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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기 10
류인혜
* 물의 도시 베네치아
2003년 10월 19일(일) 이상하게도 아침을 무엇으로 어떻게 먹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식성대로라면 우유에 시니얼을 말아 먹었을 것이지만 이탈리아에 왔으니 그것도 아니다. 어쩌면 빵에다 채소를 넣어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을 것 같다. 늘 아침마다 오렌지주스와 커피는 한 잔씩 마셨다. 한국 사람인 다른 일행이 긴 테이블에서 식사하던 장면만 생각난다. 그들은 어느 단체에서 전국적으로 대표로 모인 사람들이라고 했다. 다시 가방을 챙겨서 버스에 올랐다.
베네치아로 가는 길은 넓은 초원이다. 제주도처럼 밭과 밭 사이를 돌로 경계를 짓듯이 이곳에는 나무를 심어 두었다. 햇볕을 가리는 용도로도 쓰일 것이다. 규칙적인 조림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단정히 심어놓은 나무들은 보기가 좋았다. 가끔 보이는 냇물의 양편에도 나무가 무성해서 그림 속에서 보는 풍경 같았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가이드는 친절하게 별것을 다 가르쳐준다. 휴게소에서 카페를 주문해서 마시는 법과 화장실 사용하는 법을 배웠다. 20~30센트를 내고 나오는 것이 예의란다. 드디어 배운 것을 실습하게 되었다. 휴게소(Auto grill)는 들어가는 곳과 나오는 곳이 구별되어 있다. 잔돈이 없다고들 해서 단체로 돈을 낸다고 줄을 서서 화장실에 다녀오니 이성애 씨가 모두에게 커피를 샀다.
모든 종류의 커피를 만드는 기본 원액인 에스프레소는 너무 진할 것이라는 선입견과는 달리 아주 맛이 있다. 한 모금 마시고 나서는 설탕을 넣어서 먹었더니 커피의 풍미가 더 살아난다. 블랙커피의 진수를 맛보는 것이다. 이곳의 커피는 대체로 진하다. 그러나 부드럽다.
동그란 줄 사탕과 껌을 몇 개 샀다. 가는 길이 멀어서 시간이 많으니 가이드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많이 한다. 이탈리아에 대한 개괄적인 이야기를 해주었다. 밖을 내다보느라고 가이드의 말은 흘려듣는다. 그러나 집시의 이야기는 흥미로워서 메모해 두었다.
* 집시는 인도사람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탈리아에서 좀도둑으로 살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치마를 입었다. 아이를 안고 있다.
특징 1) 문맹 2) 다산(모계사회) 3) 유아사망률이 높다
그들의 고유어에는 ‘감사’라는 단어가 없다.
12시가 지나서 도착한 베네치아는 도시 입장료(150유로)를 내고 들어간다. 관광객들에게 그곳을 방문하여 보는 기회를 자유롭게 주는 것이 아니라 도시에 입장하는 데는 그만큼의 보수를 요구하는 것이다.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다. 일찍 도시국가로 번성한 베네치아는 117개의 섬과 150개의 운하, 400여 개의 다리로 이어진다. 우리도 무솔리니 때에 만들었다는 다리를 지나서 베네치아로 들어간다.
양쪽 바다에 말뚝이 많이 심겨 있다. 신호등으로 쓰이고, 수심의 깊이를 측정한다. 전쟁 때는 뽑아버려서 적을 혼란케 했다는 것이다. 버스에서 내려서 배를 타고 들어간다. 일행들은 입구의 가게에서 한글로 된 안내서를 찾아내어 사는데 별 관심이 없다. 배 윗전으로 올라가서 자리 잡고 사진을 찍었다. 양편으로 아름다운 집들이 늘어서서 좋은 배경이 된다.
배에서 내리니 노점들이 많다. 모두 모여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데 김병권 선생님의 사모님이 손녀에게 줄 원피스를 산다고 해서 도와드렸다. 값이 싸고 예쁘다. 여러 종류의 스카프가 많다. 8유로짜리도 있고, 큰 것은 15유로라고 한다. 작은 레이스 양산과 가면들이 많다. 무도회에 나갈 때 쓰는 것이다. 시꺼먼 모자에 코가 긴 것이 마귀할멈의 가면인 줄 알았더니 의사 가면이란다. 그곳에 전염병이 많아서 의사들의 활동이 많았다고 한다.
