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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엘 에반 그린이란 아이가 있었습니다. 2009년 1월 12월생이었죠. 2010년 11월, 조엘은 비정형 유기형/간 종양(Atypical teratoid rhabdoid tumor)가 있다는 판정을 받게 됩니다. 소아 뇌 종양중에서도 가장 악성이면서도 희귀한 종양이었죠. 의사는 길어야 4개월이라 판단했지만, 조엘은 살아남았습니다.
<라이언 그린과 조엘 그린, 그리고 후원자들>
조엘의 아버지인 라이언 그린은 게임의 스토리를 써본적이 있는 게임 개발자였습니다. 조엘이 의사가 예상한 시간보다 더 오래 산 것은 기적이자 신의 은총이라고 여긴 라이언은 조엘에 대한 게임을 만들자는 생각을 해냅니다. 조엘이 4살때의 일이었죠. 라이언과 아내 에이미, 그리고 라이언의 전 직장 동료 조쉬 라슨은 후원을 받아 게임을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게임의 제목은 댓 드래곤, 캔서(That dragon, cancer). 이전에 라이언이 조엘의 형제들에게 해준 조엘은 암이라는 이름을 가진 무서운 용과 싸우는 용감한 기사라는 이야기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2014년 초, 조엘의 증상은 더 악화되었고, 실험약물도 새 증상을 완화시킬 수 없자, 라이언과 에이미는 조엘의 피딩 튜브를 떼기로 결정합니다. 게임 개발을 시작한지 16개월, 2014년 3월 13일에 조엘은 다섯살의 나이로 죽습니다. 조엘의 죽음 이후, 라이언과 에이미는 게임의 개발에 더 몰두합니다. 그 이전까진 조엘이 죽을지 살지 몰랐기에 라이언과 에이미의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지만, 조엘의 죽음 이후로 게임은 조엘에 초점을 맞춰 조엘을 추억하는 방향으로 개발됩니다.
2016년 1월 12일, 조엘의 생일에 맞춰 게임이 발매되었습니다. 일전에 개발 관련 비화를 읽고 크게 감명받았기 때문에 게임이 발매됐단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구입해서 플레이해봤습니다. 글을 길게 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이 게임을 제가 감히 평가할 수 있을까요.
게임 자체는 다른 조작법이 있는 것이 아닌 마우스를 클릭해서 이동하고, 사물들과 상호작용하는 '포인트 앤 클릭' 형식의 어드벤쳐 게임입니다. 1인칭과 3인칭, 다양한 캐릭터들을 번갈아가며 플레이하게 됩니다. 특히 플레이어가 하나에 몰입할 수 있게 하고 그 사이에 자연스럽게 시점을 바꾸는 연출들은 게임 내내 수없이 나오는데 모두 자연스럽게 연결이 됩니다. 물론 자연스러운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서 플레이어들의 행동에는 제약이 따르는데, 저같이 1인칭에 약해서 멀미가 쉽게 나는 사람이 아니라면 괜찮습니다. 이 게임은 자유도가 중요한게 아니니까요.
장면 전환 뿐만 아니라 다른 연출들도 뛰어납니다. 병원 측이 라이언과 에이미 부부에게 조엘의 종양에 대해 알리는 부분은 정말 연출이 뛰어났습니다. 조엘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에 있던 동물들이 의사, 간호사, 조엘, 에이미로 바뀌어 같은 상황에서 네 명의 심경을 모두 들어 볼 수 있을뿐더러, 대화가 진행될수록 장난감의 바늘은 먹구름을 가리키고, 방 안에는 비가 내려 어느 순간 네명의 목덜미까지 물이 찹니다. 실제로 보면 정말 연출이 놀라운데, 글로는 설명하기가 어렵네요.
이 게임은 모두 실화지만 다큐멘터리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습니다. 모두 실화지만 너무 무겁지는 않게 게임 디자인 내에 부부의 상상이 많이 가미됐습니다. 병원 복도에서 조엘과 작은 수레를 탄 경험은 게임 내에서 고카트 경주로 표현되고, 아들들에게 조엘이 암이라는 용과 싸우는 기사라는 이야기를 해주는 것은 플랫포머 게임으로 표현됩니다. (이 때 유일하게 포인트 앤 클릭이 아니라 화살표로 조종하게 됩니다.)
<대사를 통해 추상적인 질문도 던진다.>
상상과 더불어 추상적 표현도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정말 많은 것들이 추상적으로 표현됩니다. 라이언이 물 속으로 가라앉는다던가, 라이언의 꿈 속에서는 종양이 조엘이 들고 있는 풍선을 터뜨려 조엘이 하늘에서 떨어진다던지 하는 것들 말이죠. 챕터 전체가 추상으로 가득 찬 경우도 있습니다.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더빙했다.>
라이언과 에이미 부부가 이 게임을 개발하기는 결코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들의 병과 죽음을 그려내고 자신의 속마음, 조엘이 투병할 때 썼던 편지, 일기, 보이스메일까지 모두 공개하는 작업이니까요. 속마음을 완전히 발가벗겨 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입니다. 심지어는 게임 내 음성 더빙도 스스로 했죠. 왜 부부는 '게임'을 만들기로 했을까요? 조엘을 추억하려면 글로 쓸 수도, 영상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단지 라이언이 게임 개발자라는 이유만은 아니겠죠.
