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풍령 저수지에서 생긴 일
그 때의 폭력이 얼마나 심각했던지 지금도 그 사건을 떠올리면 팔둑에 닭살이 돋는다. 내가 왜 공수 특전단인 동네 형과 추풍령 저수지를 갔던지 후회가 막심하다. 동네 형이라지만 예의는 털끝만큼도 없고 어른들에게도 무지막지 행패를 부리던 사람, 동네 형이지만 지독한 욕설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왜냐하면 동네 망나니로 사람 취급도 않을 뿐더러 더구나 형 노릇은 빵점 이니까 그렇게 부를 수 밖에 없었다.
추풍령에 저수지가 있었다. 추풍령 저수지는 추풍령에 있는 제법 큰 저수지인데 낚시를 하러 오는 사람만 가끔 있을 정도로 한산했다. 운이란 친구도 동행했다. 운이란 놈은 친구이기 하지만 그 놈도 동네에서 막 놀아 별로 신용을 얻지 못한 상태였다. 특전단에 근무 중인 개망나니 길형과 운이, 나 이렇게 셋이 추풍령 저수지에 왜 갔는지 아무리 과거를 뒤돌아봐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 때만 해도 내 나이, 20대 초반이라 동네 앞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다가 심심풀이 삼아 황금 저수지 까지 자전거로 올라간 걸로 생각이 들었다. 올라간 과정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저수지에서 있었던 일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너무나 생생하고 선명했다. 저수지는 맑고 푸르렀다. 중심을 바라보면 얼마나 깊은지 푸른 기운이 넘실거렸다. 말 풀들이 얽혀 있고 날치 떼 같은 치어들이 뛰어올라 허공은 은빛처럼 반짝거렸다. 그날 우리는 저수지가에서 새우를 잡았다. 우후죽순으로 솟구친 갈대숲을 족대로 훑으면 새우들이 징그럽게 톡톡 튀었다. 술안주 감으로 제격이었다. 국에다 새우를 넣고 끓이면 훌륭한 술안주 감이 되었다. 새우는 셀 수없이 많았다. 족대로 훑으면 채워지는 것은 거의 새우였다. 물 반 새우 반 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길이는 특전단답게 동작도 민첩했고 지치지 않았다. 밥만 먹으면 수없이 반복되던 훈련과 강행군이 길의 살집에 근육을 붙게 하고 틀이 잡히게 했다. 준비해온 막걸리로 한 잔 두 잔 먹은 탓으로 길의 눈은 붉게 충혈되고 얼굴은 한창 타들어가는 노을빛 같았다. 눈꼬리도 갈라졌다. 말투도 능글맞았다. 얼굴과 눈꼬리와 말투는 길이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화가 났다는 걸 맨 먼저 알 수 있는 건 무엇보다 쭉 찢어진 눈꼬리였다.
“형, 여기는 새우가 없는 가벼. 저위로 가지”
“그냥 여기서 잡아”
"아녀, 저 위쪽이 더 많은 것 같어“
“왜 말이 많어 임마, ”
갑자기 길의 눈꼬리가 더 찢어지더니 성격이 불같이 돌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무서운 얼굴은 처음 보았다. 나는 지레짐작 겁을 먹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만약 폭발한다면 그 성격을 아무도 말릴 사람이 없을 것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내 턱이 퍽 하더니 정신이 아찔했다. 번갯불이 콩튀기 듯 했다. 연타로 들어온 훅과 주먹은 내가 쓰러질 때까지 계속 퍼부어댔다. 무지막지하고 억센 힘을 당해 낼 도리가 없었다. 나에게 변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어느새 내 입에서는 찐득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말 한마디 하기도 전에 내 옷통이 찢어졌고 런닝셔츠는 걸레 같았다. 길은 마치 성에 굶주린 야수처럼 내 몸을 농락하고 있었다. 만약 내가 여자라면 나는 그날 길이게 수없이 겁탈을 당했을지 모를 일이었다. 갑작스런 반격에 친구 운도 어쩔 재간이 없었다. 연거푸 들어오는 길의 주먹질에 매달려 싸움을 말리려고 애썼지만 운의 힘도 소용없었다. 말리면 말릴수록 길의 주먹은 더 깊고 예리하게 날아들었다. 나비처럼 날아 벌같이 쏟아라는 말이 딱 어울릴 정도였다. 한창 주먹을 날리던 길이 이번에는 자기 대갈통만한 돌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나한테 내리칠 찰라 나는 족대에서 빠져 나온 물고기처럼 간신히 자유의 몸이 되었다. 죽을 힘을 다해 그의 완력에서 벗어났던 것이다. 정말이지 길의 주먹은 대단했다. 특전단의 매력이 이런데 있는 모양이었다. 길은 나보다 세살정도 많은 나이였다. 그 때 휴가를 나오면 길은 공수복을 입고 베레모를 삐딱하게 쓴 채 동네를 어슬렁거렸다. 바지 맨 하단에는 칼집이 있었는데 거기에다 칼을 꽂고 다녔다. 알록달록한 군복과 비딱한 베레모가 겁부터 주었다. 