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주님께서 유월절과 무교절을 보내시기 위해서 예루살렘 성전의 제자들과 함께 올라가셨습니다. 거기에는 이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세계 곳곳으로부터 온 수많은 무리들이 거기에 이미 도착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납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표현하면서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정합니다. 또 한 여인은 예수님께 자기의 향유 갑을 깨서 부어드립니다. 또 한 그룹은 그런 이 여인의 행위에 대해서 매우 못마땅해하면서 비판하고 또 자기 의견을 강하게 피력을 합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여러 그룹의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유월절 그 주간에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만약에 저와 여러분이 2천년 전으로 돌아가서 그 예루살렘 현장에 있었다면 나는 어느 그룹에 속해 있었을까? 한번 냉정하게 진실하게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주님께 대해서 적대적인 마음으로 눈을 부릅뜨고 예수님을 비판하고 또 예수님을 공격하고 죽이려고 하는 무리에 있었는지 아니면은 이 향이 옥합을 깨어드린 여인에게 여인의 그 입장에 있었을까 아니면 제자들의 냉소적인 제자들의 입장에 있었을까 먼저 대제사장과 서기관들 무리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적대자입니다. 1-2절에 보면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 무교절이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일 방도를 구하며 가로되 민란이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더라.
적대자들입니다. 주님께 대해서는 항상 이런 적대자들이 있었어요. 주님을 특별히 죽일 수 있는 그런 이유가 없었지만 흉계 나쁜 계획을 그들은 했습니다. 왜 이렇게 예수님에 대해서 적대적일까 자기 예수라는 분이 자기에 대해서 특별한 무슨 잘못을 한 건 아니지만 그러나 예수 운동을 그대로 놔뒀다가는 자신들이 지금까지 누리고 있는 그 기득권, 그 기득권이라는 게 뭡니까? 매국노 같은 일이에요. 지금 자기들을 지배하고 다스리고 있는 로마에 빌붙어서 그들의 눈치를 보면서 예루살렘에서 종교적인 세속적인 권력을 누리는 것입니다.
대제사장 그룹 그리고 서기관 그룹 그것이 예수님 때문에 위협을 받는다. 저 예수 운동 저 예수 운동을 그대로 두면 분명히 자신들의 기득권이 위태로질 것이다
이렇게 판단을 한 겁니다. 그래서 적대적 세력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잠시 이 일을 미뤘어요. 왜 민란을 두려워했어요? 왜 예수님을 따르는 예수님의 인기가 보통이 아니거든요. 예수님을 따르는 그 무리들이 반란을 일으킬까 봐. 그러면 또 로마에서 볼 때, 아 이 무능한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로마는 지금 자기가 다스리는 속국 가운데서 민란이 일어나고 그러면 그 대의 통치자 거기에 임시로 세워놓은 자들을 문책하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이런저런 이유로 이 대제사장과 서기관 그룹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적대적인 마음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그 일을 지금 거행하려고 하는데 그렇다고 막 그것을 밀고 나가지도 못하는 것이 그들의 마음속에는 두려움이 있었어요.
왜 그런 두려움이 이들에게 찾아왔을까 그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참 신기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세상이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살지 않거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스며 들어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당대 최고의 권력을 가졌지만 하나님은 두렵지 않아요.
그러나 로마가 두렵고 민란이 두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결국은 비겁해졌어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 하나님이 절대자임을 알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이 전능자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잠언 28장 1절에 보면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니라.
세상 사람들이 볼 때 교인 특별히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는 사람들은 바보 같고 아무 힘이 없는 것 같지만,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보면 가장 용기 있는 사람은 바로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는 사람들. 우리는 그 순간에도 흔들리지를 않습니다.
