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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소 - 벳부
구마모토 현의 아소에는 활화산이 있는 화산지대로 온천이 성업을 이루고 있다. 마침 이곳 아소팜 빌리지 호텔에 투숙하여 1박을 하면서 온천욕을 마음껏 즐기게 되었다. 온천탕은 자그마치 그 부지가 2,000여 평이나 되었다. 실내 탕보다는 실외의 각가지 탕들이 고루고루 갖춰져서 더 인기를 모았다. 수백 미터를 가면서 크고 작은 시설로 온천욕을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자연과 함께 하는 온천욕인 셈이다. 숙소 또한 에스키모인의 얼음집 모형 같기도 하고 요정들의 집 같기도 한 돔형의 별장으로 꾸며진 별채였다. 별장은 2인실 4인시 6인실로 다채롭게 꾸민 별세계로 새로운 분위기가 압도하였다. 별장마을 전용버스까지 운행을 하며 편의를 돕고 있었다. 방안에 벌러덩 누어서 천장에 뜬 하늘의 별도 바라보며 이국의 첫 밤을 맞았다. 저 별도 고향의 하늘에서 보던 별과 다름이 없을 텐데 색다른 분위기에 젖어들었다.
아소(阿蘇) 시민은 지진과 화산폭발이라는 불안을 항상 가슴에 끌어안고 살아가는 나날이기도 할 것이다. 그만큼 현실적으로 보고 느꼈으며 또한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활화산이 끊임없이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흥미 있는 볼거리로 지금껏 살아 활동한다는 아소산 활화산을 찾아 나섰다. 어찌 보면 좀은 잔인함 마음이 들기도 하는 구석이다. 가는 길에 억새풀이 길길이 자라 누렇게 익어 숲을 이루었다. 도로 변에 상록수를 가꾸며 새의 모양으로 다듬어 놓았다. 참으로 기발한 착상이며 솜씨 또한 만만치 않아 보였다. 마치 새들이 내려앉아 노닐다가 더러는 활개를 치는 모습이다. 다만 가까이 가도 그 초록빛 새는 달아날 줄을 모를 뿐이었다. 곳곳에 눈이 남아있고 점점 풀은 키가 잔디처럼 짧아졌다.
불의 나라 구마모토를 상징하는 아소산은 세계 제일의 규모를 자랑하는 칼데라화산이다. 광활한 초원과 산림이며 온천에 활화산 분화구를 안고 있는 아소산은 국립공원이다. 이미 30만 년 전에 지하에 가득히 고여 있던 마구마가 폭발하면서 9만 년 전까지 4번이나 분화를 하였다. 최근에는 불과 30여 년 전인 70년대에 다시 폭발하여 세상의 이목을 단숨에 끌어들였었다. 아소산(1592m)은 아소5악이라 불리는 다섯 개의 봉우리 중 네 개는 휴화산이다. 오직 나카다케(1323m) 분화구만이 지금도 꾸준하게 화산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활화산 분화구다. 이곳에는 관광용 케이블카를 이용하여 접근할 수 있다. 끓어오르는 용암과 힘차게 내뿜고 있는 연기를 보고 싶다. 설레는 마음으로 가볍게 케이블카에 올라타고 자리를 잡았다. 이제 단 몇 분 후이면 그 현장을 직접 볼 수 있는 것이다.
