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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ncent Crapanzano, Tuhami, Part One
Vincent Crapanzano, Tuhami-Portrait of a Moroccan, The Univ. of Chicago Press, 1980, pp.25-72
크라판자노가 메크네스(Meknes)에서 만난 한 모로코인 투하미는, 프랑스인 졸랑(Jolan) 가족이 운영하는 타일 공장의 노동자였다. 1장은 투하미 자신이 이야기하는 라이프 스토리를 소개하고, 그것에 대한 크라판자노의 분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투하미의 독특한 성향은 메크네스의 모로코인들, 특히 남성들이 지닌 일반적 성향과 비교할 때 분명해진다. 그러므로 크라판자노는 먼저 젠더의 문제를 중요한 모티프로 포착한다.
1. 배경
1) Meknes의 남성 우월주의
메크네스의 남성들은 그들의 과도한 질투심으로 유명했고, 때문에 여성들은 과거에나, 현대에나 동행 없이는 낮에는 집을 나설 수 없었다. 이런 남성중심적 문화에서 여성들은 남성보다 열등하고, fitna(혼란과 무질서)와 결합된 존재로 간주되었다. 특히 여성의 성적인 발달이 부정적 이미지의 중요한 원인이어서, 여성은 남성들의 자아와, 자기 조절을 위협하는 존재로 이해되었다. 이런 부정적 태도는 민간 설화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여성의 유혹은 shitan(Satan)과 결합된 것이라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이런 전형적 이해때문에 여성에 대한 엄격한 경계(vigilance)가 필요하다고 여겼다. 그리고 여성의 세계는 가정(hearth and home)으로, 남성의 세계는 모스크와 시장으로 극적으로 구분되었다.
모로코의 남자아이들은 아버지의 권위 아래 어려서부터 생업에 종사하는 것을 배운다. 그들의 결혼은 아버지 뜻대로 이루어진다. 그 아들이 아버지가 되면 마을 의회에 참여할 수 있지만, 자신의 아버지가 죽은 후, 그리고 스스로가 참된 남성이라고 느낀 후에야 가능하다. 모로코인의 아들들은 부를 찾아 도시로 가기도 하고, 메카에 가기 위해 탁발 순례자의 길을 떠나기도 한다.
한편 소녀들은 어머니에게서 요리, 바느질, 집안 살림을 배우며, 여성의 비밀 - 탄생, 출산, 월경, 질병의 치유, 남성들의 지배와 결혼의 취약성(fragility)에 맞서기 위한 주문 등 -을 듣는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남자들로부터 분리되며, 첫 생리 후 곧 결혼한다. 결혼해서는가급적 아들을 바라며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 중 반이 죽는 것을 지켜보며, 결혼생활을 형식적으로 수행하는 남편 때문에 고통받는다. 때로는 불명예스럽게 도시로 떠나 매춘부가 되기도 한다. 여성들 중 일부는 트랜스-댄스의 엑스타시를 통해 억압을 벗어나기도 한다. 이것은 돈이 필요없지만, jnun의 위험한 세계에 노출되는 것이기도 하다.
2) 투하미의 개인적 성향과 기질
투하미는 그가 만든 치료약과 주술적 음료, 그리고 성자와 악마의 이야기로, 메크네스의 빈민가 여성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여성들은 투하미가 신탁의 형태로 주는 충고를 존중했다. 하지만 남성들은 그를 makhardil("머리가 산만한(놈)(scatterbrained)")이라고 부르며 무시했고, 어떤 남성은 투하미를 aguza("늙은 여자", "노파", "마녀" 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남성들은 투하미를 위협스런 존재로 간주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늦은 밤에 여성들과 민담을 즐겨도 막지 않았다. 그는 흑인의 용모에, 작은 키와 야윈 몸, 그리고 거의 대머리에 가까운 왜소한 모습이다. 이런 용모는 특히 여성들에게 매력 없는 것이었지만, 그래도 그는 늘 깨끗한 몸가짐, 잘 깍은 손톱, 인내심과 고요함, 온순함을 갖춘 사람이었다. 그는 늘 부드럽게 이야기했고, 사람들에게 친근감을 느끼게 했다. 이는 자기 말을 강조하기 위해 요란하게 제스춰를 하며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일반적인 모로코 남성들과 뚜렷이 다른 점이다. 그러나 투하미는 자주 우울증에 빠졌고, 그런 때면 홀로 오두막에 침울하게 있거나, 몇 마일을 걸어 성인의 무덤에 가서 꿈을 꾸었다. 한편, 그는 독실한 무슬림이어서, 무슬림과 모로코 법의 요구대로, 매일 기도하고, 금요일 모스크 집회에 참석하며, 라마단 달에는 금식했다.
3) 투하미의 가족사
투하미는 자신을 55세라고 하지만, 40대 중반으로 보는 것이 사실에 가깝다. 그는 1920년대 후반 혹은 30년대 초반에, 모로코 북부 시디 카켐(Sidi Kacem) 근처의 황폐한 마을에서 출생했다. 그의 가문은 매우 평범했다. 그의 아버지 드리스(Driss)와 할아버지 므하미드(M'hamid)는 쉬라르다(Shrarda)족 출신의 fellahin(농장 노동자)였고, 할머니 카디자(Khadija)는 산파였다. 투하미의 어머니 파티마(Fatima)는 하자와(Hajawa)족 사람이었고, 외할아버지 무라이 압데슬렘(Mulay 'Abdeslem)은 마라케치(Marakech)출신의 흑인이었다. 그리고 외할머니 다위아(Dawia)는 무라이 압데슬렘의 네 번째 아내로, 그녀 역시 산파였다.