이런 이 대제사장 그룹이 예수님에 대해서 적대적 감정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또 한쪽에서는 자신이 소중하게 여겼던 평생을 준비해 왔던 옥합 향유 옥합을 깨워서 주님의 머리에 부어드리는 여인이 있었어요. 3절에 보니까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할 때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도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한 여자 요한복음에서는 이 여자를 나사로의 누이인 마리아라고 말합니다. 마리아 이 마리아가 자기가 소중하게 아껴두었던 향유 옥합을 깨서 주님의 머리에 부어드렸습니다. 마리아가 어떤 사람입니까?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서 늘 주님의 말씀을 듣는 여인이었어요. 그 언니 마르다도 있었습니다. 마르다는 활동가였어요. 손과 발로 주님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에 마르다와 같이 손과 발로 부지런히 몸으로 섬기는 사람 그게 있어서 교회가 돌아가고 그게 있어서 주님께서 그동안 사역하실 때 그 현장이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마리아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예수님 발찌에 앉아서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만 듣는 거예요. 예수님의 말씀만 따박따박 받아들이는 거예요. 그때 이 말이 마르다가 언니 마르다가 열을 봤습니다. 자기는 부지런히 일하는데 보니까 저 마리아는 자기도 말씀 듣고 싶지 않겠어요 그러나 자기는 지금 이 몸이 먼저 움직이는 거예요. 이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데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 발치에 앉아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다 받아들이는 거, 예수님과 아주 아주 신실한 긴밀한 관계를 가지는 걸 보면서 화가 나서 예수님 좀 마리아 좀 말려주세요. 저만 이렇게 고생해서 되겠습니까? 우리 마리아한테 뭐라고 좀 해주세요 그랬더니 오히려 예수님은 마리아를 변호하셨어요.
마리아가 좋은 편을 택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것도 주님을 향한 봉사인 줄로 믿습니다. 교회 나와서 우리가 볼 때 저 사람은 와가지고 아무 일도 안 하고 말씀만 잘 듣는다고 그러는데 말씀만 잘 듣는 걸로도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거예요. 아멘
교회에 나와서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 대단히 중요해요. 그러나 와서 말씀을 열심히 듣고 그 말씀을 먹고 자라는 것도 여러분 헌신이고 봉사인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 앞에서 이 마리아가 그런 여자였는데 이 사람은 거의 언니는 언니는 죽도록 헌신하고 봉사하고 그릇 씻고 음식 준비하고 그러는데 이 마리아는 예수님 말씀만 들었어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렇게 예수님 말씀만 들으면서 그 영적으로 성장하던 이 마리아가 마지막 순간에 큰일을 낸 겁니다. 마지막 순간에 한 몫에 크게 해버렸어. 놀랍지 않습니까? 한 번에 크게 해버렸어요.
자신의 향유값 이 가치가 얼마나 되느냐? 당시 여인 내의 결혼 자금이라고 합니다. 값으로 따지면 300데나리온 하루 노동자 임금이 한 테라리온이에요. 그러니까 거의 1년 1년이 뭡니까? 휴일 이런 거 빼고 이렇게 하면 1년 그걸 오늘날로 계산하면 프랑스 임금으로 말하면 얼마나 될까요? 제가 따져보니까 3천에서 6천만 원 정도 사이 보통 한 4~5천 되지 않겠어요. 연봉 4~5천. 보통 중산층이면 5~6천 되나요? 하여튼 하여튼 적당히 5천에서 6천 잡아봅시다. 5천에서 6천. 아무리 내가 주님을 사랑한다고 해서 5천 6천짜리 한 번 깨면 돌이킬 수 없는 그걸 확 깰 수 있겠느냐 여관 하면 하지 못합니다. 한 6천 정도 되면 뭐가 될까요? 복스바겐 파사트 새거 사고 좀 남아 제가 찻값은 잘 모르지만 메르세데스 벤즈 이 클라스 정도는 사지 않겠어 그냥 벤즈 한 대를 깨버린 거예요.
어떻게 해야 실감이 날까 전혀 안 놀라는데 이게 지금 이게 이 옥합 하나 깼다는 게 무슨 꽃병 하나 깬 걸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평생 자기 재산이에요. 이것 가지고 시집 가야 되는 거예요. 결혼 자금이에요. 다시는 이 정도의 액수를 모을 수 없는. 근데 마리아가 말씀만 듣고 아무 일도 안 하는 것 같던 이 마리아가 한 번에 큰일을 치른 것입니다.
마리아는 옥합을 깼지만 사실은 자기의 인생을 깨뜨린 거예요. 그것을 깨어서 주님께 부어드렸지만 자기 인생을 부어드린 것입니다. 진정한 헌신, 온전한 헌신을 우리가 볼 수가 있어요. 주님이 마지막 이제 일주일 죽음을 일주일 남겨놓으시고 그 마지막 순간에 주님은 이 마리아로부터 온전한 헌신을 받으신 거예요.
