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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승 시인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와 추계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2005년 현재 명지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에 재학 중이다. 2003년 <파라21> 신인문학상 시 부문에 「주치의 h」 외 5편의 시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황병승의 시인의 詩세계
유토피아란 무엇인가?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성적인 억압이 욕구불만으로 발현된다는 사실을 미루어 볼 때 과연 1부1처제에 관하여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가치체계로 질서를 구축해 놓은 현대 자본주의의 아성에 도전하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
황병승 시인의 시 세계를 살펴보자.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사회가 산업화를 거치면서 자본주의라는 견고한 질서로 구축해 놓은 고정된 의식세계라면 그 세계에 강한 충격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이 시인은 기존 가치체계 및 질서체계에 대한 금지된 것들을 폭로하고, 금기시 된 것들에 대해 욕망하면서 자아를 드러내고 있는데, 바로 이것이 이 시집의 특징이며 충격이라 할 수 있으며 진정한 의미의 용기를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은 중심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정신병자, 성적도착증환자, 전과자..등)을 주축으로 등장시켜 기존의 가치체계를 강하게 뒤흔든다. 그러나 전복시키거나 부정하거나 교화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어 환기시켜 줄 뿐이다. 사회 구조에 의해 철저하게 억압되어 있거나 금기시되어 있는 것들을 겨냥한 자아의 커밍아웃을 통해서 자아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 것은 즉, 또 다른 가치를 갖고 있는 시인이 사람들이 잊고 있는 유토피아를 보여주려고 한 것이다. 또 다른 가치체계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데 인정 받고자하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다시 한번 유토피아를 상기해보자. 원시사회에서는 자유로운 것이 현대 사회에서는 억압되고 있다 그것은 편리하게 사회를 관리하기 위해 구축해 놓은 질서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현대의 세계는 억압의 세계다. 선과 악, 정상과 비정상, 옳고 그름 등 대립적인이고 이분법적으로 분할함으로써 갈등과 대립을 자초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이분법적 분할이 없는 원시사회는 갈등이 없는 유토피아가 아닌가?
원시사회의 예를 들어보자, 에스키모인은 손님 접대할 때 자기의 아내를 내어준다. 꿈에서 누군가를 때리면 찾아가서 사과한다. 이것은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구분 짓지 않은 유토피아의 세계라 볼 수 있지 않은가? 원시사회에서는 욕심도 부리지 않는다. 그냥 사냥하러 가고 싶은 사람들을 모아 사냥을 가고, 사냥을 해서 잡은 짐승을 나누어 먹는다.
원시사회에는 욕구불만이 없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그것은 언어가 없었기 때문이다. 양심이라는 말도 없고 의무라는 말도 없다. 모든 관념과 사물에 대한 언어가 이분법적으로 나누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인은 시코쿠 세계에서 이분법적 언어를 구분하지 못하는 화자를 등장시켜 자아를 완벽히 드러냄으로써 기존질서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게 강한 충격을 주고 있는 것이다. 시코쿠를 통해서 그 가 꿈꾸는 유토피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97쪽> 핑크트라이앵글* 배(盃)소년부체스경기입문(入門)
웃으면 좋다는 거고 인상 쓰면 싫다는 거지 어렵게 생각하는 습관을 버려
문어는 만화에서처럼 코가 달렸고 먹물을 발사하지
언젠가 나는 소문이 싫어 고양이 수염을 잠깐 달았지만
그림자에 지나지 않았어 아직은 별명을 쓰는 친구들이야 모두들 체스를 좋아해
앞치마 두른 동물들은 모두 일하러 가고 이렇게 큰 풀밭은 처음 봐
나른한 텐트 속에 버려진 네 두 다리는 꼭 투명한 푸딩같구나
언젠가 너도 꼬리를 감추고 잠깐, 흔들린 적 있겠지
늙은 마초(macho)들! 앞에서 멍청하고 냄새나는 여자애들과
시키면 시키는 대로 손잡고 노래 부르던 시절
그땐 얼마나 얼굴이 화끈거리던지 그림자에 지나지 않았어
꼬리도 없는 고양이를 왜 핑키라고 하니?!
