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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암 자개골
2005.7. 24 ~27
중복을 하루 앞 둔 일요일.
아침부터 매우 후덥지근하다.
아침8시에 일행 5명이 모두 모였다.
일행이 탄 차는 서대구 나들목을 지나 중앙고속도로를 달린다.
총 연장 280여km인 중앙고속도로는 대구에서 춘천까지 이어진다.
여름휴가철인데도 차량이 그리 많지 않다.
아마 동해안쪽으로 많이 가는가 보다.
안동휴게소에서 캔 커피로 목을 축이며 휴식을 취한다.
차는 죽령터널을 달린다.
죽령터널은 경상북도(영주)와 충청북도(단양)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험준한 죽령고개 밑으로 국내 최장 거리인 4,520m의 터널이다.
죽령터널을 지나면 바로 청풍명월의 충청도 땅.
고속도로 신단양 대교 아래는 충주호 상류다.
남한강의 물줄기가 유유히 흐르고 신단양이 멀리 보인다.
제천 나들목을 빠져나와 제천시내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의림지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의림지(義林池)는 충청북도 기념물 제 11호로 지정되었으며, 삼한시대에 축조 된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저수지로 본래 이름은 임지(林池)라 했다.
호수 가운데는 섬을 만들어 나무를 심었으며,
호수 주변에는 순조7년(1807년)에 세워진 영호정과 1948년에 건립된 경호루 등 문화재가 있다.
또한, 수백 년을 자란 솔밭공원과 호수에 가지를 드리운 수양버들이 운치를 더 해 주고 있다.
호수 안에는 오리배들이 한가롭게 떠 다닌다
주차장에서 솔밭을 잇는 나무로 만든 구름다리와 다리 옆의 분수,
산에서 떨어지는 30m의 폭포수,
폭포와 나무다리 사이의 호수에 있는 분수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가 시원스럽다.
이 곳 의림지는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어우러져 있어 수리 시설보다는 유원지로서 제천시민의 휴식공간은 물론이거니와 전국의 관광객이 찾는 명소로 각광 받고 있다.
차는 지방도 597호를 따라 북쪽 평창 방향으로 달린다.
주천강을 가로 지르고 몇 굽이 산을 넘고 돌아 달리다 보니 평창강의 물줄기가 햇빛을 받아 반짝이며 굽이굽이 돌아간다.
오대산에서 발원한 평창강은 평창읍을 안고 돌아간다
평창읍의 남쪽으로 평창강을 가로 지르는 큰 다리의 아취가 아름답다.
평창읍에서 국도 42호 동쪽으로 정선 방향으로 달린다.
산골짜기로 난 도로다.
높은 산이 사방을 막는 것 같다.
보이는 것은 울창한 나무들이다.
멀리 가리왕산이 보인다.
동대천과 골지천이 만나는 곳이 정선읍이다.
읍내에서 민물고기 매운탕으로 소주를 곁들인 점심이다.
매운탕 맛이 좋지 않다.
북평으로 달리다가 나전 삼거리에서 진부 방향으로 좌회전 한다.
숙암계곡으로 가기위함이다.
정선에서 15분정도 달리니 백석 폭포가 오른쪽 산꼭대기에서 물을 쏟아 내린다.
차를 멈추고 잠시 휴식 겸 폭포수를 감상을 해 본다.
백석폭포는 숙암으로 가는 도로 변에 위치하고 있으며 높이116m의 인공 폭포로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폭포수가 시원스럽다.
숙암샘터 부근에 위치한 절물민박에 여장을 푼다.
이 곳은 작년(2004년) 여름에 이틀간 민박하던 곳이다.
정선읍에서 서북쪽으로 평창군과 경계를 이루며 우람하게 솟아있는 높이 1,561m의 가리왕산 동쪽자락에 위치한 곳이다.
앞쪽으로는 오대천이 흐르고 백석봉이 가로막고 있다.
시원한 바람이 불더니 소나기가 한참동안 내리며 지나간다.
정선읍에서 사 온 암탉과 황기, 찹쌀, 녹두를 넣은 삼계탕을 만들어 조금 일찍지만 맛있는 저녁이었다.
배가 부르다.
산책을 한다.
오대천을 따라 난 도로를 한참 걷는다.
계곡물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흐른다.
북평초교 숙암분교가 마을 입구에 있고
건너편 계곡 쪽에는 짓다가 만 철골조 건물이 도로변에 흉물스럽게 자리하고 있다. 부도가 났나?
