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장 십자가의 그림자
�� 내 용 요 약
제 26장은 그리스도의 생애 중 마지막 부분이 시작됩니다.
죽음 = 사람에겐 두려움, 그리스도에게는 생의 절정이기에 상세하게 기록했습니다.
26장은 수난을 준비하는 예수님의 모습과 수난 당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두 가지 모습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그리스도를 죽이려는 유대인의 음모, 가룟유다의 배신, 예수님의 유월절 만찬의 모습을 기록했습니다.
�� 생각할 점
6~13절 한 여인이 향유 한 옥합을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것은 예수님께 대한 사랑과 존경의 표시였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입은 자는 어느 것 하나 예수님께 드리는 것이 아깝지 않을 것입니다. - 받은 은혜가 클수록..
이 여인의 행동은 예수님을 [기름부음 받은 자], 곧 그리스도로 고백한 신앙의 표시입니다.
8절 [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제자들이 못 마땅하게 생각합니다. - 요 12:4 유다가 이러한 불만의 주동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허비하느냐] = 생산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없는 완전한 낭비(소모), 값진 것을 무용지물로 모두 소모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리고서 많은 돈을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데 썼으면 좋았겠다고 말합니다. - 내 것도 아닌데.
그러나 예수님은 일시적인 구제보다는 영원한 구원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여인의 아름다운 행동을 그리스도의 장례를 준비하는 십자가 사건으로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이 여인의 행동은 사랑 믿음 용기 자기희생 등 신앙적 자질을 보여줍니다.
14~16절 가룟유다의 배신은 향유를 부은 여인과는 대조적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 중에는 의인과 악인이 섞여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 가라지 비유(원수가 밤에 뿌림).
26~30절 예수님께서 제정한 성만찬의 의미는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을 기억하고 그 은혜를 감사하는 것에 있습니다.
성만찬의 떡은 그리스도의 살을 의미합니다.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를 의미합니다. - 예수님의 살 찢김과 피 흘림 기념함.
성찬식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의 수단으로 주신 제도입니다.
은혜의 수단 = [말씀, 기도, 세례, 성찬]입니다.
이 은혜의 수단을 하나의 형식이나 행사로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가치 없게 만드는 경박한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이 은혜를 모르면 감사가 없고, 구원 받은 믿음이 없기에 그에게 하나님나라는 없습니다.
이 예식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 전까지 계속해서 시행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의 의미를 깊이 새기는 기회를 많이 가져야 합니다.
36~46절 예수님의 겟세마네의 기도에는 인성적 기도와 신성적 기도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극도의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옮겨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 잔] = 예수님께서 저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과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실 일을 말합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께서 성부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고 외면당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잔을 할 수만 있으면 내게서 옮겨 달라]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 이것을 [인성적 기도]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인성적 기도 후에, 다시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는 기도를 드립니다.
이것은 육신의 고통을 극복하신 신성적인 모습을 보여 주는 기도입니다.
우리들도 가끔 이런 기도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입장과 많이 다른 모습들일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리려는 기도]는 좋은 기도입니다. 하지만 행하지도 않으면서 남용하게 되면 신용을 잃고 응답도 없는 잘못된 기도가 됩니다.
기도한 만큼, 기도드린 내용대로 행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리는 삶이되시기를 축원합니다.
62~63절 예수님께서 산헤드린 공회의 심문에서 침묵하셨던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1) 예수님은 왕적인 침묵을 하신 것입니다.
왕으로서 거짓 증인들의 하찮은 거짓 증거에 대해 응답하지 않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은 제사장적인 침묵을 하신 것입니다.
유월절의 어린 양처럼 털 깎는 자 앞의 양처럼 잠잠하신 것입니다.
3) 예수님은 선지자적인 침묵을 하신 것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외치기도 하고, 침묵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침묵은 참으로 능력 있는 대답이었습니다.
그러나 63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냐?]라는 질문에는 침묵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질문에 64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느니라]고 절대로 분명해야 했던 것입니다.
저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도 침묵할 때와 대답할 때를 구별하는 지혜를 받아 분명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능력으로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