고양이는 그렇게 키우면 못써 고양이는 꼬리지
체스판 위의 말을 한 칸씩 옮길 때마다
어색한 수염을 하나씩 떼버린다면, 웃음거리가 되겠지 당장은
별명을 쓰는 친구들이야 전쟁이 필요한 녀석들이지 다행히 체스를 좋아해
이렇게 큰 풀밭에서 서로의 길고 짧은 꼬리가 되어
단단한 파이프에 불을 붙이면 하아 잎 타는 냄새가 좋아
날개를 파닥거리며 불을 연주하는 나방들
중절모를 물고 꽃밭을 달리는 세퍼드들
체크를 외치며, 한 사람씩 가라앉는 거야
* 핑크 트라이앵글 : 무지개 레인보우 깃발과 함께 동성애 사회의 상징으로 쓰이는 표시이다. 이 분홍색 역삼각
형은 원래 나찌 독일에 의해 수용소에서 동성애자를 식별해서 그 탄압을 유용하게 하기 위한 마크로 사용되
었는데 그 이후로는 동성애 운동과 게이 프라이드의 상징 마크로 널리 사용하게 되었다
웃으면 좋다는 거고 인상 쓰면 싫다는 거지~
그냥 편하게 생각하고 편하게 말하자는 얘기이다. 일부러 의미를 부여하고 무겁게 생각하는 관습을 비판하는 글이다. 우리는 어려운 것에 길들여져 있다. 형이상학적인 것은 가치가 있고 형이하학적인 것은 가치가 없다는 강박관념에 일침을 가하는 글이다. 고정관념에 대한 탈피를 권유한다.
사람들은 그러한 관념에 젖어 자신의 본 모습을 숨기려하고 있다. 거대한 사회질서에 침몰되어서 개인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있는데 반하여 시인이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고백하고 있다
언젠가 나는 소문이 싫어 ~ 그림자에 지나지 않았어
타인에게 보여주는 일상의 모습이 진정한 자기 자신의 본 모습이 아니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본 모습을 감춘 사실이 있으며 그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고백한다. 이 사회가 구축해 놓은 억압구조인 도덕이라는 가치체계에 젖어왔고 강요당해왔고 순응해 왔음을 시인하면서 비판하기도 한다.
<64쪽> 리타의 습관
나는 가족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싫어했어요
리타 아침 먹어라 리타 배도 안 고프니 리타! 리타!
새엄마의 발소리가 사라진 뒤에야, 나는 도어 록을 풀고 식당으로 내려가죠
대개 가족들이 식사를 마치고 난 후에 혼자서 밥을 먹는데
어떤 날, 내가 미처 모르는 무슨 무슨 기념일이나 축하연 자리에
언니 형부 이모 나부랭이들이 식당을 꽉 메워버린 날,
맙소사! 그런 날은 마치
새엄마가 나를 똥구덩이에 처넣은 듯한 기분이 들곤 했죠
그 피할 수 없는 함정.
처음엔 입을 다물었어요
다음엔 용기를 내어 옆사람의 수프를 떠먹었고
그 다음엔 이모부에게 이렇게 말했죠
내 꺼 볼래?
나는 집에 있을 때면 늘 혼자 밥 먹는 것을 좋아했어요
나의 연기는 점점 무르익어갔고. 새엄마는 더 이상 나를 가족들과의 식사에 부르지 않았죠
그런데 어늘 날부터인가 나와 가장 친한 폴이나 낸시를 만나 식사할 때도
나는 나도 모르게 연기를 하는 거에요
그간의 일들을 차근차근 얘기하고 싶은데
입 안 가득 미끄덩거리는 음식과 범벅이 되어버린 말들
뱉어낼 수 없었죠. 도무지
포크는 쉬지 않고 음식을 찍어대고
더 이상 씹어야 할 내 몫의 음식이 남지 않았을 때
웨이터를 불렀어요. 식사 도중이었지만
낸시의 스테이크 접시를 당장 치우라고 비명을 질렀죠 그리고는 냅킨을 집어던지며
풀과 낸시를 향해 막무가내로 퍼붓는 거예요
날 굶겨 죽이고 싶겠지? 미치겠지? 너희 둘, 어림도 없어! 계획대로 될 것 같아? 무슨 계획? 꿈도 꾸지 마!