숙암분교 담장 옆길을 따라 골짜기로 들어섰다.
넓은 밭들은 옥수수, 감자, 콩, 고추 등이 심어져 있다.
조금 더 들어가니 수 만평은 되어 보이는 평평한 밭에는 잡초가 무성하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철쭉 묘포장이다.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잡초 꽃이 하얗게 피어있다.
쓰러질 듯한 허름한 집에 노인 한분이 투망(천렵)을 손질 하고 있다.
이 곳의 밭은 대부분 서울이나 외지인의 땅인데 평당 35만원 정도란다.
내가 보기에는 평당1만원 정도 될 것 같은데..................
토지를 많이 가진 1% 의 소유자가 우리나라 사유지의 60몇%를 소유하고 있다는 보도를 접한 바 있어 ‘맞는 말이구나’ 실감 난다.
이튿날 새벽 산책길에 따 온 호박잎에 구수한 된장찌개로 아침밥을 해결한다.
9시경 배낭을 챙기고 오늘 저녁에 다시 오기로 하고 인근 관광길에 오른다.
정선방향 나전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북평을 지나 아우라지 삼거리에서 노추산이 있는 구절리로 달린다.
대관령에서부터 용평리조트가 있는 수하계곡을 지나 도암댐에서 발원한 송천 계곡이 굽이굽이 흐른다.
돌에 이끼가 많다.
물이 많이 오염된 것 같다.
왼쪽 송천 건너 산 밑에 있는 철로 위에는 레일 바이크를 즐기는 많은 관광객이 구절리역에서 아우라지역 쪽으로 천천히 페달를 밟는다.
아홉 굽이를 돈다고 하여 구절이란 이름인가?
굽이굽이 돌아가니 구절리역이 눈에 확 들어온다.
정선선의 종착역인 구절리역 철로위에 있는 이색적인 카페 ‘여치의 꿈’ 때문이다.
폐 객차 2량을 2층으로 개조하여 거대한 초록색의 여치 암수 두 마리가 어우러져 짝을 짓는 모습을 형상화 한 것이다.
1층은 식당 2층은 카페로 꾸며져 있다.
구절리역에서 철길따라 자전거는 달리고 풍경은 흐르는 레일 바이크가 금년 7월1일 개장되어 운행 되고 있다.
옛날, 이 곳의 석탄을 비롯한 지하자원을 운반하던 철로가 지금은 그 기능을 잃어, 버려진 철로가 되어 철도관광산업의 일환으로 추진한 것이 레일 바이크이다.
구절리역에서 아우라지역 사이의 총 7.2km의 완만한 내리막길 철로 위를 페달을 밟으며 편도로 운행하는 레일 바이크는 2인승(1만5천원)과 4인승(2만원)이 있으며, 아우라지역에서 구절리역까지 무료 셔틀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구절리역에 많은 관광객이 셔틀버스에서 내린다.
정해진 레일 위를 사람의 힘으로 운행하므로 남녀노소 누구나 안전하게 시속 15~ 20km의 속력으로 탈 수 있는 레저 스포츠로 가족이나 동승한 팀의 화합과 협동심도 돈독히 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굽이쳐 흐르는 송천의 물길과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아우라지역은 여량역에서 역이름을 변경하였다.
아우라지는 송천과 임계쪽의 골지천이 합류되어 “어우러진다” 하여 아우라지라 불리고 있으며, 아우라지에서 물길 따라 목재를 한양으로 운반하던 유명한 땟목터로 각지에서 모여든 뱃사공의 아리랑 소리가 끊이지 않던 곳이다.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만나지 못하는 사랑하는 남녀의 애절한 마음을 적어 읊은 것이 지금의 정선 아리랑의 가사로 남아 널리 불리어지고 있다.(강원도 무형문화재 1호)
이 곳에서는 매년 옛 사람들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기 위하여 아우라지 축제가 열리는데 올해 12년째로 7.31~8.1까지 아우라지에서 열린다.
구절리에서 노추산을 향하다가 좌측으로 조금 들어가니 아취가 멋진 다리 앞 오장폭포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오장폭포는 해발 1,322m의 노추산 정상에서 발원한 청정옥수가 높이 209m의 폭포수와 산 꼭대기의 기암을 쳐다보면 구름을 타고 가는 신선인양 착각 할 정도이다.
폭포수가 흐르는 상부에는 설총(薛聰)과 율곡(栗谷) 두 성현이 입산수도 하였다는 이성대가 있으며 등산로가 개설되어 있어 웅장한 산세와 수려한 경관을 즐길 수 있다.
