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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는 공동체 「행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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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발제 <위플래쉬>를 보고
송하연 추천 0 조회 155 26.01.17 19:54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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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6.01.17 20:00

    첫댓글 늦게 올려 죄송합니다. 글이 너무 안 써지는데 완벽하게 쓰고 싶다는 마음까지 들어서 올리는 게 망설여졌네요. 수정하고 싶은 마음 뿐이지만 더 늦기 전에 그냥 올립니다. 다음 글은 조금 더 일찍 올릴게요. ㅠㅠ

  • 26.01.17 20:20

    발제문 잘 읽었습니다. 플레처와 앤드류 사이에서 주체가 흔들리고, ‘잘 쓰고 싶다’는 욕망의 주체까지 붙잡느라 며칠을 고생하셨을 것 같네요. 그럼에도 한 편의 완성도 높은 발제문이 나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체적으로 아주 훌륭하고, 많은 고민의 흔적이 느껴집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 26.01.19 02:17

    <품행제로>와 <밀양>에는 아버지가 등장하지 않아요. 반면 <위플래쉬>와 다음 주에 볼 <싸움의 기술>에는 마치 닮은 꼴처럼 두 아버지가 등장하죠. 생물학적인 아버지와 상징적인 아버지. 합리적이고 관용적이지만 아들이 뭘 원하는지 모르는 아버지와 아들의 욕망을 정확히 알고 있는, 유능하지만 폭력적이고 무법적인 아버지. 무엇을 '해라, 마라' 선 그어주는 아버지가 부재할 때 주인공은 처음부터 길을 잃거나(밀양) 길을 벗어나 있어요(품행제로). 하지만 '나를 따르고자 한다면 무조건 이렇게 하라' 밀어붙이는 권위적인 아버지가 등장할 때 주인공은 그 길에 갇혀버립니다. 잃을 것인가, 갇힐 것인가, 양자택일을 넘어서는 길은 단선적이지 않아요. 하지만 결국 '그만하면 됐다, 다른 길도 많다, 집에 가자'고 말하는 아버지의 품에 안기기보다, 자신을 모욕하고 조롱하면서까지 한계와 마찰하게 하는 아버지를 따를 때, 비로소 그 아버지를 밟고 넘어설 수 있는 길도 열립니다. 앤드류가 한밤중 유령처럼 홀로 드럼을 친 건 스스로 자신을 이끌어줄 스승을 호출하는 행위였다고 생각합니다. 나를 발견해 줄 사람은 저절로 등장하지 않아요. 아들(딸)이 자신의 욕망으로 부를 때 등장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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