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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지면 장부인 “영감!” 외치며 함께 주저 앉는다. 김창숙, 호리병을 들어 술 한잔 마시며 책상다리를 풀고 편하게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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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병신 1896년 아버님은 세상을 떠나시었다. 그때 내 나이 열 여덟, 상제의 예법을 잃 고 마구 술 마시고 고기를 먹으매 어머님께서 준열히 꾸짖으셨다.
장부인 문을 열고 내려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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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부인 너는 지금 과부의 자식이다. 네가 큰 선비의 종손으로서 상중에 무례함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아버님의 혼령이 계신다면 어찌 너를 선비의 자손으로 여기겠느냐?
나: (술병을 흔들며 웃는다) 성인의 글을 읽고도 성인이 세상을 구제한 뜻을 실행하지 못 하면 가짜 선비오. 어머니, 나라가 망하는 판국에 책을 읽고 예법을 익힌들 어디에 써 먹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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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에서 대계선생 이승희가 백발을 휘날리며 나선다.
누워있던 김창숙, 선생님을 보고 절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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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희: 내 너에게 실행의 도를 가르쳐 주마. 책을 덮고 날 따라 오거라.
나: 어디로 가시려는데요?
이승희 서울 간다.
나 서울엔 왜요?
이승희 곡하러-
나: 누가 또 죽었습니까?
이승희: 역적 놈들이 나라를 팔아먹었다.
나: 이런 육실헐 놈들. (팔을 걷어 부치며 일어선다) 잘 되었소. 책을 읽느니 차라리 힘이나 한 번 써 볼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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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촌로 선비 이승희와 20대 청년 김창숙이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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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희: (북소리에 맞춰 걸으며) 지금 이완용, 박제순, 이지용, 이근택, 권중현등 역신들 이 을사조약을 맺어 나라를 왜국에게 넘기려 한다.
나: 통발 돌아서 알고 있습니다.
이승희 (휙 돌아서며) 자, 다 왔다 경복궁!
나: (휙 돌아서며 올려다본다)
이승희 자, 절부터 하고 상소를 올리자.
나 (둘러본다) 누구한테요?
이승희 (절한다) 누구는 누구냐, 우리 광무 황제님이지.
나: 광무 황제님 어디 계시는데요. 마이크도 없는데 궁까지 생 목소리가 들리겠습니 까?
이승희 들리건 말건 우리는 말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놈아, 여기는 극장이야. 구석구 석 다 들린다. 그럼 울어라.
나: 예?
이승희 (절하며) 아하이고-
(돌아보며) 어서 울어 이놈아. 아하이고-
나: (약간 우습게) 아하이고-
이승희 크게 울어라. 아랫배 단전에 힘을 넣어서 쫙쫙 뽑으란 말이다. 아하이고-
나: 아하이고-
이승희: (낭랑한 중중몰이 리듬) 오늘날의 사세가 비록 신으로 하여금 폐하 앞에서 할 말을 다시 하게 하더라도. 아하이고-
나: 아하이고-
이승희 전에 상소하여 진술한 그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높고 격렬하게) 아하이고-
나: (저음) 이하동문입니다. (약간 멋적게) 아하이고.
이승희: (중음) 나라 팔아먹은 도적놈을 베어서 황제의 헌장을 엄숙케 하며. 아하이고-
나: (엄숙을 유지하려 애쓰며) 엄숙케 하며. 아하이고.
이승희: (점점 고음으로) 협박으로 체결된 조약을 무효화하며. 아하이고.
나: 아하이고-
이승희: (처연하게) 열국에 성명을 내어 공법으로 다스리게 하소서. 아하이고.
나 (문득) 스승님, 이렇게 궁 앞에서 골백번 절을 한다고 임금님께 어디 들리겠습 니까. 차라리 야밤에 궁을 넘어 들어가서 직접 상소문을 전하는 것이 어떻겠습 니까?
이승희: 네놈이 임꺽정이냐, 궁을 넘어 들어가게? 잔소리 말고 엎드려 울어라. 선비는 선비의 방식대로 세상에 간섭하는 것이다. 아하이고-
나: (음성이 갈라진다) 아하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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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일본순사둘이 달려 나와 칼집으로 김창숙의 오금을 친다.
왜경1 고네야로! 왜 떠들어.
왜경2: 수괴가 누구냐?
이승희: 나다. 젊은 학생은 놔두거라.
왜경1: (이승희의 수염을 잡아 흔들며) 이 영감탱이야. 운다고 밥이 나와 떡이 나와.
이승희: 그래도 나는 운다, 이놈들아. 아하이고.
왜경1: 인두로 주둥이를 지져줄까?
나 예라, 이 후레자식아, 네놈들은 갓 쓴 선비도 모르냐.(하며 달려들다가 칼집과 구둣발로 얻어맞고 차인다)
이승희: 이 미련스런 놈아, 상대 말고 그냥 맞고 울어라.
나: 아하이고, 나 뭐하라꼬 글 배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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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희, 왜경 1, 2에게 붙들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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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승님, 나 여기 두고 가믄 어떡하요, 아하이고-
이승희: 그래, 울어라, 울어. 그게 네가 실행해야 될 덕목이다. 아하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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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숙, 일어선다. 갓을 벗어 던져 버린다. 꺼이 꺼이 울면서 땅을 친다.
나: (읊으며) (詩唱) 망국선망사대부(亡國先亡士大夫)
양정무도반최노(梁廷舞蹈半崔盧)-
나라가 망하니 양반이 먼저 망해서
양정에 춤추는 자들 대부분이 최가 노가 이더라-
나 오늘부터 글을 읽지 않겠네. (상투를 벗어 머리를 풀어 내린다)
나 오늘부터 거꾸로 살겠네. (신발을 벗어 거꾸로 신는다)
2장. 나는 누구냐? 너는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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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숙, 주저앉아 술병을 들이키고 머리와 가슴을 벅벅 긁어 미친 시늉을 한다. 유생들이 지나간다. 김창숙, 침을 뱉는다. 유생들 펄쩍 뛰며 기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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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생1 엇허, 이런 고이연 거지가 있나.
