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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바의 분노존(忿怒尊) 바이라바(Bairava)상. 17세기 이전으로 추정. 네팔 카투만두 더르바 광장 북쪽. |
누군가 힌두교를 대표하는 단 하나의 신을 들라면 필자는 주저 없이 시바(Śiva)신을 꼽을 것이다. 그만큼 이 신과 연관된 역사적 유적과 신앙형태는 방대하다. 그러나 힌두교에서 차지하는 그의 위치에 반해 불교에 들어와 호법 신장으로 자리잡은 시바 신은 불교의 다른 신중에 비해 그다지 주목받는 위치에 있지 않다. 특히 한국에서 이 신은 거의 대부분 신중탱화에서나 찾아볼 수 있으며, 화면의 중심을 차지하는 경우도 비교적 많지 않다. 제석천이나 범천 또는 위태천만큼 빈번하게 만날 수 있는 신이 아니다.
시바는 기원전 2∼기원후 2세기
우주 최고신·영혼 구원자로 등장
금강역사와 전투에서 전사 후
비로자나불의 다라니 신통력과
자비에 의해 여래불로 재탄생
이 신이 불교의 신중 가운데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지 않는 것은 다른 신중에 비해 힌두교 내에서도 비교적 후대에 발전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한다. 더불어, 이 신이 불경 내에서 주로 밀교부의 문헌들에 자주 등장한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국 인도 내에서 뒤늦게 확립된 신의 지위뿐만 아니라 주로 불교의 밀교를 통해 유입되고 확장된 시바의 모습은 밀교신앙이 어떻게 전개되었는가에 따라 그 신의 위상과 유행 정도가 달라질 수 있다. 이 점은 밀교가 크게 성행하지 않은 한국적 상황과도 일정한 관련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마혜수라는 산스크리트 마하-이슈와라(Mahā-Īśvara)를 음사한 말로 이 이름은 보통 힌두교의 최상위 신이자 시바파의 대표신인 시바를 가리키는 별칭이다. 그 의미는 ‘위대한 신’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의역해서 대자재천(大自在天)이라 흔히 부르는데, 이 외에도 대흑천(大黑天), 이샤나, 마히샤, 파슈파티, 파라메슈와라 등의 여러 별명이 있지만 한역된 이름인 마혜수라가 동아시아에서 훨씬 많이 통용되고 있다.
시바는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고전 힌두교의 가장 대표적인 신이다. 우주의 생성과 파괴의 주관자, 인간의 속박과 해탈을 제시하는 인격적 절대자로서 현재까지 이 신에 대한 신앙은 그 어느 신보다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이 신의 기원을 베다 종교가 시작하기 이전의 인더스 문명으로 소급하는 경우도 있지만 인더스 문장에 나타나는 소위 ‘시바의 원형(proto-śiva)’은 근자에 들어 시바 신앙의 기원을 설명하기에 불가능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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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주 보광사 원통전 내 신중탱화 중 마혜수라(摩醯首羅) 세부. 1898년(대한 광무2년). 특이하게 신중탱 오른쪽 모서리에 그렸다. |
고전 힌두교의 시작을 보통 후기 베다(Veda)기(期)로 잡는다면, 기원전 200년에서 400년을 그 시작으로 잡는다. 시바 또는 마혜수라가 본격적으로 우주 최고의 신이자 인간 영혼의 구원자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대략 기원전 2세기 또는 기원후 1∼2세기경으로 추정된다. 물론 문헌적 근거에 의해서 말이다. 시바가 이러한 존재로 확실히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슈베타슈바타라(śvetāśvatara) 우파니샤드’ 같은 문헌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이 문헌은 아마도 초기 시바 신앙을 이끌었던 파슈파티(pāśupati)파와 같은 수행자 그룹이 등장한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짐작된다.
대략 시바 또는 마혜수라의 형상이 등장한 것도 이 시기쯤으로 보는 것이 적당할 것이다. 가장 초기의 시바의 형상은 기원전 1세기경 슝가(śuṅga) 시대에 처음 등장한다. 유사한 시기에 인도 북서부의 샤카-파르티아 시대와 쿠샨 시대에도 시바의 형상이 등장한다. 다만, 쿠샨 시대의 화폐에 등장하는 시바 형상의 이름은 박트리아어로 ‘웨슈’(Oëśo)라고 했는데 이는 인도-이란인들의 풍신(風神)의 이름 ‘바유(vāyu)’를 박트리아어로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이 시바의 형상이 실제로 시바를 가리키는 것인지 바유를 가리키는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풍신이 시바의 형상을 빌려 쓴 것일 수도 있다.
마혜수라의 문헌적 단서와 도상이 기원 전 1세기경에야 존재했다면 불교 속에 유입된 것은 이보다 훨씬 이후에 가능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등장 초기부터 시바의 형상은 우리에게 익숙한 두 가지 형태로 존재해왔다. 하나는 링가(liṅga)와 같이 비인격적인 추상의 형상으로, 또 하나는 인간의 형상으로 조성되었다.