이 다위아는 이사와('Isawa) 교단에 들어가 가장 폭력적인 트랜스에 빠져들었다. 그녀는 살아있는 양과 염소들 사이에 뛰어들어, 손과 이빨로 그들을 찢어발겼고, 온기가 남아있는 날고기를 목에 둘렀다. 어머니 파티마도 하마드샤(Hamadsha) 의례 때 춤을 추었고, 어린 투하미는 이런 격렬한 트랜스를 지켜보았다. 그의 가족중 종교적 교단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투하미가 8, 9살 쯤 되었을 때, 메크네스 빈민가로 이사한 얼마 후 아버지 드리스가 죽었다. 그의 죽음은 투하미로 하여금 부계와 연결된 bled('고향, homeland' 보다 더 영적 의미를 함축하는 아랍어)가 사라진 것을 의미했다. 즉 투하미는 부계의 경제적, 정서적 보호막으로부터 소외되었다. 남성들이 부계에 편입됨으로써 얻는 사회적 제도, 남성성을 발전시키는 것, 자아를 정의하고 세계를 구성하는 상징적 모형(matrix)으로부터 분리된 것이다. 드리스의 죽음 이후 아버지를 대리한 남성으로 만날 수 있는 이들은 모두 어머니와 관계된 사람들이었다. 신빙성은 없지만, 당시 투하미는 외할아버지의 이름을 따 자기 이름을 투하미 벤 무라이 압데슬렘이라고 불렀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머니를 통해 그와 결합된 남성들은 그에게 남성성(Manhood)를 제공해주지 못했고, 투하미는 대신 성인들에게서 그것을 찾게 된다.
2. 투하미의 라이프 스토리와 크라판자노의 분석
크라판자노는 대화를 통해 투하미의 라이프 스토리를 끌어내며, 그 기억과 구술의 이면에 놓인의미에 분석적으로 접근한다. 특히 크라판자노는 투하미의 이야기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관련지어 그 이야기가 갖는 의미를 규명한다. 하지만 투하미의 이야기는 객관적 의미의 사실이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에 대화의 구체적 내용에 대한 반성적 숙고가 씨줄과 날줄처럼 크라판자노의 민족지를 구성한다. (여기서 회색 글자는 투하미 자신의 이야기를 압축하여 요약한 것이고, 보통 글자는 크라판자노의 분석이다.)
1) 어머니 파티마에 대한 투하미의 태도
파티마의 재혼 후 계부는 투하미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집을 떠났다. 계부와 그는 불편한 관계여서, 투하미는 계부의 눈 앞에서 문을쾅 닫고 나가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어머니에게 화가 난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재혼은 시탄이 원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크라판자노는 투하미의 목소리와 제스춰가 경멸적인 것이라는 점, 그리고 모로코인 아들들이 그들 어머니의 성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금기시함에도, 투하미가 그것을 말했다는 점에서, 그는 분명 어머니에 대한 깊은 반감을 가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파티마에 대한 반감은 그가 일자리를 얻게 된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투하미가 졸랑 부인의 공장에 일자리를 얻는데 어머니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그가 그 공장에 다닌 것을 파티마는 알지도 못했다.
하지만, 당시 파티마는 졸랑 부인의 주방에서 일했으며, 그 공장 가까이 살았다는 점에서, 파티마가 그것을 모를리 없었다. 투하미는 자신의 기억을 더 공고히 변조한다.
계부의 집을 뛰쳐나온 후, 투하미는 길에서 '누군가(someone)'를 만났다. 그는 투하미에게 목동 자리를 권했고, 이웃 여성 파트나 라후(Fatna Rahhu)에게 소개했다. 투하미는 그녀의 집에서 마흔 다섯 마리의 소를 치게 되었다. 그는 여성들로부터 훌륭한 목동이라는 칭찬을 받았고, 파트나 라후는 "내 집은 네 집이 될거야"라고 말하며, 자기 집에 머물러 딸과 결혼해달라고 부탁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투하미는, 그녀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해 주겠지만, 자기가 원할 때는 언제라도 떠날 수 있게 해주어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곳에서 일년 반 동안 머물러 있다가 메크네스로 돌아왔고, 어머니가 죽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누군가"가 남자인지, 악마인지, 혹은 성인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아무튼 그는 투하미에게 일자리를 주고, 엄마와 심지어 아내까지 제공하려 했다는 점에서 '아버지' 역할을 했다. 투하미는 혼자서 마흔 다섯 마리의 소를 돌볼만큼 책임성을 부여받았고, 그의 가치는 여성들에 의해 인정받았다. 여기서는 남자에 의해 보호받고 싶은 욕망, 여성에 의해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망이 독립과 남성성에 대한 욕망보다도 강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모로코와, 지중해 연안에서 목동은 흔히 가족관계가 없는 사람들로, 주변인이거나 고아, 결혼하기에는 너무 가난한 사람들이 하는 천한 직업이다. 그들은 여성들로부터 매력을 얻지 못하며, 동물과 성관계를 한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그러므로 투하미의 낭만적 이야기는 자신의 욕망을 투사한 기억의 변조이다.
