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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남한산성 일주
2023년 03일 01일(수요일)
산행코스 : 남한산성주차장(08:20) - 서문(08:50) - 남문(09:35) - 동문(10:25) - 제3암문(11:15) - 벌봉(11:30) - 15암문(11:45) - 알바구간 - 15암문(13:00) - 한봉(13:20) - 제3암문(13:55) - 북문(14:20) - 서문(14:45) - 남한산성주차장(15:05)
산행거리 : 21.1km
남한산성주차장에서 행궁방향으로 진행합니다.
산성역 2번출구에서 9-1, 53번을 타고 남한산성 행궁 주차장까지 쉽게 갈 수 있습니다.
남한산성 행궁(行宮) 한남루(漢南褸)
정조22년(1798)에 광주 유수 홍억이 행궁 입구에 세운 2층 누각문입니다.
좌전(左殿)
좌전은 행궁의 종묘사직으로 역대 임금의 위패를 봉안하는 종묘를 축소해서 만든 곳입니다.
좌측에 종묘, 우측에 사적을 배치한데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측면에서 바라본 좌전
숭렬전(崇烈殿)
백제의 시조 온조왕와 산성축성의 책임자인 이서 장군의 영혼을 모신 사당
수어장대 0.5km, 우익문(서문) 0.4km, 종로 0.9km, 남한산성행궁 0.6km
병암 남성신수비(屛岩 南城新修碑)
정조3년(1779)에 남한산성을 중개축하기 위한 수어사 서명웅의 건의와 공사에 참여한 광주부윤 이명중, 석회와벽돌을 구워 운반하던 감독관, 구역별 책임자 18명 등의 명단, 그리고 공사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 건축실명제 금석문 입니다. 남한산성을 보수한 사실을 기록한 비문이며, 2개의 돌로 되어있으며 "병암(屛岩)"이란 글자가 선명합니다.
우익문(서문)
우익문(서문) (右翼門 西門) 바깥쪽
수어장대 1.0km, 일장천약수, 위례둘레길(벌봉) 3.2km, 위례둘레길(북문) 1.1km, 표말삼거리 1.3km
1637년 1월 30일 청태종에게 항복하러 삼전도로 나갈때 세자 등과 함께 우익문(서문)으로 걸어나간 인조는 삼전도에 마련된 항례의식에서 청 태종에서 세번 머리를 조아리고 아홉번 이마를 땅에 부딪히는 의식 삼궤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 세 번 절을 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예법)로 항복하였습니다.
서문전망대로 가는 둘레길
서문전망대에서 바라본 잠실방향 파노라마
저멀리 청계산, 관악산이 희미하게 보입니다.
위례신도시와 잠실롯데월드타워
롯데월드타워, 아차산
성벽 아래 나 있는 탐방로를 따라 수어장대 방향으로 갑니다.
성벽 중간에 설치된 수구
성벽에 툭 튀어나온 돌과 그 위로 구멍이 뚫린 것이 보이는데 이것이 바로 수구입니다.
성벽내부에 물이 스며들 경우 성벽의 안정성에 치명적인 약점이 되기 때문에 배수가 취약한 곳곳에 별도의 수구를 설치하였으며, 현재 확인된 수구의 수량은 모두 28개소에 달합니다. 수구의 바닥돌은 성벽에서 30cm정도 돌출하도록하여 물이 직접 성벽에 스며들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제6암문(서암문)
남한산성에는 총 16개의 암문이 있는데 본성 11개, 봉암성 4개, 한봉성에 1개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수어장대 0.1km, 유일천약수 1.5km
제6암문(서암문) 안쪽
바깥쪽은 홍예식, 안쪾은 평거식 암문입니다.
이승만대통령 송수탑(頌壽塔) 하단
이승만 대통령의 80회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경기도지사가 이승만 대통령의 장수를 기원하는 탑이 송수탑입니다. 이때가 1956년 6월 15일 입니다.
4.19혁명으로 송수탑도 하단부만 남기고 철거하여 옆에 묻어버렸습니다.
수어장대(청량산 정상)
서장대로 불리는 수어장대는 총지휘소인 장대로, 성내 동, 서, 남, 북 4개의 장대와 봉암성과 함께 축조된 외동장대 등 모두 5개의 장대가 있었는데 이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장대입니다.
