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가장 성스러운 장소가 어딜까? 당연히 파리의 발상지이자 노트르담 대성당이 있는 시테 섬이다. <다빈치 코드>로 유명한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에서 나와 센 강을 끼고 여유롭게 산책하면서 노트르담 대성당을 찾아가면 된다. 루브르를 나오면 바로 센 강을 가로지르는 예쁜 다리를 만나는데 1801년 상류층의 산책용으로 만들어진 이른바 ‘예술다리(Pont des Arts)'다. 이 다리위의 벤치에 앉아 바라보는 시테 섬과 퐁 네프 다리의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
시테 섬으로 들어가는 다리는 1607년에 완공되어 파리에서 가장 오래 됐다는 퐁 네프 다리다. 돌로 된 단순한 다리인데 네오 카락스 감독의 <퐁 네프의 연인들>로 널리 알려져 유명한 다리가 되었다. 영화에서 오갈 데 없는 두 연인들이 사랑을 나누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위로했던 곳이다. 그렇다. 어떤 장소나 건물은 그저 지리적인 장소나 건물에 불과하지만 거기에 문화적 세례가 주어짐으로써 이미지를 얻고 상징으로 부활하는 것이다. 퐁 네프 다리도 단순히 강을 건너는 오래된 다리에 불과했지만 영화를 통해 불행한 두 연인들의 장소로 이미지가 만들어지면서 사랑을 갈구하는 연인들의 성소가 된 것이다.
시테 섬의 중심은 노트르담 대성당(Cathedrale Notre Dame de Paris)이다. 대성당을 지칭하는 말이 프랑스에서는 ‘노트르담’이다.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우리들의 어머니’ 곧 ‘성모(聖母)’를 뜻하니 직역하면 ‘성모 성당’ 정도 되겠다. 파리에만 노트르담이 있는 것이 아니고 리옹이나 사르트르나 여기저기 있으니 뒤에 파리를 덧붙였다. 말하자면 프랑스에선 대성당을 뜻하는 노트르담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인 셈이다. 바로 빅토르 위고의 유명한 작품도 <노트르담 드 파리>이지 않은가.
사춘기 시절 안소니 퀸이 주연으로 나오는 <노트르담의 꼽추>를 보고 노트르담의 그 음산하고 장중한 분위기에 압도당했었다. 그 중세의 고딕적 분위기는 종지기 콰지모도와 유랑연예인 에스메랄다의 이루어질 수 없는 숙명 같은 사랑과 잘 어울려 오랜 동안 뇌리에 남아있었다.
그런데 처음 유럽 여행을 갔을 때 대리석으로 만든 아름다운 이탈리아 성당, 특히 로마의 산 피에트로나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을 본 뒤에 파리에 와서 노트르담을 보니 시커먼 건물이 영 아니었다. ‘이게 그 유명한 노트르담이란 말인가?’하고 실망하기도 했다. 사암이나 석회암으로 지어 때가 타서 그런 것이었지만 내 기대에는 부응하지 못했다. 그런데 유럽에 살면서 다시 가서 보니 그 해가 세계문화유산 보존의 해라 마침 깨끗하게 외벽을 단장하여 성모처럼 눈부셨다.
이 대성당은 1163년 파리 주교 쉴리에 의해 착공되어 1320년경에 완공되었다 한다. 그 사이 무수하게 많은 역사적 사건이 이 성당에서 이루어졌고 또 진행되었다. 성당은 800년의 프랑스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특히 나폴레옹의 대관식이 1804년 이 성당에서 이루어져 루브르에 있는 다비드의 대작 기록화가 그 당시의 모습을 전해준다. 이 성당의 압권은 고딕식 건물의 특징인 스테인드글라스다. 특히 장미창이라 불리는 3개의 창은 화려하기 이를 데 없다. 햇살을 받아 영롱하게 빛나는 스테인드글라스는 그대로 천국의 모습이다.
노트르담 성당 앞쪽 시테 섬 입구에 위치한 생트 샤펠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더욱 아름답다. 이 성당은 예수가 처형될 때 썼던 가시면류관(정말일까? 진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엄청난 돈을 지불하고 콘스탄티노플에서 구했다 한다.)을 보관하기 위해서 건립된 성당으로 위층이 온통 스테인드글라스 천지다. 13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성경의 내용을 1134장의 스테인드글라스로 그렸는데 그 색채나 섬세함에서 노트르담보다 훨씬 뛰어나다.
그런데 우리가 시테 섬에서 파리의 지도를 보며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 어디로 가야하는가를 찾고 있을 때 웬 허름한 신부가 우리의 모습을 쭉 지켜보더니 우리에게 다가와 무엇을 주는 것이 아닌가. 처음엔 신부 복장을 하고 있지 않아서 잡상인으로 알았다. 주는 것을 보니 조그만 알루미늄 판에 새긴 성모상이어서 더욱 그렇게 여겼다. (당시는 신앙을 갖기 전이어서) 우리가 필요 없다고 다시 주었더니 손을 내저으며 그냥 주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이게 뭐냐고 물으니 성모상인데 당신들을 여행에서 지켜줄 것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당신들을 보니 멀리서 왔는데 힘들 때마다 이 성모상을 보며 위로를 받으라고 했다. 낯선 이방인에게 도움을 주려는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워 한동안 가는 모양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정말 파리의 성소(聖所) 시테 섬에서 성인(聖人)의 현신을 만난 것 같았다. 허름한 거지차림이어서 우리가 미처 몰라봤던 것이다.
첫댓글 평범한 것이지만 이방인에게 많은 위안이 됐던 성모상입니다. 그 신부님은 정말 저희에겐 은인입니다. 노트르담 하면 떠오릅니다. 그래서 저희가 성당에 나가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건 하나님이 저희를 불렀다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