<베니스의 상인>은 셰익스피어가 쓴 것이지만 그가 이곳에 온 적은 없어서 정말로 쓴 것인지 의문이 많다고 한다. 그 많은 작품을 혼자서 다 쓴 것이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이 함께 써 주었다는 얘기도 있다고 한다.
카사노바가 있었다는 감옥을 지난다. 그는 재주가 많은 사람으로 바람둥이라는 것으로 유명해졌지만 많은 것을 발명가로도 이름이 높다고 했다. 좋은 머리로 로또를 처음 내어놓았다고 한다. 두칼레궁과 감옥을 이어주는 ‘탄식의 다리’를 건너서 탈출한 사람은 카사노바뿐이라고 하여 유명해졌다.
좁은 골목길을 돌아서 음식점으로 가는 길에 작은 상점이 군데군데 보인다. 모두 가게 안의 물건들을 쳐다보느라고 진행이 조금씩 늦어진다. 예약했던 음식점이 문을 닫아서 다른 곳으로 갔다. 기다리면서 위를 쳐다보니 건물과 건물 사이에 줄을 매어놓고 빨래를 널어 두었다. 고쟁이도 널려 있어 한마디 했다.
음식점(Trattoria Pizzeria ja Gioia)에 들어가서 피자를 주나, 하며 기다렸더니 명물이라는 오징어 먹물 스파게티를 먹는다. 국수 가락을 건져 먹다가 문득 얼굴을 드니 앞에 앉은 분들이 시커먼 입으로 열심히 먹고 있어서 서로 쳐다보면서 한바탕 웃었다. 예상외로 맛이 있다. 튀김과 채소가 따라 나온다. 옆 자석에는 중국 사람들이 앉아서 자기네 식으로 음식을 먹는다. 주인과 잘 아는 눈치다.
곤돌라를 타는 사람과 쇼핑을 하는 사람으로 갈라져서 6명은 배를 타러 가고, 나머지는 각자 헤어졌다. 그곳에 가서는 곤돌라를 타는 것이 좋은 관광이겠지만 짙은 초록색의 물을 보니 내키지 않았다. 한 사람당 16유로씩 주었다고 한다. 나중에 물어보니 물에서 냄새가 많이 났다고 했다. 좁은 골목길을 발로 건물을 차면서 잘 다니더라고 기가 막힌 재주를 감탄했다. 김희선 선생, 임승렬 선생과 일행이 되어 산마르코 광장에서 비둘기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비둘기 먹이를 1유로에 팔고 있다. 비둘기들은 사람과 친하여 등에도 앉고 손위의 먹이를 받아먹기도 한다.
디귿으로 되어 있는 코레르 박물관 건물을 한 바퀴 돌았다. 아래층에는 상가가 형성되어 있다. 정말 예쁜 유리 공예품이 많다. 유리로 만든 다양한 색깔과 종류의 장식품이 많았지만, 값이 비싸서 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장식이 예쁜 시계도 쳐다보다가 포기했다. 집에서 기다리는 남자들에게 줄 선물로 8유로짜리 넥타이 4개를 샀다. 자동이라고 강조하는 우산 두 개, 큰 스카프 두 장을 샀다. 도중에 김병권 선생님 내외분을 만나서 스카프를 골라 주었다.
덤벙거리다가 정작 보아야 할 산마르코 성당에는 들어갈 시간이 없어서 겉으로만 보았는데, 속에는 황금으로 치장이 되었다고 한다. 곁에 있는 탑에 올라가면 베네치아 전경을 볼 수 있다고 했지만, 쇼핑에 마음이 팔려서 아까운 시간에 철없는 짓만 했다. 나중에 책으로 구경을 했다.
카페에는 길에 의자를 내어놓고 생음악을 연주한다. 분위기를 좋아하는 양순택씨는 그곳에 앉아서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셨다고 자랑이다. 이숙 선생님은 정해진 시간보다 늦은 사람들에게 벌금을 받았다가 마음 좋게 돌려준다.
나중에 버스를 타려고 배를 타고 건너와서 보니 사탕 모양으로 된 1유로짜리 유리 공예품이 있어 10개를 샀더니 덤으로 하나 더 준다.