인조 2년(1624) 남한산성 축성 때 단층으로 지어 서장대라 불리던 것을 영조 27년(1751) 유수 이기진이 왕명을 받아 2층으로 다시 짓고 '수어장대(守製將臺)‘라는 편액을 달았습니다. 지금의 수어장대 현판은 헌종(1836)에 유수 박기수가 수어장대를 중수하였는데, 그 형인 박주수가 쓴 것입니다.
2021년 12월 27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매바위
청량당 사당에 모신 이회 장군에 대한 사연이 깃든 매바위로 "수어서대(守禦西臺)"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무망루와 이승만대통령 기념식수 전나무
무망루(無忘樓)는 병자년의 수치를 잊지 말자는 뜻에서 영조가 친필로 쓴 편액으로 원래 수어장대 이층 누각 안에 있었습니다.
영춘정 들머리
우익문(서문) 1.0km, 수어장대 1.4km, 지화문(남문) 0.7km
남문과 저멀리 검단산
지화문(남문) 안쪽
지화문(남문) (至和門 南門) 바깥쪽
병자호란병자호란 당시 청군이 파죽지세로 남하하는 통에 제대로 피난길에 오르지 못한 조선왕 인조(하루 전에 왕자 등은 강화도로 피난 조치)는 1636년 12월 14일 한겨울에 눈길을 헤치며 지화문(남문) 至和門(南門)을 통해 남한산성으로 들어왔습니다.
47일간의 항쟁 후 인조는 1637년 1월 30일 우익문(서문)을 통해 삼진도로 내려간 후 청 태종에게 항복합니다.
성남누비길(검단산길 구간)으로 진행합니다.
제1남옹성과 검단산(534.7m)
옹성(雍城)은 성문 밖으로 한 겹의 성벽을 더 둘러쌓는 이중의 성벽입니다. 성벽으로 접근하는 적을 3면에서 입체적으로 공격할 수 있습니다.
제1남옹성 고대(高臺)
제1남옹성 고대에서 바라본 남한산성 파노라마
좌측 서울시내와 우측 수어장대
좌측 수어장대와 우측 제1남옹성치
우측 제2남옹성치
제2남성옹치와 제3남성옹치가 보입니다.
옹성 고대위에서 바라본 포루
옹성 끝에 포루3면(동쪽에 3개, 서쪽에 2개, 그리고 남쪽에 3개)으로 8개의 포루를 설치되어 있습니다.
제1남옹성치
치(雉)는 성곽을 돌출시켜 성벽으로 접근하는 적을 입체적으로 공격하기 위한 시설입니다
본성에서 제1남옹성으로 나가는 길에 제7암문이 있습니다.
제7암문(제1남옹성 암문) 안쪽
양쪽 모두 홍예식입니다.
뒤돌아본 제1남옹성
지화문(남문) 0.5km, 남장대터 0.2km, 좌익문(동문) 1.3km
제8암문(제2남옹성 암문) 안쪽, 바깥쪽
제2남옹성 암문으로 안쪽은 평거식 바깥쪽은 홍예식입니다.
제8암문도 주의깊게 살피지 않으면 그냥 지나가기 쉽습니다.(남장대터 전에 진입해야 합니다)
남장대터
제2남옹성치
제2남옹성과 성남 검단산 신남성의 돈대
돈대는 군부대가 있어서 출입금지구역입니다.
포루는 동서남 3방향으로 3개씩 9개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제2남옹성치 아래에 제2남옹성이 있습니다.
제9암문(제3남옹성 암문)
제9암문 바깥쪽
안쪽은 평거식 바깥쪽은 홍예식입니다.
제3남옹성치
제3남옹성
5개의 포루가 남쪽에 3개, 동쪽과 서쪽에 1개 설치되어 있습니다.
제10암문(한흥사암문) 안쪽
제10암문 바깥쪽
안쪽은 평거식, 바깥쪽은 홍예식입니다.
동문과 망월사가 보이고 그위에 봉우리가 동장대터가 있는 서봉입니다.
동문이 보입니다.
제11암문(동암문)
안쪽은 평거식, 바깍족은 홍예문 암문입니다.
제11암문 바깥쪽
암문의 규모는 기능과 위치에 따라 크기가 매우 달랐습니다. 가장 규모가 큰 것은 산성 동쪽 수문 남쪽 20m 지점에 있는 제11암문으로 암문의 폭은 286cm이고 높이는 307cm에 달하여 성문에 가까울 정도의 크기입니다.
반면 가장 작은 암문은 수어장대 남서쪽의 제6암문으로 푹은 77cm이고 높이는 155cm에 불과해 성인 1명이 지나기도 어려울 정도입니다.