나: 너는 내가 거지로 보이냐, 이 거지 발싸개 같은 새끼야.
유생3 이게 누군가. 김창숙이 아닌가?
자네 왜 서원에서 책을 읽지 않고 저자거리에 나와 앉았나.
나: 응, 책대로 세상이 안 돌아가서 내가 대신 돌아버렸다네, 허허.
유생2: 세상에! 자네가 스승님과 상경했다는 말은 들었지만 자네를 이렇게 저자거리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나: (힐끗 주위 사람을 곁눈질하며, 일부러 크게) 그런데 자네야말로 서원을 지키지 않 고, 어떻게 일진회의 잡놈들과 싸돌아다니는고?
유생4: 이노옴- 네 놈이 무슨 연유로 일진회를 잡놈의 당으로 매도하느냐?
나: 너희들은 어느 백성이냐. 대한 백성이 바다 건너 일본과 합방을 주장하니 이 어찌 잡놈의 당이 아니냐.
유생2: 지금 조선은 정치가 부패하고 경제가 파탄지경이라 어차피 열국의 지원을 받지 않 으면 자립할 수가 없네. 자네가 민심을 모르고 대세를 거스리는 발언을 하면 세상 으로부터 비웃음을 살 것이네.
나: 흥, 그 따위 현실 처세론은 생각 없는 개 돼지에게나 적용되는 것이지, 인간에게는 통용되지 않는 법일세.
유생3 어허, 지금 시국의 대세를 모르는 미친 놈 말을 들을 필요가 있소?
나 흥, 대세가 잘못 된 것이니 미친 내가 정당하지, 잡놈아.
유생4: 이노옴- 황제가 합방을 허용한 마당에 이 무슨 항명의 발언인고?
나 뭐라고? 황제가 뭐 어째?
유생2: 광무 황제께서 친히 합방의 뜻을 밝히시고 조선 백성은 모두 합방의 대열에 동참 하라는 명을 내리셨네.
나: 아이고, 이럴 수가. 이럴 때는 울라고 하셨어. (청승맞게 운다) 아하이고- (유생2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여보게 어서 허리를 굽히고 울게. 이럴 때는 스승님이 울라 고 하셨네. 아하이고-
유생1: 이놈, 황제의 명을 따르지 않고 자꾸 미친 짓을 하고 통곡을 하는 것은 곧 반역이 아니냐.
나: (울음을 뚝 그치고) 사직이 임금보다 중한지라.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혼미한 상태에서 내린 난명은 따르지 않는 것이 배운 자의 길이다.
유생3 이놈 역적이다! 물고를 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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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생들 달려들어 발로 차고 때린다.
어머니 장부인이 매질 속으로 들어오며 “멈추시오”한다. 일순 매질이 멎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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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부인 내 아들은 아비 없이 자라 후레자식이오. 후레자식을 낳은 것은 에미가 교육을 못 시킨 탓이니 나를 치시오.
유생1: 이놈은 역적의 죄를 범했으니 응당 신고하여 가막소로 보내야 하오.
장부인: 내 아들이 미친 말처럼 날뛴 것 또한 글을 제대로 읽지 않고 눈에 보이는 현실에 연연한 탓이오. 그 죄 또한 부모에게 있으니 나를 대신 보내시오. 이놈 애비는 여 러 분들도 아시다시피 문정공의 12대조 종손 김자 호자 림자를 쓰던 선비로서 여 러분의 글벗이고 선생이었소. (운다) 아무리 그 자제가 경거망동 미친 짓을 한다고 해도, 애비의 이름을 생각해서라도...... 어찌 이렇게 물고를 내고 가막소에 처넣을 생각을 하시오.
유생들: ......
유생1 흠, 그래, 에미가 스스로 죄를 인정한다면, 그 에미에게도 죄가 있다.
유생2 심한 말씀이오.
유생4: 가만있게. (히죽 웃으며) 그렇다면, 에미가 직접 나서서 아들의 죄를 문초하고 반 성토록 하시게. 만일 저놈이 에미의 말에 항복하고 제 죄를 사죄한다면, 가막소에 보내지 않고 에미에게 돌려보내도록 하지. (둘러보며) 어떻소 내 제안이.
유생1: (부채를 척 펴며 기분 좋게) 핫하하, 어서 시작하시게. (심산을 끌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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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부인 감정을 억누르고 김창숙을 바라본다.
무릎 꿇은 김창숙, 분노에 찬 시선으로 둘러앉은 유생들을 노려보다가 장부인 과 눈길이 마주치자 푹 고개를 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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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부인: 네 죄를 아느냐?
나: ......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장부인 그럼, 내가 일러주마. 너는 학문하는 선비로서 글을 깊이 읽지 않고 얕은 지식으 로 성급하게 세상과 만나려고 했으니, 네 가벼운 지식이 쉽게 세상과 부딪치고 깨어져서 스스로의 혼란과 모순에 빠졌다.
나: (고개를 주억이며 운다) 세상에 그런 선비가 어디 있소. (가리키며) 온통 가짜 선 비들이 시속의 이권에 눈이 멀어 이리 붙고 저리 몰리면서 야합을 하는 마당에 미치지 않고 배길 수가 있습니까.
유생들, 또 흥분하면서 삿대질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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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부인: 그 말 또한 모순이 있다. 너는 시속의 이권에 눈이 먼 가짜선비들을 성토하고 비 판하면서 스스로 화를 불러 들인게 아닌냐. 그렇다면, 가짜를 비판하는 너는 대체 누구냐? 너는 무엇이냐? 너는 진짜 선비의 길을 가고 있느냐? 네가 꿈꾸는 선비 는 어떤 모습이냐? 미친 거지꼴을 하고 저자거리의 파락호로 떠도는 것이 진정 한 선비의 모습이더냐?