통상 우리에게 익숙한 시바(마혜수라)의 모습은 삼지창을 들고 긴 머리를 땋아 올린 채 동물가죽 등으로 하반신을 가린 모습이다. 때로는 위쪽으로 발기한 남근(男根)을 적극적으로 노출시켜 표현한다. 이마에 하나의 눈을 더 가지고 있거나 때로 머리가 세 개로 표현되는 경우도 있다. 팔뚝과 허리에는 뱀이 감겨있으며 머리에는 초승달 장식이 있다. 시바는 때로 격렬한 춤을 추거나 명상을 하는 모습 등의 다양한 모습을 통해 우주의 순화적 질서와 생식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시바 신의 유행은 서사시의 시기를 지나 스칸다푸라나(skandapurāṇa: 6~7세기)와 같은 초기 푸라나 문헌을 거쳐 절정에 이른다. 불교에서는 이 시기에 이르기 전 이미 인도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 여러 지역의 단서들을 통해 시바가 불교의 신중으로 탈바꿈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키질 벽화에는 삼면(三面)의 시바가 황소를 타고 있는 장면을 볼 수 있다. 6세기경의 단단 윌릭(Dandān-Oilik)에서도 얼굴이 세 개인 시바가 황소를 타고 해와 달을 잡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 지역만 해도 시바 또는 마혜수라의 남근은 과감하게 표현되지만, 거의 유사한 시기의 돈황 막고굴이나 운강(雲岡)석굴 등의 마혜수라는 중국적인 겸양의 표현으로 남근이 배제되어 나타난다.
각설하고, 비교적 뒤늦은 출발이었으나 인도 전역의 대중적 인기를 누리던 시바의 위상을 불교에서 포용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이 시기는 불교나 힌두교 모두 밀교가 흥기하던 시기였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불교 내부에서 마혜수라를 호법 신중으로 받아들이면서, 당시에 매우 강력했던 이 힌두 신앙을 조복시키는 과정의 설명이 당대의 불교인들에게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과정은 일부 경전을 통해 그려지고 있는데, 특히 ‘진실섭경(真實攝經)’(또는 ‘일체여래진실섭대승현증삼매대교왕경(一切如來真實攝大乘現證三昧大教王經)’) 등 속에 다소 길게 그려지고 있다. 금강역사와 마혜수라의 밀교적 전투장면이 여기서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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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지창을 들고 있는 시바와 황소 난디. 쿠샨왕조의 왕 비마 카드피세스(Vima Kadphises)의 금화. 대영박물관 소장. 여기서 시바는 삼지창과 물병을 함께 들고 있으며 남근(男根)이 곧추선 채 노출되어 있다. |
경전에 따르면, 금강역사(vajrapāṇi)는 시체를 먹고 화장터에서 거주하는 마혜수라와 그의 부하들에게 속히 삼보에 귀의하고 만다라(曼茶羅)에 들어 불법에 복종할 것을 종용하게 된다. 그와 같은 말을 듣고도 마혜수라는 자신이 삼계(三界)를 지배하는 주인임을 내세우며 거만하게 금강역사를 얕잡아본다. 그리고는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에게 금강역사가 자신에게 명령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따진다. 비로자나불은 마혜수라에게 금강역사의 말을 따라야하며 그렇지 않으면 금강역사의 분노존이 삼계를 파괴할 것이라 말한다. 이 말에 마혜수라가 자신이 분노상을 드러내며 오히려 금강역사에게 자신의 명령을 따르라고 협박한다. 이에 비로자나불과 금강역사가 주문(呪文)을 외우자 마혜수라와 그의 권속들이 의식을 잃고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된다. 비로자나불은 금강수보살에게 그들을 죽이지 말라고 부탁한다. 죽을 지경에 이르렀던 마혜수라가 깨어나 비로자나불에게 묻는다. 삼보에 귀의하게 되면 자신은 대체 누구의 명령을 따라야하는지.
마혜수라는 자존심이 상했던 것이다. 그는 계속 누가 자신의 스승이 될 것인지 반복해서 묻는다. 비로자나불은 그 때마다 금강역사가 그의 스승이 될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 다시 마혜수라가 묻는다. ‘존자시여, 비로불 당신이 나의 주인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우리같이 악덕한 존재까지도 보호할 수 있는 자입니까’. 비로자나불이 답한다. ‘내가 아니라, 바로 금강역사다’. 비로자나불은 금강역사가 바로 일체 여래의 주인임을 말하지만 마혜수라는 이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 금강역사가 삼계의 주인이자 일체 여래의 주인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자, 다시 한 번 금강역사가 나타나 자신의 명령을 따르라고 마혜수라를 꾸짖는다. 이 때 마혜수라가 다시 격하게 반발한다. ‘내가 차라리 죽겠소, 당신의 명을 따르느니’ 이 말에 금강역사는 분노존의 모습으로 변하여 마혜수라와 그의 부인 우마(ūmā)를 짓밟아 죽인다. 죽음을 맞이한 마혜수라는 비로자나불의 자비와 다라니의 신통력으로 다시 여래불로 재탄생하게 된다.
이 문헌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당대 시바(파)의 우월함이 아니라, 마혜수라로 대변되는 인간 심성의 아집과 자존이며 이것이 야차를 대변하는 하위의 금강역사와 힌두 최고의 신을 대변하는 마혜수라의 대결로 그려졌다.
위와 같이 그려진 금강역사(집금강)와 마혜수라의 관계 때문인지는 알 수 없어도, 간혹 신중탱화 가운데에는 집금강신 아래에 마혜수라를 배치하는 경우도 있다. 집금강신을 중앙 위 쪽에 배치하고 마혜수라를 중앙 아래에 배치하는 탱화를 볼 수 있다.
한국의 마혜수라는 힌두 신앙 속의 시바 모습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어 거의 공통점을 찾아볼 수 없다. 세 개의 얼굴과 네 개 혹은 여섯 개 등의 여러 팔을 가진 것을 제외한다면 시바의 특징들은 남아있지 않다. 한국 탱화 속의 마혜수라는 위쪽으로 치켜든 양 쪽 손에 해와 달을 들고 있으며 다른 손에는 무기, 연꽃 등을 들고 있는 경우가 있다. 황소 난디(Nandi)나 삼지창 같은 고유의 지물, 또는 세 개의 눈이나 초승달 같은 신체적 특징 등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 심재관 상지대 교양과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