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 박성우
끈적끈적한 햇살이
어머니 등에 다닥다닥 붙어
물엿인 듯 땀을 고아내고 있었어요
막둥이인 내가 다니는 대학의
청소부인 어머니는 일요일이었던 그날
미륵산에 놀러 가신다며 도시락을 싸셨는데
웬일인지 인문대 앞 덩굴장미 화단에 접혀 있었어요
가시에 찔린 애벌레처럼 꿈틀꿈틀
엉덩이 들썩이며 잡풀을 뽑고 있었어요
앞으로 고꾸라질 것 같은 어머니
지탱시키려는 듯
호미는 중심을 분주히 옮기고 있었어요
날카로운 호밋날이
코옥콕 내 정수리를 파먹었어요
어머니, 미륵산에서 하루종일 뭐허고 놀았습디요
뭐허고 놀긴 이눔아, 수박이랑 깨먹고 오지게 놀았지
시집 [거미], 창비 2002년
№######################№######################
왕언니 / 박성우
그녀의 다른 이름은 왕언니다 나이가 제일 많아 왕언니고 일을 제일 오래해 왕언니다
따져보면 하찮은 일이나, 결에 있는 사람들은 푼돈을 모아 놀러 갈 때도 술 한잔 받아 마실 때도
밥 한끼 사먹을 때도 왕언니 왕언니 우리 왕언이, 왕언니인 그녀부터 챙긴다
그녀는 원래 천구백삼십칠년 소띠인데 천구백사십이면 말띠로 호적이 올려졌다 때문에
그녀는 정년을 넘기고도 일터에서 오년이나 더 소처럼 일하고 말처럼 뛸 수 있었다
그녀는 그걸 늘 고마워했다 호적이 오년이나 늦에 올려진 것을 두고두고 감사해했다
왕언니, 막둥이 아들이 시인이 되었담서? 하여튼 아들내미 시집은
내가 거저먹기로 내줄팅게 걱정 말어, 라고 말한 사람은 인문관 복사집 아저씨였다
아저씨까지도 왕언니로 부르다니
내가 대학원까지 마치고 나온 대학의 청소노동자였던 왕언니는 울 어매의 또다른 이름이다
일흔한살까지 청소노동자로 일한 왕언니, 이 이름은 여전히 나를 가장 무기력하고 아프게 만드는 이름이지만
오늘은 나도 그렇게 불러본다 왕언니, 왕언니는 왕언니니까 아프지도 말고 늙지도 말고 쭈욱 왕언니로 살아 응? 왕언니!
[웃는 연습], 창비, 2017년
첫댓글 울 어머님 생각나서 마음이 저려옵니다
그 뙤악볕에 일하시던 울 엄니
물엿인 듯 땀을 고아내고
표현에 감동 입니다 ㅠㅠ
요즘 박성우 시인에 푹 빠져
시집을 몰아 보며 감탄을 합니다.
정말 대단한 시인입니다. ^^
어머님의 은혜를 너무 잘 표현했네요
엄~ 마~~~
네. 부끄럽게 만들죠. ㅜㅜ
저는 엄마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엄마 본지가 50년을 훌쩍 넘겻으니까요.
그래도 가끔씩 어렴풋이 그 얼굴이 떠 오릅니다.
사진으로 기억하는 그 모습을요~~
기억 속의 모습은 잊었을 지라도
가슴 깊이 간직한 그 모습은 영원하겠죠.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