천주교 신유(1801), 기해(1839), 병인(1866) 박해 당시 신도300여구의 시신을 이곳을 통하여 계곡으로 버려진 곳 이라하여 시구문이라고도 합니다.
수문 바깥쪽
수문
남한산성은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아 대부분의 물이 이 수문을 통해 밖으로 흘러보냈습니다.
좌익문(동문) (左翼門 東門) 바깥쪽
좌익문(동문) 안쪽
남한산성의 성문은 모두 4개로, 그중 동문은 산성의 남동쪽에 있으며 남문과 함께 사용빈도가 매우 높았던 성문입니다. 인조(仁祖) 2년(1624)에 수축된 이후, 정조(正祖) 3년(1779) 성곽보수시에 성문도 보수하였습니다. 이 때 붙은 이름이 바로 ‘좌익문(左翼門)’인데, 이는 국왕은 남면(南面)하여 나라를 다스리므로 동쪽이 왼쪽이 되기 때문입니다.
뒤돌아본 지나온 남한산성
저 아래 아스팔트 도로가 보이는데 우측에 동문이 있습니다.
남한산성 행궁과 그 뒤로 수어장대가 보입니다.
송암정터
바위덩어리 위에 있는 이 고사목은 정조임금이 여주 능행길에 보시고 '대부'라는 벼슬을 내렸다고 해서 '대부송(大夫松)'이라고 불렸다 합니다.
여장
마치 옹성의 포루처럼 생긴 것 두개가 나란히 붙어 있습니다.
좌측 벌봉, 우측 한봉
제1암문(장경사 암문)
제1암문 바깥쪽
안쪽은 평거식, 바깥쪽은 홍예식 암문입니다.
제1암문 바깥쪽에서 바라본 장경사
장경사일주문
장경사 대웅전
남한산성 축성 때 세워진 9개의 승군사찰 중에서 오늘날까지 유일하게 남아 있는 절입니다.
강희21년(1682년)명 장경사 동종
전승문(북문) 1.8km, 동장대터 0.4km, 좌익문(동문) 1.1km
제2암문(장경사신지옹성 암문)
제2암문 바깥쪽
원성(남한산성)과 신지옹성을 있는 암문으로 양쪽 모두 평거식입니다.
장경사신지옹성에서 바라본 남한산성
장경사신지옹성과 우측 건너편으로 한봉이 보입니다.
장경사신지옹성은 포루가 2개 있습니다.
동장대터로 올라가는 가파른 등산로
동장대터로 가는 길에 뒤돌아본 장경사신지옹성과 한봉
남한산성 군포지
군포지는 성을 지키는 초소로서 125개 군포지가 있습니다.
동장대터가 보입니다.
남한산성 여장(女墻)
보통 여장 한칸에는 구멍이 3개 정도 뚫려 있는데 이를 총한이라고 합니다. 총안은 화살이 역류하는 것을 막아주는 시설이 되어 있기 때문에 아군을 보호하고 적군을 공격할 수 있는 효율적인 공격 시설입니다. 한편 여장 대부분 양쪽 끝이 마름모꼴로 만들어져 있는데, 이는 타구에서 성 아래를 내려다 볼 때 시야가 훨씬 넓게 트이게 되어 공격 범위를 넓히기 위함입니다.
동장대터(남한산 서봉)
제3암문(봉암성 암문)
벌봉(봉암성)으로 가는 통로입니다.
벌봉 0.6km, 좌익문(동문) 1.5km, 전승문(북문) 1.4km
제3암문 바깥쪽
양쪽이 모두 홍예문 형태의 암문입니다.
이제 봉암성, 한봉성으로 진행합니다.
제12암문(봉암초암문)
본성 11개, 봉암성 4개, 한봉성 1개 암문이 있는데, 외성 첫번째 암문으로 양쪽 모두 홍예식입니다.
보이는 성문이 봉암성 안쪽
남한산성 본성 위에 동장대터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봉암성 성벽
봉암성은 동장대 부근에서 북동쪽의 능선을 따라 벌봉일대를 포괄하여 쌓은 성입니다.
한봉갈림목
벌봉 0.2km,, 위례둘레길(샘재) 7.1km, 위레둘레길(북도) 1.8km, 한봉 1.4km, 노적산 6km
좌측 벌봉, 우측이 한봉으로 가는 길입니다.