아무도 웃지 않았죠
나는 단지 가족들과 함께 식사하는 걸 싫어했을 뿐인데.
요즈음은 침대 밑에서 먹어요
메어리는 안쓰럽다는 듯이 내게 말을 건네죠
리타, 이리 나와요. 거긴 너무 어둡고...... 샐러드가 코로 들어가겠어요
그럼 난 이렇게 대꾸하죠
걱정마세요 수간호사님, 그건 그저 연기일 뿐이니까요
나는 집에 있을 때면 늘 혼자 밥 먹는 것을 좋아했어요
여기서 시인은 ‘늘 혼자 밥 먹는 것을 좋아한 이유’로 가족과 격리 수용되는데, 현대사회에서 '가족'이란 개념도 억압구조의 출발점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드러내어 보여준다. 가족들마저 혼자 밥먹는 것을 ‘잘못된 행동’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로 묶어놓고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 놀라운 사실, 정말로 우리가 몰랐던 놀라운 사실이 아닌가?
<12쪽> 주치의 h
1
떠나기 전, 집 담장을 도끼로 두 번 찍었다
그건 좋은 뜻도 나쁜 뜻도 아니었다
h는 수첩 가득 나의 잘못들을 옮겨 적었고
내가 고통 속에 있을 때면 그는 수첩을 열어 천천히 음미하듯 읽어 주었다
나는 누구의 것인지 모를 커다란 입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깊이 더 깊이
아버지와 어머니 사랑하는 누이가 식사를 하고 있었다 큰소리로 떠들며 더 크고 많은 입을 원하기라도 하듯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 귀에 이마에 온통 입을 달고서
입이 하나뿐인 나는 그만 부끄럽고 창피해서 차라리 입을 지워버리고 싶었다
2
입 밖으로 걸어 나오면, 아버지는 입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로 조용한 사람이었고 어머니와 누이 역시 그러했지만,
나는 입의 나라에 한번씩 다녀올 때마다 가족들과 함께 하는 침묵의 식탁을 향해
'제발 그 입 좀 닥쳐요' 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집을 떠나기 전 담장을 도끼로 두 번 찍었지만
정말인지 그건 좋은 뜻도 나쁜 뜻도 아니었다
버려진 고무인형 같은 모습의 첫 번째 여자친구는 늘 내 주위를 맴돌았는데
그때도(도끼질할 때도) 그 애는 멀찌감치 서서 버려진 고무인형의 입술로 내게 말했었다
'네가 기르는 오리들의 농담 수준이 겨우 이 정도였니?'
해가 놀아서 똑 똑 정수리로 덜어지는 기분이었다.
h는 그 애의 오물거리는 입술을 또박또박 수첩에 받아 적었고
첫 번째 여자친구는 떠났다. 세수하고 새 옷 입고 아마도 똑똑한 오리들을 기르는 녀석과 함께였겠지
3
나는 집을 떠나 h와 단둘이 지내고 있다 그는 요즘도 나를 입의 나라로 안내한다.
전보다 더 많은 입을 달고 웃고 먹고 소리치는 아버지와 어머니 사랑하는 누이가 둘러앉은 식탁으로
어떠면 나는 평생 그곳을 들락날락 감았다 떴다, 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더는 담장을 도끼로 내려찍거나 하지 않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4
이제부터는 연애에 관한 이야기뿐이다
악수하고 돌아서고 악수하고 돌아서는,
슬프지도 즐겁지도 않은 밴조 연주 같은......다른 이야기는 없다. 스물 아홉,
이 시점에서부터는 말이다 부작용의 시간인 것이다
그러나 같이 늙어가는 나의 의사 선생님은 여전히 똑같은 질문으로 나를 맞아주신다
"이보게 황형. 자네가 기를 오리들 말인데, 물장구치는 수준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나?"