나: ......
장부인: 너의 지식이 깊지 못하여 정작 자신의 존재는 생각지 않고, 남과 세상에 대한 비 판과 원망에 가득 찼으니, 오호라, 이게 책 읽는 사람들이 가장 빠지기 쉬운 회의 론이구나.
김창숙, 고개를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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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부인: 그런 회의론은 난세를 더욱 어지럽게 부채질 할 뿐, 생산적인 방책을 강구해 내지 못한다. 너는 더 이상 그런 얕은 지식의 함정에 빠지지 말고, 스스로 너 자신을 유 용한 인물로 일으켜 세워야 할 것이다, 그럴 용의가 있느냐?
나: (통곡하며 엎드린다)
장부인: 이 다음부터 또 이런 행패를 부리고 다니겠느냐?
나: 아니옵니다, 아니할 것입니다. 어머니.
장부인 (고개를 돌려 둘러선 유생들에게 말한다) 이 아이가 새 사람 되기를 맹세하고 엎 드려 복죄하였으니...... 부덕한 아이를 에미에게 돌려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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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생들 헛기침을 하며 일어선다.
:
유생1 (나에게 묻는다) 너는 어찌 생각하는고?
나: (고개를 든다. 담담하게) 더 이상 세상사를 묻지 않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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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생들 일제히 기침하며 도포자락 휘날리며 사라진다. 장부인도 퇴장.
김창숙, 넋을 잃고 허공을 응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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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독백)나는 누구냐? 나는 누구냐 나는...... 누구냐? 도대체, 나는, 누구냐?
나의 외침이 에코로 번지며 암전되면 어둠 속에서 학동들의 노래소리 들린다.
학동들의 노래/(作唱)
(여학동) 높게 솟은 저 성산
뾰족한 칠봉
그곳의 우리 밭은 누가 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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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학동) 높게 솟은 저 성산
창창한 사월
뽕나무와 가래나무
누구 있어 보살피리
:
:
3장. 장서(長書)를 품은 뜻
:
무대 다시 밝아지면 평상 위에 남녀 학동들 줄지어 앉아 책을 읽고 있다.
<晴川書院> 현판이 뒤에 보이고 창숙, 학동들을 가르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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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동들,같이)
높게 솟은 저 성산
쭈뼛한 동강
그 누대 누가 살며
문을 열건가
돌아 가고 싶은 마음
걷잡을 수 없어라
높게 솟은 저 성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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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선조 단군께서 나라 정하신 이래 일월은 화려한 기폭에 빛나고, 효제는 방패, 충신 은 보습, 예의는 다반으로 질서가 발라 백성이 화합했네. 항용 쓰는 말 공맹이오, 항용 부르는 노래 영함이라. 태평세월 오천년 문물 그 얼마나 빛났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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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실, 하수에서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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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실: 오라버니, 한양서 손님이 오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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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사 김정호가 들어선다. 나와 해사가 대화하는 사이 이실이 학동들에게 가서 들리지 않게 책을 들고 대화하다가 해사가 떠날 즈음 아이들을 내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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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한양서?
해사: 교육사업은 잘 되어 가는가?
나: 이게 누군가? 해사. 지대가 낮고 비좁아 아이들에게 불편한 점이 한 둘이 아니네.
해사: 도내 완고한 유림들은 “김창숙이 청천서원을 말아먹었다”고 난리들이네. 핫하하- 왜 문중 유림들과 상의도 없이 학교를 세웠는가?
나: 이 서원은 내 선조 동강선생을 향사하는 사원이었네. 걱정 말게. 내가 어찌 조상 을 잊고 유림을 저버리겠는가. 그러나 만일 유림들과 학교 세울 의논을 했더라면 의논하느라고 세월 다 보내었을 것이네.
해사: (편지를 내 보이며) 이거 만해 선생이 서울서 보낸 전갈이네.
나: 그 분이 벽지의 내게 무슨 볼 일이 있길래......
해사: (주위를 살피며 바짝 다가앉는다) 광무 황제 인산 기일이 내달 초에 있지 않는가. 그때 전국 도내 인사들이 모종의 일을 일으키려 한다네.
나: (편지를 대강 읽고) 나는 자네와 같은 독립거사가 아닐세. 책을 읽고 교육사업을 하 는 본분으로서는 이런 편지 감당키 어렵네.
해사 이미 기운이 성숙했으니 시기를 놓치고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하게. 자네를 유림 대표로 추천했으니 이 길로 곧장 상경하여 거사에 동참하게.
나: ......어머님이 병중일쎄.
해사: (약간 화가 난 듯 큰 기침) 비겁한 선비들은 자주 가족 병환을 핑계로 세상에 나서 기를 주저한다지?
나: 세상에 총질을 해대면서 풍운아로 살아가는 건 자네 길이고 책을 읽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건 내가 가는 길일세. 비교하지 말게. 길은 달라도 뜻은 한 길일 테니 까.
해사 (성큼 일어서서 나간다) 알아서 하게. 허나 뒤에 후회해 본들 그건 전적으로 자네 몫일세.
해사 잰걸음으로 나가고, 이실이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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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실: 오라버니, 무슨 편지오?
나: (편지를 가리키며) 모종의 일을 일으키려 한다...... 기운이 성숙했으니 급히 상경하 라...... 모종의 일이라니? 이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군. 애매하고 피상적이야.
이실: 미리 공개할 수 없는 대사일 때는 이런 표현을 쓰지오.
나: 대사야 딱 한 가지. 세계 만방에 조선 독립을 선포하는 것 뿐이야. 그 때까지 소모 적인 시시비비에 끼어 들고 싶지는 않아.
이실 그보다 더한 대사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휘갈겨 쓴 필치가 수상해요. 오늘 밤 상
경을 하시오.
