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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강해 (12)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엡 5:15~21
I. 서론
오늘 말씀은 우리 교회 시니어 성도님들에게 가장 필요한 말씀일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세월을 아끼라”는 말씀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세월을 아낀다”는 말씀은 무슨 의미일까요? 우리는 보통 “아낀다”는 것을 이렇게 이해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분이 여러분에게 지리산 산청의 20개 들이 최상급 꽂감 한 상자를 선물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한 개를 먹어봤는데, 너무나 맛있어서 계속 먹게 되었습니다. 3~4개쯤 먹다 보니, ‘아니 이러다가 한꺼번에 다 먹겠는데, 좀 아껴 먹어야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서 ‘아낀다’는 의미는 ‘다 먹지 않고 저장해 둔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는 세월을 저장해 둘 수 있습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적으로 “세월을 아낀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어떻게 사는 것이 세월을 아끼면서 사는 삶일까요? 오늘 말씀을 통하여 세월을 아낀다는 의미를 깨닫고, 우리 모두 세월을 아끼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본문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II. 본론
1. 첫째, 지혜 있는 자는 세월을 아끼면서 살아갑니다.
15~16절,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성경에서 지혜 있는 자는 어떤 사람을 말할까요? 두 가지로 살펴 보겠습니다. 하나는 에베소서에서 바울이 설명한 지혜로운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성경에 나오는 지혜서에서 설명한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먼저 바울은 에베소서 앞 부분에서 지혜 있는 자가 어떤 사람인지 말했습니다. 엡 1:17~1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지혜와 계시의 영을 받은 자는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 있는 자입니다. 이런 사람은 첫째, 하나님을 아는 사람입니다. 둘째, 마음의 눈이 밝아진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업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크심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에베소서에서 말하는 지혜 있는 자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아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철저히 하나님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성경에 나오는 지혜서에서 살펴 보겠습니다. 성경 66권 중, 지혜서, 혹은 지혜 문학은 욥기, 잠언, 전도서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 세 권의 책에서 “지혜”가 무엇인지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욥 28:28, “또 사람에게 말씀하셨도다 보라 주를 경외함이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니라” 잠 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전 12: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어떤 공통점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같은 표현이 나옵니다. 21절,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그러니까, 지혜 있는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살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분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 17~18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17~18절,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사도 바울이 술에 취하는 것과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는 것을 대조해서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둘 사이에는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습니다.
공통점은 모두 원래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술 취한 사람은 원래부터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 술을 많이 마셨기 때문에 술에 취한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도 원래부터 성령으로 충만한 것이 아니라 성령님을 많이 모셨기 때문에 성령으로 충만케 된 것입니다.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은 요일별로 이러한 핑계를 대면서 술을 마신다고 합니다. 월요일: 원래 마시는 날이므로, 화요일: 화끈하게 마시는 날이므로, 수요일: 수시로 마시는 날이므로, 목요일: 목이 말라 마시는 날이므로, 금요일: 금방 마시고 또 마시는 날이므로, 토요일: 토가 나오도록 마시는 날이므로 (주말이니까), 일요일: 일찍부터 마시는 날이므로 (쉬는 날이니까) 만일 그리스도인이 이런 열정으로 성령 충만을 위해 기도하고 노력한다면, 우리 중 그 누구도 성령 충만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술 취한 것과 성령으로 충만한 것의 차이점은 술은 사람을 무질서하게 만들고 성령님은 사람을 질서있게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술에 취한 사람은 술이 그를 지배하기 때문에 말이 무질서해 지고 행동이 무질서해 집니다. 생각없이 아무 말이나 하고 주의없이 아무 행동이나 하는 것입니다. 만약 술 취한 사람의 말과 행동을 비디오로 녹화해 놓고 나중에 보여주면 그 사람은 자신의 말과 행동을 차마 보지 못할 것입니다. 반대로,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성령님께서 그를 지배하시기 때문에 말과 행동에 은혜와 진리가 있게 됩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예수님의 영이시고, 예수님은 은혜와 진리로 충만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은혜를 베풀고, 진리를 말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세월을 아끼는 사람은 어떠한 삶을 살까요? 은혜를 베풀고, 진리를 말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세월을 아끼면서 사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 은혜와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2. 둘째,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기 위해 해야 할 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을 수 있을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늘 이 시간에는 우리의 선입견을 조금 내려 놓고, 성경이 말씀하는 것에 귀를 기울여 보면 좋겠습니다.
