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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와 장애
마타 러셀 지음, 조영학 옮김, 동아시아 2022.
들어가는 글
자본주의와 장애인 권리운동 –마타 러셀과 라비 말호트라
장애란 전통적으로 개인의 비극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스스로 극복하거나, 의료 문제로서 개인이 알아서 치료해야 한다. 그러다가 1976년 영국에서 ‘차별을 반대하는 신체장애인연합’(UPIAS)이 “장애란 우리의 결함에 덧씌워진 굴레다. 그로써 우리는 부당하게 전적인 사회 참여에서 배제되고 격리된다”라고 주장함으로써 의미 있는 진보를 이루었다. 그 후 장애 활동가들 사이에서 “장애인을 불구로 만드는 것은 바로 사회다”라는 인식이 빠르게 확산했다.
장애의 사회적 모델 덕분에 기존의 정의를 재고할 필요가 생겼다. 과거 생물학적 또는 물적·인류학적 정의에 따라 장애인을 노동력에서 배제하는 것이 당연하고 심지어 정당하다고 여겼으나, 마침내 그런 식의 주류 개념들에 심각한 결함이 있음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시의 세계보건기구(WHO)는 손상impairment(시각장애, 청각장애, 이동성장애 등의 상태를 의미)을 생리학적 문제로, 장애disability를 손상으로 인한 기능 및 활동의 제약으로, 그리고 결함handicap은 “손상 또는 장애로 인한 불이익으로 역할 수행을 제약하거나 방해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런 개념들은 장애의 사회적 모델 이론가들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다. 기본적으로 장애를 의학적 개념으로 바라보고, 생물/생리학적 정상 개념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이 불이익이 발생하는 환경을 중립적인 것으로 단정하고 있다. 장애인에 대한 이런 접근법은 결국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장애를 장벽이 아니라 불가피하거나 감내해야 하는 조건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애 개념을 정치경제의 산물로 재규정하려면 ‘소수minority’ 모델의 한계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소수 모델은 장애를, 장애를 유발하는 사회적·구조적 환경의 산물로 여긴다. 이런 견해에 따르면 장애인이 직면하는 문제는 다른 사람들의 편협하고 차별적인 태도에서 기인하므로, 그러한 태도를 제거하기만 하면 사회가 ‘다름’을 인정하고 평등이 꽃을 피우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접근방식은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견고한 사회적 관계야말로 장애인이 겪는 장벽, 배제, 불평등이라는 사실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그와 반대로, 우리는 장애가 노동관계에서 비롯한 사회 기반 범주에 속하며, 자본주의 특유의 착취구조가 빚어낸 산물이라는 견해에 동의한다. 자본가 계급이 부를 축적하는 과정에서 소위 ‘장애’의 몸을 만들어 내고 억압하는 구조인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장애는 자본주의에 내재된 주요 모순에 속한다. 따라서 이를 인정하지 않는 장애인 정책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전략일 수밖에 없다. 아니, 더 나아가 문제 자체를 은폐하려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의도라 하겠다.
초기 자본주의와 장애인의 상품화
초기 장애인(여기서는 장애인의 요구에 따라 편의가 제공되면 일할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한 억압은 임금노동자로서 착취에서 배제되었다는 데 있다. 장애인이 비장애인보다 노동 참여 비율은 낮고 실업률과 파트타임 취업 비율이 높다는 연구 결과는 얼마든지 있다. 미국의 경우 노동연령 인구의 79퍼센트가 취업을 원하지만, 2000년 16~64세 장애인 중 불과 30.5%만 노동력에 포함되고 취업자는 27.6퍼센트에 불과했다. 반면 같은 연령대의 비장애인은 82.1퍼센트가 채용(78.6퍼센트)되거나 실제로 구직활동을 했다. 직업이 있다고 생활수준이 빈곤선을 넘어서는 건 아니지만 장애인은 역사적으로 노동력에서 배제됨으로써 가난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 장애인이 현재 빈곤선 이하로 생활하는 비율은 거의 세 배에 가깝다. 비장애인은 10퍼센트 수준인 반면, 장애인은 29퍼센트에 이른다. 미국의 장애인은 3분의 1이 연 소득 1만 5,000달러에 못 미치는 가정에서 살고 있으며, 개발도상국의 경우 3억에서 4억 명은 취업 기회도 매우 적고 생활수준도 비참한 상황이다. 물론 사회안전망도 거의 없다.
이런 상황과 결과는 사적 유물론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중세에는 경제 착취가 직접적이고 정치적인 형태로 이루어졌으며, 토지 소유의 봉건적 집중으로 가능했다. 소수의 영주가 잉여를 차지하는 동안, 영지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 노동을 해야 했다. 그리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장애인도 경제에 참여할 수 있었다. 장애인에 대한 종교적 미신과 참담한 박해가 있기는 했어도, 산업혁명 이전의 농업 생산 과정은 장애인의 참여를 허용하고 일상적 경제에도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었다.