나: 급할 거 없네. 마실 나가서 사태를 알아볼게. 어머님이 병중일 때 자식은 움직이지 않는 게 도리 아닌가.
이실: 어머니는 제가 돌볼 수 있잖아요.
나: 어허, 경겨망동 말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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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커를 통해 기미독립선언문 낭랑한 음성으로 낭독된다. 낭독 소리 점차 커 지며 멀리서부터 만세 소리 울려 퍼진다. 당황한 창숙, 이실과 함께 하수로 뛰 어나간다. 객석으로부터 사람들,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부르고 뛰어들어 오 고 무대에도 사방으로부터 사람들,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부른다. 이어 총소 리 들리고 사람들, 쓰러지는 사람들을 부축하며 하나둘씩 퇴장할 무렵 창숙, 맥없이 무대로 등장. 이어서 해사, 등장.
나: 민족 대표 33인 명단 속에는 천도교 불교 기독교 다 들었는데...... 유림만 빠졌구 나, 유림만!
해사: 왜 내 말을 듣지 않았는가.
나: 그래, 내 잘못이네. 다 내 잘못이야. 오, 세상에, 이 일을 어쩔거나, 이제 세상은 유 교를 꾸짖어 교활한 선비, 썩은 정신이라 욕할 꺼다.
해사 통곡만 말고 이 치욕을 씻을 길을 찾아야 하네.
나: 그래, 자네는 실천 투쟁가 아닌가. 무슨 방도가 있으면 가르쳐 주게.
해사: 그렇다면 자네 다시 세상에 뛰어들 수 있는가?
나: 날 의심하는 건가?
해사: 그렇다면 나의 생각을 털어놓겠네.
나: 들어보세.
해사: 지금 서울에 거주하는 유교인은 거의 수십만 명에 이르네, 자네와 내가 이들을 단결하도록 공작할 수 없을까?
나: 수십만 유교인을 움직인다? 좋은 생각이네. 그런데 서로 생각이 다른 선비들을 어떻게 움직인단 말인가?
해사: 명분이 있고 유림의 종장이 주동한다면 움직일 걸세.
나: 명분은 충분해.
해사: 유림 종장은 거창 곽면우 선생일세.
:
김창숙과 해사, 훌쩍 훌쩍 두 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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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성주 사는 유생 창숙이, 면우 선생 문안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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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쪽 문이 열리고 병석에 누운 곽면우가 슬며시 몸을 일으켜 김창숙을 내려 다 본다.
:
곽면우 (나오며) 군이 어찌 이제야 오는가? 지난 번 서울의 기미 독립 거사의 전 말을 들었다. 어찌 민족 자존의 거사에 유림이 빠졌단 말인고.
나: 시속을 멀리 하고 책을 읽다 보니 그만 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늦은 때를 한탄하지 않고 대오각성의 기회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젊은 유생들이 독립의 의지 를 모아 파리 만국평화회의에 참여코저 하오니, 선생께서 유림의 독립의지를 친필 로 내려 주십시오. 목숨을 걸고 선생의 뜻을 세계에 전하겠습니다.
곽면우 오호, 이 늙은이는 나라와 운명을 같이해야 할 망국대부로서 죽을 자리를 못 얻어 한스러워 했는데, 자네가 전국 유림을 이끌고 천하 만국에 대의를 소리치겠다니, 이 제 나도 죽을 때를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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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숙이 문방사우와 한지를 면우 앞에 편다.
:
곽면우 다만, 나는 지금 병을 얻어 정신이 맑지 못해서 붓을 들지 못한다.
파리에 보낼 문자는 저 장회당에게 부탁해서 지어 보내도록 해라.
곽면우, 퇴장. 김창숙과 해사, 문방사우를 들고 몸을 훌쩍 돌려 앉는다.
상수 쪽 문이 열리며 회당 선생이 걸어 나온다.
:
회당 (경상도 사투리로) 흥, 군이 서울서 내리올 적에 내 집 앞을 지내면서도 들리지 않 았다카이, 우예 그럴 수가 있는가. 군이 방금 천하사를 논하면서 먼저 나에게 알리지 않은 것은 내캉 일을 함께 할 수 없다는 뜻인가?
나: 회당선생이나 면우선생나 유림의 지존이시온데 회당선생을 먼저 하면 면우선생이 소홀해지기 쉽고 면우선생를 먼저 하면 회당선생이 소홀해지기 마련입니다. 소생은 면우선생를 먼저 했고, 먼저 한 면우선생이 회당선생을 지목했으니, 이 또한 아름다 운 관계 아니겠습니까. 노여워 마시고 글을 내려 주십시오.
회당 자네는 면우를 찾아갔고 면우가 내게 글을 부탁하시더냐?
해사: 그렇소이다.
회당: (기분이 좋아져서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허허, 참 그 어른 한 필치 써 주시지 왜 내 게 번거로운 일을 맡기시나.
해사: 면우선생은 지금 병중이십니다.
회당: 알고 있네. 그 어른 이제 글을 내릴 수 없으실 게야, 어디 보게. 이게 내가 할 일이 라면 마다할 수야 없지 않은가.
나/해사 과문불입을 용서하시고 글을 내려 주소서-
:
회당, 금방 글을 휘갈겨 써서 내민다. 김창숙과 해사 글을 받아 들고 일어선다.
회당, 돌아서다가 문득
:
회당: 가만, 면우선생에게 먼저 보이고 사용하게. 그 양반 쓰지는 못해도 읽을 수는 있잖 은가. (헛기침) 내 생각에는 수정할 곳이 없지만...... 면우선생이 한 자 거든다면 어쩔 수 없잖은가. (엇험)
:
회당, 사라지고 김창숙과 해사가 한 바퀴 돌아 앉으면
면우가 문을 열고 나오며 빙그레 웃는다. 회당의 글을 내미는 김창숙.
