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로벌 평화를 위협하는 악의 축이 바뀌는 모양새입니다. 악의 무리를 처단하고 세계를 위험에서 구하는 어벤져스 같은 영웅 무용담은 이제 특정의 한 인물을 포커스로 삼지 않는 이상 헐리우드의 깊은 한숨이 될 것 같습니다. 치솟는 기름값으로 도로 교통량이 줄었다고 합니다. 덕분에 전주까지 가는 길은 비교적 빨랐습니다.
치명자산성지
드넓은 대지 위에 정갈하게 조성된 치명자산성지는 전주시 완산구 바람쐬는길 87번지에 위치해 있습니다. 바람쐬는 길이라는 주소명이 눈길을 잡네요. 치명자산은 산 정상에 암석층이 거대하게 자리한 모습이 염불하는 스님 모양 같다고 하여 예로부터 승암산이라 불렸고, 큰 바위가 많아 중바위산이라고도 불렸습니다. 1914년에 전동 성당을 건축한 보두네 신부가 전라의 사도 유항검 아우구스티노 일가족을 이곳 산 정상에 모시면서부터는 ‘치명자산’이라고 더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치명자’는 ‘목숨을 바친 자’라는 뜻입니다.
도착하자마자 11시 미사 참례를 위해 자비의 성전으로 향했습니다. 십자 모양을 한 독특한 외관의 멋진 순교자현양 순례성당에 위치해 있습니다. 동정부부로 거룩한 삶을 실천한 이순이 루갈다 순교자가 소지했던 십자가를 한지로 재현한 예수상이 순백의 모습으로 제대 위에 자리잡은 아담한 성전입니다. 김영수 헨리코 주임 신부께서 순례단을 환영해주시며, 관광이 아닌 기도의 순례가 되기를 청하셨습니다. 그 기도의 여정에는, 하느님을 향한 ‘영적 갈망’과, 그 은총을 담아내는 그릇인 ‘거룩한 지향’이 필요하다고 하시며 이 두가지가 하느님께 이르는 이정표가 되어줄 것이라 하셨습니다. ‘지향’이란 것이 따로 필요하지 않다 하신 신부님도 계시고, 거룩한 지향으로 하느님의 뜻을 담는 그릇이 되라는 신부님도 계시지만, 어휘에만 초점을 두지 말고 좋은 말씀으로 융화시켜 우리의 신앙심을 각자의 색깔로 예쁘게 열매맺어 가면 좋겠습니다.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는 평화의 전당에서 식사를 한 후, 넓은 로비에 앉아 박금홍 아드리아나 해설사의 열심한 해설을 들었습니다. 마주보는 정면의 거대한 벽 전면에는 124위 복자의 실루엣이 한지로 표현되어 있고, 유항검 가족의 묘를 수습하며 발굴한 표사발과 주검 항아리들이 유리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또 바우배기에서 출토된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 윤지헌 프란치스코의 유해 일부가 자비의 성전에 이어 이곳에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파티마 성모가 모셔진 몽마르뜨 광장을 끼고 걸으면 산 위로 오르는 ‘십자가의 길’이 나타납니다. 골고타 언덕을 재현한 듯 산 정상으로 향하는 예수 수난의 묵상길입니다. 우리는 4팀으로 나눠 묵직한 돌이 쌓인 가파른 산길을 오르며 14처의 기도를 바쳤습니다. 산길을 더 걸어 오르면 산상기념성당을 만납니다. 정교한 모자이크 벽화가 아름다운 성전에서 성체조배 후 산 정상을 향해 가파란 계단을 또다시 오르면, 커다란 순교 복자 가족묘역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묘역은 복자 유항검(아우구스티노)과 그의 부인 신희, 큰 아들 유중철(요한)과 며느리 이순이(루갈다), 둘째 아들 유문석(요한), 제수 이육희, 조카 유중성(마태오) 7분의 유해를 합장해 하나의 유택으로 모신 곳입니다.
