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고래산 길 : < 함께 하고 싶은 이와 떠나는 특별한 여정, 동행의 길>
누군가가 고래산을 가겠는가 ? 아니면 평해길을 걷겠는가 ? 라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 한다면 어디로 발걸음을 향할까 ! 산을 무엇 하나로 단정하여 말할 수는 없을지라도 산에 오르면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자연인이 되며 마음이 차분해 짐을 느낀다.
산속에 파묻혀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하늘 높이 솟은 고스락에 올라 세속을 바라보며 자신을 성찰하는 말 없이 가르침을 주는 스승과도 같은 산을 어찌 오르지 않을 수 있으랴 !
길에는 선조들이 삶을 영위하였던 자취와 그들이 일구어 놓은 위대한 문화가 베여 있어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그리고 오늘을 사는 삶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어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여름에도 흥겹게 걸어간다.
그런데 어찌하여 산과 길 가운데에서 하나를 선택하라고 말하는가? 단연코 두 개를 함께 즐길 것이라고 욕심스러운 말로 대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 걸어가는 평해길이 바로 고래산 길로 비록 정상에 오를 수는 없을지라도 산에 오를 수 있고 도보여행을 즐길 수 있는 길을 걸을 수 있으니 시작도 하지 않았지만 설렘으로 다가오는데 경기 옛길 안내 책자는 다시 또 이렇게 사람을 유혹하고 있다.
” 고래산 길은 동화 속 그림 같은 역사의 모습을 지닌 석불역에서 출발합니다. 망미리 마을 화관을 지나 만나게 되는 고래산 임도 길은 아무도 없는 고요함을 느끼며 자연의 소리를 음미할 수 있으므로 색다른 경험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또한, 지저귀는 새소리와 상쾌함을 전해주는 바람 소리는 도보여행의 진수를 느껴 볼 수 있습니다. 고래산 길 구간은 함께 하고 싶은 이와 특별한 경험을 선사해줄 것입니다.“
새벽에 세찬 비가 내렸다. 지금은 비가 그치었지만, 비구름이 하늘을 덮어 언제 비가 또다시 내릴지 모르지만, 다행으로 여기고 고래산 길을 석불역에서 걸어간다. 돌부처를 상징하는 석불을 석불역에서 만나지 못하고 중안선 철도를 옆에 끼고 걷는다.
철로를 따라가던 길이 어느새 널따란 논이 펼쳐지고 실개천이 흐르는 둑길을 따라 걸어간다. 새벽 비로 땅에는 곳곳에 흙탕물이 고여 걸음걸이를 방해할지라도 고개를 들면 저 멀리 고래산이 어서 오라 손짓하고 있고 곁에는 논밭에서 푸른 빛을 뿜어준다.
평해길을 처음 걷기 시작하였을 때 모내기를 하는 모습을 여러 곳에서 보았는데 오늘 벼들이 알차게 자란 모습에서 머지않아 벼 이삭으로 익은 모습을 그려보니 바라만 보아도 배가 불러온다.
농사를 짓는 농부들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자연 속의 한 부분으로 느끼며 즐거워하는 이기적인 자신을 성찰하며 걸어갈 때 닭 우는 소리가 들렸다. 시간이 멈춰있는 듯한 정다운 동네 망미 마을이었다.
망미마을은 천년 은행나무를 품은 용문산을 미지산으로도 불렀는데 미지산을 가장 아름답게(美) 바라보는(望) 자리에 터를 잡아서 ‘망미마을‘로 불렀단다. 오늘은 구름이 잔뜩 끼어 용문산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없어 아쉬웠지만 망미 마을의 아름다움은 만끽할 수 있었다
논둑길을 벗어나 아스팔트가 놓인 345번 도로에 이르니 궁금증을 자아내는 ’ 산책하는 달팽이‘ 란 표지판이 부착되어 있다. 우리가 진행하는 길인 구름도 쉬어가는 평안한 곳을 뜻하는 절운 2길과 같은 방향에 있어 흥미를 더욱 유발하였다.
흥미는 그것을 체험하였을 때 감동으로 와 닿는데 오늘의 흥미는 평해길을 걷는데 있어 그저 한순간의 망상으로 날려 버려야 했다. 가는 길이 오르막의 언덕길로 점점 가팔라 질 때 임도 출구 7.9km를 알리는 표지판에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임도를 벗어나기까지 7.9km라면 고래산 자락을 2시간여를 걸을 수 있을 것 같아 가슴이 뛴다. 하지만 고갯길은 점점 가팔라졌다. 잠시 마스크를 벗고 백운정사를 지나 고갯마루에 올랐다.
우리의 고개는 정훈 선생이 노래한 바와 같이 ’ 원님이 내리고, 등짐장수가 쉬어 넘고 도둑이 목을 지키던 곳이며 할아버지와 넘어가던 고개인데 겨우 한 사람 정도만이 통행할 수 있고 울창한 풀밭으로 변하여 잠시 쉬며 물 한 잔 마실 수 있는 공간도 없었다. 전양고개는 이름만 남아 있는 듯하였다.
전양고개는 지평면 망미리의 석불 마을에서 무왕리의 으뜸 마을이었던 초왕골로 넘어 다니던 고개로 전양고개를 알리는 표지석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 또한, 이곳에 석불 마을이 있다면 석불역에서 만나지 못한 석불이 분명 망미리 석불 마을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전양고개를 내려서니 임도였다. 임도 출구 7.6km를 알린다. 이제 본격적으로 고래산 임도를 걸어간다. 마침 평상이 있어 잠시 배낭을 내리고 음료수를 마셨다. 자동차 소리도 끊어진 고요한 산길,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을 걸어간다.