면우: (읽으며) 이 글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 이와 같은 글은 일종의 외교서한이라 영어 불어 등 각국 말로 번역 돼야하는데 회 당 선생의 글은 너무 관념적이라 현실을 선명하게 드러내지 못합니다. 선문답같이 현실을 생략하고 건너 뛰어 버리면 외국인들이 우리 사정을 이해하기 힘들지오.
해사: 회당 선생이 일단 선생께 보이고 한 자 거들라 하셨습니다요.
면우: 그래?
:
면우 언제 아팠냐는 듯 성큼성큼 걸어 내려 온다. 글을 보더니 사정 없이 지우고 첨삭하면서 말한다.
면우 한 자 거들라 했으니 잘못은 없으렸다. ( 글을 내주며) 이로서 자네들은 둘로 갈라졌 던 영남 유림의 뜻을 하나로 모았네. 핫하.
면우, 걸어 들어간다. 김창숙과 해사, 머리를 조아린다.
:
해사: 자, 가세.
나 어머니를 만나야겠네.
해사: 대사에 가족은 금물이네.
나: 나는 선비네. 부모 공양을 못하면서 대사를 논할 수는 없지.
:
두 사람 공중을 돌며 각자 헤어진다. 엎드려 부복하는 나.
나 소생 어머님의 뜻을 받들어 5년을 책방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배운 뜻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왔으니 길을 떠날까 합니다.
:
하수쪽 문이 열리면서 장부인이 기침을 하며 몸을 일으킨다. 누이동생 이실이 장 부인을 부축하며 따라 나온다.
:
장부인: 네 동생을 통해 전말을 다 들었다. 가사를 잊고 길 떠나거라.
나: 이 길이 만리행이라 후일을 기약할 수 없습니다, 병중의 어머니를 떠나게 되니, 이 불효를 어찌 하오리까.
장부인 (作唱)
너는 이미 나라 사람
국사에 몸을 허락하니
네 몸은 이제 네 몸이 아니오
내 아들이 아니다
너는 이제 나라 사람
천하 경영을 꿈꿀진저
가시밭길 걸을 때 발이 아파도 그건 네 발이 아니니 아플 수가 없고
철창 감옥에 갇혀도 두려워 말아라
창숙, 어머니에게 절하면 장부인, 퇴장. 밖에서 호루라기 소리.
:
이실 오라버니, 어서 떠나요. 왜경들이 곧 들이닥칠 거예요.
나: 아니다. 해사가 이리로 올 것이다. 함께 떠나야 하느니라.
이실: 오라버니 먼저 떠나세요. 감천강을 건너가 게시면 제가 뒤따라 해사를 안내할
것입니다. 어서 서두르세요. 한시가 급해요.
나: 그럼 나 먼저 가있으마.
:
김창숙 퇴장. 이어서 해사 등장.
:
해사 창숙, 여보게 창숙이! 어디 있나!
이실 왜 이제 오세요?
이어서 왜경들. 해사, 총에 맞아 쓰러진다.
:
왜경 김창숙은 어디 있느냐!
이실: 방금 떠나셨는데요.
왜경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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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방향을 가리킨다. 왜경들 그리로 퇴장.. 이실, 쓰러져있는 해사에게, 이어서 김창숙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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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해사, 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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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해사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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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아이고호 해사--
이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빨리 북상하지 않으면 왜경들에게 붙들려 개죽음이오.
이분 시신은 내게 맡기고 어서 달아나시오.
김창숙 급히 작은 붓과 먹물 통을 꺼내어 시체의 옷 위에 일필휘지 갈겨쓰기 시작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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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실: 이 무슨 짓이오? 시신 옷에다 글을 쓰시고.
나 이 친구 이대로 보내기는 너무 허망해. 저승 보내는 비문이라도 써 주고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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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곡의 작창) 뱃 속에는 오경이 들어 있고 가슴에는 풍운을 감추었네. 일찍이 조국광 복의 꿈을 품고 시베리아 벌판을 두루 돌더니만 성주골 무명선비 창숙의 눈을 열어 파리장서 품고 만리를 가잤더니. 뜻이 있어도 펴지 못하고 길 위에서 죽었도다. 어허이구-
유생들 해사, 해사-
이어 유생들 들어와 상여 나간다. 김창숙과 이실 뒤따른다.
(作唱)
내 어찌 차마 말하랴
옛 우리 삼한나라
눈물이 뿌려질 제
간담도 떨리어라
묻노니 이천만 동포여
무슨 낯이 있기에
좋은 강산이라
즐겨 노는가 즐겨 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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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들어 바라보라
거센 파도 몰아쳐
하늘에 맞닿은 것을
구멍난 배에 실려
울부짖는 소리
한창인데
후렴소리 높아지고 암전. 유생들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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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광활한 대륙 아름다운 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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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고동소리 들려온다. 무대 중국으로 바뀐다. (자막) 1919년 3월 27일 상해. 신채호, 김구, 이시영, 김창숙이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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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 유림의 장서를 지니고 파리로 가겠다고? (불 들어온다) 이런, 쯧쯧, 애석한 일이 있나. 우리 상해 임시기관에서 이미 민족대표로 김규식을 파리로 보내었네.
나: 아니, 벌써 갔어요?
이시영 이미 7, 8일 전에 상해서 출발하였네. 그대가 일주일만 빨리 왔어도 같이 보내는 건데. (단재를 보며) 유림은 항상 한 발 늦어. 이게 문제라니까.
나: 아니되오, 면우 선생이 보낸 이 장서는 조선 유학의 정신이오! 나는 가겠소, 망망 대해 쪽배를 타고라도 가겠소!
이시영: 그대는 서양말을 아는가?
나: 모르오.
손영직 서양말을 아는 이와 동행할 사람은 있는가?
나: 없소.
이시영: 이는 장님에게 길잡이가 없는 격이다. 길잡이가 없는 장님은 자기 동네도 출입하 기 어려운데, 어찌 몇 만리 밖 서양에 가려는가?
