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
해마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는 6월이 오면 우리는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들을 추모한다. 비교적 우리 시대와 가까운 일제식민시대에 독립운동을 하다가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과 한국 전쟁으로 인한 전사자들에 대한 추모가 주를 이룬다. 물론 기타 여러 가지 사유로 순국한 다수의 인물들도 빼놓을 수 없는 위로와 기억의 대상이다.
외국의 주요 국가에서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전몰장병에 대한 추모 행사는 전 국가적으로 이루어진다. 특히 영국을 위시한 영연방 국가와 프랑스, 벨기에 등에서는 해마다 11월 11일을 전후하여 대대적인 추모행사를 한다. 이 때 이들의 가슴에는 야생 양귀비(poppy)의 꽃 모양 기념 배지를 단다.
양귀비(poppy)는 참호전이 전개되면서 수많은 젊은 넋이 사라진 프랑스의 『폴랑드르』 평원에 붉게 만개하던 꽃이었다. 이 날은 바로 1차 세계대전이 종식된 날로 4년이 넘는 동안에 희생된 젊은 영혼을 기리고 명복을 기원하는 국가적인 기념일인 것이다.
영국을 상징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들어가면 출입구에서 먼저 마주치는 곳에 당시 전사했던 무명용사의 묘가 있어 누구나 경의를 표하게 된다. 이 무덤은 전쟁에서 전사한 영국군인 모두를 기리는 상징으로 이 무덤만은 절대로 밟지 않는 것이 관례다.
그리고 인근에 위치한 일명 『빈무덤(The Cenotaph)』이라고 불리는 전쟁기념비 앞에서는 해마다 국왕이 참석하는 가운데 대대적인 추모 행사를 거행한다. 매년 휴전 기념일에서 가까운 일요일에 전사자들을 위한 의식이 열리며 2분간의 묵념을 한다. 이어서 감사의 헌화와 행진을 한다.
미국 역시 연방 공휴일 중 하나인 ‘메모리얼 데이(Memorial Day)’는 우리의 현충일과 유사한 날이다. 메모리얼 데이는 매년 5월 마지막 주 월요일로 매년 기념행사가 성대하게 개최된다. 이처럼 국가가 존재하는 한 국가와 조국을 위해 생명을 바친 숭고한 애국정신은 두고두고 지켜야 할 후대의 사명인 것이다.
우리도 현충일이 되면 하루를 경건하게 지내면서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들의 넋을 위로한다.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존재하는 것임을 결코 잊지 않는다. 아울러 더 부강한 나라가 되길 기원하며 새로운 각오를 다진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매끄럽지 못한 일처리로 다소 혼란스러운 일이 있다. 바로 일제하 독립운동을 하던 분들에 대한 명확한 판단 기준이 모호한 편이다. 대부분이 공적은 인정되는 데 해방 이후의 행적이 문제된 경우가 대다수이다. 어느 누구보다 독립을 위해 심혈을 기울였지만 오늘 날 제대로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은 심히 유감스럽다. 언젠가는 이에 대한 전향적인 재검토가 이루어지길 바란다.
「레닌」이 러시아 혁명 성공 이후에 당시 약소국가에서 제국주의를 상대로 독립운동을 하던 인사들에 대한 현금 지원을 한 일이 있다. 이 중에는 우리나라의 유명한 독립운동가도 있었는데 결국은 공산주의자의 지원을 받았으니 북에서나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의견에 경악한 일도 있다. 그들이 당시에 어떻게 그런 세밀한 정보까지 습득할 수 있겠으며, 고립무원의 국제사회에서 누가 그런 지원을 하겠는가에 대한 분석과 고려는 전혀 무시한 결과라고 본다.
우리는 일본식민시대의 과거사에 대한 문제로 의견이 분분하다. 모두 일부분은 일리가 있는 주장이지만 모두 흔쾌히 동의를 얻지 못하고 갈등만 고조되고 있어 안타깝다.
영국은 많은 동상을 가진 나라다. 「넬슨」의 동상이 있는 『트라팔가 광장』에서 『웨스트민스터』 주변의 『팔리아멘트 스퀘어 가든(Parliament Square Garden)』에 이르는 일정 공간은 과거에 영국을 빛낸 위대한 인물들의 동상이 즐비하게 서있다. 그 마지막에 1,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을 구한 「처칠」의 동상도 있다.