낡고 더러운 수첩을 뒤적거리며 말이다.
시인은 리타와 마찬가지로 내가 다른사람들과 차이가 있음을 인정해 달라고 한다.
더 크고 더 많은 입을 달고 있다.
그것은 이사회의 욕망의 구조(욕망의 끝이 없는)를 말하는 것이다. 시인은 이 사회가 요구하는 욕망구조를 모른다는 이유로 주치의의 치료를 받을 수밖에 없다. 가족들이 정신병자라고 보는 것이다. 시인은 주치의 h도 가족과 같은 부류라고 생각한다.
<18쪽> 커밍아웃
나의 진짜는 뒤통순가 봐요
당신은 나의 뒤에서 보다 진실해지죠.
당신을 더 많이 알고 싶은 나는
얼굴을 맨바닥에 갈아버리고
뒤로 걸을까 봐요
나의 또 다른 진짜는 항문이에요
그러나 당신은 나의 항문이 도무지 혐오스럽고
당신을 더 많이 알고 싶은 나는
입술을 뜯어버리고
아껴줘요, 하며 뻐끔뻐끔 항문으로 말할까 봐요.
부끄러워요 저처럼 부끄러운 동물을
호주머니 속에 서랍 깊숙이
당신도 잔뜩 가지고 있지요
부끄러운 게 싫어서 부끄러울 때마다
당신은 엽서를 썼다 지웠다
손목을 끊었다 붙였다
백 년 전에 죽은 할아버지도 됐다가 고모할머니도 됐다가.....
부끄러워요? 악수해요
당신의 손은 당신이 찢어버린 첫 페이지 속에 있어요
* 커밍아웃 : 영어 'come out of closet'에서 유래한 용어로, 번역하면 '벽장 속에서 나오다'는 뜻이다. 동성애자
(同性愛者)들이 더 이상 벽장 속에 숨어 있지 않고, 밝은 세상으로 나와 공개적으로 사회에 자신의 동성애적
취향성을 드러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인은 자신의 진짜모습은 타인에게 보여 지는 얼굴이 아니라 얼굴이 갈아지고 뒤로 걸어가는 얼굴, 항문, 뒤통수 등이 진짜라고 말한다. 시인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겠다고 지금까지 감추고 있던 자신의 진짜 모습, 즉 타인과 다른 점을 당당하게 말한다.
<80쪽> 고양이 짐보
내가 갸르릉 거리면요, 딴 뜻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니까요
내 이름은 짐보 나쁜 친구들과는 더 이상 어울리지 않아요 쥐는
옛날부터 싫었구요 이 골목은 누구보다 제가 잘 알죠
세탁소집 아이는 미용사가 꿈이구요 열여덟에 결혼한 수리공 마키는
말할 때 눈을 찡긋거리는 버릇이 있고 대장장이 키다리는 아침부터 술이지요
내가 밤늦도록 갸르릉 거리면요,
당신이 천방지축 꼬마였을 때 내가 아프게 할퀸 적이 있구나,
그렇게 생각해요 딴 뜻이 있는 건 아니니까요
시답잖은 얘기예요 고양이에게 왕국이니 전설이니……
당신들 보다 나이를 조금 더 먹었을 뿐 내 이름은 짐보
지붕을 뛰어넘다 애꾸가 되었구요 동네 고양이들은 나를 점프 왕 짐보
그렇게 놀리더군요 나쁜 마음을 먹을라치면 벌써 먹었죠
우리 고양이들은 칼날 같으니까요
그러나 눈이 꼭 두 개일 필요 있나요 친구들은 이 마을 저 마을
들쑤시고 다니지 못해 안달을 하지만, 많이 안다고
다 아는 건 아니죠 내 이름은 그냥 짐보 이 골목만큼은
눈 감고도 걸을 수 있죠
내가 만일 밤늦도록 갸르릉 거리면요,
당신은 아직 꼬마고 당신은 울고 싶은 일이 참 많고
그러나 그 모든 게 지난 밤, 짐보가 할퀴고 간 상처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당신들 보다 나이를 조금 더 먹었을 뿐
딴 뜻이 있는 건 아니니까요.
