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
여기는 1997 년과 2003 년 즈음에 다녀왔는데 호치민에서 싸일로 와 컨베이어류의 현지업체선정을 위해 며칠 있었지요. 당시에는 공산당조직이 움직이기 때문에 회사에 경리가 공산당원으로 계약 사항에 대해 최종 결정을 내려준다. usd300을 현금으로 주니 수월하게 하도계약을 마무리 할수 있었다. 현지 agent 사가 저녁을 내는데 호치민은 당시에는 항구에 있는 배위에 있는 선상음식점이 유명한데 그곳에서 식사가 그런대로 분위기도 좋고 음식도 좋았다. 그 옆에는 화물선 북한배 이름이 소나무 이어서 특이한 이름으로 기억에 남는다. 1997 당시에 호치민 시내는 길에 노점상들이 미군이 남기고간 시계, 지포라이터 만년필 등을 팔았는데 2003년경에는 몇 년 사이에 완전히 호텔도 많이 생기고 그런대로 새로운 상가도 많이 생기고 번화한 거리로 탈바꿈을 한 것 같다.
하노이는 하내( 즉 강안쪽) 이란 뜻이다. 아주 우리나라 1960 년대 비슷하게 낙후된 도시였는데 아마 지금은 현대화를 많이 이룬 것 같다. 베트남은 당시에 고속도로 건설할 자금이 거의 국제원조로 이루어져서 한국, 일본 그리고 IMF등의 자금으로 지원되고 있었다. 설비가 현지에 공급되면 우리 회사의 슈퍼바이저가 현장 장비 공급조립 하느라 다낭 같은데 한달 동안 나가 있는데 호텔보다 아주 저렴해서 현지에 방을 얻어서 있고 방청소와 빨래를 하기 위해 현지 아줌마를 쓰게되는데 ( 한달 월급으로 usd200 정도 비용 ) 가끔 잠자리 써비스도 한다고 함. 그런데 이게 나중에 귀국할 때 즈음 그동안 수고 했다고 usd100을 주면 떠나는 날에 그 남편이 와서 자기도 조금 달라고 한다 합니다, 할수없이 주고 만다고 함. 참 재미있는 나라 인 듯.
월남전을 통해 한국과 인연을 맺었지만 지금은 월남인들에게는 한국이 우리가 생각하는 미국처럼 선망의 대상인 듯. 지금도 대중교통수단이 오토바이 물결로 이어지고 있으며 아마 대부분 중국제 오토바이 인 듯. 그래도 지금은 한국의 많은 기업들이 중국 다음으로 현지 공장을 많이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노이에서 호치민 까지가 거의 2400 km 이어서 두곳은 아주 다른 나라이었는데 20 세기에나 와서 합쳐 진 것 같다. 2019 년 인구가 약 9000 만이고 1 인당 GNP 는 USD 4000 정도 이다. 한국에는 아시다시피 많은 벹트남 젊은 이들이 나와서 일을 하고 있으며 잘생긴 처녀들은 한국 노총각과 결혼도 많이 하는편이다.
호치민이 '아시아의 파리' 라는 별칭을 얻은 이유는 바로 '프랑스'때문이다.
아래의 사진은 모두 인터넷에서 가져온 것 입니다.
1859년 프랑스에 점령당해 코친차이나 (호치민과 인근 남부 베트남 지역)의 중심도시가 된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서울에 고궁이 자리 잡은 것처럼, 호치민에서는 고풍스러운 프랑스식 건물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호치민은 군(District)으로 도시가 나누어져 있는데, 중심가인 1군은 걸어서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작으며 이 고풍스러운 프랑스 건물을 둘러볼 수 있어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사이공 노트르담 대성당, 사이공 중앙 우체국, 사이공 오페라 하우스, 호치민 시 미술관 등, 프랑스의 옛 모습을 둘러볼 수 있는 호치민, 그 고풍스러운 매력을 즐길 수 있는 관광 스폿을 소개한다.
모래언덕과 일몰
20만동 ( 우리돈 만원정도) 으로 베트남 쌀국수 3종류와 디저트로 커피와 주스까지 마셨는데 5000동이 남는다.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여행자들에겐 천국 같은 도시 베트남. 그중에 호치민은 베트남 그 어느 곳보다 저렴하고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 아닌가 싶다. 호치민으로 여행을 간다면 20만동으로 맛집 털기에 한번 도전해보는 건 어떨까?!
그리고 맥주 한잔입니다.
그런대로 멋진 호텔
여기까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