그런데 그 모습을 보고 또 한 무리가 반응을 합니다. 반응할 만도 합니다. 이렇게 이 정도 액수라고 생각하면 그걸 그 5천만 원 6천만 원을 그냥 예수님 머리에 우리가 그런 무슨 아주 고급 향수가 있어서 부어드렸다 욕할 만해요. 서로 말하되 한 사람만 화난 게 아니예요. 거기 있던 주님의 제자 그룹이 다 열받았어요. 서로 화가 나가지고 이럴 수가 있어. 저 미친 거 아니야 저 실수한 거 아니야 별 소리가 다 나왔을 거예요.
화를 내서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향유를 협의하였느냐 이 향유를 300달러 인원의 이상에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도다
하며 여자를 책망했다. 비난한 것이 제일 민망한 분은 예수님이셨을 거예요. 얼마나 민망했겠어요? 사실 제자들은 이 여인이 예수님에 대해서 한 일을 보면서 자신은 자신들은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했어야 돼요. 오히려 감사하고 축복하고 내가 하지 못한 거 당신이 해줬으니 감사하다고 기뻐했어야 될 것입니까? 그게 제자의 도리고 제자의 마음이에요.
그 많은 사람 중에서 예수님은 70인을 택했고, 그 70인 중에서 12명을 택했어요. 이 제자 그룹은 얼마나 주님께 특별한 대우를 받은 사람들인지 몰라요.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스승이 과한 대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 거예요. 스승이 지금 필요 이상의 대접을 받고 있다. 그러니까 스승은 직접 공격하지 못하지만 이 여인을 비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모습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요? 이 여인을 비난하지만 나를 비난하는구나 다 알고 계신 거예요. 그들의 말은 매우 합리적이었습니다. 그렇죠 야 이거 한번 이게 뭐냐 이거 이거 그걸로 팔아가지고 300데나리온이면 수많은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을 곤경에서 건져내고 수없이 먹일 수 있잖아. 얼마나 옳은 말입니까? 합리적인 말입니까? 그렇죠 이 말이 틀린 데가 하나도 없어요.
그러나 합리적이라고 다 옳은 건 아니라는 거예요. 합리적이라고 다 옳은 것은 아니다. 이 시대는 너무 합리적인 이론으로 주님을 대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려고 합니다. 신앙생활은 우리 합리적인 것들을 때로는 뛰어넘는 거예요. 하나님이 합리적이지 않아요.
저와 여러분 오늘 우리가 권한 주일이지만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십자가에 희생시키셨어요. 그게 어떻게 합리적인 겁니까? 우리가 그 대우를 하나님의 아들의 희생으로 우리가 구원받아야 될 합리적인 이유가 있나요? 우리가 죄로 말하면 지옥 제일 밑에 밑바닥에 내려가야 될 사람들이에요. 돌에 맞아 죽어야 될 사람들이에요. 우리가 십자가에 달려 죽어야 될 사람들이에요. 영원한 저주 가운데 살 수밖에 없는 우리들입니다.
우리가 사랑받을 이유가 있나요?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지으셨지만 우리는 공연히 이유도 없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등을 돌렸어요. 딴 길로 갔어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해야 될 이유가 있나 합리적 이유가 있나요? 만드셨다는 이유로 토기장이가 토기를 만들었다 깰 수도 있는 거예요. 하나님 마음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어요. 거기에는 합리적인 게 없습니다.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없어요. 그냥 사랑하신 거예요. 우리는 그 사랑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됐고, 그 사랑 때문에 우리는 영생을 얻게 된 것입니다.
어디다가 우리가 합리적인 걸 댑니까? 합리성을 가지고 하나님을 대합니까? 그런데 제자들은 그 놀라운 사랑 그 수많은 사람 중에서 특별한 대우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12사도 말이에요. 12사도 얼마나 위대한 직분입니까? 그렇게 불러주셨는데도 불구하고 지금 합리적인 자기 잔대가리를 굴리면서 지금 주님을 비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중에서 특별히 그걸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는 게 맞다. 이렇게 한 사람은 가롯유다였어요. 가롯유다. 요한복음 12장 4절에서 6절에 보면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줄 가롯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300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하면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오. 나중에 요한이 깨달은 거예요. 그 제자가 그때는 다 썩은 거예요. 이 사람이 정말 박애주의자구나 가난한 자들을 생각하는구나 그런 사람들 많습니다. 가난한 사람 구제 이런 거 얘기 많이 하는 사람 있어요. 나중에 보면 진짜 짠돌이야. 그런 사람 자기 것은 하나도 안 내놔요. 가롯 유다가 그랬어요. 가난한 자에게 다 하는데 보니까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오. 그는 도둑놈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에 넣은 것을 훔쳐감이라
내가 훔쳐가야 될 액수가 떨어졌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이 도둑놈이에요. 이놈이 지금 이 소리를 하는 거예요. 다른 제자들도 동조했어요. 가롯유다 정도는 아니지만 우리도 이 그룹에 속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가롯유다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 입장에 동조해 그래도 좀 너무한 거 아니야. 아무리 주님이라도 그 정도 대우받는 건 너무한 거 아니야 교회는 주님의 몸된 교회에 우리가 교회를 위해서 헌신하는데 뭐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어? 맞아 맞아 주일날이나 한 번 가면 되지. 여러분 하늘에 계신 주님을 우리가 어떻게 섬깁니까?