나: 그대는 누구요? 그대는 어찌 유림의 의사를 은근히 무시하고 희롱하는 가?
이시영: 나? 나는 이시영이란 이름을 쓰는 사람이고 이쪽은 단재 신채호일세.
나 아이구, 민족 지사들을 몰라 뵈었습니다.
김구: 만나서 반갑소, 나 김구요.
나: 당신이 그럼 백범? 반갑소. 나 김창숙이외다.
김구: 잘 왔소.
손영직 나 손영직이라 하오.
나: 반갑습니다.
단재: 그대는 서양 행을 중지하고 휴대하여 온 글은 서양말로 번역하여 우편으로 파리 평화 회의에 보내는 것이 어떤가.
나: 아니, 우편물 보내려고 내가 상해까지 온 줄 아시오?
단재: 적수공권으로 파리에 가는 고생을 하느니 여기서 번역 인쇄하여 파리에도 보내고 각국 대사, 공사, 영사관 및 중국의 각계 정계 요인들에게 보내고 또 해외 거주 동 포에게 살포하는 것이 효과적인 운동 아니겠는가. 이제 유림도 애국운동에 대해 좀 대중적이고 합리적인 방도를 찾아야 할 것이네.
나: ......응, 가만 생각해 보니 그 말도 맞소. 그런데, 그런 일을 누가 해 주겠소. 아는 사람도 없고 노자도 떨어질 판인데......
이시영 지금 우리는 중국을 독립운동의 근거지로 삼고 있으니 중국인과의 교제는 매우 중 요한 일이오. 그대가 유림 대표라면 한학에 조예가 자못 깊을 터이니 여기 있는 단 재 백범 등과 더불어 중국 외교를 개척해 주는 것이 어떻겠소?
나: 하지만 나 중국말 못하는데.
단재: 예끼 이 사람, 농담도. 자네가 여태껏 배운 게 중국어 아닌가. 글로 써서 안 통할 게 없지.
나: 아, 참 그렇지. 나는 한문이 여태껏 조선어인줄 알았지. 헛헛허.
일동 핫하하.
단재 자, 유림의 뜻을 펴 보게.
김창숙, 장서를 조심스레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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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 면우선생의 필체군. (김창숙을 보며) 자, 읊어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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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숙, 먼저 읽으면 나머지 사람들 돌아가며 차례로 읽어 나간다. 배후에 중 국어, 영어, 불어 소리와 함께 요란한 타자 소리 함께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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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 파리장서는 3.1 기미 독립운동이 발발하여 민중의 만세소리가 조선 천지에 고조 되고 있음에, 조선 유림 137인의 연명으로 파리만국 평화회의에 보내는 선언문이외 다.
단재 첫째, 천지자연의 법칙 속에 모든 인류는 제 나름의 삶의 양식이 있다. 각국은 제 각기 다른 전통과 습속이 있어 남에게 복종이나 동화를 강요받을 수 없다.
이시영: 둘째, 모든 생물은 제대로의 능력이 있다. 남이 대신 관리하거나 통치해줄 필요가 없다.
김구: 셋째, 우리 조선은 비록 작은 나라지만 삼천리 강토 이천만 인구 사천 년 역사를 지닌 문명의 나라이며, 자국 스스로의 정치원리가 있다. 일본의 간섭은 전혀 배제되 어야 마땅하다.
손영직 넷째, 그런데 일본은 사기와 포악한 수법으로 독립을 보호로 보호가 병 합으로 변했다. 일본의 교활한 술책은 우리 조선이 일본에 붙어살기를 원한다고 허위 선전까지 하고 있다.
단제 다섯째, 우리는 지금 거족적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만국평화 회: 의가 우리의 희망이고 폴란드 독립 소식이 우리를 고무시킨다. 이에 우리는 뜻을 모아 천애만리에 이 글을 보내 우리의 입장을 밝힌다. 만국평화회의는 세계평화를 위한 거룩한 모임이다. 죽음으로 투쟁하는 우리 이천만 생명의 처지를 통찰해 줄 것으로 믿는다. 이만 총총.
모두: 조선 독립 만세! 만세! 만세!!
사진사: 자, 여기보세요. 하나, 둘, 셋! (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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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직을 제외한 나머지,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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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직: 여기는 할 일이 오히려 조선 국내보다 많소이다. 지금 조선의 학생들이 망명하여 상해에 와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형편이 어려워 공부도 못하고 있다 합니다. 그대 가 이 학생들 교육을 좀 맡아줄 수 있겠소?
나: 교육이라면야 제가 고향에서도 한 5년 했던 사업이니까 제가 맡을 수 있습니다. 학생들을 보내 주십시오.
손영직: 어려운 짐을 선뜻 맡아주시겠다니 고맙소.
나: (환희에 찬 표정) 이, 얼마나 즐거운 짐이오. 유학은 원래 치국평천하에 이르는 광 활한 실천의 도가 아니오. 내 고국은 그 길이 막혀 날 술 마시게 했고 미친 지랄 을 떨게 했지. 그러나 이제 여기서 때를 만났으니, 아, 이 살아있는 느낌아, 너 정 말 아름답고나, 핫하하.
손영직 그리고 또 하나 좋은 소식도 있소. 중국 혁명가요, 대 사상가이신 손문 선생이 조 선에서 온 유학자를 만나 보고 싶답니다.
나 저...를...요?
손영직 그렇소, 김창숙 당신.
나: 이럴 수가... 이건 근대의 공자를 만나는 격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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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인트로메쪼 음악과 함께 상수 단 위에 책을 들고 선 손문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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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문 근래 신문을 통해 귀국에 혁명운동이 일어났음을 알고 기뻐 잠을 못 잤습니다. 대 저 나라가 망한 지 채 10년도 못 되어 이런 혁명이 일어난 일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드문 일입니다. 조선은 곧 동양의 발칸반도라 조선이 안정되지 않으면 대륙이 위험 해 집니다. 중국이 조선을 후원해야 하는 이치는 바로 여기에 있지오. (김창숙에게) 당신은 지금 무슨 일을 맡고 있습니까?
