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토(懸吐)의 문제
현토(懸吐)란 ‘토(吐)’를 ‘다는[懸]’ 것이다. 그렇다면 ‘토(吐)’란 무엇인가? 네이버 사전의 정의를 빌려오면 “한문을 읽을 때 구절과 구절 사이에 우리말 조사나 어미 등을 붙여 읽는 방법”이라고 되어 있다. 현토의 친구가 구결(口訣)이다. 구결의 정의는 “한문의 글 뜻을 명백히 하거나 읽기 쉽게 하기 위하여 한문 중간 중간에 끼워 넣는 우리말 요소”이다. 내가 더 쉽게 말하겠다. 현토와 구결은 모두 “우리말이 아닌 한문을 최대한 우리말처럼 해석하기 위해 창안한 방법”이다.
이러한 요소들이 언제 처음 등장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삼국시대에 이미 형성된 것으로 본다(심경호(2007), 『한학입문』, 황소자리. pp.124-130). 당시 승려들이 『불경』을 가지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글을 모르는 백성들에게 교화의 목적으로 쉽게 풀이한데서 기원한 것이다.
현토는 한문학 내에서 필요성 논란으로 인해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우리 조상님들이 창안한 방법이다”, “현토를 붙여서 읽는 방법이 독해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는 쪽과 “영어를 읽을 때 ‘I는 boy이다’라고 읽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라고 주장하는 쪽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물론, 양쪽 주장 모두 설득력이 있다.
먼저, 필요하다는 쪽을 살펴보겠다. 우리나라 한문의 역사는 간단하지 않다. 신라 말 최치원(857~?)을 비조(鼻祖)라고 보고, 김택영(1850~1927)을 종장(終章)이라고 한다면 약 천 년이 넘는 세월이다. 비록 한자가 “Made in China”인 점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십 년, 백 년도 아니고 천 년 이상 사용했다면 우리도 할 말은 있지 않겠는가. 현토를 사용하자는 쪽의 생각이 이것이다. 장구한 한문의 역사 속에서 우리 조상들이 지속적으로 현토를 사용했다면, 이는 한문 공부에 무언가 도움이 됐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번역을 하는데 있어서 현토의 장점이 분명히 있다.
현토란 언어의 “논리”와 관련이 있다. 편입 영어로 비유하자면 논리 영역이다. “나는 밥을 먹었다. ( ) 아직 배가 고프다”라는 문제에서 괄호 안에 들어갈 접속사는 역접의 의미를 지닌 “그러나”이다. 현토에도 “하나”와 같이 역접의 의미를 지닌 표현이 있다. “나는 밥을 먹었다. ( ) 배가 부르다”라는 문제에서 괄호 안에 들어갈 접속사는 순접의 의미를 지닌 “그래서”이다. 현토에도 “하고”와 “하며” 등 순접의 의미를 지닌 표현이 있다. 띄어쓰기 표시가 전혀 되어 있지 않고 다닥다닥 붙어 있는 한문을 읽을 때 현토는 말 그대로 “표지”이다. 여기서 끊어야 하고, 이 문장과 이 문장 사이는 이러한 논리구조로 연결되어 있다고 표시하기 위한 도구이다.
반면에 현토가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쪽에서는 현토란 중복 해석이라는 측면을 강조한다. 한문을 읽었을 때 해석이 된다면 굳이 현토를 표시할 필요는 없다. 현토란 내용이 잘 들어오지 않고, 앞뒤 문맥을 잘 따져봐야 할 때만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욱 본질적으로 들어가면 “현토를 붙일 수 있다”는 것은 곧 “독해를 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영어의 직독직해와 비슷한 원리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과는 결이 다르다.
영어는 문장을 읽지 않고 눈으로만 살펴보아도 품사 구별과 문장 구성을 어느 정도 눈치 챌 수 있다. 반면에 한자는 모양이 변하지 않는 “고립어”이기 때문에 품사 구별도 되어 있지 않고, 심지어 한문은 띄어쓰기조차 되어 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사람이 한문을 읽고 무슨 내용인지 파악할 수 있다면, 이 사람은 독해력이 있는 사람이다. 그냥 바로 해석하면 되는데, 왜 굳이 현토를 붙여서 번역을 두 번 하느냐 하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나는 평소에 한문을 읽을 때 현토를 붙이지 않는다. 사실 현토가 너무 어렵다. 그래서 싫어한다. 몇 년 전만해도 ‘현토를 공부할 시간에 한문 원전을 한 번 더 보겠다’는 심산이었다. 그러나 고전번역원을 다녀보니,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다. 현토를 아는 것도 한문 공부에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본인이 직접 한문 원전에 현토를 달면서 공부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이 정도 수준까지 도달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현토가 무엇이고, 종류는 무엇인지 등 기본적인 정보는 알고 있어야 한다. 한문 임용 시험 지문에는 현토가 달려 있지 않지만, 서로 다른 두 개의 “현토”를 비교하는 문제는 출제된 적이 있다. 내가 원하는 수준도 딱 이 정도다.
※사족
1. 현토 공부에 널리 알려진 논문을 참고한다.
→ 이상하(2006), 「한문학습 및 번역에 있어서 현토의 문제」.
2. “표점”은 현토, 구결과는 다르다. 표점이란 따옴표, 온점 등 “문장부호”를 의미한다. 그러나 표점도 결국은 독해 이후에 표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현토, 구결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그렇지만 현토와 구결은 우리나라에서만 사용하는 독특한 방식이므로, 국내를 벗어나 한문을 공부하고자 한다면 각 나라마다 약간 차이가 있지만, 표점을 공부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라 생각한다.
3.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현토는 율곡 이이가 정리해놓은 것이다
[출처] 경서(經書) 공부법_3|작성자 shinhanm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