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반도의 여행기 (10)****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1):사라예보
68/가정 김 숙 자
10월 16일(수)
아침부터 주룩주룩 내리는 가을비를 맞으며 베오그라드 시가지를 돌아보았다. 비는 그치지 않고 더욱 세차게 내린다.
대충 베오그라드의 관광을 끝내고 미하일로 왕의 거리(우리나라 명동의 거리 같음)에서 현지 안내자가 소개하는 카페에 들어갔다.
카페 안은 손님으로 가득하다. 우리 부부와 일행들은 커피를 마시며 점심 예약 시간을 기다린다. 발칸 반도의 식당들은 예약 시간을 꼭 지키는 것 같다. 먼저 가서 좀 쉬고 싶어도 예약시간 전에 식당에 들어가질 않는다.
우리나라의 관습이 좋다는 것을 실감한다. 매사가 후하고 틀에 박힌 듯 까다롭지 않은 것이 비교된다. 시간에 맞춰 중국 식당에 간다.
거리 양옆은 식당들이 늘어섰다. 식당들 앞 가든 테이블 위에는 메뉴와 가격을 홍보하는 광고문이 여기저기에 흩어있기도 하고
정리되어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세르비아에 와서까지 중국식 점심을 먹다니......
이 식당에서도 남편은 배갈을 주문하여 일행들에게 권한다. 오전내 비를 맞으며 많이 걷고, 기름진 중국 음식을 먹는 우리는 한 모금씩 마시는 중국 술의 향이 피곤을 녹이는 것 같다.
0.5ℓ들이 한병의 가격이 35유로이다. 이 나라에서 본다면 수입품 술이라 가격이 좀 비싼 편이다.
점심을 먹고는 보스니아의 사라예보로 출발한다. 버스로 이동 시간은 7시간 30분이 걸린다. 장거리 이동이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수도 사라예보로 가는 길
우리 일행들은 점심을 먹고 바로 버스에 오른다. 우리나라 시각으로 아침 7시 경이다. 이번 여행도
중 반전에 들어선다. 조금씩 지치거나 시들해진다. 버스에 오르자마자 일행들은 눈을 감고 잠을 자는 사람들이 많다.
이른 아침부터 비를 맞으며 많이 걷고, 또 점심를 먹은 직후였으니 모두 얼마나 피곤할까?
발칸반도의 여러 나라는 자연경관이나 역사의 흐름이 비슷하다. 오스만트르크나 합스부르크의 지배를 받았다.
다민족, 다종교. 이념 갈등으로 오랜 전쟁과 내전을 겪었다. 힘이 있는 나라의 지배를 받는다. 이 과정이 누구의 뜻일까?
이 지구 위의 모든 인류가 원치 않으면서도 전쟁을 일으키고, 당하고, 억울해하고, 슬퍼하는 비극을 안고 역사를 이어
온 것이 아닌가?. 몇몇 지배자를 잘못 만난 그들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라고 돌려 생각해 본다.
한때 이보다 더 비참한 아픔을 겪어야 했던 우리의 조국......
이제 우리는 어두운 과거의 역사를 벗어나서 지구 위의 또 다른 역사를 둘러보는 것이다.
세르비아의 국경을 벗어났다. 보스니아 땅에 들어서자마자 가슴이 뭉클하고 답답해진다. 초야에 묻힌 경작되지 않은 땅,
그나마 그런 땅도 많지 않다. 모두 야산의 불모지로 개발할 수 없는 쓸모없는 땅들이다.
야산의 골짜기를 따라가는 국도는 전혀 관리가 되지 않은 2차선이다. 오고 가는 차량도 아주 드물다. 초야에 묻힌 자연 그대로이다.
"사라예보로 가는 길은 이 길뿐이에요?"
"아니 좋은 길이 있다면 왜 이 길로 갑니까?" 인솔 안내자의 대답이다.
띄엄띄엄 보이는 농가들은 비운 지 오래된 듯 창문이 없고, 도색이 벗겨진 아주 낡고 허술한 폐허의 주택 같다. 그래도 주택의
형태는 붉은 지붕에 하얀 벽의 유럽풍의 주택이다.
간간이 보이는 농가의 굴뚝에선 연기가 모락모락 나온다. 허술한 집 마당에는 빨래가 너울너울 널려있다. 꼭 우리나라의 60년대
농촌 풍경 같다.
디날알프스산맥 계곡을 따라 드리나 강물이 흘러서 아드리아 해로 들어간다. 드리나 강물은 높은 계곡 사이로 드넓게 펼쳐서
잔잔히 흐른다. 꼭 딸의 집 고층 아파트에서 바라본 넓은 한강의 물흐름처럼 보였다.
강 건너에는 하늘을 찌릇 듯한 높은 산이 오색 찬란한 단풍잎들로 뒤덮여서 강물에 내려앉은 듯하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사이의 좁은 길엔 가로수가 단풍 터널을 만들었다. 모두가 손을 대지 못한 자연의 힘이다. 강가를 따라서
있을 법한 유원지도 없다. 낡은 팬션(?)같은 건물과 허술한 빈집들이 간간이 보인다.
드리나 강가의 길을 벗어나서 작은 도시를 거친다. 도로와 주택들의 구획정리가 잘 안된 문화생활이 아주 뒤쳐진 소도시였다.
그리 높지 않은 낡은 아파트 베란다에는 집집이 빨래가 너절하게 걸려있다. 낡은 상가에는 생필품의 상점들이 늘어서 있었다.
GNP가 1인당 4278달러라니 이 나라의 경제가 얼마나 힘든가를 이 도시에서도 알 수 있었다.
어둠이 밀려오는 농가의 주택들은 불을 켜지 않은 집들이 많다. 도시에 가까워지자 언덕으로 펼쳐진 주택들이 보인다. 가물가물
불빛이 보인다. 꼭 유령의 도시 같다.
늦은 저녁 Holiday Inn Sarajevo에서 여장을 풀고 저녁 식사를 하였다. 생각 뜻밖에 호텔의 규모가 아주 크고 시설이 매우 좋다.
이 나라도 늦게나마 관광산업에 관심을 두지 않나 생각되었다. 내일 이른 아침부터 사라예보-모스타르-메주고리예를 관광한다.
미하일로 왕의 거리에서 카페에 들러 차를 마신다
보스니아로 가는 길가의 시골집들
소도시의 아파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