파티마는 하얀 피부를 가졌으며, 투하미가 일하는 공장의 주인 집에서 일했다. 하지만 파티마는 투하미가 검은 피부를 가졌기 때문에 늘 자기 아들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나 뒤에 그녀가 더 늙고 쇠약해졌을 때 파티마는 투하미가 자기 아들임을 주인에게 말하고 일자리를 부탁했다. 파티마가 투하미를 부정한 이유는 프랑스 여자가 아들을 프랑스로 데려갈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사실에 가장 가까운 것은, 파티마는 매일 아침 그녀의 늙고 쇠약해진 것을 푸념하며 아들에게 일할 것을 독촉했고, 졸랑 부인에게 투하미의 일자리를 부탁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투하미는 파티마가 자기를 아들이 아닌것처럼 속였다고 이야기했다. 그 이유는 '유괴'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는 것이다. 프랑스인들이 모로코 아이들을 '유괴'할 것이라는 두려움은 독립후에 가난한 모로코인들 사이에서 일반적이었다. 이런 이야기는 프랑스에 대한 모로코인들의 반감, 더 일반적으로는 식민주의자들에 대한 반감을 반영한다. 하지만 크라판자노는 파티마의 두려움, 그리고 그것에 대한 투하미의 기억이 더 복합적이라는 의문을 제시한다. 파티마의 두려움은 실제로는 투하미를 제거하고 싶은 욕망의 표현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투하미 역시 졸랑 부인에게 유괴되기를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이런 의문의 연장선에서, 크라판자노는 자신이 '유럽인'이며 '남성'이라는 점에서, 투하미에게는 상징적 구원(redemption)의 가능성을 준 것일 수 있지 않았을까 반문한다.
투하미는 베르베르족 사람을 위해 양치는 일을 하던 중 파티마가 죽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파티마가 죽은 후 메크네스로 돌아와 졸랑 부인의 집에서 일을 하게 된다. 투하미는 파티마의 죽음에 아무렇지도 않았다고 강조했다. 죽음은 죽음일 뿐이라는 것이며, 자신이 떠났던 것은 파티마가 원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투하미의 죽음에 대한 태도는 냉정하고 숙명론적이다. 대부분의 모로코인들도 죽음을 숙명론적으로 받아들인다. 모로코인들은 성인의 무덤 외에는 무덤을 표시하지 않으며, 애도 기간도 대개 40일 정도로 잛고, 죽음은 빨리 잊혀진다. 귀신이나 조상 신령에 대한 믿음, 조상숭배도 없다. 사후에 대해서는 심판과 가혹한 형벌을 강조한다.
투하미는 지옥에서의 형벌, 특히 성적인 죄에 대한 형벌을 강조했다. 동성애, 자위, 매춘부에게 돈을 지불하지 않는 사람들은 벌을 받으며,, 생시에 기도하지 않은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투하미는 그런 형벌을 이야기하면서 쿠란의 권위를 빌린다.
그의 음울한 지옥 묘사는 그의 성적 엄격주의와 삶에 대한 비관적 태도를 반영한다.
투하미는 "당신이 행복할 때 당신은 언젠가 슬프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그러므로 당신은 결코 완전히 행복해질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2) 우울한 유년시절에 대한 기억과, 크라판자노가 재구성한 할례의 분석
투하미는 어렸을 적 학교를 가지 못해 문맹자가 되었다. 그는 자기를 학교에 보내지 않은 아버지에 대해 유감을 가졌으며, 자신의 무지가 삶의 방해요소라고 여겼다. 무지는 심지어 결혼을 방해하기도 했다. 대신 그는 동네의 아이들과 어울려 강에서 놀며 성장했다. 투하미는 그의 어린시절에 대해 많은 것을 기억하려고 하지 않았다. 형제, 어머니의 애정에 대해서도 기억하려고 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젖을 뗄 때의 폭력성을, 그리고 다정하게 대해주지 않는 아버지의 기억만이 반복된다.
투하미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할례를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에, 크라판자노는 그것을 재구성한다. 투하미는 목욕을 한 후 가장 좋은 옷을 입고, 말에 태워져 모스크 기능을 하는 한 건물터로 갔다. 기도와 쿠란의 암송을 한 후 잔치가 준비중인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아침 집안에서는 의례적 공식을 따라 양을 잡았다. 그날은 투하미의 날이었다. 얼마 후 악사들, 매춘부 댄서들과 함께 이발사가 들어왔다. 이발사는 주술적 치유자의 기능을 수행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투하미에게 할례를 행하고, 악사들은 시끄럽게 연주했다. 할례 후 투하미는 어머니의 등에 업히고, 매춘부 댄서는 밸리 댄스를 시작했다. 남성들의 음탕한 눈빛속에 춤이 진행되는 동안 투하미는 구석에 버려져 처량하게 흐느껴 울었다.
소년을 남자와 무슬림으로 만드는 할례는 남성으로서의 품격, 정서적 유인력(cathexis), 남성성을 표현하는 성숙의례, 통과의례이다. 이를 통해 소년에서 남자로 상태가 변화하는 것을 나타낸다. 하지만 할례에서는 실제적인 real 것과 상징적인 symbolic 것, 자연적인 것과 문화적인 것 사이의 분리가 존재한다. 할례는 보통 남성의 감각을 갖기 전 네 살 이하의 어린이에게 행해지므로, 남성은 '상징적으로만' 선포되는 것이다. 어린아이는 여성의 세계를 '순간적으로' 떠나 상처를 남긴 채 돌아올 뿐이다. 남성성은 절단-파괴-의 행위로 선포된다. 모로코인 남성들이 성기가 잘린 사람들에 대한 농담을 자주 하는 것은 그 파괴에 대한 불안 때문이다.