19~20절,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네 가지가 나옵니다. 관계, 찬송, 감사, 복종입니다. 오늘은 첫 세 가지를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관계, 찬송, 감사입니다.
1) 먼저, 관계입니다.
19절,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여기서 중요한 말씀은 “서로 화답하며”입니다. 조금 의외라고 생각하실 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성령 충만을 위해서 관계가 첫 번째로 중요하다고 말씀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사실 저는 관계가 성령 충만의 요소라기 보다 성령 충만을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생각을 가집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성령 충만을 방해하는 요소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은 서로 다른 의미가 아니라 예배 시간에 사용하는 찬송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예배 시간에 다른 성도들과 함께 예배하는데 걸림이 없도록 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 5:23~24,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간다”는 것은 예배를 드리려 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생각하면 예배를 드리기 전에 먼저 가서 그 형제와 화목한 다음에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할까요? 그 이유는 원망들을 만한 일이 생각하면, 예배를 드려도 은혜를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원망하는 성도와 원망들을 만한 일을 한 사람이 함께 모여 예배드리면서,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이 되겠습니까? 그럴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상태로는 예배를 드려도 은혜가 안 되고, 은혜가 되지 않으면, 성령 충만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령 충만을 위해서 우리가 최소한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웃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은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그러한 일을 했다면, 그 이웃에게 먼저 가서 그들과 화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조금 다른 차원에서 생각해 봤습니다. 예배를 드리러 가는 것과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 천국에 가는 것은 모두 하나님을 뵈러 가는 것입니다. 예배 드리기 전에 형제와 먼저 화목하고 하나님을 만나야 하듯이,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화목하지 못한 형제와 먼저 화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세월을 아끼는 사람은 어떠한 삶을 살까요? 최소한 이웃에게 원망들을 일을 하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그러한 일을 했다면, 먼저 가서 그들과 화목하도록 노력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월을 아끼면서 사는 사람의 모습이고, 성령 충만을 갈망하는 사람의 자세이고, 하나님을 뵐 준비를 하는 사람의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2) 둘째, 찬송입니다.
19절,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성령 충만을 받는 두 번째 방법은 주님께 노래하며 찬송하는 것입니다. 찬송을 많이 부르고 찬송을 많이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성령님께서 그 찬송 속에 임하실 것입니다.
구약의 인물 중에 다윗만큼 찬송을 많이 부른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사무엘이 어린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을 때, 다윗은 성령으로 충만해졌습니다. 하지만 당시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사울은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했습니다. 그 때, 사울의 신하들이 악기 연주를 잘 하던 다윗을 불러와서 수금을 연주하게 했더니, 사울이 낫고 악령도 떠나갔습니다. 그 내용을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삼상 16:13~14, 23,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더라”
여호와의 영에 크게 감동된 다윗이 수금으로 무엇을 연주했겠습니까? 십중팔구, 찬송을 연주했을 것입니다. 찬송을 연주했을 때, 사울을 괴롭히던 악령이 떠나갔던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하다 보면, 의심이 생기기도 하고, 기도가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찬송을 부르시기 바랍니다. 찬송을 부를 때, 하나님의 영이 임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이 임하실 때, 우리의 신앙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바울은 찬송의 위력을 직접 체험한 바가 있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 갇혔을 때의 일입니다. 행 16:25~26,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찬송했을 때, 큰 지진이 일어났고, 옥문이 다 열렸고, 매인 것이 모두 벗어졌습니다. 일차적으로 이 일은 문자적으로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을 영적으로 해석해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찬송할 때, 영적으로 우리를 매고 있는 모든 것들이 다 열리고 벗어질 줄 믿습니다.
