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내용은 2012년에 제 1차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 칼라파타르에 다녀온 기행문입니다. 모아보는 중인데요... 그 다음것을 찾는대로 올리겠습니다.
인솔자; 홍재인 대장
2012년3월 23일~4월 6일 순서 1. 에베레스트를 향하여 2. 3월 23일 : 철학자 가이드 지반과 덴지를 만나다 3. 3월 24일 : 화창한 봄날의 소풍같은 트레킹시작 4. 3월 25일 : 나귀, 좁키오, 포터와 트레킹족이 하나 되어 가는 길 5. 3월 26일 : 남체바잘에서의 여유 6. 3월 27일 : 상행 길에서 만난 패잔병같은 하행 길 사람들을 보며... 7. 3월 28일 : 고소와의 싸움 8. 3월 29일 : 히말라야를 산책하다 9. 3월 30일 : 힘들 때에 서로 격려하기 10. 3월 31일 :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굽어보다 11. 4월 1일 : 드디어 칼라파타르 정상 - 5545미터 12. 4월 2일 : 올라 갈 때는 고소와의 싸움, 내려 올 때는 체력과의 싸움 13. 4월 3일 : 내려오는 것도 힘들어! 14. 4월 4일 : 한쿡 사람들은 역시 한쿡 음식! 15. 4월 5일 : 길에 드러누운 소를 보며... 16. 4월 6일 : 여행을 마치며 1. 에베레스트를 향하여 2011년 여름 홍재인 대장은 이듬해에 있을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원정에 도전할 전사를 모집한다. 매우 우수하게 산행을 잘 하시는 많은 대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 관계상 바쁘신 대원들을 대신하여 시간이 허락되는 오드리, 새벽달, 황진이, 헬렌, 대청봉과 햇살부부 도전장을 내민다. 2011년 봄에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 12일 등반을 마치고 돌아온 대청봉과 햇살은 당시 현지 가이드가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 (ABC, 4200 미터)등반은 이제 초등학교를 졸업하신 것이고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EBC, 5300미터)를 다녀오셔야 고등학교를 졸업하시는 겁니다.” 했던 말이 맴돌아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등정도 매우 힘들었다는 말을 끝내 하지 못한 채 EBC 원정에 합류하기로 한다. 2. 3월 23일(금) : 철학자 가이드 지반과 엄홍길원정대의 주방을 도왔던 덴지를 만나다 일행 7명은 21일 시애틀을 출발하여 대 장정에 오른다. 인천공항호텔에서 하룻밤을 묵고 아침 일찍 네팔로 가는 대한항공에서는 영화 보느라 시간가는 줄도 모른다. 오후2시 카트만두 공항에 도착하여 70송이 꽃으로 된 환영목걸이를 하나씩 목에 걸고 네팔의 공기를 마셔본다. 어수선한 시골 장터같은 공항 주차장을 빠져나와 로얄싱기호텔로 이동. 홍대장님 선배가 운영하는 '정원' 한식집에 들러 형수가 해 주시는 삼겹살을 맛있게 먹다. 이것이 14일간의 산행에서 공식적인 첫 한식이자 마지막 한식이었다. 가이드 지반과 덴지를 소개받다. 첫날 카트만두 시내를 두루 걸어 다니다. 여느 관광객 같으면 차를 타지 않고 걸어 다니는 것에 대해 투정했을 만도 하지만, 우리 팀은 등산을 온 터라 군말없이 잘도 걸어 따라다닌다. 지반은 40세인데 전혀 나이가 들어 보이지 않는 외모를 갖고 있다. 20년 전에 한국에 와서 일해서 한국말이 아주 유창하다. 그의 종교적 신념을 들어보면 철학자 지반이라고 해야 어울릴 것 같다. 채식주의자이며 1주 한번 씩 매주 수요일에 금식을 하는데 집에서는 온전한 금식을 하지만 트레킹을 할 때는 체력관리상 오전만 금식을 한다고 한다. 그는 한국인이 주었다는 사진기를 목에 걸고 함께 떠났는데... 사진찍는 연습을 하는 것 같다. 없어질 풍경이나 작품사진을 찍으면서 그것을 팔아서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고 싶다고 말한다. 