자본주의 도래와 더불어, 사람들은 땅이 아니라 일자리를 찾아 나서야 했다. 노동을 해서 임금을 받거나 아니면 굶주려야 한다. 그리고 생산이 자동화하면서 얼마나 기계처럼 일하느냐에 따라 인간의 몸값이 정해졌다.
기업가들은 보다 빠른 속도로 생산해 내기 위해 장애인 노동자들을 내쫓았다. […] 노동이 점차 분업화하면서 인간의 몸은 기계처럼 정교하게 움직이고 더 빠른 속도로 똑같은 동작을 반복해야 했다. 당연히 장애인들(청각장애, 시각장애, 정신장애, 이동성 장애 등)은 직무 조정을 통해 개개의 장애를 보완하지 않는 한 생산활동에 ‘부적합’한 것으로 여겨졌으며, 따라서 점점 유급 노동 현장에서 밀려났다. 그리하여 19세기 장애인들은 노동시장의 밑바닥으로 쫓겨났다.
산업자본주의는 무산계급 외에 ‘장애’라는 새로운 계급을 만들어 냈다. 장애인은 표준 노동자의 신체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노동인구에서 제거되고 임금노동에서도 배제되었다. 그 결과 장애인은 사회문제로 전락하고 구빈원, 보호시설, 교도소, 구제기관, 특수학교 등에 격리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대두되었다. 주류의 삶에서 완전히 격리하겠다는 뜻이다. […]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선진 산업국가들에서 복지정책이 확대되며 장애인에 대한 이율배반적 경향이 드러났다. 정부의 사회복지 프로그램이 확대되는 한편, 복지 수혜자들의 삶을 통제하려는 시도 또한 커진 것이다. 특히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이 여기에 속했다. 영국의 베버리지 보고서(1942년 경제학자 베버리지가 작성한 사회보장 연구 보고서로,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대표적인 복지 이념을 담고 있다_옮긴이)는 이 프로젝트를 상징하는 바,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이고 가부장적인 시스템을 그려냈다. 이 체제에서 백인 남성 비장애인 노동자는 최우선 생계 책임자가 되었고, 기혼 여성은 가정에서 일했다. 다만 장애인은 의학적 문제로 치부해 전문가들에게 떠넘겼다. 복지정책이 상대적으로 미비한 미국에서조차 격리 작업장 같은 사회 프로그램 비중이 증가했는데, 이런 제도는 최저시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으로 장애인 노동자를 착취했다. 우리는 이를 소위 ‘과도한 독재’라 부르는데, 이는 복지국가의 관료주의에 필연적이다. 그들은 장애인을 국가 정책의 대상으로 삼고 “장애인 고객”이라 불렀다.
장애의 의료화와 분류 도구는 ‘무능력’과 능력‘을 구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여기에서 장애는 중요한 ’경계‘ 범주로 작용해, 사람들을 분배의 ’노동기반 체제work-based system’ 또는 ‘요구기반 체제needs based system’로 분류했다. […] 장애 범주는 초기 자본주의에서 착취 방식을 구축하는 데 큰 역할을 했지만 지금도 노동 공급을 통제하는 국가 수단으로 적극 활용되고 있다. 치료가 어려운 사람을 장애의 관리 범주로 격리하고, 소위 비정상을 바로잡는 방식으로서 의학은 착취 비중이 낮은 노동자를 주류 노동력에서 배제하는 데 협조했다.
자본주의가 노동자들을 임금관계로 강제 편입했듯, 장애인 노동자를 강제로 임금관계에서 몰아냈다. 장애인 노동자들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근본적인 경제 차별을 당하는데, 그 차별은 고용주가 생산비용의 추가 지불을 거부하는 데서 비롯한다. 비표준(장애인) 노동자를 고용하거나 고용을 유지하려면, 직무 조정이 필요 없는 표준(비장애인) 노동자들과 달리 통역인, 스크린 리더, 환경 조정, 책임보험, 최대 건강관리 담보 보험(활동 보조 서비스 포함) 또는 일반 건강관리 담보 보험 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장애’는 사회적 산물이다. 사회는 누구에게 일자리를 주고 누구에게 주지 않을지를 결정하는데, 그 의미는 경제활동 수준에 따라 달라진다. […]
피고용인의 비용 부담 때문에 현 생산 수준에서 수익 창출에 도움이 안 될 경우 고용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인구조사국 자료에 따르면 노동연령 인구에서 장애가 없고 직장이 있는 비율은 5분의 4인 반면 중증장애인의 경우는 4분의 1을 겨우 넘는다.