여러분의 18번 찬송은 무엇입니까? 아마도 그 때 그 때, 상황에 따라서 다를 것입니다. 저도 상황에 따라 제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찬송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늘 나라로 가게 될 때에 자녀들에게 불러달라고 하거나 틀어 달라고 할 찬송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존 스토트 목사님은 소천하실 때, 헨델의 메시야를 들려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특히 메시야 오라토리오 중에서 “내 주님은 살아 계셔” (I know that my Redeemer lives)를 들으면서 하늘나라로 가셨다고 합니다. 이 곳은 우리가 오늘 마지막으로 부를 찬송입니다. 타이타닉 영화를 보면, 실내악 연주자들이 죽기 전에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Nearer, My God, to Thee)를 연주했다고 합니다. 실제 생존자의 증언을 통해서도, 당시 바이올린 연주자였던 월리스 하틀리(Wallace Hartley)와 그의 악단 8명은 배가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 마지막 순간까지 음악을 멈추지 않았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도 우리가 이 땅에서 마지막 숨을 쉬는 순간에 듣고 싶은 찬송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상상을 해 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듣는 찬송은 주위 사람이 불러주는 것이거나 오디오로 녹음된 음악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천국에서 눈을 뜨기 전 듣는 음악은 천군천사들이 우리를 환영하면서 불러주는 라이브 찬송이 될 것입니다. 똑 같은 곡이라도 이 세상을 떠날 때 듣는 음악과 저 천국에 입성할 때 듣는 음악의 수준 차이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 살 동안, 이런 기도를 드리면 좋겠습니다. ‘주님, 이 세상에서 듣는 마지막 찬송과 저 천국에서 듣는 첫 찬송이 같은 음악이 되게 하옵소서.’ 무엇이 세월을 아끼는 사람의 삶일까요? 그것은 이 땅에서 주님을 찬송하고 그 찬송의 은혜 속에서 성령 충만한 삶을 사는 것일 것입니다. 이 은혜와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축원드립니다.
3) 마지막으로, 감사입니다.
20절,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감사하는 마음에 악령은 들어오지 못합니다. 자기 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설령 들어왔다가도 우리가 감사하면 악령이 민망해서 나가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적인 감사는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원칙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범사에, 에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는 “범사에” 하는 것입니다. 범사란 모든 일을 의미합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건강할 때나 아플 때나 성공할 때나 실패할 때나,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슬플 때도 아플 때도 실패할 때도 감사할 수 있을까요? 그 이유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입니다. 우리는 슬픔과 아픔과 실패를 모르는 자도 아니고, 그것들을 즐기는 자도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줄을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샘 크랩트리(Sam Crabtree)목사님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선한 일을 하시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감사하지 않아도 되는 때라는 것은 없다. 하나님은 그분을 사랑하는 자를 위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므로, 우리가 ‘모든 것에 대해서’(for everything)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마땅하다.” 탈무드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은 항상 배우는 사람이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자기를 이기는 사람이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모든 일에 감사하는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한경직 목사님의 말씀을 읽고 말씀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이 글은 한경직 목사님이 인생을 회고하면서 남긴 말씀입니다.
‘젊어서는 미래에 살고 중년에는 현재에 살고 노년에는 과거에 산다’는 말이 있다. 나이가 많아지니 과연 과거를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더구나 살날이 별로 남지 않은 존재라는 것을 기억할 때면 자주 지나온 인생을 돌아보게 된다. 나의 인생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떠오르는 말이 ‘감사’였다. / 내 일생을 돌아보며 무슨 말로 감사하기 전에 우선 내가 마음속으로 늘 부르는 찬송가 한 절을 소개하고 싶다. “만 입이 내게 있으면 그 입 다 가지고 내 구주 주신 은총을 늘 찬송하겠네.” 다 아는 찬송이겠지만, 내 일생을 찬송가 한 절로 표현한다면 이 찬송일 것이다. 혹 또 다른 찬송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다음은 이 찬송을 말할 수밖에 없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나 같은 죄인을 살려 주신 주님의 은혜가 생각할수록 놀랍다. 잃었던 생명을 다시 찾고 광명을 얻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지 모른다.
III.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세월을 아끼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성령 충만을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웃에게 원망 들을 말과 행동을 하지 않고, 찬송을 많이 듣고 부르며, 범사에 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관계, 찬송, 감사. 이 세 가지를 꼭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이번 한 주 간 살아가시면서, 이웃과 화목하고, 주님을 찬송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범사에 감사하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