유항검 일가는 신유박해 시 전주 남문 밖(현 전동 성당), 전주 옥, 숲정이 등에서 처형되어 멸족되었으며, 살아남은 노복과 친지들이 은밀하게 시신을 거두었으나 고향인 초남이에 묻지 못하고 건너 재남리 바우배기에 가매장하였습니다. 그 후 보두네 신부와 신도들이 유해를 수습해 해발 300미터 산정의 현재 자리에 모셨다고 합니다. 산정에 모신 이유는 순교자들의 고결한 덕을 높이 기리고, 순교자들이 이 고장을 수호해주기를 기원하며, 순교자처럼 피를 흘리지는 못하지만 산을 오르며 땀의 순교자가 되라는 뜻을 담았다고 합니다.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성직자묘역이 있습니다. 아직도 많은 예비터가 준비되어 있는 광활한 공간을 보며 가난한 우리 의정부교구의 성직자묘역이 떠올랐습니다.ㅜ
초록 바위
치명자산성지에서 출발해 전주천을 따라 도보 순례로 초록 바위와 서천교에 도착했습니다. 초록 바위는 도로 가의 인도에서 도심 개발로 큰 둑방이 세워진 곳을 추정해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남종삼 성인의 아들 남명희와 홍봉주의 아들이 순교한 곳으로, 이들 아버지들은 1866년 병인박해에 서소문에서 참수되었고, 그 가족들은 연좌되어 전국 각지로 끌려갔는데 남명희와 홍봉주의 아들은 전주로 왔다고 합니다. 당시 나이가 14세였는데 15세 미만의 소년을 사형할 수 없어 나이가 찰 때까지 1년의 옥살이를 시킨 후 초록 바위에서 교수형으로 참한 뒤 전주천에 시신을 버렸다고 합니다.
서천교
초록 바위에서 좀더 전주천을 따라 내려가면 서천교가 나옵니다. 이곳은 조윤호 요셉 성인이 병인박해 시 순교한 곳입니다. 부친 조화서 베드로 성인의 신앙생활을 어려서부터 익히며 아버지와 함께 전주로 끌려가 옥살이를 했지만 끝까지 배교하지 않고 18세의 나이로 서천교에서 장형으로 순교하였습니다. 순교 후 얼굴에서 빛이 났다고 전해집니다.
두 곳 모두 도롯가 좁은 인도 위에 위치해 있어, 성지의 표식으로는 순교 내용을 기록한 작은 머릿돌과 순교자의 모습을 형상화한 모자이크 조형물만 설치되어 있습니다.
전주의 하늘은 두터운 새털구름 사이로 얼핏얼핏 파란 하늘이 보였지만 오후로 갈수록 흐린 날씨가 되었어요. 꽃망울을 한창 맺고 있던 홍매화 한 그루, 백매화 두세 그루 정도로 만족했던 3월 순례였지만, 봄은 보일 듯 말 듯 나무가지 위로 초록을 보내며 조근조근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오늘 아침 순례 떡은 전례를 담당하신 박미숙 마리아님이 언제 먹어도 맛난 모시송편을 준비해주셨습니다.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매듭묵주는 풍동 성당팀이 준비해주셔서 치명자산 성지의 김영수 헨리코 신부께 잘 전달해드렸습니다. 정성 가득한 묵주라고 기뻐하셨어요. 깊이 감사드립니다.
4월은 예고된대로 제주도 성지순례로 정기 순례를 진행합니다. 참석하시는 분들 일정 잊지마시고 잘 준비해서 제주공항에서 만나시고요. 참여를 못하시는 단원들은 5월 순례시 반갑게 다시 만나기를 고대합니다. 잰걸음으로 다가오는 봄처럼 우리 곁에 일상의 평화가 선물처럼 왔으면 좋겠습니다. 어려운 터널을 지나고 있지만,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시고, 건강 관리 잘하셔서 큰 기쁨 속에 우리 다시 만나요!
첫댓글 글라라님 수고에 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늘 응원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