<수많은 쪽지들.>
게임은 지금껏 나온 매체들 중에 가장 '경험'과 '몰입'이 잘 되는 매체일 것입니다. 영상매체는 단순히 시청하는 것이지만 게임은 플레이어가 직접 '하게' 됩니다. 덕분에 더 쉽게 몰입이 가능하죠. 여기에 라이언과 에이미의 속마음, 정말 겪어본 사람많이 낼 수 있을것만 같은 목소리, 암에 걸렸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암에 걸린 사람들이 보낸 수많은 쪽지, 편지, 일기, 그림과 사진들은 더 깊게 몰입 할 수 있게 해줍니다.
<꼭 내 아이가 아픈것만 같다.>
플레이하는 내내 품에 안은 조엘을 보며 '이렇게 어린 아이가 그런 병을 가지고 있다니.'라는 생각이 들고 텅 빈 복도를 걷는데 아무 이유 없이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플레아 하는 동안 몇 번을 울었는지 모르겠네요. 라이언과 에이미 부부는 아들을 추억하기 위해 게임을 만듦으로서 자신들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경험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물론 모든 것을 직접 겪어본 당사자들에 비하면 제가 느낀 슬픔은 아무것도 아니겠지요. 하지만 이 게임을 플레이하고 그 아픔에 동감하고 눈물을 흘려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것만 해도 충분한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이 게임은 어렵습니다. 난이도가 높다거나 조작이 어렵다는게 아닙니다. 플레이타임도 2시간으로 길지 않지만 내용에 추상적인게 많이 들어가있고, 편지나 쪽지 보이스메일같이 살펴볼 요소가 많아서 자칫하면 다 못봤는데도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버릴수도 있습니다. 특히 개발 비화를 모른다면 추상적 내용이나 상상이 들어간 내용은 더 어렵겠지요. 언어도 영어밖에 지원하지 않습니다. 자막도 짧게짧게 빨리 지나쳐버리는게 많아서 읽기 어려울수도 있어요. 어떤 대화들은 자막을 지원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요.
저도 이해를 다 못했습니다. 놓친것도 많습니다. 그런건 아무래도 상관 없었습니다. 두시간. 게임을 끝까지 플레이하고 나니 머리가 지끈거렸습니다. 처음에는 멀미가 나는구나 했죠. 분명 머리의 아픈건 사라졌는데도 가슴 한 구석이 욱씬거립니다. 그리고 무언가에 끌리는 것처럼 이 리뷰를 썼죠. 분명 처음 서문에는 글을 길게 쓸 수 없을 것 같다 그랬는데 쓰다보니 내용이 엄청 길어졌네요.
<아주 용감한 기사 조엘.>
이 게임은 이해를 다 못해도 됩니다. 어떤 걸 추상적으로 표현했는지 분석할 필요도 없어요. 라이언 그린은 이 게임을 자신의 아들을 추억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그거면 된거에요. 2시간동안 조엘과 가족의 아픔에 동감하고, 조엘을 기억해줄수 있으면 된거에요. 그리고 플레이어들에게, 적어도 저에게 조엘은 그 천진난만한 웃음과 무서운 용에 맞서 싸운 용감한 기사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Fear is cancer's preservative.
Cancer's embalming oil.
And you, oh accuser, are fear's oil salesman
You're a snake. A serpent.
A dragon with snuffed out coal on his breath.
molting ; talons broken from struggle
to free yourself of your own skin.
THAT DRAGON, CANCER."
<조엘 에반 그린을 추억하며. 생일 축하해 조엘. 2016.01.13>
참조
https://en.wikipedia.org/wiki/That_Dragon,_Cancer#cite_ref-telegraph_1-0
추신
1. 올해 이 게임 제작과 관련된 다큐멘터리 Thank you for playing이 나온다고 합니다. 이미 영화제나 게임쇼같은데서는 상영을 했다고 하네요.
2. 사운드트랙이 아름답습니다. 꼭 헤드폰을 쓰고 하세요.
3. 정말정말 감동적이고 슬픈 장면들이나 대사들이 많은데, 직접 처음 봤을때의 그 느낌을 망치고 싶지 않아서 쓰지 않은게 많습니다.
사진 출처
게임 'That dragon, cancer' 캡쳐
첫댓글 저도 이건사고싶더라구요
안타까운걸 게임으로만든다는게 쉽지않았을탠데, 분명 하라고만든거일태니까요 우리가 해줘야죠
꼭 한번 해보세요!
좋은 게임이죠. 이미 잘 리뷰 한 글이 있어서 따로 다루지는 않았지만, 수십번을 다뤄도 좋을 만한 작품이죠
여러모로 생각할 여지를 많이 남긴 게임 같네요
리뷰만 봐도 먹먹해지네요..
혼자서 플레이해야돼요. 그래야 맘놓고 울수 있어요
아이의 얼굴을 표현하지 않은 것도 자신들처럼 아이를 잃은 또 다른 부모를 공감해주는 느낌이네요
얼굴이 없어서 플레이어들도 더 잘 몰입이 가능한가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