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암 맥어스킬의 『냉정한 이타주의자』
1.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려는 열정’을 갖고 있다. 하지만 선의와 열정만으로는 효과적으로 세상의 변화에 영향을 끼칠 수 없을 뿐 아니라 때론 의도치 않은 부정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현재 <Giving what we can>이라는 공익단체를 이끌고 있는 영국의 철학자 맥어스킬은 “선의가 오히려 해악을 끼치는 부작용 없이 최대한의 긍정적인 효과를 거두려면 어떻게 해야 할 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열정’이 아니라 비용효율성과 실효성을 따져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타인을 도우려는 행위의 효과와 영향력을 확산하기 위해 철학과 더불어 경제학적 사고 도입을 통하여 결정되는 ‘효율적인 이타주의’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2. 저자는 한 가지 사례를 통하여 선의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음을 보여준다. ‘플레이 펌프’는 오바마 대통령 시절 전 세계의 찬사를 받은 아프리카 물 공급 프로그램이었다. 당시 물을 공급하기 위한 수동장치와 기계장치는 가격이 비싸 많은 지역에 공급하기 어려웠다. 아프리카 아이들이 특별한 취미없이 뛰어 노는 것에 착안한 한 인물은 아이들의 빙빙 도는 운동에너지를 활용한 펌프를 개발하여 아프리카에 공급하기 시작하였다. 제작비용도, 운영하는데도 특별한 비용이 들지 않고 다만 아이들의 활동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은 찬사를 보냈고 수많은 지원을 아끼자 않았다. 하지만 이 사업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반복적으로 펌프 주변에서 운동하는 것에 싫증을 냈고 결국 펌프를 돌리는 일은 여성들의 몫이 되었으며 펌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물의 양도 기존의 펌프보다 적다는 것이 밝혀졌다. 결국 이 사업은 한바탕의 소란 속에서 열기가 식고 말았다. 아직 운영하는 곳이 있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기존의 수동펌프를 더 선호하고 있다고 한다.
3. 선의가 가져오는 또 다른 문제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만나게 되는 ‘공정 무역’ 제품을 선택하거나 ‘노동 착취’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에서 발견할 수 있다. 노동착취 기업의 장시간 노동에 대한 문제는 분명 존재하지만, 더 큰 문제는 가난한 나라에서 노동착취 기업이 사라지면 아이들은 더 열악한 영세공장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으며 결과적으로 아이들의 삶은 더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공정무역’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지원은 실제 노동자들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결과가 다양한 곳의 연구를 통해 밝혀지고 있다. 이런 윤리적 소비가 실제로는 가난한 나라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윤리적 소비의 더 큰 문제는 일종의 ‘도덕적 허가’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인데, 이것은 착한 일을 한 번 하고나면 이후에 선행을 덜 실천하는 것으로 보상받으려는 경향을 말한다. 즉 윤리적 소비가 오히려 자기 만족감을 주어 더 시급한 행위에 대한 실천을 축소시킬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4.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선한 행위를 위해서는 단지 선의와 열정이 아닌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태도로 자신의 결정에 대한 효율성과 실효성을 따져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선택을 위해 필요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첫째,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큰 혜택이 돌아가는가?’, 둘째, ‘이것이 최선의 방법인가’, 셋째, ‘방치되고 있는 분야는 없는가?’, 넷째,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다섯째, ‘성공가능성은 어느 정도이고 성공했을 때의 효과는 어느 정도인가?’ 등이다.
5. 개인이 갖고 있는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그 자원을 이용해서 누군가를 도울 때, 이런 질문을 통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혜택이 발생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야 한다. 공익단체의 기부자들이 이런 태도를 가질 때, 공익단체 또한 자신들의 역할에 더욱 공적인 책무를 느끼고 재무건전성 뿐 아니라 단체 운영의 투명성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아무리 선의의 목적을 가졌다 할지라도 운영과 실천에 미숙하다면 의도치 않은 결과를 발생시킬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개인들에게 공익활동에 참여할 때 자신의 열정이 아니라 자신의 적성, 목적 그리고 영향력에 대한 충분한 숙려기간을 거쳐 결정하라고 권고한다.
6. 저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 즉 열정을 위하여 노력하라’는 격려의 위험성도 같이 경고한다. 이런 조언은 때론 무책임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며, 적성과 역량을 갖추지 못한 사람에게 자칫 왜곡된 결정을 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도 대학 졸업생들에 대한 연설에서 ‘열정을 갖고 최선을 다해라’ 말했지만, 실제 잡스의 성공은 우연하게 접한 컴퓨터의 매력에 대한 적성을 발견하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으며, 실제 잡스가 열정을 가졌던 것은 동양의 신비였다는 것이다. 저자의 조언은 ‘열정과 선의’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7. 결론적으로 만약 누군가 ‘세상을 바꾸고, 세상에 영향력을 미치고’ 싶은 이타주의자의 삶을 살고 싶다면 그것은 열정만으로 될 수 없으며 충분한 준비와 노력을 쌓고 치밀하게 자격을 갖춘 후에 효율적인 방법을 통해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직접적으로 공익활동에 참여할 수 없다면, 대안적 방법으로 ‘기부를 위한 일자리’를 통해 자신이 선택한 중요한 가치를 추구하는 단체를 지원할 수 있다. 저자의 설명은 지나치게 계산적이고 윤리적 선택을 ‘경제적 원리’에 의해 제한한다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공익적 행위가 단지 자신의 도덕적 만족감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면 그 행위가 실제적인 효율성과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제언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조건을 따져보고, 결과에 대한 예측을 통해서도 결국은 개인의 주관적인 판단이 최종 결정의 핵심이다. 그러한 결정이 힘을 갖기 위해서는 평소 그것에 대한 철학적, 사회학적, 실무적 준비를 갖춰야 하는 것이다. ‘선한 행위’도 준비된 사람에게서 더 의미있는 결과를 창출할 수 있다.
첫댓글 - "더 큰 문제는 가난한 나라에서 노동착취 기업이 사라지면 아이들은 더 열악한 영세공장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으며 결과적으로 아이들의 삶은 더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 이를 어쩌리요?
- 보통 냉정한 이성이 가지는 준비된 선행보다는 순간적 감성적 열정이 베푸는 선행이 더 자연스러워 보이는데... 이론과 현실의 차이가 너무 클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