그런데 이 정원에는 미국인인 「링컨」의 동상이 있다. 아마 노예 해방과 민주주의의 진정한 가치를 실현한 공적을 평가했기 때문일 것이다. 더욱 놀라운 일은 『인도』의 「간디」와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의 동상이 있다는 점이다. 그들의 비폭력 평화 운동과 민주주의의 정신을 지향했던 삶을 수용한 것이다.
이는 마치 일본 동경의 국회의사당 주변의 공간에 「안창호」, 「이승만」, 「김구」와 같은 인물의 동상을 건립하여 추모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과연 일본이 이처럼 영국이나 독일과 같이 과거사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를 할 수 있겠는가! 모두 이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해보고 평가할 일이다.
더구나 엄밀히 따지면 국립묘지에 안장할 자격이 부족한 인물에 대한 정리도 끝나지 않아 논쟁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도 분명한 개인의 부주의로 인한 사고였음에도 그 내용이 둔갑하여 미화하거나 영웅으로 칭송하는 일이 아무런 제재 없이 진행되는 일도 있다.
누구나 자식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 덕목이다. 하지만 대를 이어 국가를 위해 최 일선에서 수고를 아끼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예우가 부족하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 연합사령관으로 근무했던 「에이브럼즈」 대장은 부친도, 형도 대장까지 진출한 군의 명문가였다. 본인의 능력도 출중했고 근무 성적도 탁월하니 그만큼 성공했을 것이다. 하지만 일반 사회에서 대를 계승하여 국가에 봉사하는 인물들에 대한 보상과 존경 그리고 진출을 보장하는 무언의 성원과 배려 없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내 주변에도 3대 째 군인의 길을 걷는 가정이 있다. 2대를 이은 경우는 그 수가 상당하다. 동기생 중 4명이 아들을 육사에 보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혜택이나 배려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물론 민주국가에서 특정인을 위한 별도의 조치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적어도 동일한 조건이라면 우선적인 관심과 배려는 필요한 것이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도 보고 배운다. 정 마땅하게 보이지 않거든 스스로 자기 자식들로 하여금 군인의 길을 걷도록 해보라고 말 해주고 싶다.
제주 4.3 사건에 출동했던 「박진경」 대령은 부하에 의해 총격을 받아 순국했다. 당시 그의 휘하에서 소대장으로 근무했던 「채명신」장군은 “100명의 공비를 놓쳐도 좋으니 1명의 무고한 주민을 희생시키지 말라”는 연대장의 작전 지침을 그대로 월남전에서 적용했다고 술회하였다. 박 대령의 아들이 훗날 장군으로 진급했고 국회의원도 몇 차례 역임했다. 손자 역시 육사를 다녔으며 역시 장군으로 승진하였다. 필자가 육사에서 훈육관으로 재직하면서 가르친 생도여서 그 사정을 잘 알고 있다.
또한 필자와 동기생도 그의 선친이 한국 전쟁 시 용맹을 떨치고, 휴전선에서 적의 총격 도발에 발끈하여 아군의 포병사격으로 적의 진지를 궤멸시킨 유명한 「박정인」 장군이다. 아들에 이어 손자도 군인의 길을 걷게 하였다. 적어도 이들에게는 응분의 배려를 해 주는 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마땅한 도리라는 생각이다.
해마다 오늘이 오면 가곡 「비목」을 부르고 또 부른다. 조국의 부름을 받고 이름 모를 산하에서 임무를 다 하다가 고독하게 죽어 간 그 청춘들의 눈물을 기억한다. 적어도 국가가 존속하는 한 병역의 의무는 필수적이다. 이를 회피하면서 그 신성한 의무를 정당한 이유 없이 수행하지 못한 인물들에 대한 당당한 심판은 바로 우리들 몫이다. 이를 소홀히 한다면 그 사람들은 민주사회 공동체의 일원이 될 자격이 없다.
우리도 언젠가는 해마다 이 날이 오면 가슴에 희생자를 기리는 기념 표식을 가슴에 달았으면 좋겠다. 백의민족을 상징하는 하얀 무궁화였으면 더욱 좋겠다. 이를 보고 자라는 후세들도 애국심을 발휘하여 조국이 부르면 선선히 전장으로 향하는 상무정신을 함양하는 계기로 만들기를 희망한다. 국가가 순국자와 유족들을 각별하게 추모하고 보살핀다는 확신이 설 때 미련 없이 전장터로 나간다.
(2023.6.3.작성/6.4.발표)
※ 그동안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다음주부터 8월 말까지는 개인 사정으로 집필을 중단합니다. 사정이 허락하는 날에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무더위에 건강히 지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