짐보는 고양이 이름이다. 짐보는 옛날부터 쥐를 싫어했다. 고양이 세계에서 쥐를 싫어한다는 것은 곧 배척을 당한다는 말이 된다.
꼭 눈이 두개일 필요가 있나요? 여기에서도 시인은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사회구조를 비판한다. 애꾸가 되었다고 놀려도 아무렇지도 않은 당당함을 통해 자아정체성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04쪽> 부드럽고 딱딱한 토슈즈
나 아끼코는 그렇게 하는 것이 나쁘다, 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나빠요 싫은 행동이에요, 라고 말하는 순간
나 아끼코가 더 나쁜 사람이 되고 마는 건 왜일까
그렇다고 침묵을 하면 뭔가 달라질까
그래도 역시 나쁜 사람이 되고 만다
나 아끼코를 초(超) 비참하게 만들지 않는 한
앞으로는 그렇게 하는 것이 꼭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
라고 타협을 할까 한다
저녁에는 극단(劇團)의 언니 오빠들과 함께 장어 멍게 해삼을 먹었다
그것들의 공통점은 물에서 산다는 것이지만
그것들이 얼마나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지는 모르겠다
서로 얼마나 궁합이 잘 맞는 음식인지도
나 아끼코는 모르겠다
장어 한 번 멍게 한 번 그리고 해삼...... 이렇게 순서대로 먹었다 계속해서
뭔가 석연치 않으면서도 나 아끼코는 한껏 온아한 표정으로
건배를 하고 뉴스를 보며 오물오물 수다를 떨었다
아끼코 상! 아끼코 상! 그렇게 하는 것이 나쁘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그렇게 하는 것이다
다들 그렇게 한다는 것은 그것이 머리의 차가움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
비옷을 입은 기자는
장마통에 집이 무너져 사람들이 깔려 죽었다고 전한다
나 아끼코에게 집이라는 건 빗소리를 듣기에 참 좋은 장소인데......
비 때문에 집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깔려 죽었다는 보도는
언제 들어도 즐거움과 초재미를 준다.
문명의 발달이후 선과 악, 이분법적인 체계 등 질서체계는 분명해지고 더 강압적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나빠요”라고 말하는 순간 자신이 나쁜사람이 된다. 타협을 할까 생각도 해본다. 침묵하든 그렇지 않든 이쪽이든 저쪽이든 마찬가지라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아끼꼬는 장마통에 비 때문에 집이 무너저 사람들이 깔려죽었다는 말을 듣고 초재미를 느낀다고 진술한다. 당황스러운 진술을 통해 궁극적인 인간의 본성을 드러낸다. 아끼꼬는 선과악의 너머에서 발악을 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 핵심이 있다. 문명이 이원대립의 세계이고 보면 원시는 언어의 대립이 없는 세계이다. 언어는 너와 나라는 차이에 의해서 의미를 획득하듯 차이에 의해서 생긴다.
서양에서 과학 또한 이원대립이 있어야 과학이 추동(生成)된다고 하지만 동양에서는 이원대립이 아닌 상보적 관계를 중요시하여 왔다. 이분법적인 사고는 형이상학적이고 옳은사고 라는 말이 옳은가? 정신과 육체가 상보적인 관계이어야만 건강이 성립되듯이 상호텍스성을 중요시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시인은 탈 중심적인 세계관, 상호텍스트성, 역사와 현실을 구분하지 않는 진술을 하고 있다. 당신은 어떤 세계를 꿈꾸고 있는가? 수년전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정말로 슬퍼서 관심을 보였는가? 지구상에 어떤 비극적인 대형사고가 발생했을 때 초재미를 느껴 본적이 없는가? 인간의 숨겨진 내면을 스스로 돌아보았을때 섬뜩하지 않은가? 시인은 섬뜩할 정도로 솔직하게 자아를 내 보여준다.