벌봉앞
상사창동 2.0km, 위례둘레길(샘재) 6.9km, 좌익동(동문) 1.9km, 동장대(터) 0.6km, 한봉 1.8km
제13암문(동림사암문)
벌봉 아래에 위치하고 있으며, 하남 고골로 통하는 암문입니다.
제13암문 바깥쪽
제13암문 바깥쪽에서 바라보면 "ㅡ"자 형태인 안팎으로 평거식입니다.
벌봉 정상으로 가는 길에 허물어진 봉암성벽
뒤돌아본 봉암성
벌봉 정상(512.2m)
봉암산성 신축비
봉암신성신축비
숙종12년(1686) 윤 4월1일부터 봉암을 쌓기 시작하여 같은해 5월 9일 마무리한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남한산 정상이 보입니다.
외동장대터
남한산 정상석
남한산 정상에서 100m 떨어진 등로에 새로 생긴 정상석
제14암문(외동장대암문)
제14암문 바깥쪽
성밖의 모습으로 모두 평거식 암문이고, 허리를 굽혀 나갈 수 있는 작은 문입니다.
제14암문에서 바라본 봉암성
남한산 정상
무너진 성곽 보수를 하고 있습니다.
좌측 예봉산, 검단산, 용마산
은고개 갈림길
벌봉 0.4km, 동장대(터) 0.4km, 큰골 1.2km, 한봉 1.2km
제15암문(봉암성 한봉초암문)
한봉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제15암문 바깥쪽
안팎으로 모두 평거식 암문입니다.
검단지맥길
은고개 방향으로 진행하면 용마산, 검단산으로 어어집니다.
엄미리 계곡 갈림길
벌봉 1.3km, 엄미리계곡 0.7km, 엄미리(은고개) 3.0km
346고지
벌봉 2.0km, 은고개 1.7km
뒤돌아 제15암문으로 향하여 갑니다.
다시돌아온 제15암문에서 한봉으로 진행합니다.
제16암문(영원사암문)
암문 중 유일하게 한봉성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한산과 한봉의 중간쯤에 있습니다.
제16암문 바깥쪽
안팎으로 모두 평거식입니다.
능선으로 이어지는 한봉성
무너진 성벽을 따라갑니다.
한봉 갈림길
노적산 2.8km, 벌봉 0.8km
노적산 이정표 우측으로 진행하여야 한봉으로 갑니다.
좌측 성벽이 한봉성
동장대 1.7km, 벌봉 1.6km
한봉
병자호란 당시에 청태종이 이곳에 주둔하면서 행궁을 향하여 화포를 발사한 장소입니다.
한봉 정상석
저멀리 가파르게 올라가야할 남한산이 보입니다.
제15암문
봉암성 포루
저멀리 망덕산, 검단산(성남)
남한산
다시 제3암문으로 되돌아와서 본성 북문으로 진행합니다.
가파른 내리막 계단을 내려오면서 바라본 하남시
성벽에 제4암문이 보입니다.
제4암문(북암문)
제4암문 바깥쪽
안쪽은 평거식, 바깥쪽은 홍예식 암문입니다.
성벽 중간에 설치된 수구
청량산(수어장대)와 우측 연주봉이 보입니다.
전승문(북문) (戰勝門 北門)은 해체복원공사 중입니다.
전승문(북문) 안쪽, 바깥쪽
북문은 성곽 북쪽의 해발 365m 지점에 있으며 1779년 성곽을 개보수할 때 전승문(戰勝門)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남한산성의 북문을 '전승문(全勝門)'이라고 부른 이유는, 다시는 전쟁에서 패하지 말자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제5암문(연주봉옹성 암문)
제16암문 바깥쪽의 암문 모습
연주봉옹성으로 있는 암문으로 내부는 평거식, 외부는 홍예식 암문입니다.
연주봉옹성치
연주봉옹성과 포대
연주봉옹성 포대에서 바라본 하남시 방향 파노라마
연주봉에서 바라본 금암산과 저멀리 이성산이 보입니다.
하남시
저멀리 하남시, 좌측으로 예봉산, 예빈산, 검단산, 두리봉, 용마산과 중앙에 객산이 보입니다.
지나온 벌봉, 동장대터가 보입니다.
연주봉 옹성
우익문(서문)
국청사
인조2년에 남한산성 축성시에 함께 창건된 7개의 사찰 중에 하나입니다.
국청사 대웅전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를 모시고 있습니다.
천불전
영월정
침괘정(枕戈亭)
남한산성 주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