아랍 세계의 거대한 사회적-상징적 분열인 남성성과 여성성의 경계는 분명한 것은 아니다. 상징적으로 남성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여성이 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의례의 '순간'을 통해 진정한 남성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상징적으로 여성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파티마의 죽음 이후 졸랑 부인은 울고 있는 투하미를 자기 집에 데려갔다. 투하미의 동생과 여동생은 이모와 살기 위해 카사블랑카로 떠났다. 투하미는 프랑스 여인 졸랑 부인의 공장에 들어가 짐꾼으로 일했다. 그는 한동안 외할아버지 무라이 압데슬렘의 보호를 얻으려 했지만, 외할아버지는 늙었고, 곧 죽었다.
3) 외할아버지 무라이 압데슬렘과의 생활
무라이 압데슬렘과 외할머니 다위아의 결혼 이야기는 드라마틱히다. 그는 다위아를 얻기 위해 무려 22일동안 다른 구혼자들과 싸워야 했다. 다위아 역시 매우 용감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무라이 압데슬렘의 연적을 죽인 후 그와 함께 떠났다. 어떤 강 앞에서 도적들과 맞닥뜨린 무라이 압데슬렘은 그들과 5일동안 싸웠다. 도둑들이 도망간 후 다위아는 그에게 장총을 겨눈 후, 자기와 결혼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말했고, 결국 그들은 결혼했다.
여성의 힘, 특히 베르베르족 여성들의 힘에 대한 이야기는 흔하다. 그들은 전투에서 식량을 공급하는 위험하지만 영웅적 임무를 수행하고, 여러 가지 방식으로 실제 전투에 참여하기도 했다.
무라이 압데슬렘은 여비를 마련한 후 투하미를 데리고 카사블랑카로 갔다. 하지만 이모가 사는 거리만 기억할 뿐 정확한 주소를 알지 못해 집집마다 문을 두드려 이모 집을 찾았다. 그곳에서 두 달 동안 머무른 후 다시 기차로 메크네스로 돌아왔다.
투하미는 카사블랑카에 있는 동안 그의 여동생으로부터, 그에 대한 어머니의 관심을 알았다. 파티마는 투하미를 찾기 위해 메크네스 전역을 돌아다녔으며, 율법학자(scribe)의 상담을 받기도 했고, 때로 점을 치고 주문을 쓰기도 했으며, 거의 매일 예언자(seer)를 찾아갔다. 하지만 그들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카사블랑카에서 돌아온 후 투하미와 외할아버지는 졸랑 부인을 위해 일했지만, 곧 외할아버지가 재혼을 한 후 모로코인의 타일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졸랑 부인은 투하미에게 무라이 압데슬렘과 살지 말라면서, 자기 집의 방 하나를 내주었다. 투하미는 그곳에서 외할아버지가 새 아내와 이혼할 때까지 머물렀다. 외할아버지의 이혼 후 투하미는 그와 살기 위해 찾아갔지만, 무라이는 그를 원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의 이혼이 투하미가 밥 먹으러, 빨랫감을 맡기러 훌쩍 나타나곤 했던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한편 졸랑 부인도 무라이 압데슬렘을 매우 싫어했기 때문에, 투하미는 다른 공장으로 옮겨 일하게 되었다. 어느날 누군가 "투하미!" 하며 불렀고, 돌아본 그의 무릎에 돌 하나가 날아왔다. 돌에 맞아 넘어진 그는 그 후 석 달 동안 아팠다. 치유의 힘을 가진 율법학자에게 갖지만 소용이 없었다. 라마단 월이 지난 어느날 밤 외할아버지는 투하미를 위해 shish kebab을 준비하다 불을 냈다. 그때 누군가 졸랑 부인에게 그 사실을 전해 바로 뛰어온 그녀는 두 사람을 구해낸다. 하지만 이미 무라이 압데슬렘은 심한 화상을 입었고, 죽어가면서 졸랑 부인에게 간질병이 있는 투하미를 돌봐줄 것을 부탁한다. 그렇게 외할아버지가 죽은 후 졸랑 부인과 그의 딸 아네뜨(Annette)는 투하미를 자기들의 집으로 데려갔다.
무라이 압데슬렘은 투하미의 마지막 가족이었다. 그는 홀로 되어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태에 놓였다. 그는 공장에서 일을 했지만, 다른 사람들만큼 하지 못해 배척당했고, 결국 독일인 스튜워드(Steward)가 관리하는 라바트(Rabat) 인근의 한 농장에서 물 나르는 일을 하게 되었다. 투하미는 전에 그곳에서 일한 적이 있었는데, 그를 아는 십장은 투하미를 탐탁치않게 여겼다.
투하미는 십장이 자신이 흑인이기 때문에 싫어했다고 생각했다. 추수철이 되면, 메크네스의 많은 노동자들이 인근의 농장에서 일을 한다. 하지만 물 나르는 사람은 목동과 마찬가지로 아웃사이더이다.
투하미는 두 달 동안 물 나르는 일을 했고, 그 다음 달에는 집 안에서 일을 했다. 스튜어드에게는 프랑스인 아내와 베르베르족 아내가 있었는데, 투하미는 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함께 식사를 하기도 했다. 스튜워드는 투하미와 그들의 관계를 의심했지만, 그로 인해 피해를 보지는 않았고, 다시 메크네스로 돌아왔다.
투하미에게 의지하는 존재였던 외할아버지의 죽음은 심한 우울의 시기를 불러왔다. 외할아버지에 대한 긍정적 기억에는 졸랑 가족과의 행복한 에피소드는 없었고, 묘지에서 잤다는 심각한 우울만이 있었다. 하지만 뒤의 인터뷰에서 투하미는 이 우울한 시간동안 농장에서 일했다고 말했고, 독일인 스튜워드의 아내들과의 에피소드를 결코 다시 말하지 않았다. 사실 혹은 공상인 그 이야기도 그를 기운나게 할 수 없었던 것이다.