<76쪽> 왕은 죽어가다
그러나 나의 악기는 아직도 어둡고 격렬하다
그대들은 그걸 모른다, 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구나
그때 그대들을 나무랐던 만큼 그대들은 또 나를 다그치고
나는 휘파람을 불며 가까스로 슬픈 노래의 유혹을 이겨내고 있는데
오늘 밤도 그대들은 나에게 할 말이 너무 많고
우리는 함께 그걸 나눠 갖기는 틀렸구나, 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구나
불의 악기며 어둠으로부터의 신앙信仰·····
그렇다, 나는 혼돈의 음악을 연주하는 대담한 공주를 두었나니
고리타분한 백성들이여,
기절하라! 단 몇 초만이라도
내가 뭐, 라는 말밖에 나는 할 수가 없구나
저기 붉은빛이 방문하고 푸른빛이 주저앉는다,
라는 암시밖에는 할 수가 없구나.
*「왕은 죽어가다」는 베랑제 연작 네 편중 하나로서, 베랑제 1세라는 왕이 죽어 가는 과정이 그 내용인데, 이오
네스코가 수년간 구상한 끝에 나온 역작이다. 외젠 이오네스코 (Euge'ne Ionesco) - 1912~1994. 루마니아
태생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한 극작가. 전후 유럽 연극계를 풍미했던 부조리 연극의 대표적인 작가다.
이 시는 시인의 시세계를 종합적으로 말하고 있다. 시인이 꿈꾸는 세계를 말하고 있다.
'왕'은 변혁을 꿈꾸던 시대로 '시인'은 시, '왕'은 정치, '철학자'는 철학을 상징한다.
그대들은 그걸 모른다. ~ 왕은 변혁을 모르고 죽어가고 있다. 고 말하면서 시인은 “나의 악기는 아직도 어둡고 격렬하다” 고 말하고 있다 그 것은 시인이 ‘혼돈의 음악을 연주하는 공주’를 통해서 왕이 이루고자한 변혁을 이룰 수 있는 왕이 될 것이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혼돈의 음악'은 무엇인가? 확실히 구분할 수 없는 파편이 인정되는 세계를 말한다. -고상한 음악이라고 이름 지어진 클래식과 저속하다고 생각하는 뽕짝을 구분하지 않은 음악이 혼돈의 음악이라고 한다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저기 붉은빛이 방문하고 푸른빛이 주저앉는다 라는 암시는 시인이 꿈꾸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시인은 억압적인 구조에서 은폐될 수 밖에 없었던 것들에 대해서 커밍아웃을 통하여 자아를 드러낸다. 즉 비주류, 아웃사이더 등이 본 세계를 도발적으로 펼쳐놓는다. 그러나 교란이나 전복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시인은 현재의 문명세계가 만들어 놓은 이분법적인 질서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세계 즉, 시코쿠의 공주가 왕이 되는 세계를 꿈꾼다. 황병승 시인, 그는 시를 통하여 전통과 관습을 거부하고 있다. 탁월한 언어감각과 상상력으로 불온한 이 세상을 가장 불온한 언어로 증언하고 있다.
시의 세계에서도 탈 중심적 파편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머지않아 혼돈의 시 세계가 도래할 것이다. 깨진 거울을 놓고 볼 때 깨지기 전의 상태가 서정시의 세계라면 이미 깨져 일그러진, 복구가 불가능한 상태 즉 총체성이 불가능한 세계가 해체시의 세계이다. 해체시의 세계를 ‘혼돈의 시세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영화 ‘매트릭스’를 보라, 바로 혼돈의 세계를 묘사한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