나: 상해 임정 의정원 의원으로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에는 사실 관심이 별로 없고, 주 로 신문 잡지에 글쓰는 일, 후원금 모금하러 강연 다니는 일, 학생들 합숙시키고 강 습하는 일 등을 하고 있습니다.
손문: (빙긋 웃는다) 그렇다면 당신이야말로 진정한 정치가요. 당신 같은 정치는 붕당에 매어 있지 않는 대국민 정치요, 열린 정치지오.
나: 과분한 말씀에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손문 (한숨을 지으며) 정치가들은 정작 자신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지오. 사상이 없고 국민운동이 없는 정치는 붕당정치요, 패권정치지오.
나: 선생님의 가르치심에 감읍하고 있습니다.
손문 (책을 건네주며) 이 책은 나의 30년 혁명운동 실제를 기록한 책입니다. 귀하의 투 쟁에 참고가 되길 바라오.
나: (책을 받아 들면서) 아하, 이 책이 바로 <손문 학원>. 이 책을 저자에게서 직접 받 다니 황송합니다.
손문: 안녕히들 가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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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가 신문을 들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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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심산, 자네 모친이 안동 장씨 부인인가?
나: 그러한데요?
김구: 여기 만주일보에 기사가 났어. 자네 모친이 정월 초이렛날 별세하셨다는 구먼.
나: (돌연한 충격)
김구: 만주일보라면 친일 모리배들이 득실거리는 곳이니까 신빙성이 없어. 국내에 잠입 한 밀사 쪽으로 알아봐서 사실이라면 여기서 성복을 하세.
나: 그럴 필요 없습니다. 제가 다녀오지오.
김구: 다녀오다니?
나: 나 집에 다녀올라요. (하며 나가려는데)
김구: 예끼, 이 사람! 지금 우리 혁명동지 가운데 이런 일을 당한 이가 어디 한둘인가? 자네는 지금 임정 의원으로서 공인의 길을 걷고 있는 신분일세. 사세가 부득이하여 분상을 못하는 걸 죽은 모친도 이해해줄 걸세.
나: 내 어머니는 단순한 어미가 아니오, 파락호인 날 오늘의 인간으로 교육시킨 큰 선 생이란 말이오. 내 분상을 마친 후 왜경들에게 붙들려 감옥에 가는 일이 있더라도 나는 가야하오.
김구 자네 모친이 정녕 그런 분이라면 죽은 혼이 되어서라도 자네가 오기를 원하지 않 으실 걸세. (뒷짐을 지며) 정녕 그런 분이라면 죽은 고혼이 되어 이미 압록강을 넘 으셨을 테지. 이리로 오고 계실지도 모르잖나.
나: 아이고호- 어머니. 아 슬픕니다. 소자의 불효, 천지에 용납되기 어렵습니다. 아하 이고!
김구 (김창숙을 끌어안으며) 심산, 자네 곡 소리를 들으니 나도 돌아가신 우리 어머님 보고싶네. 아이고호 보고싶어라 우리 어머니 엉어엉-
나: (눈물 콧물을 닦으며) 이러지 마시오. 흰 범이 어린애처럼 울어서 되겠소.
김구: 아이구, 우리 어머니 보고 싶어라. 으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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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이상재, 김활란, 도산 안창호, 김달하를 대동하고 들어온다.
이상재: 잘 계셨소, 백범. (눈물을 닦는 김구를 보고) 아니 웬 눈물이오?
김구: 돌아가신 어머니가 보고싶어서 좀 울었습니다.
이상재: (옆에 선 김활란을 보며 익살) 김활란 여사, 방에 데리고 들어가 젖 좀 먹이고 나오시오.
김활란 이 영감 또 웃기네. 이제 그만 철 좀 들 때 안되었소.
이상재: 내 방 벽에 똥칠할 때쯤 되면 철들게, 헤헤
김구: 인사드리게. 월남 이상재 선생일세. 이 사람이 조선 유생 출신 심산 김창숙일세.
이상재: 유자를 어떻게 써요?
나: 예?
이상재 나약할 유- 헤헤, 아닌가? 하여튼 유자들은 나약하고 겸손만 할 줄 알아서 물러 서서 피하는 것만 배운단 말이야. (힐끗 보고) 그리고 심심하면 울어...... 왜 상 당했소?
나: 예, 모친 별세 소식을 듣고 있습니다.
이상재: 응, 내가 기도 드려줄게. 하나님 아버지 계시는 천당에 가셔서 재혼하라고 히히.
안창호 그만하시게.
김구 (김창숙에게) 인사드리게. 이 사람이 도산 안창호 선생이시네.
나: 아이구, 말씀만 듣다가 이제 뵙습니다.
안창호 교육사업에 관심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여기 김활란 여사는 특히 여성 교육에 관심이 많으십니다.
나: 여성 교육이야말로 교육 사업의 근본이지요. 참으로 큰 일 하십니다.
김활란: 부끄럽습니다. 생각만 있지 아직 해놓은 것이 아무 것도 없답니다.
나: 별말씀을.
이상재: (사뭇 정중하게) 참, 이 사람 인사 받게. 김달하라고, 나가 요즘 이 사람 신세지 고 살어.
김구: 반갑소.
김달하 저는 오로지 학식도 식견도 없습니다. 그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푼돈이 좀 있어서 지사분들 도와 드리고 있지오.
김구: 자 다들 들어갑시다.
김달하 소인은 그냥 여기 있겠습니다.
이상재: 그래, 우리끼리 할 이야기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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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숙과 김달하만 남는다. 살그머니 곁에 다가 서는 김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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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달하: 모친상을 당했다구요?
나: 그러하요.
김달하: 그럼 당연히 고향에 가셔야지오.