4) 졸랑 부인과의 관계
졸랑 부인의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 몸이 좋지 않아, 그녀의 도움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그는 일곱 달 동안 병원에 머물면서 좋은 음식을 먹고 많은 약을 투여받았지만, 한동안 차도가 없다가 석달 정도 지나서부터는 밖을 돌아다닐 만큼 회복되었다. 병원에서 돌아왔을 때는 졸랑 부인의 여동생과 딸들 모두가 왔다. 졸랑 부인의 투하미에 대한 도움은 그녀의 아들 장 피에르(Jean-Pierre)의 불만을 초래했다. 그는 투하미가 졸랑 부인의 진짜 아들이 될 것이고, 자신은 진짜 아들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주변 사람들도 투하미가 졸랑 부인과 사랑하는 사이라고 수군거렸다. 어느날 투하미는 산책을 나간 후 병원으로 돌아가지 않고 묘지에서 잠을 잤다.
투하미의 질병은 그의 모순된 여러 이야기를 고려할 때, 여러 가지 다른 병들이 합해진 것이다. 그 질병의 원인이 무엇이든, 투하미의 말이 사실이라면, 졸란 가족은 그를 받아들였고, 돌보았으며, 병원에 보내줬다. 병원의 간호사들은 어머니처럼 그를 돌봐주었고, 의사는 아버지처럼 그를 돌봐줬다. 투하미가 병원에서 돌아왔을 때 그는 관심의 초점이 되었다. 그는 여성의 세계의 중심에 있었지만, 할례 받은 소년이 돌아와 버려진 세계와 같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낙원은 끝났다. 투하미는 흑인이며, 모로코인이며, 무슬림이었고, 졸랑 부인의 관대함에도 시간적 제한이 있었으며, 그녀의 아들 장 피에르는 인내심이 부족했다. 장 피에르의 질투 이야기는, 왕자와 거지 이야기처럼 타자의 환상으로 소망을 표현한 것이다. 타자의 환상은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실제적이다. 사람들이 투하미와 졸랑 부인이 사랑에 빠졌다고 수군거렸다는 이야기도 마찬가지이다. 욕망은 소문과 타자의 환상을 통해 표현된다. 그 소문은 투하미의 욕망 -포부, 희망, 성적 정복, 가족, 다정함, 부모의 사랑, 부, 결혼 등-을 반영하는 것이다.
5) 투하미와 여성들
장 피에르는 졸랑 부인이 딸 중 하나와 투하미를 결혼시키려 한다고 생각했다. 졸랑 부인은 딸들에게 무슬림 이름을 붙여주었으며, 모로코 요리법을 가르쳐줬다. 하지만, 투하미는 그녀의 집을 떠났다.
실제로는, 그녀들은 무슬림 별명을 가졌을지는 몰라도, 무슬림 이름을 가진적은 없다
투하미는 졸랑 집안의 여성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졸랑 부인의 여동생 실비아(Sylvie)는 자신의 두 딸이 아프자, 공장의 노동자들에게 기도를 부탁하면서, 딸들이 나으면 잔치를 벌여주겠다고 약속했다. 투하미는 한 달 동안 다른 일을 하지 않고 그녀들을 즐겁게 해주면서 임금을 받았다. 한달이 채 못되어 실비아의 두 딸이 나았다. 그러자 실비아와 그녀의 남편은 투하미를 자기들이 사는 알제리로 데려가고 싶어했다. 투하미도 그들과 함께 떠나고 싶었지만, 졸랑 부인은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실비아 가족과 함께 몰래 알제리로 가려고 했지만, 기차역에서 졸랑 부인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졸랑 부인은 역에서 실비아를 욕하고, 투하미를 집으로 데려왔다.
투하미의 말이 사실이라면 졸랑 부인은 그를 진정으로 사랑한 것이다. 그녀는 투하미를 가족으로 받아들였고, 투하미는 그녀의 아이들과 함께 놀며 먹었다. 하지만, 그녀의 아이들과 달리 투하미는 졸랑 부인의 변덕의 대상이었다.
공장에서 일을 하다 건강이 악화된 투하미는 집안에서 일을 하고 아이들과 놀아주면서 임금을 받았다. 투하미는 가능한 그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익살꾼이자 이야기꾼이 되었다. 이러한 이야기꾼은 그들의 문화적, 사회적 지위의 모호성을 이용해 그들의 정체성을 획득한다.
하지만 투하미는 그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했다. 그는 당시의 역사적 상황, 사회적인 성 역할관계 등을 알 수 없었던 것이다. 투하미는 그의 전통과 언어에서 금지된 낙원에, 홀로 여섯 여성과 함께 주목받는 중심에 있었던 것이다. 투하미는 이 장면을 훗날 반복해서 재능있게 재창조할 수 있었다. 그는 전통적 모로코 가족의 여성들 사이에 홀로 앉아 있었다! 그의 이야기와 익살은 그의 사회에서 이례적인 위치를 획득할 수 있게 했다. 그 위치는 돈이 필요 없었고, 투하미는 상징적 정복을 얻기 위해 그의 진정한 남성성을 포기했다.
졸랑 부인과 실비아 뿐만 아니라, 많은 여성들이 투하미를 사랑하고 싶어했다. 그는 한 프랑스인 대위 아내와의 스캔들로 이틀동안 투옥되기도 하고, 졸랑 부인은 미행을 할 정도로 투하미의 여성관계를 심하게 질투했다.
