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한 MBC, 막장종결 방송으로 거듭나
전임 사장 둘이 여야의 도지사 후보가 되어 맞장 뜰 수 있는 MBC의 저력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 대단한 인적자원이 공영방송 MBC의 힘이 아니겠는가. 강원도지사 보궐 선거를 앞두고 최문순 전 사장과 엄기영 전 사장의 진검승부가 뜨겁다. 두 사람은 목숨을 걸었다는데 정작 보는 우리는 왜 조소를 보낼까. 그렇게 별로 가치 없는 고민에 빠져 있던 나는 그 해답이 될지도 모를 만한 하나의 단서를 ‘듣보잡’ 인터넷 언론 보도에서 찾아낼 수 있었다.
그 많은 막장드라마에 이어, 신입 아나운서 뽑는 오디션 장면까지 방송으로 내보내 희화화하는 것까지는 뭐 그렇다 치자. 게임방 전원을 차단한 뒤 화를 내는 사람들의 화면을 내보내면서 게임을 많이 하면 폭력성을 갖게 된다고 마치 특종이나 잡은 것처럼 설레발을 떨던 뉴스 리포터가 있는가 하면, 급기야는 출연자와 한 시간도 안 되는 방송진행 끝에 양극성 장애진단을 내리는 MC가 나타났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막장 MBC의 진수를 보여준 압권은 최근 방송된 MBC 드라마넷 한풀이 토크쇼 ‘미인도’였다. 출연배우가 대마초 흡연을 헌법상의 권리로 보장해달라며 간통죄 위헌 투쟁을 벌였던 옥소리와 의기투합해 세상의 간담을 서늘케 한 인권배우 김부선이었다.
이날 출연한 김부선은 생후 4개월 갓난 아기였던 딸을 친부에게 15개월 동안 뺏겼던 경험을 털어놓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선천성 심장병이 있었다는 김부선은 산모가 위험하다는 의사의 말에도 불구하고 딸 미소를 낳았다고 했다. 자신의 생명이 위험하더라도 아이를 포기할 수 없었다는 김부선은 하지만 “어렵게 낳은 딸을 낳자마자 생이별을 해야 했다”고 한다.
“미소의 친할머니가 아이를 보고 싶어 한다는 말에 맡겼는데 그 후 15개월 동안 아이를 돌려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녀는 “15개월 후 만난 딸이 엄마인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을 때 고통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젊은 시절 자신의 과오 때문에 법적으로도 불리한 위치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출연자는 자신의 불우했던 처지를 과대 포장하고 진행자는 그것을 침소봉대하여 여성 시청자들의 모성애와 눈물샘을 자극함으로써 김부선이라는 작자의 과거지사는 두루뭉술하게 포장되면서 가엾은 피해자로 바뀌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방송에서 얼마든지 말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치자.
그러나 그 다음이 가관이었다. 이날 ‘미인도’의 MC를 맡은 김지은은 그런 김부선을 두고 “출산고통과 딸 뺏긴 경험이 작용한 ‘양극성 장애’인 듯하다”고 마치 정신과 의사의 진단과 같은 말을 했으며, 3월 3일자 인터넷 언론 ‘뉴스엔’의 권수빈 기자는 이를 두고 아예 “배우 김부선이 양극성 장애를 겪고 있는 것 같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대서특필했다.
보도에 따르면 “심리학에 조예가 깊다는 MC 김지은은 김부선이 양극성 장애, 즉 조울증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김지은은 또 “사람이 사랑을 끝낼 때는 마음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나 불행히도 김부선은 인생에서 딸 미소와, 미소의 친부 두 사람과 헤어질 때 마음의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상태였다”고 분석했다고 한다.
기사에 따르면 MC 김지은이 정신과 의사 빙의상태에서 엇나간 외도는 방송내내 계속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부선이 “미소의 친부가 이혼남인 줄 알았지만 가정이 있는 재혼남이었다”고 하자 김지은은 “그를 향했던 사랑이 급격히 증오로 바뀌게 된 것이라며 사랑 아니면 증오, 극과 극을 오고 가게 된 김부선의 감정 변화는 조울증으로 흘러가고 말았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결정적으로 “심장병으로 인해 출산 시 목숨의 위협까지 받으며 낳았던 딸을 갓난아기 때 친조모에게 뺏겨 15개월 간 생이별을 했던 경험이 김부선의 양극성 장애를 부추겼다”고 분석하는 최고의 정신과 의사가 아니고는 감히 내릴 수 없는 장애진단을 내렸을 뿐 아니라, 처방전까지 발급했다.
김지은은 “이러한 양극성 장애는 쉽게 고칠 수 없으니 그 점을 받아들이고 사는 수밖에 없다”고 담담히 밝혔다. 오히려 그 동안 겪었던 모든 감정을 배우로서 다양하게 펼칠 수 있을 거라 충고하며 김부선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기까지 했다.
이날 MBC의 ‘미인도’를 통해 보여준 김지은이라는 MC의 최고 전문가급 진단과 처방에다 이를 훌륭하게 채집하여 기사화함으로써 피해자 김부선에 대한 연민과 MC 김지은의 탁월한 통섭학적 재능을 생생하게 전달해준 ‘뉴스엔’ 권수빈 기자의 특종생산 능력까지 3종의 신기가 조화롭게 버무려진 ‘듣보잡 뉴스’였다.
거대 상업방송 MBC와 듣보잡 뉴스엔의 매력적인 공생관계를 통해 우리는 최근의 MBC가 참으로 대단한 공중파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리포터나 MC가 되려면 최소한 심리학자나 경우에 따라서는 최고의 정신과 의사에 버금가는 전문지식을 가지고, 거기에 투철한 실험정신으로 무장한 채 시청률을 향해 일로매진하는 직업정신까지 보이는 종사자들에도 불구하고 왜 MBC는 지속적으로 막장방송의 종결자가 되어가고 있는지 참으로 요상한 일이다. ‘뉴스엔’ 권수빈 기자가 아니었다면 도저히 찾아낼 수 없는 특종이 아닐까 싶었다.
김부선이 정말 양극성 장애인지 조울증인지 정신과 의사가 아닌 나는 모르겠지만 그 원인이 딸을 빼앗긴 것이라는 돌팔이성 진단과 그로부터 나온 처방에는 공감하기 어렵다. 조울증과 양극성 장애의 더 큰 원인은 대마초 상습복용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친 아버지와 할머니가 대마초에 찌든 에미로부터 딸을 데려간 것을 어린 애의 건강한 삶을 위한 자구책으로 보지 않고 무슨 피랍에 준하는 ‘빼앗긴 것’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그런 점에서 MBC와 뉴스엔은 역시 문제 많은 언론이다.
찌라시성 인터넷언론 뉴스엔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대한민국 최고의 공영방송연하면서 주제파악을 못하는 MBC로서는 참으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그래서 엄씨와 최씨의 ‘두분토론’이 웃기지도 못할 코메디라는 얘기다. 지금 전 사장 둘이 강원도를 살리겠다고 주접떨게 아니라 MBC 살리기 운동을 해도 시원찮을 판인 것이다.
첫댓글 대마초 피는 엄마로부터 애를 격리시킨 것을 빼앗은 것이라고 하면 좀 그렇네요...
나 같아도 딸과 격리시켰겠네요. 그런데 그걸 비호하느라 참 애쓰는 방송, 의사면허도 없는 주제에 무슨 조울증까지는 그렇다쳐도 양극성 장애 운운하는 MC 참 문제입니다. 개비씨라 그런가 모르겠지만 그나마 케이블 TV라서 다행이지 공중파였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