뻐꾸기 소리는 끊이지 않고, 이름 모를 새들 소리가 산의 고요함을 깨운다. 아니 산과 하나가 되어 산을 산답게 하는 조류의 음률이다. 이런 새들의 화음에 나는 무엇으로 화답을 하여야 할까 ?
길가에는 산딸기가 빨갛게 익어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이런 길은 발걸음을 최대한 천천히 옮기여 한다. 한걸음에 갈 수 있는 길도 두 걸음으로 두 걸음은 세 걸음으로 걸어 1시간에 갈 수 있는 길을 2시간에 간다는 편안한 마음으로 천천히 걸어가야 걷는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으며 생각보다 빠르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직선 길이 아닌 돌아가면 또다시 돌아가는 굽이치며 돌아가는 임도 길에서 고래산 정상에 오를 수 있는 곳에 이르렀다. 길가에 놓인 평상은 잠시 휴식을 권하는데 우측의 철계단은 고래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임을 말없이 가르쳐 주며 말을 바꿔 탈 것을 요구한다.
고스락에 오르고 싶은 마음이 어찌 솟구치지 않으련마는 오늘은 임도 길을 걷는 것으로 정상에 오른 것을 대신할 수밖에 없다. 고래산은 고달산으로 부른다. 경기도 양평군과 여주시의 경계에 있는 높이 542m의 산이다.
경기 곡창지대인 여주 들녘에 우뚝 솟아 있는 것이 마치 큰 바다에 고래처럼 솟아 있다 하여 고래산으로 불렀다는 설이 있고 이 지역에 가장 오래된 사찰인 고달사가 있어 고달산이라고도 불렀단다.
새소리가 그치지 않는 산길을 언제 끝이 날지 모르는 길을 걸어가니 정이 넘쳐나는데 평해길은 어느새 임도와 헤어지고 마을 길로 진행하고 있었다. 향림 마을이었다. 전원주택의 아늑한 마을이었지만 눈앞에 솟구친 성지 지맥의 산줄기가 힘차게 뻗어있다.
비록 500m 내외의 나지막한 산봉우리일지라도 정맥, 지맥이 되어 산줄기를 이룰 때 그 장쾌한 기세는 우리의 붉은 피 바로 청춘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산에 오면 힘이 솟는다. 아니 산을 바라만 보아도 힘이 샘솟는 것이 산줄기의 힘이 아닐까!
향림마을을 내려서 345번 도로와 다시 만났다. 좌, 우의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진행하면 여주시 북내면을 알리는 교통표지판이 있다. 목적지인 구둔리는 좌측으로 진행하여야 한다.
교통표지판이 유도한 좌측으로 방향을 전환하여 쪽 다리를 건너니 삼거리길에서 평해길은 왼쪽 길로 진행하여야 하는 데 문제는 좌측에 두 개의 길이 놓여 있다. 하나는 둑길로 일신 2리를 우회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마을로 진입하는 길이었다.
어느 길로 가던지 서로 만날 수 있어 마을 길로 진입하여 영화마을에 이르러 보건소를 지나 일신 2교에 이르니 구둔역 400m를 알리는 표지판과 구둔역 0.8km를 알리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웃어야 할까? 욕을 하여야 할가? 저렇게 커다란 글씨가 행정당국의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일까? 성인께서 ‘ 허물이 있으면 고치는데 꺼려서는 아니 된다.’ 하였다. 너무나도 명백한 오류, 언제까지 저 표지판이 존속되는가 지켜볼 것이다.
도로를 따라 구둔역에 이르렀다. 중앙선 철도의 직선화에 따라 역사는 폐사가 되었지만, 구둔역의 건물은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그 옛날의 멋, 낭만, 추억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아! 오늘이 우리 민족의 선각자이신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김구 선생님의 서거일이다. 걷기에 열중하여 선생님의 기일조차 잊고 있었으니 역사를 배웠다고 말할 수 있으랴 ! 선생님의 말씀을 새긴다.
” 우리는 현실적이냐 비현실적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정도正道냐 사도邪道냐가 생명이라는 것을 명기하여야 합니다. 비록 구절양장九折羊腸 일지라도 그것이 정도正道라면 그 길을 택하여야 하는 것이요, 진실로 이것만이 인도人道인 것이니 여기에 있어서는 현실적이니 비현실적이니 하는 것은 전연 문제 외의 문제인 것입니다.
踏雪野中去 눈 덮인 들판 길을 걸어갈 때
不須胡亂行 발걸음 하나라도 어지럽히지 말라
今日我行跡 오늘 내가 가는 이 길은
遂作後人程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므로
<본래 서산대사의 시이나 백범 선생이 좌우명으로 간직하셨다 한다>
● 일 시 : 2021년 6월26일 토요일 흐림
● 동 행 : 조용원 회장님. 김헌영 총무
● 행선지 :
- 09시39분 ; 석불역
- 10시26분 : 전양고개
- 11시31분 : 고래산 등산로 입구
- 12시27분 : 임도 출구
- 13시06분 : 구둔역
● 거리 및 소요시간
- 거리 : 11.8km
- 시간 : 3시간27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