투하미는 대위의 아내와 잠을 자지 않았다는 것을 확언했지만-식민지 상황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라는 점에서-, 졸랑 부인과는 결코 잠을 잤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잠을 자지 않았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투하미는 열 여섯 살 때 베르베르족 여자와 첫 경험을 가졌다. 졸랑 부인이 카사블랑카에서 석 달 동안 휴가를 보낼 때 따라갔던 투하미는 어느날 시장 입구에서 한 베르베르족 여자를 만난다. 그녀는 남편이 군대에 간 유부녀였고 투하미와 밤을 보내고 싶어했다. 하지만 투하미는 졸랑 부인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고, 둘은 함께 졸랑 부인에게 가서 허락을 받은 후, 그녀의 집에서 밤을 보낸 후 다음날 아침 돌아왔다.
투하미는 자신의 첫경험을 이야기하는 내내 웃고 떠벌렸다. 베르베르족 여자가 졸랑 부인의 허락을 받는 것에 동의했다는 것은 터무니없었다. 하지만 투하미는 잠시나마 남녀의 성관계에 대한 그의 엄격주의가 빠뜨리고 있었던 유쾌함을 취했다.
장 피에르와 영화를 보다가 만난 스페인 소녀와의 에피소드도 있었다. 장과 투하미는 한 스페인 소녀를 본 후, 누가 그녀를 얻을 것인가 내기를 한다. 결국 투하미가 이겼고, 화가 난 장은 일을 그만둔 채 스페인 소녀의 집 앞에 서 있기만 했다. 졸랑 부인은 소녀를 만나 그녀가 누구를 원하는가 물었다. 모두가 스페인 소녀의 집에 초대받은 자리에서 소녀는 투하미와 약혼하고 싶다고 말했다. 투하미는 그녀와 결혼하고 싶지 않다고 소리치며, 소녀와 장의 손을 잡아주었다. 결국 장 피에르는 그녀와 결혼했다.
투하미의 이야기는 불합리했고 혼란했다. 그는 혼란을 재미있고, 우습고, 멋진 이야기로 바꾸려 했지만 실패했다. 그가 자주 사용한 공상의 특징 중 하나는, 서사적 연행과 상상적 사건을 섞어버리는 것이다. 위의 이야기에서 투하미는 연인을 데려오고 충고함으로써 서양의 영웅처럼 행동했고, 결혼의 처리에서는 아버지의 전통적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실패했다. 크라판자노가 투하미에게 그가 스페인 소녀의 초대를 받은적이 있었는지 물었을 때, 크라판자노의 질문의 의미를 알지 못한 채 "아니"라고 대답했다. "어떻게 내가 그럴 수 있었겠어? 장 피에르는 항상 그녀의 집 앞에 있었어"라고 말하며 웃으려 노렸했다.
한편, 베르베르 여인과의 연애 사건을 이야기한 몇 달 후, 투하미는 카사블랑카에는 한 번 있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즉, 파티마의 죽음 후에 외할아버지와 함께 갔을 때이다. 심지어 그는 베르베르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기억하지 못하기조차 했다. 따라서, 그가 처음 잠을 잔 여성은 무라이 부시타(Moulay Bushta)의 무덤에서 만난 한 여자였다.
6) 투하미와 아이샤 칸디샤, 그리고 성인들
투하미는 1952년에 1년 내내 아파서, 일을 하지 못한 채 시디 사이드의 병원에 있었고, 성인을 만나기 위해 무라이 부시타의 묘지에 가서 석달 하고 열흘동안 sherif를 위해 일을 하다, "그들"이 떠나f게 하여 메크네스의 모로코인의 공장으로 돌아왔으며, 한 동안 아프지 않았다.
투하미를 떠나게 했던 "그들"의 정체가 성인인지 아니면 jnun인지는 분명치 않았다. 투하미는 물론 다시 아팠고, 그래서 "때때로, 나는 그곳에 돌아가야 한다고 지금도 생각해"라고 말했다. 한편, 투하미는 '처음' 아파서 병원에 있을 때는 성인들을 알지 못했고, 추방되었던 왕이 돌아왔을 때 알게 되었으며, 그 후 매해 성인들을 방문했다고 말했다. 이는, 투하미가 두 번 아팠으며, 그의 이야기에는 두 질병이 섞여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투하미가 인형을 밀며 공장에서 일하던 어느날 밤, 갑자기 "누군가"가 그를 불러세워, 돌을 던져 무릎과 머리를 상하게 만들었다. 투하미는 샤이크 엘 카멜(Shaykh el-Kamel)에게 갔지만 소용이 없었고, 병원에 가니 무릎은 더 아팠다.
여기서 투하미는 그 "누구"를 '남성'으로 표현했다.
투하미는 "그 남자"를 볼 수 없었다. 아프게 된 후 투하미는 꿈에서 푸른 색, 흰 색, 붉은 색, 놘 색 옷을 입은 한 작은 흑인 여자를 보았다. 그 꿈을 꾼 후 투하미는 무라이 아흐메드(Mulay Ahmed)를 찾아갔고, 그는 투하미에게 여러 성인들을 방문하라고 권했다. 꿈에서 그 흑인 여자는 투하미에게 자기처럼 옷을 입고, 자기가 하는대로 따라하며, 자기가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해야 한다고 말했다. 투하미는 시디 알리(Sidi Ali)의 무덤에 가기까지 그녀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투하미는 여기서 그 여자는 아이샤 칸디샤(A'isha Qandisha)임을 암시했다. 그녀의 작은 동굴은 시디 알리의 무덤 근처, 커다란 무화과나무 아래 있었던 것이다.
