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과 어머니 만남
<법정 스님>
어머니는 아무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 오셨다.
광주에 가는 길에 두어 번 뵌 적이 있는데 떠나려 하자 어머니는 골목 밖까지 따라 나오면서 눈물지었다. 어머니는 아들의 손에 꼬깃꼬깃 접은 돈을 쥐어 주었다. 그 돈을 쓸 수가 없었다. 오랫동안 간직하다가 절의 불사에 어머니의 이름으로 시주를 했다.
그 어머니가 고모네 딸을 앞세우고 불일암까지 올라오신 것이다. 어머니를 모셔 들이고 손수 정성껏 밥을 짓고 국을 끓여 정심 상을 차렸다. 어머니는 밥을 드시면서 가끔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셨다.
"어째 외롭지 않냐?"
텅 빈 공간을 둘러보며 하는 말씀이었다.
"외롭긴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눈물이 앞을 가렸다. 속가에 있었다면 어머니는 며느리도 손자 손녀도 보았을 터였다. 주무시고 가라고 했지만 고개를 내저었다.
"내려 가야지"
행여 방해가 될까. 어차피 헤어질 것이면 그날로 산을 내려가는 게 옳다고 생각하신 모양이다. 가지 말라는 듯 비가 내렸다. 점차 개울물이 불었다. 어느 사이에 노인이 징검다리를 건너기가 위태로울 정도로 물이 불었다.
법정 스님은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리고 어머니를 등에 엎었다. 개울을 건너면서 어머니의 심장 뛰는 소리를 등으로 들었다. 등에 엎힌 어머니는 바짝 마른 솔잎단처럼 가벼웠다. 마음이 아파 눈물이 흘러내렸다. 개울을 건너고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어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가십시오"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때 굶지 마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어린 시절, 그 가난했던 시절, 놉(품값)을 돌아야 겨우 아들딸 보리밥이라도 먹일 수 있었던 시절, 어머니에게는 자식들 때 굶기는 것이 가장 마음 아픈 일이었을 것이다.
멀어지는 어머니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법정은 마음속으로 되뇌고 있었다. 자신이 출가할 때 약속했던 그 말을, '어머니, 언젠가는 돌아가리이다. 이 방황이 끝나는 날.' 돌아오는 길에도 비가 내렸다. 비는 좀처럼 그칠 것 같지 않았다. 어스름이 내리고 어둠이 점령군처럼 세상을 뒤덮자 추녀끝에서 낙수가 눈물처럼 떨어져 내렸다. 가지말라고 내리던 비는 더욱 굵어져 있었다. 떨어지는 것은 낙수가 아니었다.
법정스님의 가슴에서 떨어지는 눈물이었다. 빗속으로 사라지던 어머니, 법정스님은 그 어머니의 모습이 사라져버릴까 봐 두 눈을 감고 그 밤을 보내었다. 낙수는 새벽녘이 되어도 그칠 줄을 몰랐다.
출처 : "맑고 향기로운 법정" 백금남 장편소설에서"
<불일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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