여행을 마치고 우리는 지반을 격려하는 뜻으로 지반이 찍은 사진을 CD로 만들어 받고는 각자 적지않은 값을 지불했다. 지반의 이름을 우리는 자주 잊어버려 자기 맘대로 부르기도 했는데 어떤 때는 자반이라고 부르는 소리도 들렸다. 그러나 그는 전혀 틀렸다는 내색도 없이 싹싹하게 일했으며 늘 출발 할 때는 “이제, 살~살~ 가시지요.~~” 라고 말한다. 존대말을 참 잘 배워서 우리를 편안하게 했다. 버스를 타고 가며 홍대장님이 “네팔에도 예쁜 여자 많네~” 말을 마치자 마자 지반이 “두서넛 데리고 가시지요!” 라고 받아치며 말해 우리를 모두 웃게 만들기도 했다. 덴지는 엄홍길 대장과 14좌를 함께한 가이드인데 그때는 주방팀으로 식사준비를 맡았단다. 그래서 한국음식에 대해서도 잘 알고, 말수는 적지만 점잖하고 믿음직한 가이드이다. 트레킹 내내 맨 뒤에서 힘들어 하는 사람을 늘 도와주었다. 덴지네 생활비는 두 아이들과 함께 네 식구가 한 달에 200불, 일 년이면 2000불이라고 한다. 하기는 네팔의 국민소득이 평균 450불이니까. 덴지는 있는 듯 없는 듯 도와주어서 우리 일행을 든든하게 했으며 특히 오드리님의 신뢰를 독차지 했다. 산행끝자락에서 닭고기 백숙 요리솜씨를 발휘했는데... 재료도 없이 마늘만 넣고도 훌륭한 맛을 내주었다. 3월 24일(토) : 화창한 봄날의 소풍 같은 트레킹 출발 오전에 국내선 항공으로 에베레스트 트레킹을 시작할 수 있는 루크라 (2800미터) 를 향하여 출발. 국제선과 국내선 비행장이 함께 있는 카트만두 공항에서의 비행기 표는 잃어버리면 끝이다. 왜냐하면 비행기 표에는 이름도 씌여 있지 않고 지정된 좌석도 없어서 표가 없으면 태워줄 수가 없다. 그래도 국내선은 여러 항공사가 있었는데 우리는 TARA AIR. 대청봉왈 '타라' 했으니 탈수밖에 없다고. 지난해에 왔을때에는 공항에 전광판이 없이 소리로 불러서 탔는데, 올해는 전광판을 달아놓았다. 그러나 새벽 6시부터 하루 종일 운행하는 비행편 알림이 계속나오니 약간 정신이 없다. 시간이 지난것은 안 나와도 되련만... 오늘 하루 종일의 운행표가 계속 나오고 있다. 짐을 부치는데 저울이 옛날 목욕탕의 몸무게 재는 저울같이 생겼다. 아날로그 저울로 눈금이 10미터 뒤에서도 보일정도로 크다. 짐이란 잃어버리지만 않고 가면 되니까. 왠지 이탈리아보다 안전한 것 같아 안심이 된다. 짐을 붙인 후 한쪽에서 담소를 나누는데 직원인듯한 사람이 쫓아온다. 짐무게가 초과되어 돈을 더 내야한단다. 1600루피를 더 물었다. 검색대를 통과한 후 대합실로 간다. 많은 사람이 있다. 비행기표를 쥔 손을 보더니 초록색깔을 보고는 불러 세운다. 손으로 가리키는 곳으로 나가니 버스가 기다린다. 이미 몇 명의 외국인들이 타고 있다. 그러나 누군가 아직 오지 않은 모양이다. 한참을 기다리니 버스 기사가 그제야 오더니 곧 출발한다. ‘아하~ 버스기사를 기다렸구나.’ 비행장으로 가니 이번에는 비행기가 없다. 버스에서 내리지 말고 기다리란다. 한 5분쯤 되었을까 소형비행기가 오더니 손님이 내리기 시작하고 뒤이어 짐을 내린다. 그 다음 바로 우리들이 탄다. 타자마자 출발한다. 루크라로 가는 소형항공기의 정원은 18명, 귀를 막는 솜과 사탕을 나눠주는 승무원은 네팔에서는 보기 드문 키도크고 얼굴도 예쁜 미인이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네팔은 산마다 집이요, 밭이다. 자기 밭에 농사를 지으려 해도 산을 오르내리기를 등산하는 심정으로 해야 할 것 같다. 우리가 탄 비행기는 약 40분이 지나자 활주로에 앉는 듯하더니 이내 쏜살같이 꼬부라진다. 휴~~ 하마터면 산을 들이받을 뻔^^ 익숙한 솜씨로 재빠르게 비행기를 꺾는 기장에게 갈채를 보낸다. 루크라 비행장의 활주로가 세계에서 가장 짧은 활주로라고 들었던 것 같다. 작은 비행장에서 서로 날개가 닿을 듯 말듯 움직인다. 나중에 들어보니 이렇게 비행기가 연착 안하고 날씨가 좋아서 제 시간에 내리는 것은 여기서는 드문 일이라고 한다. 어떤 때에는 날씨가 안 좋아서 힘들여 하산을 하고도 비행편이 없어서 꽤죄죄한 모습으로 하릴없이 며칠을 귀가하지 못한채로 산장에서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단다. 