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로마 신화는 내가 그 전체 구도를 파악하기에는 너무도 복잡하다. 1977년 무렵에 나는 해밀턴(Edith Hamilton)이 쓴 『신화』(Mythology: Timeless Tales of Gods and Heroes)라는 책을 읽었는데, 그 구도와 인물들의 관계도가 너무 복잡하여 머릿속에 내용이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재미가 없고 지루하기만 했다. 2000년대 초반에 『이윤기의 그리스로마신화』를 읽었는데, 그때도 역시 내 머릿속에 뭐가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그런데도 시시때때로 여기저기서 그리스로마 신화에 관한 표현들이나 단편적인 이야기들을 듣게 되고, 간헐적으로 그 신화에 대한 증폭된 사회적 관심이 태풍처럼 휩쓸고 지나간다. 그때마다 나는 그 신화에 대한 나의 파편적인 토막 상식 때문에 뭔가 찝찝하고 께름칙하다. 지식이 없으니 그 분야의 말이 나오면 입을 꾹 닫는다.
최근에도 또다시 그리스로마 신화 태풍이 두어 차례 휩쓸고 지나갔다. 먼저 영화 『오디세이』가 크게 흥행해서 누적 관객 수 1000만을 넘었다. 나도 그 영화를 보았는데, 내 느낌은 그저 그랬다. 다만 시종일관 너무 큰 효과음 때문에 귀를 막고 보았다. 그리고 곧이어 불어 닥친 고전(신화) 문학가이자 시인인 앤 카슨의 노벨문학상 수상 돌풍이다. 그녀는 그리스의 서정시인 스테시코러스(Stesichorus, BC 650년경)가 쓴 「게리오네이스」(“Geryoneis”)라는 시의 파편적인 이야기들을 현대적으로 재창조하여 『빨강의 자서전』(Biography of Red)을 일찍이 1998년에 내놓았다. 그녀가 올해 노벨상을 받으면서 운문 소설인 『빨강의 자서전』이 우리나라에서도 하루아침에(만)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하지만 블록버스터 영화 『오디세이』에 비해 카슨의 『빨강의 자서전』이 일으킨 바람은 너무도 순간적이고 미미하다. 그 바람은 사회적 영향력에 있어서 거의 허상에 가깝다. 그 소설 번역본이 상당한 부수로 팔리면서 해당 출판사가 영업이익을 꽤나 얻겠지만, 정작 그걸 읽고 이해하여 그 문학적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21세기 이후 노벨문학상 자체의 가치가 그런 상황에 처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문학이 생명력을 잃어버린 오늘날에 노벨문학상이 “인류를 위해 가장 위대한 이익이 되는 업적을 이룬 사람에게 수여된다.”는 그 상의 근본 목적에 얼마나 부합할까?
우리가 그리스로마 신화라고 일컫는 이야기는 호머(BC 10세기경)가 썼다고 알려진 서사시 『오디세이』와 『일리아드』로 대표되는 그리스 신화가 원조이고, 그후 900년 정도 지나서 버질(BC 70-19년)이 쓴 서사시 『이니이드』로 대표되는 로마 신화가 그 재생품이다. 그리스 신화가 천지창조 차원의 이야기를 다루는 데 비해서 로마 신화는 로마 제국의 건국 신화에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 두 버전의 이야기에 나오는, 서로 대응하는 인물들이 이름부터 각기 달라 나 같은 문외한에게는 여간 혼란스러운 게 아니다. 그 대표적인 몇몇 인물 쌍들을 열거하면, 제우스/주피터, 헤라/주노, 포세이돈/넵튠, 에어리스/마스, 아프로디테/비너스, 헤르메스/머큐리, 디오니소스/바쿠스 등이다. 그중 우리에게 친숙한 몇 인물의 이름을 거명하자면 헤라(그리스, 화장품), 비너스(로마, 여성 속옷), 헤르메스(그리스, 명품 백), 바쿠스(로마, 자양강장 드링크) 등이 있다. 그밖에도 콤플렉스로 유명한 오이디푸스, 발뒤꿈치 힘줄(치명적 약점)로 유명한 아킬레스, 불을 훔쳐서 우리에게 가져다준 걸로 유명한 프로메테우스, 힘과 용기의 영웅으로 알려진 헤라클레스 등도 보편적으로 언급되는 인물들이다.
영문학도인 나의 입장에서는 그리스로마 신화라 하면 제임스 조이스가 그리스의 오디세우스에 해당하는 로마식 이름인 율리시즈를 작품의 제목으로 붙인 소설 『율리시즈』(1922)가 제일 먼저 떠오르고, 밀턴이 “하나님의 길이 정당한 것임을 사람들에게 밝히기 위해서” 쓴 『실낙원』(1667)에서 기독교적 서사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라틴 신화의 내용을 군데군데 사용한 것도 생각난다. 그리고 지금 세계적으로 일시적인 돌풍을 일으키는 앤 카슨의 그리스 신화 다시쓰기가 있다.
