 필자 나름대로 추리한다면 [줄다리기]의 전희인 [고싸움]을 벌일 때 서로 [고]가 부딪치다보니 이 [고]가 망가지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굉갯대]를 세웠고, 이 굉갯대를 세우고 부딪치다보니 [고]가 서로 솟구쳐 올라감으로 상대방의 기세를 죽이기 위해서 [곳대가리]를 눌러 굴복하게끔 만든데서 연유하여 그 지역의 공간적, 시간적, 역사적, 조건에 의하여 오늘날과 같은 [고 싸움] 놀이로 변형(變型) 독립된 놀이형태로 형성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므로 [고 싸움]의 연원은 [줄다리기]에 있고, 그 유래 또한 줄다리기에서 온 것이라 결론지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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