노추산은 정선군과 강릉시 사이에 있는 그야말로 심심산골, 깊은 오지 산이다.
강릉쪽으로 약간 들어가니 비포장 도로다.
산모퉁이에 차를 세우고 구불구불 구비진 송천을 끼고 한 참을 걷는다.
두루미 한 마리가 소나무위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노송이 몇 그루가 있는 강가에서 잠시 쉰다.
건너편에 많은 돌들이 흐트러져 있다.
좋은 수석이라도 있을 것 같아 물을 건넌다.
일행 한사람이 깊은 물에 넘어졌다
휴대폰을 꺼내 밧테리를 분리한다
웃음이 나오지만 참아야 한다.
수석은 아니지만 이상하다고 생각 되는 돌을 몇 개씩 주웠다.
계곡 소나무 밑에서 라면과 옥수수로 점심을 해결하고 뒤돌아 나와 구절리역 바로 아래에 위치한 자개골로 들어간다.
자개골 입구에 아름드리 소나무와 절벽, 짙은 물빛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이다.
계곡 주위에 민박집이 많이 보인다
자개골은 옛날 산중턱에 흡사 문같이 생긴 큰 바위가 있었는데 자시(子時)가 되면 저절로 바위가 벌어졌다가 닫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계곡은 4km정도 된다.
거문골과 표골계곡이 합류하는 지점에 민박집이 보인다.
배산임수(背山臨水)에 위치한 삼거리 민박집이다.
개울가에 몇 개의 원두막이 있는 아주 좋은 장소에 민박을 정했다.
연인끼리 온 한 팀이 원두막에서 마주앉아 백숙을 먹고 있다.
표골은 자연휴식년제(2003. 8. 30~ 2006. 8. 30)로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고 있다.
저녁은 닭백숙이다.
민박집에서 직접 기른 닭이다.
꿀 소주가 있다면서 맛을 보란다.
맛이 있으면 사 가란다.
집 앞 가로등 불빛이 멀리서 비치는 개울물에 목물을 한다.
물이 차다.
그렇지만 물속에 몸을 숨긴다.
아 ~ 춥다.
일행 몇 명이 천렵(투망)을 하러 나가더니
한참 만에 꺽지, 피라미 등을 많이 잡아 왔다.
제법 큰 물고기 두 마리로 바로 매운탕을 만들어 소주를 한 잔 할 수 있었다. 이 곳에는 산천어가 서식하고 있으며 천연기념물로 보호되고 있다.
이튿날 새벽 일찍 산책을 한다.
자연 휴식년 계곡인 표골로 2 km정도 걷는다.
길섶에는 싱싱하고 잎이 큰 부드러운 온갖 산나물이 지천이다.
안개가 자욱하다.
이끼 낀 돌 틈 사이로 하얀 물방울을 튕기며 흐르는 계곡물은 한 폭의 그림이요, 한 장의 사진이다.
붉게 익은 산딸기, 축 늘어진 다래넝쿨, 키가 큰 두릅, 잎이 큰 우엉, 당귀, 인진쑥 등 온갖 식물들이 제자리에서 싱그러움을 더 하며 이슬을 머금고 있다.
인간뿐만 아니라 삼라만상(森羅萬象)이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자연과 좀 더 가까워지고 친해지자.
우리가 이 곳에 온 것도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통하여 자신을 돌아보며, 아름답고, 여유롭고, 풍요로워지는 마음을 만들어 나와 내 가족, 내 이웃을 생각하며 싱싱한 식물처럼 꿋꿋하고 힘차게 세상을 살아가는 기쁨을 배우며 누리자.
지난밤에 잡은 물고기 매운탕으로 아침식사다.
진수성찬이 필요 없다. 어찌나 맛이 좋은지...........
배낭을 챙겨 아우라지에서 북면(여량)에 도착하니 아우라지 뗏목축제를 알리는 현수막이 머리위에 걸려 있고 청홍등이 길 양쪽에 매달려 있어 축제 분위기를 더 한다.
동해 방향으로 달린다. 임계(송계)를 지나니 된장마을 입구 안내판이 보인다. 이 곳 된장마을은 몇 년 전에 소개 했으므로 여기서 생략한다.
구미정을 지나 갈고개에 오르니 정선과 동해시의 경계를 이루는 백봉령이다.
멀리 동해시가 보이고 산 아래에는 달방댐이 보인다.