대전에서부터 데리고 간 가랑비였다 부산서 졸졸 따라온 바람 현해탄을 함께 넘은 바다 늘 오르내리던 산 고향 하늘에서 보던 별이었다 그런데 차선 좌우가 바뀌었다 몹시 속이 쓰라려 용트림 하는 아소 활화산 일본인보다 한국인이 더 당기나보다. <아소산에서>
다소 출발이 늦어진다 싶었다. 아뿔싸! 가랑비가 축축이 내리는 날씨에 유독가스인 황산가스가 바람을 타고 갑자기 몰려온단다. 때문에 분화구에 접근은 위험하므로 부득이 통제한다는 지시가 떨어졌다는 것이다. 하필 우리 팀부터 관람이 거부되는 것일까. 불과 몇 분 차이로 면전에서 그냥 돌아서야 하는 아쉬움을 담아야 했다. 그냥 케이블카라도 올랐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했다. 이역에서 불원천리 달려왔건만 접근을 허용치 않는 것을 어쩐다. 사람보다 한 수 위라고 할 수밖에 없는 자연이 하는 일이니 순순히 돌아설 밖에 없다. 그렇다고 마냥 기다리고 있을 처지도 못되지 않는가? 섭섭한 마음일랑 내 자신이 부덕하다고 밖에 그 누구를 탓하랴. 여행을 하다보면 이처럼 현지사정 등으로 미처 예기치 못한 일이 생겨나기도 한다. 하여 아쉬움으로 남기기도 한다. 하기야 아쉬움이 있어야 미련으로 똘똘 뭉크러지고 그 미련이 더 찐한 그리움이 된다. 그리움은 다시 도전하는 힘을 만들어 내기도 하여 뜻이 있으면 언젠가 다시 길이 있을 것이다.
그만큼 마음속에 절박하게 담아두면 보다 수월하게 다음을 예약하고 새로운 결과가 당겨올 수도 있는 것이다. 이와는 상반되게 우연이다 싶은 행운도 가끔은 생겨나서 정말 뜻밖이다 싶은 일들을 접할 수도 있다. 이런 때는 그 기쁨이나 즐거움이 배가된다. 이렇게 계획은 계획으로서 큰 틀을 유지할 뿐 잔물결처럼 자꾸 유동적일 수도 있다. 여행길에 몸은 다소 피로하더라도 마음만은 즐거움 속으로 자꾸 빠져드는 모양이다.
원숭이 공연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앙증스럽도록 귀여운 녀석, 중간치, 큰 녀석 3마리가 조련사와 함께 나왔다. 네 발이 아닌 시종 두 발로 걷는다. 장애물넘기 멀리 건너뛰기 높이뛰기 등 묘기를 부린다. 꽤나 유연한 동작으로 거뜬하게 해낸다. 그만큼 피땀을 흘리며 많은 훈련을 쌓았을 게다. 꼬리를 척추에 매놓고 옷을 입혀 목줄과 연결 시켰다. 잠시라도 꾀를 부리거나 딴 짓할 양이면 조련사는 잽싸게 줄을 당긴다. 척추를 찢는 아픔일 게다.
순간 삼장법사와 손오공의 관계가 떠올랐다. 머리에 관을 쓴 원숭이 손오공은 삼장법사의 주문에 머리를 움켜잡고 떼굴떼굴 구르는 통증을 느끼며 살려달라고 애걸을 한다. 그로써 다시 손오공을 통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원숭이들도 마찬가지다. 시키는 대로 말을 잘 들으면 칭찬이 따르지만 어깃장을 부리다가는 곧바로 고통을 맛보아야 한다는 것을 그동안 수없이 겪어왔을 터이다. 수많은 원숭이들이 훈련을 받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도중에 탈락하였다. 그 재능을 더 이상 보이지 못하고 그냥 단순하게 울안 원숭이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무대에 올라 관객으로부터 열렬한 사랑을 받고는 있지만 한 편으로는 그의 삶이 송두리째 인간에게 조종을 당하고 있는 셈이다. 묘기를 해냈다는 그 뿌듯함에 손(앞발)을 번쩍 쳐들고 태연히 짓는 표정은 가히 백미였다. 원숭이는 생각보다 겁이 많기에 똑바로 눈을 맞추거나 악수를 하더라도 살짝 손을 얹는 정도여야 한단다. 입을 떡 벌리고 쳐다보면 너와 나 한바탕 결투로 겨뤄보자는 것이냐고 험악해진단다. 재롱을 피우는 모습과는 판이하다.