고용주와 투자자들은 현재의 노동체계를 유지하고 싶어한다. 지금의 체계에서는 장애인 고용에 따른 비표준 비용을 떠안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결국 현재 주류 노동력에 속하지 않고 장애급여 등 사회복지에 의존하는 장애인 노동자들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적절한 직무 조정이 없는 한 고용주의 사업비용에 들어가지 않는다. 장애급여 체계는 따라서 자본가들이 합법적으로 비표준 노동자를 고용하는 대신, 채용에 따른 부담을 ‘떳떳하게’ 정부 프로그램에 전가하는 수단으로 작동하며, 이로써 장애인의 빈곤을 고착화한다.
하지만 ‘장애인’으로 분류된 장애인이 장애급여로 연명하면서 겪는 빈곤은 또 하나의 계급 기능으로 작동한다. 이 때문에 노동자들은 장애가 발생하는 데 대한 실질적인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사회안전망이 위태로운 근본적인 이유는 소유계급이 자칫 생산수단을 적절하게 통제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직업윤리는 일종의 사회 통제 메커니즘으로 작동해, 자본가들이 확실히 수익을 챙기도록 노동력을 확보해 준다. 사회안전망을 제공해 노동자들이 실업, 질병, 장애, 노쇠의 두려움을 극복한다면, 노동자들은 보다 확실한 입지를 확보하고 고용 조건을 협상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산업체들이 노동계급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은 노동자들의 빈곤에 대한 두려움을 이용하기 때문인데,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작동하게 된다면 그 두려움도 약화될 것이다.
노동자로서 수익 창출에 이바지하지 않는다 해도 장애인들은 다른 방식으로 미국의 자본주의 유지에 이용된다. 기업가와 재활 전문가들은 장애를 돈벌이로 만들어 장애인들을 강제로 경제질서 안으로 끌어들였다. 장애가 있는 신체를 상품으로 만든 뒤 그 시장 가격에 따라 사회정책을 만들거나 폐기하는 것이다. 장애인에 대한 기업 솔루션(요양원 격리 등) 역시 장애인도 수익 창출에 활용할 수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하지만,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공공재정이 예산을 보장해 주기 때문이다. 예컨대 미국의 경우 그 비용의 60퍼센트는 메디케이드(노령인, 장애인 등 극빈층에게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공동으로 의료비 전액을 지원하는 공공의료보험제도_옮긴이)에서, 15퍼센트는 메디케어(사회보장세를 20년 이상 납부한 65세 이상 노인과 장애인에게 연방정부가 의료비 50퍼센트를 지원하는 제도_옮긴이)에서, 25퍼센트는 개인 민간 보험이 담당한다. […]
장애인 권리운동이 장애인 시설 격리에 반대하며, 방문 서비스 중심으로 정책이 수정되도록 애쓰고 있지만, 자택에 거주하는 장애인마저 재상품화함으로써 자본의 논리는 더욱 분명해진다(공공재정이 허용하는 한, 즉 관리의료의 도입으로 비용을 절감하는 한 재정적 동기도 충분하다). 기업은 방문 서비스 영역에서의 수익 창출 가능성에 침을 흘려왔다. 실제로 ‘홈케어’ 왕국을 건설하고 방문 서비스 모델에 시동을 걸기도 했다. 짐 찰턴의 말마따나, “인간의 상품화 이면에는 다른 인간에 의한 비인간화와 착취가 교묘하게 숨어 있다. 이것이 바로 경제적 삶의 실체다.
장애의 정의는 고정적이지 않으며 근본적으로 자본 축적의 필요와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복지국가도 위기에 처하면 장애개념을 축소하고 자격 기준을 까다롭게 바꾸는 경향이 있다. 장애인 수용시설도 폐쇄하기 시작하지만, 그렇다고 장애인이 자립하도록 적절한 자원과 지원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국가가 특정 지원 방법에서 손을 뗀다고 장애인의 삶에 개입하는 권한까지 포가하지는 않는다. 국가의 개입 역할은 유효하다. 다만 신자유주의적 효율성이라는 미명 아래, 장애인을 위한 서비스와 소득 지원 프로그램 등의 사회비용을 무자비하게 삭감하는 데 집중할 따름이다.
자본주의의 발흥은 장애인의 이데올로기적 계급과 처우를 급격하게 바꿔놓았다. 사회주의자들이 자본주의와 (예를 들어) 영국 구빈법의 관계를 주시하기는 했어도 장애인의 계급화, 소외, 억압 따위는 대체로 외면당했다. 일반적으로 자본주의의 발흥은 장애인에게 이율배반적인 영향을 미쳤다. 긍정적인 성과가 없지는 않았다. 의학의 발달은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의 수명을 연장하고 삶의 질을 높여주었다. 부정적인 결과로는, 장애인을 엄격하고 독단적인 진단 범주로 분류하면서 억압 시설에 격리하는 폭력 등의 문제를 들 수 있다. 임노동 체제의 착취로부터 배제되면서 발생하는 일상적 빈곤은 장애인 억압에서도 가장 핵심에 속한다. […]1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