한달음에 달방댐 도착 한다.
댐 주변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팔각정 2층에 올라서면 댐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보수공사를 하고 있는 중이어서 그런지 수위가 매우 낮다.
동해시 삼화동에 쌍용시멘트 아파트가 도로 양쪽에 위치 해 있다.
왼쪽 아파트는 모두 비어 있는 것 같다. 흉물스럽다.
무릉계곡으로 향한다.
길옆에 쌍용시멘트 공장이 자리하고 있다.
왼쪽의 저 멀리에는 석회석을 캐낸 산이 허옇게 보인다.
자연경관이 많이 훼손되고 있다.
무릉계곡입구.
넓은 주차장과 길 양옆으로 위치한 상가가 이어져 있다.
무릉계곡의 유명세를 알 수 있다.
국민관광지 제1호로 지정된 이 곳, 신선이 노닐었다는 무릉계곡은 청옥산과 두타산을 배경으로 형성되어 일명 무릉도원이라 불리 울 정도로 경관이 수려하고 아름다운 곳으로 곳곳에 기암괴석이 즐비하게 널려있어 마치 현존하는 선경에 와 있는 듯하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서 무릉반석, 학소대, 병풍바위, 선녀탕, 쌍폭포, 용추 등 빼어난 경승지와 임진왜란시 격전지로 이름난 두타산성을 비롯한 삼화사, 금란정과 같은 많은 유적지가 남겨져 있는 곳이다.
특히, 천여 명이 앉아도 너끈할 만큼 1,500평이 넘는 무릉반석은 평탄하고 광활한 흰 바위의 비경이 일품이며, 조선 전기 4대 필명가의 한사람인 봉래 양사언의 석각과 매월당 김시습을 비롯하여 수많은 시인묵객의 시가 반석위에 새겨져 있어 선조들의 풍류를 느낄 수 있다.
지금은 자연 훼손이라 하여 지탄 받아야 할 김 아무개, 이 아무개 언제 다녀가다 식의 낙서들이 무수히 있어 안타깝다.
길옆 산비탈에 비스듬한 큰 바위에 크고 넓은 음각 글씨가 눈이 띤다.
조선전기의 명필 봉래 양사언의 달필이다.
武陵仙源 中臺泉石 頭陀洞天
(무릉선원 중대천석 두타동천)
여기는 신선들이 노닐던 이 세상의 별천지라
물과 돌이 부둥켜서 잉태한 오묘한 대자연에서
잠시 세속의 탐욕을 버리니 수행의 길이 열리네.
동양의 근본사상인 儒. 佛. 仙 삼교를 통합사상이 추구하는 최고의 이상(理想)인 천인합일(天人合一)로 승화시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의미하고 있다.
武陵仙源 : 도교(道敎)사상 - 유토피아(이상향) 을 추구
中臺泉石 : 불교, 유교사상
頭陀洞天 : 불교사상
무릉반석을 밟기 전, 길가에 위치한 금란정(金蘭亭)이 새로 단장 되어 산듯하다.
금란정은 조선말 향교 명륜당에서 공부하던 유림선비들이 일본에 의해 강제로 한일합방을 당하고 향교가 폐교되자 나라를 잃은 수치와 그 울분을 달래고자 뜻있는 유생들이 金蘭契라는 모임을 만들고 그 뜻을 기념하여 亭閣을 건립하고자 하다가 일본관헌들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었다. 해방이 되자 자손들이 선인들의 뜻을 받들어 정각을 세우고 해마다 봄, 가을로 계원들이 모여 선인들에게 제사를 지내고 詩會를 개최하여 당시의 뜻을 기리고 있다.
금란정 앞에는 향토 출신 시인 崔 寅熙(1926 ~1958)가 이 곳에서 지은 낙조(落照)의 시비가 있다.
소복이 산마루에는 햇빛만 솟아오른 듯이
솔들의 푸른빛이 잠자고 있다.
골을 따라 산길로 더듬어 오르면
나와 더불어 벗할 친구 없고
묵중히 서서 세월 지키는 느티나무랑
운무도 서렸다 녹아진 바위의 아래위로
은은히 흔들며 새어오는 범종소리
白岩이 씻겨가는 시낼랑 뒤로 흘려보내고
고개 넘어 낡은 丹靑
山門은 티였는데
천년 묵은 기왓장도
푸르른 채 어둡나니
무릉반석을 내려다보며 올라가니 봉긋이 선 무지개다리가 나온다.