내가 참여하는 영문학 작품 읽기 소모임에서는 앤 카슨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뜨끈뜨끈해진 <Biography of Red>를 다음 모임에서부터 읽기로 했다. 그 운문 소설은 게리온(Geryon)—날개를 가진 빨간 괴물이고, 민감한 감수성을 가졌으며, 가정과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자기보다 두 살 위이며 늘 당당한 헤라클레스(Herakles)라는 소년을 신뢰하고 따랐지만 그에게 배신당하고 마음 아파하며, 그런 가운데도 자신의 정체성을 추구하며 자아실현을 위해 분투하는—이라는 소년의 자서전 형태로 표현된 이야기이다. 가만히 돌이켜 보니 나도 중학생이었을 때 요즘 개념으로 트라우마—그때는 그런 개념 자체가 없었다—라는 걸 겪었던 것 같다. 그때 나도 가정과 학교로부터의 소외감과 열등감, 불안에 시달렸었으며, 그 고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괴로워했었다. 하지만 그런 내적 고통은 이후에 시간이 흐르면서, 아마 대학생이 된 이후로, 저절로 대부분 사라졌으니 나의 경우는 트라우마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중고등학교 시절에 나는 헤라클레스처럼 빛나는 학생이 아니라 게리온처럼 어두운 학생이었다.
* 재미삼아 앤 카슨의 시 한 편—이 시에도 거센 바람이 몰아친다—을 소개한다. 이게 재미없다면 그건 나의 번역이나 해설이 형편없기 때문일 것이다.
---------------
사도의 마을
당신이 죽은 후에.
날마다 바람이 거셌다.
날마다.
우리에게 마치 벽처럼 대항했다.
우리는 갔다.
옆을 향해 서로에게 소리 지르며.
길을 따라서.
소용이 없었다.
우리들 사이의 공간이.
단단해졌다.
그건 텅 빈 공간이다.
그런데도 그 공간들은 견고하다.
그리고 검고 슬픔에 차 있다.
치아가 빠져나간 사이의 빈 틈처럼.
늙은 여인의.
당신은 몇 년 전에 알았다.
그녀가.
아름다웠을 때 신경들이 그녀 마음속에서 마치 궁전의 불길처럼 주변에 쏟아졌다는 것을.
Apostle Town
After your death.
It was windy every day.
Every day.
Opposed us like a wall.
We went.
Shouting sideways at one another.
Along the road.
It was useless.
The spaces between us.
Got hard.
They are empty spaces.
And yet they are solid.
And black and grievous.
As gaps between the teeth.
Of an old woman.
You knew years ago.
When she was.
Beautiful the nerves pouring around in her like palace fire.
해설
시의 시작 부분에서 사랑하는 누군가가 죽었고 그로 인한 슬픔과 상실감이 표현된다. 화자와 그의 동료 사이에 냉혹하고 거센 슬픔이라는 바람이 분다. 그 바람이 단단한 벽처럼 느껴진다. 화자와 그의 동료가 함께 어디론가 가고 있는데 그들은 서로 옆을 향해 큰소리로 말하지만 세찬 바람 때문에 그 말이 서로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그들의 슬픔이 그들 사이의 공간을 텅 비었으면서도 견고한 간극으로 만든 것이다.
끝부분에서 죽은 사람인 “You”—아마도 그리스도를 암시하는 듯—가 다시 언급된다. 슬퍼하는 사람들의 마음속 공허감이 한 늙은 여인의 이가 빠져서 생긴 어둡고 텅 빈 잇몸의 틈에 비유된다. 그 틈의 이미지가 섬뜩하다. 하지만 “You”는 그 늙은 여인도 젊었을 때는 감각과 감정이 궁전의 불꽃처럼 타올랐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제목인 “사도의 마을”은 신약성경에서 사도들이 신성한 임무—예수가 죽음을 당한 후 그의 복음을 세상에 전파하려는—를 수행하기 위해 짝을 이루어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는 것을 떠올리게 한다. ‘apostle’(사도)은 그리스어 어원에 “파견된 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화자는 그 사도들 중 한 사람인 것 같다. 그리고 화자와 그의 동료는 그리스도로 보이는 죽은 자와 함께 길을 가고 있다.
기독교적 해석을 배제한다 해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의 상실감과 슬픔을 견고하고 거센 바람이나 이가 빠져나간 노파의 잇몸 사이의 틈 등에 비유한 것, 그리고 그 감정적 경직과 간극이 살아남은 사람들을 소통 불가능 상태에 빠뜨린 것 등이 효과적으로 표현된 인상적인 시이다.
첫댓글 누구에게나 게리온처럼 어두운 시절이 있나봅니다. ㅎ 그런데 최근에 제가 다시 아이들이 어릴 때 읽던 전집에서 '일리아드 오디세이'를 찾아 읽었는데... 읽은 후의 느낌은, "학생들이 읽는 전집은 정말 허접하구나! 였어요." 제가 어릴 땐 그걸 몰랐는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