꿈을 꾼 다음날 그는 시디 알리의 무덤에 갔고, 그곳 Lalla 'A'isha의 동굴에서 초를 켜지 않고 잠을 자다 꿈에 랄라 아이샤를 만났다.
투하미는 이 대목에서 말을 멈췄고, 매우 신경질적이었다. 랄라 아이샤를 언급하는 것은 늘 위험했기 때문이다. 투하미는 그녀와 다른 악마들의 이름을 거의 부르지 않았다. 그가 이름을 부르는 것은 외국인인 크라판자노를 위해서였다. 한편, 모로코인에게 꿈은 jnun, 혹은 성인이 주는 메시지였다. 그러므로, 꿈을 꾼 사람이 그 메시지를 따라지 않으면 무서운 고통을 겪는다고 믿었다.
그날 꿈에서 검은 옷을 입은 여성을 만난 투하미는 다시 무라이 아흐메드에게 갔다. 그는 투하미에게 부적을 써주면서, 그것을 목에 걸게 했다. 투하미는 부적을 목에 걸었지만 랄라 아이샤는 그것을 착용하지 말라고 말했다. 무라이 아흐메드는 여섯 달 후에 아팠다.
투하미는 여기서 랄라 아이샤가 무라이 아흐메드의 병을 일으켰다고 암시한다. 그녀는 악마를 쫓기 위해 부적 등을 준비하는 주술사-교사들에게 적대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남편들, 추종자들, 혹은 성인의 무덤을 방문한 희생자들은 훼방하지 않았다. 아이샤 숭배는 성인숭배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 하마드샤(Hamadsha)는 아이샤를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다고 여겨졌고, 투하미는 시디 아흐메드(Sidi Ahmed)를 아이샤의 지휘자라고 불렀다.
투하미는 모든 성인들을 방문한 후 몸이 좋아졌고, 시디 사이드의 병원으로 가기 전 석 달 가량 머물렀다. 그는 이 기간 내내 성인들을 방문하며 보냈지만 몸 상태가 다시 나빠졌다. 그는 집에서 기절한 후 병원에 실려갔지만 결국 1년후 다시 도망쳤다.
병원에서, 투하미는 무릎이 아파 걸을 수 없었다. 그는 매일 밤 꿈에 랄라 아이샤를 만났다. 그녀는 투하미에게 떠나라고 말했다. 한편, 꿈에서 투하미는 jnun과 싸웠다. 아이샤는 항상 그의 편이었기 때문에 투하미가 항상 이겼다. jnun은 여러 가지 모양을 하고 있지만 모두 '남성'이었다. 반면 여성들은 모두 투하미 편이었다. 랄라 아이샤는 투하미에게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그는 그것을 말할 수 없다고 했다.
투하미에게 남성은 적이었고 여성은 조건없이 그를 보호하는 존재였다. 또한 그는 아이샤 칸디샤의 희생물이기도 했다. 이 이야기에서 돌을 던진 사람은 남성이지만, 아이샤 칸디샤 역시 간접적으로 투하미의 질병과 관련되었을 뿐만 아니라, 투하미를 지배하는 남성적 성격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성인 -남성- 또한 보호의 한 원천이기도 하다. 하지만 많은 전설 중 가장 주목해야 할 하마드샤 성인들은 여성적 속성과 결합한다는 점이다.
투하미는 아무도 모르게 병원을 떠났다. 그의 무릎은 이제 아프지 않았고, 샤이크 엘 카멜에게 가서 밤을 보냈다. 그날 밤 랄라 아이샤가 와서 병원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투하미는 다음날 아침 무슬림의 집으로 돌아와 일주일 동안 쉰 후 다시 일하러 갔다.
병원에서의 귀환은 그가 앞서 말한 귀환과 유사하다. 여기에서도 그는 환영을 받았으며 두 경우 모두에서 그는 여성이 운영하는 회사에 있었다. 졸랑 부인과 실비아 그리고 딸들은 아이샤 칸디샤와 다양한 현현을 의미했다. 주목할 것은 병원에 돌아가고 싶지 않은 그의 욕망을 아이샤 칸디샤의 명령으로 표현한다는 점이다.
병원에서 돌아온 후 몸이 나았고, 일주일 정도 지나, 꿈에 무라이 부시타(Mulay Bushta)의 무덤을 돌보는 라디(Lhadi)라는 남자가 찾아와, 그에게 성인의 무덤을 방문하라고 말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투하미는 무라이 부시타의 무덤으로 기사 그곳에서 삼일을 보낸 후, 다시 무라이 알리 자하라(Mulay 'Ali Zahara)의 무덤으로 갔다.
꿈을 꾸기 위해 성인의 무덤에 순례자들이 방문하는 것은 매우 일반적이다. 그 꿈은 성인이 방문한 것으로 해석되었고, 꿈에 성인이 나타내는 것은 진리이며, 성인이 꿈에 명령한 것은 그대로 따라야 한다. 어떤 묘지에서는 그런 꿈을 기다리는 순례자들이 여러 날, 여러 달, 심지어 몇 년을 머물러 있기도 한다.
무라이 부시타의 무덤에서 투하미는 자신이 메크네스에 있는 꿈을 꿨기 때문에 메크네스로 돌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아흐메드 벤 압둘라라는 흑인이 나타나 무라이 알리 자하라의 묘지에 가라고 말했다. 그는 무라이 알리 자하라의 묘지에서 석달 하고 열흘을 보냈어. 그곳에서 투하미는 사람들을 위해 요리하고 장작을 날랐다. 투하미는 메크네스로 돌아가기 원했지만, 매일 아침 무릎이 아파 걸을 수 없었다. 그는 무라이 알리의 묘지에서는 꿈을 꾸지 않았다.