다리를 건너면 두타산의 대표적 고찰 삼화사가 나선다.
삼화사는 신라 선덕여왕 11년(642)에 자장율사가 이 곳에 절을 짓고 고려 태조 때에 와서 삼화사라는 이름을 얻은 1,300여 년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고려를 세운 왕건이 후삼국 통일을 빌어 ‘세 나라를 하나로 화합시킨 영험한 절’이라는 뜻이다.
대웅전 옆에는 붉은 금빛이 나는 거대한 지장보살과 여러 불상이 있다.
삼화사 앞을 지나가는 무릉계곡을 타고 골짜기로 올라가면 학소대, 병풍바위, 문간재, 선녀탕, 쌍폭포, 용추폭포가 이어지고 등산로도 몇 코스 개발되어 있다.
계곡의 큰 바위 돌을 휘감아 맑은 물이 속살을 드러내며 흐르고, 울창한 나무숲 속에서는 매미소리가 이어진다
어느덧 배가 고파 온다.
점심때가 늦었지만 동해시내를 관통하여 바닷가 묵호항에 들르니 횟감이 펄떡인다. 회맛을 보고 삼척방향으로 달린다.
국도7호로 시원하게 달리다가 바다가 보인다
삼척의 궁촌 해수욕장이다.
해수욕객이 별로 없다.
해수욕장 백사장에 즐비한 포장집에는 찾는 손님이 없어 파리만 날리고 있는가 하면, 슈퍼 주인은 졸다가 아예 깊은 잠에 빠져 코를 골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은 바다 멀리 고깃배가 지나간다.
한없이 평화로워 보인다.
윗도리만 벗고, 입고 있던 옷 그대로 물속으로 뛰어든다.
가끔씩 높은 파도가 밀려 와 바닷물을 삼키게 한다.
궁촌해수욕장에서 남쪽으로 조금 내려오면 해신당 공원이 바다를 바라
보이는 곳에 있다.
이 곳에 도착하니 오후 6시가 넘었다.
입장료를 내고 관람을 해야 하나 공원관리사무실 직원이 퇴근한 후가 되어 성민속공원만 둘러 볼 수 있었다.
이 곳 원덕읍 신남마을은 동해안에서 유일하게 남근숭배민속이 전래되고 있는 마을로 공원 내에는 해신당, 어촌민속전시관, 성 민속공원 등이 조성되어 있으며, 성민속공원에는 나무를 깎아 만든 키 보다 큰 여러 형태의 남근이 수십 개 여기저기 세워져 있다.
웃음이 저절로 나온다.
공원 입구에는 아래와 같은 전설이 기록되어 있다
옛날 신남마을에는 결혼을 약속한 처녀총각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처녀는 총각이 태워주는 배를 타고 해초를 뜯기 위하여 해변에서 조금 떨어진 바위에 내리고, 총각은 다시 태우러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갑자기 폭풍우와 파도가 밀려와 처녀가 살려달라고 울부짖고 총각은 처녀를 구하려고 소리쳤지만 끝내 파도에 휩쓸려 물에 빠져죽고 말았다. 그렇게 처녀가 애를 쓰다 죽었다하여 그 바위를 애바위라 불렀다. 이렇게 처녀가 죽은 후 이상하게도 고기가 잡히지 않았다. 주민들 사이에는 애를 쓰다 죽은 처녀 때문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리하여 마을 사람들은 죽은 처녀의 원혼을 달래고자 나무로 실물 모양의 남근을 여러 개 만들어 제사를 지냈는데 신기하게도 그 후로 고기가 많이 잡혔다. 지금도 정월 대보름날과 시월 초오일에 남근을 깎아 사당에 걸고 제사를 지낸다.
울진 백암온천에서 민박을 하기로 했으나 시간상으로 너무 늦다.
원덕읍에서 조금 떨어진 호산리에서 우회전하여 이천리 신기마을에 들어갔다.
15세대 정도가 살고 있는 산골 마을이다.
이 곳은 내가 잘 알고 있는 분의 비어있는 친정집이다.
가까운 친척이 관리를 하고 있는데 2000년도의 삼척 대형 산불로 인하여 소실되어 그 해 신축한 건물로 아담하고 매우 깨끗하다.
모두가 피곤한지 일찍 잠자리에 든다
상쾌한 아침.
모두가 새벽산책을 나선다.
마을 안쪽 계곡 깊숙히 들어가니 옛날의 논밭은 잡초가 우거진 산과 계곡으로 변해 있고 산꼭대기에는 불에 탄 나무가 앙상하게 그대로 서 있다.
