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서정주 시인을 보자.
나는 서정주 시인을 좋아한다. 좋아하면서도 ---, 그 분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친일파 시인으로 굳어져 있고, 본인도 굳이 변명하지 않는다.
그가 전두환을 찬미하는 것을 보고는 실망이 크다. 그러나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의 이념 성향은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으므로 전두환을 칭송한 것이 아니고, 오른쪽으로 고정된 자기의 이념에 신념을 가진 사람이다.
시대의 눈치를 살피면서 자기의 삶과 신념을 햇딱햇딱(사투리라서 죄송) 바꾸는 변신의 천재보다는 우직한 바보가 더 좋게 보이기도 한다.
그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시 ‘자화상’을 보자.
<자화상>
서정주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 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
흙으로 바람벽 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甲午年)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罪人)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天痴)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 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틔워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詩)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그가 태어난 줄포 마을에 답사를 갔을 때 황량한 바닷가 마을과, 고기잡이를 나가 아배와, 그리고 가난만이 깔려있어
그의 자화상이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첫댓글 미당 선생님이야... 서정문학의 백미를 낳으신 분...
질마재와 미당을 모르면 서정시를 논해서는 안됩니다...
친일 그것이 지금에 와서 무엇이 그리 중요합니까?...
권력을 꿈꾸는 정치인들이나 하는 수작이지요. 아! 미당 선생님이시여... ^^*...
질마재동네와 서정주 생가와 문학관과 무덤만 보았습니다.
줄포 가는 길을 아주 천천히 음미하고 싶었는데 단체로 가는 바람에
가지 못했습니다.
시인은 질마재에서 살다가 줄포에 이사 와서 살면서
10세때부터 5년간 많은 추억을 만들었고 어린시절의 추억이 영양분이 되어
시<내 영원은>이 탄생 되었습니다.
기회가 되면 조금씩 서정주 시인의 시의 뿌리가 된 장소를 찾아
볼 작정입니다.
선생님
서정주시인을 다시 생각할 기회를 주시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