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만찬 (마 26:26-30)
26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27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9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30 이에 저희가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나아가니라
천주교에서는 일곱 성례를 주장하지만 우리 개신교에서는 성례라고 할 때 세례와 성찬, 두 가지만을 인정합니다. 성찬이란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 열두 제자와 함께 한 최후의 만찬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예수님의 생명을 사죄의 새 언약으로 주신 것을 기념하기 위한 예식입니다. 성찬 예식 속에는 구원의 비의가 숨겨져 있어서 더욱 중요한 예식입니다.
1. 성찬에 참예하는 자세
성찬을 대할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상기하여야 하며, 성찬을 받을 때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내셨다는 사실을 새롭게 하여야 합니다. 성찬은 무교절기에 베풀어진 것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너무나 급했던 나머지 누룩 없이 떡을 해 먹었는데 이것을 기념하느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만 되면 누룩 없는 떡을 먹습니다. 우리도 성찬을 대할 때에 우리의 생활 속에서 누룩과 같은 죄악을 제거하는 일을 먼저 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타락과 부패를 상징하는 누룩을 넣지 않은 무교병을 먹음으로 유월절을 준비했던 것처럼 우리들도 자신을 살피고 생활을 깨끗이 함으로 주님의 성찬을 준비하여야 할 것입니다.
성찬을 영어로는 유카리스트(Eucharist)라고 하는데 그 뜻은 감사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성찬은 감사의 예전입니다. 주님의 몸인 떡과 피인 포도주를 대할 때 구속에 대한 감사가 터져 나오지 않는다면 그 성찬은 이미 성찬으로써의 의미를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하나님의 구원을 새롭게 상기하여 자신을 돌아보아 누룩을 없이하여 그리스도 사랑에 대한 깊은 감사를 하는 것이 성찬을 대하는 신앙인의 자세입니다.
2. 최후의 만찬
유월절이 예표하는 구속은 그리스도가 속죄의 어린양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날 베푸신 만찬은 기독교인의 성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의 예법을 폐하지 않고 그 불충분한 법에 완전한 새 사업을 세우심으로 인류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1) 받아먹으라.
26절에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사랑하던 제자들이 유월절 식사, 즉 어린양의 고기를 먹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며 떡을 떼셨습니다. 지금까지 지켜온 유월절식사는 양고기를 먹고 나서 찬미를 부르고 포도주를 마시던 것이었는데 이 식사는 중간에 축복하시고 떡을 떼신 일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없었던 전연 새로운 행동이었습니다. 이것이 성찬의 재정입니다.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라는 말씀을 통해 축복, 사례, 감사, 기도를 드림이 성찬의 주요 행사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눅 22:19에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네 몸이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떡을 주신 것이 아니요 몸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떡을 뗄 때마다 십자가 위에서 날 위하여 죽으신 예수님의 몸을 엄숙히 기념해야 합니다.
(2) 받아 마시라.
2절에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받아 마시라고 명령했습니다. 희생의 피 없이 희생의 몸이 있을 수 없고, 희생의 몸이 없이 희생의 피가 있을 수 없습니다.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니라"고 하였습니다. 성찬예식은 그 근원을 천국에 둔 것이 아니라 갈보리 언덕 십자가를 의지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은 우리를 그의 찢기신 몸과 흘리신 피의 참여자로 만드십니다. 구약의 언약의 피는 양의 피로 하였으나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새 언약을 세웠습니다. 유월절의 양과 같이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살과 피를 주셨습니다.
로마 천주교에서는 성찬의 떡과 포도즙이 실제로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한다고 믿어 화체설을 주장하지만 개신교에서는 성찬예식이 예수님께서 피 흘려 이루신 속죄의 사실을 기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영적 의미를 주장합니다.
(3) 나를 기념하라.
눅 22:19에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하였습니다. 기념이라는 말은 우리말로 "오래도록 잊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초대교회에서 사용했던 "디다케"라는 교리서 교훈서를 보면 "너희가 거룩하냐 그러면 너희가 와서 받아먹고 마시고 주의 성호를 감사하고 찬미하라 너희가 거룩하지 못하느냐 그러면 회개하고 나오너라 주님께서 와 계시니 주님이 너희를 만나서 너희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자 기다리신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떡과 잔, 곧 살과 피를 받을 때마다 주님을 우리 마음 속에 영접하여서 내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기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성찬은 사랑의 예식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피를 흘려 세우신 예식이 바로 성찬입니다. 이 의식이 참으로 사랑의 예식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피를 흘려주신 것처럼 우리도 주님을 위하여 피를 흘리는 자세를 갖추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할 뿐 아니라 성찬을 대할 때 우리는 사랑으로 베푸신 성찬에 참예하는 사람끼리도 사랑해야만 합니다.
니이체는 말하기를 "나는 피로 쓰여진 책만을 사랑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책 한 권을 쓰는 데도 피를 흘려야 한다고 한다면 우리의 인생이 어찌 피 흘림 없이 옳은 인생을 살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일생은 피로 쓰여진 인생이었습니다. 우리는 싸구려 신앙으로 성찬에 참여하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유월절 어린양으로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성찬을 대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임을 다짐하여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