*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수필가협회의 조경희 회장님은 이번 여행에 동행하지 못했지만, 꼭 봐야 할 것이라며 베네치아에서 열리고 있는 비엔날레를 적극적으로 권했다. 미술에 관심이 많으시기에 유명한 화가들과도 교류가 있고, 그 방면에 박학 다문 하신 분의 말이기에 큰 기대했다. 떠나기 전에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아보았지만, 워낙 문외한이어선지 건성이 되었다.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는 장소로 이동하려면 다시 배를 타야 했다. 1번 버스(배)를 탔는데 한사람이 내리지 않아서 함께 간 한국 가이드가 기다리고 다른 사람들은 입장했다. 갈 때마다 사건이 생겨서 100명을 인솔하는 것보다 더 힘이 든다고 했다. 가이드는 밖에서 기다리고 우리만 들어갔다. 한국관을 먼저 보기로 하고 안내판을 보았더니 22번이다. 그쪽으로 부지런히 걸음을 옮겨 ‘COREA’라고 쓰인 건물을 찾아냈다. 한쪽 벽면을 다 차지한 흑백의 그림 앞에서 방문 기념사진을 찍고, 방명록에 이름을 남기고, 수고하고 있는 안내원들과 인사를 나누며 외국에서의 국위 선양을 위로했다.
시간이 없어 각 나라 관마다 일일이 다 돌아보지 못했다. 가장 최신 경향의 미술사조를 제대로 만나는 기회를 놓쳤다. 화장실이 급하다는 사람이 나와서 화장실을 찾아가느라고 부산했다. 안내판을 보고 가면 되는데 사람마다 찾는 방법이 있다. 한국 사람이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길을 묻는 것이 싫었는데, 그런 방법을 쓰는 사람도 있다. 결국, 화장실을 찾아서 볼일을 보는 동안 주변의 사진을 찍었다.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는 지론을 생각했다.
정해진 시간이 되어도 전체가 모이지 않아서 다시 들어갔더니 다른 곳에 모여 있다. 배에서 내리지 않았던 사람도 나타났다. 한 정거장을 더가 내려서 뛰어 왔다고 한다. 입구의 게시판에 ‘파라다이스’라는 제목으로 변을 보고 사람의 엉덩이를 발견하고 모여서 웃었다. 그런 웃음도 없다면 다니기에 힘이 더 들었을 것이다.
비엔날레를 관람하고 배를 타러 가는 도중에 길에 누워서 다리를 뻗고 환호하는 10대들을 보았다. 일어나며 웃는 얼굴이 상기되어 있다. 젊음의 열정이 좋다. 큰 여객선이 지나간다. 창문을 열어놓고 사진을 찍는 할머니도 있다. 그 모습을 보니 이곳에서도 보기 드문 광경인가 싶다. 부두 가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손을 흔들며 소리를 질러서 나도 같이 손을 흔들며 소리를 질렀다. 이별의 정이 저절로 솟아난다.
저녁은 중국식으로 먹었다. 전날 밀라노에서 먹던 것과 비슷한 메뉴인데, 수프가 너무 시어서 먹지를 못했다. 밥과 달걀부침과 탕수육을 먹었다. 후식으로 사과를 통째로 준다. 껍질을 까지 않고 그대로 먹었다. 옛날에 먹던 사과 맛이다. 누군가 먹지 않고 주어서 가방에 넣었다.
버스로 근교 도시 파도바로 이동했다. 호텔(International Bertha)을 찾느라고 기사가 고생했다. 쉴 곳에 왔다니 갑자기 피곤해진다. 그래도 좋은 안내서가 있는지 살펴본 후 로비의 의자에 널브러져 있다가 키를 받아서 올라갔다.
우리의 방인 416호의 문에는 418호도 나란히 적혀있다. 이상하게 여기며 들어가 보았더니 입구에 응접탁자가 있고 목욕탕이 두 개나 되는 훌륭한 시설이다. 속없이 나가서 자랑했더니 우르르 모여 왔다. 일행의 다른 방들도 아름답고 특색 있게 꾸며 놓아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구경을 했다. 객실의 구조가 같은 모양의 없고 방마다 다른 것이 흥미로웠다. 온천지대라 해서 욕조에 물을 받아서 잠시 쉬었다.
첫댓글 이탈리아휴게소에 공중화실이 유료라는 건 이색적인 풍경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