나: 알다시피 내가 불령선인이라 못 가고 이렇게 낙루하고만 있소.
김달하: (혀를 차며 주위를 한번 돌아본다) 그래도 들어 가셔야지오. 유림이라면 경학원 을 통해 들어가면 안전한 길이 있소이다.
나: 경학원이라면 성균관 말이오?
김달하: 그렇지오, 거기 유생들은 보호를 받고 있어요. 그쪽으로 통해서 들어가시면 모 친상을 치르게 도와줄 거요.
나: (흥미 있는 듯 다가앉는다) 어떻게 날 좀 도와줄 수 있겠소?
김달하: (슬쩍 주위를 살피며 귀엣말) 내가 조선인 입장으로 독립혁명 운동을 도와주고 는 있지만, (혀를 찬다) 자기 식생활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하는 독립운동이 성공 할 리 있겠소? (창숙의 손을 잡으며) 무엇 때문에 이렇게 고생하신단 말씀이오. 차라리 이번 기회에 귀국할 결심을 하십시오. 내가 도와 드리리다.
나: 당신이 어떻게 도와줄 수 있단 말이오? 귀국할 여비도 문제지만 그보다 왜경의 눈을 어떻게 피할 수 있겠소?
김달하: (둘러보고 낮은 속삭임) 정말 귀국할 의사가 있소?
나: (낮게) 그렇소. 날 좀 도와주겠소?
김달하 (낮게) 좋소. 내가 선생의 귀국 절차를 조선 총독부에 보고하여 승낙을 얻어 놓 겠소.
나: (더욱 낮게) 조선 총독부라면... 당신은 바로 일본 밀정 아니오?
김달하: (손가락을 입술에 대며) 쉬잇! 낮말은 새가 듣소.
나: (더욱 낮게) 내가 들었다, 이 개자식아! (벌떡 일어나며) 밖에 누구 없느냐.
여기 이놈은 일본 밀정이다아- 누구 없느냐아-
김달하: 이, 이 쳐 죽일 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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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 달아나려는데, 김창숙 김달하의 옷깃을 잡아 당기며 소리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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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숙: 밀정 잡아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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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달하, 김창숙을 발로 차서 넘어 뜨리고 달아나는데 뛰어든 다물 단원 귄총으 로 김달하를 사살한다. 단에서 내려오는 김구와 이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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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숙: (다물단원을 보고는 놀라서) 하아이구, 이건 또 뭐야?
김구: 두려워 말게. 저 사람은 우리 다물 단원일세. (월남에게) 저 김달하란 인물은
일본 밀정인 줄 나는 진작 알고 있었네.
이상재 어허, 이 사람. 그럼 왜 내게 일러주지 않았는가? (김창숙을 보며) 자네 참
대단한 강골일세. 역시 유자는 나약할 유자는 아닌 것 같애. 하하하..
나: (다물단원을 보며) 허 참, 거, 보기 조오타. 역시 무사는 문사와 다른 멋이 있어.
우리는 저런 무사도 길러내야 한다구.
김구: 예끼, 이 사람, 자네가 무슨 재주로 무장 독립 운동에 뛰어들겠다는 건가?
나: 글 읽는 선비라고 무장 투쟁을 하지 말라는 법이 있던가?
이상재 허허, 이 사람. 자네는 그렇지 않아도 이 중국 땅에서 박은식과 신문 일을 하고 단재와 잡지를 내고 독립후원금 모금하러 다니고 또 조선에서 온 학생들 교육까지 책임지고 있으면서 이제 무장투쟁까지 나서겠다니 욕심이 지나친 것 아닌가?
나: 그러나 지금 조선 땅에서는 독립의 의지가 점점 꺼져가고 있단 말이오. 이 잠든 민 중들을 일깨우려면 보다 과격한 투쟁이 반드시 필요한 시점이오.
김구: 거 총 쏘고 사람 죽이는 일도 쉬운 게 아니야. 무관 학교에서 훈련받고 몇 년간
실전 경험이 있어야 하는 거이야. 자네가 만일 무장운동에 가담하겠다면 먼저 자금 을 구하고, 그 자금으로 무기를 구입하고 훈련된 의열 단원을 키워 보게. 지금 우리 단원들은 뜻이 있고 능력이 있어도 무기가 없고 군자금이 없어서 놀고 있는 형편이네.
나: 내 손으로 무장 투사를 키운다. (씽긋 웃으며) 거 해볼 만한 일이군. 쇳불도 단김 에 빼랬다고 내 당장 떠나겠소.
김구: 어디로?
나: 고국땅으로 들어가서 자금을 구한 뒤에 무장 독립투쟁을 하려오. (퇴장)
이상재 허허, 저 사람 기어코 일을 내겠구만.
김구: 저 고집을 누가 꺾겠소. 부디 몸이나 성하길 바랄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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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전. 어둠 속에서 다시 뱃고동 소리 들리며 이어서 광복군의 군가 소리 들린 다. 조명 들어오면 무대 위에 의열단원들 도열해 있고 뒷줄에 여성들 태극기를 손에 들고 이들의 장도를 기린다. 창숙, 가방을 들고 상수쪽에서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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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석주: 어서 오시오. 의열단원 나석주라고 합니다. 이쪽은 이승춘, 한봉근 동지입니다.
나: 나 김창숙이라하오. 간신히 배편을 마련하느라
좀 늦었오. (품에서 권총을 꺼내 주며) 자네가 필요한 게 이건가?
나석주: 그렇소이다.
나: (들고 온 가방을 내려놓고 연다) 여기 도시락 가져왔네. (던지면서) 이게 다 폭 탄이라며?
나석주: (받으며) 헛허, 함부로 만지지 마시오.
나: (품에서 전대를 꺼낸다) 이건 거사 자금이오.
나석주: 내가 할 일은 뭐요?
나: 흠... 먼저 동양척식회사. 그거 박살내게. 그게 우리 조선의 피를 다 빨아먹고 있 잖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