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16 왜 하나님은 도덕심이 없는 뱀을 저주하셨는가? 또 뱀이 흙을 먹으리라는 저주의 의미는 무엇인가?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창 3:14)
하나님은 인간이 범죄 한 이후에 그들을 찾아와 남자에게는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창 2:12)고 물으시고, 여자에게는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창 2:13)고 물으셨다. 그러나 뱀에게는 전혀 묻지 않으시어 대답할 기회를 주지 않으신 채 곧바로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라고 하신 다음 "배로 다니고 흙을 먹으리라"는 저주를 발하셨다. 여기서 세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첫째, 왜 하나님은 뱀에게는 묻지 않으셨는가? 둘째, 왜 하나님은 도덕적 책임이 없는 한갓 매개물에 불과한 뱀에게 저주를 발하셨는가? 셋째 뱀이 과연 흙을 먹는가?
첫째로 하나님께서 뱀에게 범죄의 이유를 묻지 않으신 이유는 뱀은 비인격적 피조물이기 때문이었다. 범죄 한 인간에게 질문하는 것은 인격체인 그들의 마음에 도덕적 죄책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뱀은 이성과 감정을 지닌 인격체가 아니다. 뱀에게는 죄에 대한 감정이 없다. 물론 유혹 과정에서 뱀은 인간에게 말을 건다. 그러나 그것은 그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뱀에게 범죄의 이유를 묻지 않으신 것은 사실 뱀을 조종한 존재 때문이었다. 여기서 인간을 유혹한 이는 결코 단순히 피조물인 뱀이 아니었다. 그것은 “옛 뱀”(계 12:9)이라고 불리는 마귀 사탄이었다. 그는 용서의 희망과 가능성이 전혀 없는 죄의 창시자인 사탄이다. 그런 존재에게 아담과 하와에게처럼 죄책감을 일으키기 위한 일련의 교훈적 심문을 할 이유가 없다.
둘째로 하나님이 한갓 피조물인 뱀을 저주하신 것은 뱀이 비록 도덕적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유익을 위하여 창조되었는데 그 피조물이 오히려 인간의 멸망을 초래하는 데 이용되었기 때문이다. 이 사실에 대해 일찍이 '황금의 입' [金]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4세기의 위대한 설교자 크리소스톰(Chrysostom)은 "그것은 마치 아버지가 사랑하는 아들을 죽인 자를 벌할 때, 그 살인자가 범행 도구로 사용했던 칼을 부러뜨리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즉 뱀에 대한 저주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인간의 구속을 위한 하나님의 의지와 사랑이 비 인격체인 피조물을 저주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은 예수께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사건에서도 볼 수 있다(마21:19), 엘렌 G. 화잇도 같은 맥락에서 이렇게 설명하였다.
“뱀은 사탄의 매개물로 사용되었으므로 하나님의 심판의 형벌을 함께 받아야만 했다.”(부조, 58).
셋째로 뱀이 받은 저주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뱀이 “흙을 먹으리라”는 말에 대해 비평적인 학자들은 성경이 뱀의 생리학에 대해 무지하다고 공격한다. 그러나 이 말은 흙이 뱀의 음식이 된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완전한 굴욕을 나타내는 관용적 표현이다. 즉 열방이 뱀처럼 티끌을 핥으”(믹 7:17)리라는 미가의 예언이나, 열 왕이 "네 발의 티끌을 핥을 것이”(사 49:23)라는 이사야의 예언 그리고 "그 원수들은 티끌을을 것이”(시 72:9)라는 시인의 저주가 모두 그런 뜻을 나타낸다. 바벨론의 신화에서도 저주받은 사람에 대해 "흙은 그들의 음식이요, 진흙은 그들의 식물이로다”고 하였다. 또 뱀이 저주를 받아 이제부터 “배로 다니라는 말은 이전에는 그것이 배로 기어 다니지 않았다는 뜻이다. 아마도 아름답게 날아다니는 존재였을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엘렌 G. 화잇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것은 날개가 있었는데 공중으로 날 때에는 금빛 광택이 나는 눈부신 모습을 나타내었다(부조, 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