무성하던 산이 하루아침에 모두 다 타버린 민둥산이 되어 버렸다.
이 곳은 2000년 4. 7 ~ 4. 15(9일간) 삼척에서 울진까지의 산 17,097ha를 태운 대형 산불이다
이 산불은 삼척의 어느 산 밑에 위치한 교회에서 아주머니가 휴지를 태우다가 일어 난 산불이다.
조그마한 실수가 엄청 난 피해를 입혔다.
풀들만 자란 이 산에는 산나물이 많이 보인다.
봄철이 되면 멀리에서 산나물을 뜯으러 많은 사람이 몰려온다.
울진읍 시가지에는 ‘2005울진세계친환경농업엑스포’를 알리는 현수막이 많이 걸려 있고, 행사장 안내 간판이 도로변 군데군데 세워져 있다. 길섶에는 화단을 조성하여 예쁜 꽃들로 장식되어 있다.
울진군민 모두가 행사준비를 위하여 정성을 다한 모습을 느낄 수 있다. 그야말로 울진군민 모두가 손님맞이에 참여 하는 듯 하다.
활기 넘치는 울진이다.
왕피천 변에 자리한 엑스포 행사장에는 많은 관람객이 분주히 찾아 든다.
울진군이 주최한 2005 울진세계친환경농업엑스포는 7월22일부터 8월15일(25일간)개최 되는데, 아름다운 소나무 숲과 푸른 바다와 자연경관을 마음껏 감상 할 수 있는 울진 왕피천 엑스포 공원의 20만여 평의 부지에 28개국이 참가하여 ‘친환경농업! 인간을 지키는 생명산업’을 주제로 농문화 전시 및 공연, 학술대회, 체험, 상품개발 등 국내 친환경. 유기농산물의 모든 것을 직접 접해 볼 수 있어, 올 여름 피서를 친환경 유기농 먹거리, 볼거리, 체험거리를 통한 웰빙 휴가로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울진군청의 공무원과 서포터즈들이 맡은 업무에 충실히 책임을 다 하는 모습을 느낄 수 있다. 입장료가 12,000원으로 비싸고, 주차 시설이 조금 모자라는 것이 흠결인 것 같다.
차는 평해, 후포를 지나가다가 축산 경정리로 들어가 청정해역이 펼쳐지는 해변 길을 따라 강구 방향으로 달린다.
전면의 푸른 바다와 뒷면의 초지를 바라 볼 수 있는 언덕배기에 해맞이공원이 조성 되어 있다.
해안도로변에 포켓형 주차공간이 있고, 목재 파고라, 벤취, 전망대가 설치 되어 있어 청정해역의 자연을 마음껏 사색하고 즐길 수 있다.
해맞이 공원과 접해있는 오른쪽 나지막한 산에 풍력 발전기가 돌아간다.
거대한 풍차다.
오늘은 바람이 세지 않아서 천천히 돌고 있다.
낮은 야산에 해변을 끼고 있어 사계절 바람이 많아 풍력 에너지의 부존량이 풍부한 지역이다.
국내 유일의 최대 상업용 풍력발전기 24기가 설치되어 영덕군민이 1년간 사용할 수 있는 년간 10만MWh의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친환경적이고 청정에너지로 각광을 받고 있어 인근을 공원화하면 이색적인 관광지가 될 것이다.
곧 이어 도착한 곳이 영덕의 강구항이다.
작은 어선들이 많이 정박 되어 있다.
대게하면, 영덕이 먼저 떠오를 만큼 대게가 유명한 곳이다.
요즘은 울진군에서도 대게의 원조는 울진이라고 홍보를 하고 있어 양 군의 홍보전이 치열하다
대게란 이름은 몸체가 크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 아니라 몸통에서 뻗어나간 8개의 다리가 대나무처럼 길다하여 붙여진 것이다.
3~4월에 잡힌 것이 살이 차고 맛이 좋으며, 지방질이 적어 담백하고 독특한 향미를 지녔다.
산란기인 6~10월까지는 대게를 잡지 못하도록 되어 있어 지금은 영덕대게는 없고 러시아산 대게를 판매하고 있다.
쭉 늘어선 좌판에는 러시아산 대게가 곰지락거리며 손님을 기다린다.
어려운 흥정 끝에 몇 마리를 쪄서 차에 싣고 대구포항간 고속도로를 달려 대구에 무사히 도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