그래서 아무도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불량끼가 덕지덕지한 친구들도 그만 보면 피해 다녔다. 어울린다고 하는 것이 감방을 나락창고 드나들며 머리를 박박 깎고 다니는 수였다. 그 수라는 놈도 얼마나 인심을 잃었는지 사람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밤 이슥할 때 골목길에서 동네 어른들을 만나면 다짜고짜 칼을 목에 갖다 대었다. 예의는 어디다 내 던졌는지 도무지 예절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인사하는 건 고사하고 욕부터 날렸다. 제 친할머니를 죽인다며 낫을 들고 쫒아가던 그 살 떨리는 사건을 잊을 수가 없었다. 한마디로 길과 수는 단짝이었다. 수가 동네서 이런 개망나니 짓으로 사고를 치면 휴가를 나온 길은 국도를 휘감고 있는 산자락에 숨어 있다가 지나가는 여자들을 강간하기도 했다. 그 강간으로 그는 몇 번이나 감방에서 썪고 나온 전력이 있을 정도로 부모 속을 어지간히 끓인 놈이었다. 한번은 휴가 나왔을 때 하도 개망니 짓을 하기에 제 아버지가 길의 뺨을 때린 적이 있었다. 달이 휘영청 떠오른 달밤이었다. 달이 하도 맑아 동네의 구석구석까지 환하게 비추는 그런 날이었다. 아, 그런데 이놈이 돌연 제 아버지의 뺨을 때리는 것이 아닌가. 이건 자식이 할 짓이 아니었다. 아무리 위아래가 없고 예절을 삶아먹었다 해도 부모만은 알아보는 게 자식 아니던가. 이러다간 동네 다 망치겠다. 안 그래도 동내 애들이 막돼먹어 뒤숭숭한데 어른들은 큰 결단을 내린 것이다. 여럿이 달려들어 길의 옷을 벗기고 팬티만 입혀놓고 동아줄로 꽁꽁 묵어 통나무 굴리듯이 길을 집으로 끌고 들어갔던 것이다. 그런데도 헛일 이었다.마음을 고치기는 커녕 집집마다 시궁창 냄새 맡고 돌아디는 똥개처럼 싸돌아 다녔다. 이런 무지막지한 길을 다 피하는데 왜 내가 길과 한 통속이 되었는지 도저히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런 길과 함께 추풍령 저수지에서 함께 놀았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떨리는 일었다. 길에게 죽도록 맞고 대갈통만한 돌로 내 머리가 박살나지 않는 것 만 해도 큰 다행이었다. 그러나 다행은 무슨 다행, 런닝 셔츠가 갈갈이 찢어져 알몸이 된 내가 뒤를 흘끔거리며 막 자전거를 잡아타고 도망쳐 나올 때 “찰싹‘ 하고 내 뺨을 때리는 자가 있었다. 그 주인공은 길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그는 도로에 차를 세워놓고 장승처럼 턱 버티고 서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하마터면 자전거와 자신의 차가 부딪힐 뻔한 게 그 이유였다. 볼이 후끈 달아올랐다. 그러나 창피한 것도 몰랐다. 알몸이 되었다는 창피함에 아픔은 금방 사라지고 말았다. 죽자 사자 따라오던 길은 다행이 따라오지 않았다. 추풍령 민가에 들러 겉옷 하나 얻어 입고 집으로 돌아오니 해거름 때였다. 나는 설움에 복받쳐 부모님께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부모님은 엄청 속이 상한 모양이었다. 동네에서도 내 놓은 개망나니를 향해 싸운다는 것은 엄두도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특히 어머니의 상심은 컸다. 잠깐 길집에 다녀온 어머니는 그냥 침묵하셨다. 길의 부모한테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몰랐다. 그날 저녁 길이 찾아왔다. 웃통을 훌렁 벗고 굵고 긴 막대기 하나를 옆구리에 꿰차고 들어왔다. 푹푹 술 냄새 진동하는 입에서는 가장 듣기 거북한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마루에 앉아 이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시던 부모님도 무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길이 욕을 퍼붓고 밖으로 나갈 때까지 그냥 보고만 계셨다. 특전단인 길의 행동은 아직까지도 잊혀지지 않았다, 생각할수록 괘씸하기 이를 데 없었다. 지금 서른 해가 가까워오지만 잊혀지지 않았다. 어릴 때 받았던 그 상처, 치욕, 두려움, 그리고 상심했던 부모님의 얼굴이 오버랩되어 내 머리 속을 맴돌고 있었다. 지금 나이 50이 넘은 길은 결혼하여 마음잡았다지만 어떤 때는 한번 만나 그 아득하던 때의 일을 따지고도 싶었다. 공수 출신이라지만 이제 이 다 빠져 종이호랑이가 된 길이를 붙잡고 그 때 내가 당했던 설움을 되갚아 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 동네를 들어가기 싫었다. 젊은 시절 떠나온 동네를 다시 찾는 것은 용기가 나지 않았다. 더구나 길을 다시 찾으면 무엇하랴. 긁어 부스럼 만든다고 길을 찾아 아득하게 흘러간 그 때의 일을 되도록이면 마음에서 지우고 살아가는 수 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