언젠가 티브이 화면에서 본 듯한 기억이 떠올랐다. 원숭이가 군림하는 원숭이의 세상이다. 인간이 영리한 동물로 취급받으며 원숭이의 노예로 수발을 드는 모습이었다. 인간은 보기보다 아주 꾀가 많은 놈들이니 주의를 하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 무슨 짓을 꾸밀지 모르니 아주 철저하게 감시를 하라는 것이었다. 소수의 인간으로서는 표독스러워진 그들 원숭이에게 대적할 힘을 이미 상실하고 순순히 복종을 하고 있었다. 기세가 등등해진 원숭이에게 인간은 한낱 노예에 지나지 않았다. 하나의 재롱거리를 넘어 영리한 또 다른 짐승에 지나지 않았다. 그 동안 저 녀석들(인간)이 우리 원숭이를 얼마나 학대하고 조롱하였는지 그 때의 일을 결코 잊을 수도 잊어서도 아니 된다. 이제는 그 수모를 철저하게 갚아야 한다는 논리로 멸시를 하고 있었다. 참으로 끔직스러운 장면이 아닐 수 없었는데 왜 하필이면 이 순간에 그 모습이 퍼뜩 떠오르는 것일까.
온천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오이타(大本) 현의 「벳부(別府)」로 향했다. 불과 15만여 명의 인구가 연 4,000만여 명의 관광객을 맞아들이는 일본을 대표하는 온천지역이다. 잠시 삼백여 미터 우뚝 솟아오른 언덕 전망대에 섰다. 한 눈에 바라보는 시내는 해안선의 굴곡을 타고 아주 환상적으로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시내 산자락 여기저기서 연기가 끊임없이 솟아오른다. 행여나 지하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용암이 폭발이라도 하지 않을까 우려하여 인위적으로 파낸 구멍에서 내뿜는 수증기였다. 천연기념물이라 자랑하는 입욕첨가제인 「유노하나」 재배지를 찾았다. 용암이 끓어오르면서 열기를 쏟아낸다. 우리의 채소 재배단지처럼 막을 짓고 그 열기를 받아 자갈을 깔고 짚을 깔고 방향 청량제를 깔아 천정에 맺혔던 수증기가 바닥에 떨어져 마르면서 흰 분말이 된다. 이것을 긁어모아 만든 것이 그들이 자랑하는 유노하나 목욕첨가제다. 목욕물에 적당량의 분말을 풀면 집안에서 편안히 벳부온천의 진미를 맛볼 수 있다며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펄펄 끓는 온천수가 솟아오르면서 수증기를 짙게 쏟아내며 주위는 짙은 안개 속을 거니는 것 같다. 물은 코발트빛으로 아주 투명하다. 마치 지옥을 헤매는 것 같다하여 일명 바다지옥이란다. 그 주변을 돌아가니 민물이 흐르는 웅덩이에 서식하는 다슬기가 태연하게 온천욕을 즐기고 있었다. 그 이웃에는 진흙탕에서 핏빛을 방불케 하는 온천수가 쏟아져 나왔다. 황토진흙이나 철분이 많아 황산에 산화된 물빛으로 이를 피지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 쪽에 온실을 짓고 온천수를 받아 원예재배 실험을 하고 있었다. 우선 연꽃이 그 대상이었으며 열기에 바나나가 열리기도 하였다. 또 족욕탕이라 하여 따끈따끈한 야외 온천수에 발을 담그고 피로를 씻게 하는 재치도 보였다. 온천수의 열기를 받아 소철이며 야자수 나무가 아름드리로 마치 하늘이라도 찌를 듯 솟아있었다. 소화천황이며 황후가 방문하여 기념식수를 하였다는 팻말도 세워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이곳 벳부에서 다시 온천수에 몸을 담그며 1박을 즐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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