제발 우리들이 산행을 마치고 나서 돌아올 때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지금은 카투만두에서 루크라 공항으로 비행기타고 이동하지만 이 공항이 생기기 전에는 카투만드에서 루크라까지 1주일을 걸어왔다고 한다. 도착하니 왼쪽으로는 놋지하빠산과 오른쪽으로는 꽁대산이 우리를 반긴다. 바로 인접한 산장에 들어가 아침 티를 마신다. 부 가이드 덴지는 무슨 티를 마시겠느냐고 사람들에게 일일이 물어본다. 티가 공짜가 아닌데... 마치 롯지의 판촉원이라도 된 듯 하다. 이것은 시간이 있으면, 또 건수가 있으면 자주 티를 마시는 네팔 사람들의 티 문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된다. 이후에도 롯지에 도착만 하면 식사 주문 전에 무슨 티를 하겠느냐고 묻는 덴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고, 결코 이 tea는 공짜가 아니었다. 우리는 식사 후에 커피등을 마시는 습관으로 덴지의 주문을 적당히 거절하기도 했다. 미리 루크라에서 대기하고 있던 포터들과 인사를 나눈다. 일곱 대원의 짐을 일곱 명의 포터가 나른다. 우리는 가뿐하게 하루 것만 각자 베낭에 지고 가면 된다. 차를 마시도록 권유한 것도 사실은 2800미터에서의 고산 적응 시간이 필요해서 인줄 나중에서야 알았다. ‘왜 빨리 안가나~~’ 했는데 ... 기본적으로 한 시간 정도는 쉬었다 가는 것이 맞는단다. 이제부터는 적응! 적응! 뿐이다. 이제 트레킹 첫날. 첫걸음을 뗀다. 바로 내리막이다. 200미터 고도를 내려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올라갈 길이 먼데~~ 내려가다니... ’ 마음만 바쁘다. 지반은 자물쇠 가게에서 대장으로 하여금 짐 자물쇠를 사도록 한다. 하루 종일 가방을 메고 가는 것이라 자물쇠가 필요 없을 듯한데... 포터들이 불필요한 오해를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함인것 같다. 포터에게 유혹의 시간을 잠시라도 갖지 못하도록 하려는 배려로 이해한다. 마침 상점에 작은 자물쇠가 있어서 모두 구입한다. 새로운 곳에 오니 볼 것이 많다. 짐을 실은 나귀와 짐을 머리에 진 사람들. 앞장선 나귀 서너 마리는 이마에 수놓은 훈장도 달았다. 대장인가 보다... 어찌되었든지 나귀의 임원급인가 보다. 집 앞에서 머리 감는 아가씨와 물을 부어주는 언니. 엄마를 도와 담요 빨래를 하는 아이들... 네팔의 꽃 랄리 부르스, 목련들. 꽃봉오리 맺은 나무들. 짐을 지고 가는 많은 사람들. 트레킹을 온 여러 나라 사람들의 언어가 서로 섞여 들린다. 한 시간 반 쯤 왔을까 한국말이 눈에 들어온다. 네팔 토토 하얀 병원. 들어가 보니 울산에서 자원하여 오신 김월숙 간호사가 반긴다. 의사와 같이 왔는데 의사는 2주 만에 돌아가고 김 간호사 혼자서 네팔 소년 두 명과 함께 봉사하고 있다고 했다. 은퇴한 후에 자원 봉사하러 오셨다고 한다. 오늘은 휴무일인데 배달올 약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먼저 대청봉이 도네이션을 하고 우리랑 같이 산에 가자고 했더니 금방 준비하고 나서신다. 산을 좋아해서 4개월을 약정하고 오셨는데 한 달반이 되었단다. 몬조까지만 가 보셨다고 한다. 눈앞에 보이는 마을을 가리키며 말씀하신다. 저곳에 가려면 3시간이고요, 또 저곳은 4시간 걸려요. 바로 보이는 앞마을인데도 산길은 그렇게 시간을 필요로 하나보다. 우리의 오늘 목표는 몬조 바로 전 팍딩이다. 여행사에서 비행기 타기 전에 점심으로 챙겨준 김밥을 같이 드신 후 김 간호사님은 다른 마을로 가시기로 해서 서로 인사 나누고 헤어졌다. 오늘은 화창한 봄날의 소풍같은 길이었다. // |
첫댓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너무나 훌륭한 기행문을 읽노라니 눈앞에 그림이 보이네요.
다음편도 기대가 됩니다!
함께 그 자리에 있는듯한 마음이네요..부러우면 지는거라해서 즐기려합니다.ㅎㅎㅎ
햇살님의 기행문을 읽노라니, '네팔에 가 볼까?' 하는 마음이 드네요. ㅎㅎ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다음 편이 기다려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