투하미는 다시 꿈을 꿨다(!) 무라이 알리는 그를 떠나게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무라이 알리에게 불만을 제기하기 위해 무라이 부시타의 무덤으로 가려했다. 꿈을 꾼 다음날 아침, 투하미는 불을 피워 목욕물을 데우고, 커피를 준비했다. 그의 앞에 무라이 알리의 관리자 콰도르(Qaddur)가 나타나, 무라이 알리가 투하미에게 잘가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아침식사를 한 후 투하미는 페즈로 떠나, 한달동안 시디 아리 부가렙(Sidi 'Ali Bughaleb)과 시디 아흐메드 티자니(Sidi Ahmed Tijani)의 묘지에서 보냈다. 그리고, 시디 알리 부가렙의 무덤 앞에서 잠들었을 때, 한 남자가 무덤에서 걸어나와 투하미더러 일터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이상의 생애사에서 투하미는 함정에 빠졌다. 즉, 여성 jinniya인 아이샤 칸디샤와, 남성 성인들(Saints) 사이에서 방황하는 것이다. 여성인 아이샤 칸디샤는 남성 jnun으로부터 그를 보호하겠다고 했지만, 그녀는 남성 세계에서 살면서 일하고 싶어하는 투하미의 욕망을 매개할 뿐이며, 그 매개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그녀에게 복종해야만 하는 투하미는 아이샤 앞에서는 여성처럼 수동적으로 있어야만 한다. 남성 성인들 앞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선택의 여지 없이 남성-성인- 의 명령을 따라야 하며, 그들 앞에서의 투하미의 태도는 수동적이다. 이 함정에 놓인 그의 순례는, 그것에 대한 그의 구술은 계속된다.
3. 논평 및 문제제기
누군가를 알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진지하게 노력을 거듭하면 상대의 본질에 얼마만큼 가까이 갈 수 있을까? 우리들은 자신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상대에 관하여 그에게 정말로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고 있는 것일까?
- 무라카미 하루키, [태엽감는 새] 중에서
크라판자노의 민족지는 인류학자와 정보제공자의 만남에 초점을 맞춘다. 필드워크의 경험이 심층적인 '타자로의 여행'을 연상시키는 라비노우와 달리, 크라판자노는 그 사회의 아웃사이더인 투하미에 집중한다. 이것은 타자의 이해에 가장 근접하는 길은 그 사회의 지적 엘리트 -라비노우가 만난 모하메드처럼, 자기 문화를 서양인이 이해할 수 있는 개념으로 설명 가능한- 와의 만남이라는 통념을 위반하는, 말 그대로 충격(Shock)이다. 투하미는 문맹자일뿐 아니라, 무슬림 사회의 주류적 지식인이 아니다. 그는 또한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있는 '이야기꾼'이다. 그러므로 그의 이야기에는, 심지어 자신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에도 다분히 즉흥적으로 지어낸 측면이 포함될 것이다. 크라판자노가 옮긴 투하미의 기억들이 서로 모순되며 충돌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런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크라판자노는 '한'(a) 아웃사이더를 선택함으로써, 추상화된 타자의 문화 '일반'에 대한 접근과 길을 달리했다. [투하미]는 추상화된 모로코인 일반에 대한 민족지가 아니라, 부제에서처럼 '한 모로코인' 투하미의 초상이다. 그렇다고 해서 [투하미]가 투하미 개인만의 이야기에 매몰되는 것은 아니다. 크라판자노는 투하미의 이야기를 사회적 맥락과 역사적 정황에 비추어 '분석'함으로써 모로코 사회를 조망하며, 때로는 투하미의 이야기를 정면으로 반박하기도 한다. 그는 '한' 모로코인의 인류학적 포로가 아니라, 객관적 거리두기를 하는 전형적 인류학자의 포지션을 이탈하지 않는 것이다.
[투하미]는 한 자연적 남성이 그의 인격을 형성해가는 과정에 대한 보고서이다. 투하미의 독특한 성향과 기질은 그의 가족사, 무지한 빈민 남성의 사회적 삶의 조건, 자신의 존재를 인정박디 위해 애쓰는 투하미 개인의 노력이 합해진 결과이다. 그러므로 한 개인의 생애사를 통해서 우리는 그를 둘러싼 문화적, 역사적 맥락을 추적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드와이어의 지적처럼 크라판자노의 민족지에서 투하미의 말은 이 책에 나오지 않는 투하미와의 전체 대화 중 '선택된' 것이며, 그의 '요약'과 '분석'은 인류학자의 의도에 맞게 재구성된 면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좀 더 숙고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 '선택'과 '요약'과 '분석'을 피할 수 있는 민족지 '쓰기'는 과연 가능할까?
하루키의 소설에서 '나'는 마른 우물에 던져진 후, 그 '작고 정지된 듯한' 세계가 얼마나 풍부한 움직임으로 가득한지를 새삼 깨닫는다. 좁은 원으로 다가온 하늘에는 무수한 별들이 지나고, 축축한 바닥에는 수많은 생명체들이 기어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투하미]는 '한' 모로코인과의 만남에서도 깊이 인간을 이해하고 대화하는 인류학적 감수성은, 타자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종교참여조사연구( 2001.5.28), 지도교수 : 김성례, 발제 : 정경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