주님의 몸된 교회를 사랑함으로 섬기는 거예요. 우리가 하늘 올라가서 주님을 섬깁니까? 이 교회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사명을 감당하면서 섬기는 거예요.
그런데 어떤 똑똑한 사람이 얘기하는 거예요. 너무 그럴 필요 없다고 그러면 뭐 그렇게까지 얘기해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동조하는 거예요. 지금 제자들의 그룹이 그랬습니다. 그러다가 가롯 유다는 은 30개의 스승을 팔았고 제자들은 주님이 가장 제자들을 필요하는 시기, 십자가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어 거두시는 그 시간대에 모두 주님을 버리고 가버렸습니다. 평소에 마음 관리가 중요한 거예요. 주님께 대한 이런 서운한 마음, 이런 부정적인 마음 이런 마음을 빨리빨리 해결하지 않고 쌓아두다가 어느 날 결정적인 순간에 주님을 버리고 다 도망가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유다는 패륜아가 됐어요. 배신자의 아이콘이 됐어요. 배신자 그러면 안 믿는 사람도 가롯유다 그럽니다. 저런 유다 같은 놈
평소에 자신을 관리하지 않으면 우리는 결정적인 순간에 사고를 내는 겁니다. 평소에 주님에 대해서 좋은 마음을 늘 가져야 돼요. 자꾸 우리 마음속에 있는 마귀가 그런 소위 말하는 합리적인 생각을 자꾸 집어넣는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에 대해서 모든 정말 불공정 거래를 하셨어요. 그냥 사랑을 무차별하게 쏟아부으셨어요. 하나님은 뭐 계산 같은 거 없으셨어요. 그런데 우리는 자꾸 계산 때리는 계산 때리는 거 부모, 자식 간의 관계와 같은 거예요.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모든 걸 쏟아붓는데 저도 자식이 저도 부모가 있고 자식이지만 우리 부모가 나한테 저한테 한 것보다 자식은 그 정도가 안 되더라고.
그게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예요. 그건 뭐 비교할 수도 없겠죠. 그래서 최선을 다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좋은 마음을 평소에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여인의 행위를 어떻게 보셨는가 가만둬라. 제자들을 말리셨어요.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인을 괴롭게 하느냐 내게 좋은 일을 했다. 이 여인이 내 장례를 준비했다. 가난한 자들은 너희와 항상 함께 했다. 그때 해라. 평소에 하지도 않는 것들이 꼭 그때 그런단 말이야.
그 말씀이에요. 평소에 니가 다 니가 도둑질해 가고 다 가는 거 알았는데 왜 여기서 딴소리냐 평소에 잘해라. 그러나 이 여인이 한 일은 중요한 일이다.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준비했다. 아마 이 여인이 마리아가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려고 이렇게 한 건 아니었을 거예요.
그런데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드렸던 그 향유가 주님의 장례를 준비하는 사건이 됐어요. 여러분 이것보다 더 중요한 사건이 어디 있겠어요? 주님의 장례에 향유를 부어뜨린 것입니다. 리고 말씀하시기를 복음이 증거되는 곳에는 이 여인의 한 일을 반드시 얘기해야 된다. 주님이 이 일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신 것입니다.
나는 어느 그룹에 속해 있는가? 오늘 이 고난 주일에 스스로에게 물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여기 계시다면 내가 예루살렘 2천년전으로 돌아간다면, 아니 우리 교회가 주님의 영적인 몸이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어느 그룹에 속해서 신앙생활하고 있는가? 우리가 다시 한 번 이 고난 주간의 생각을 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의 삶도 주님의 고난과 주님의 역사에 참여하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