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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옷을 입은 시 - 예술 융복합을 활용한 시 창작(3) 김철교(시인, 평론가)
음악의 옷을 입은 시
- 예술 융복합을 활용한 시 창작(3)
김철교(시인, 평론가)
4. <길·길·길 – 파울 클레 ‘고속도로와 샛길들’> 읽기
* 클레 (Paul Klee, 1879~1940) <고속도로와 샛길들, Highways and Byways>,
1929, 캔버스에 유채, 83.7×67.5Cm, 루드비히 미술관, 쾰른, 독일.
<고속도로와 샛길들>은 <파르나소스로 가는(Ad Parnassum, 1932, 캔버스에 유채와 카세인, 100x126Cm, 베른미술관)>과 함께 클레가 음악의 대위법(對位法)을 활용하여 그린 그림이다(김광우,『칸딘스키와 클레』, 미술문화, 2015, 321~323쪽). 크고 작은 사각형 모양의 돌들이 반복되어 쌓이면서 길을 만들고 있다.
‘예술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라는 신념을 가진 클레는 스위스의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화가가 되었다.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와 클레는 색을 소리처럼 사용하였다. 칸딘스키와 클레 모두 음악을 자신들의 추상화에 적용했지만, 사실상 이를 먼저 주장한 사람을 고갱(Paul Gauguin, 1848-1903)이었다. 고갱은 “생활이나 자연에서 가져온 주제를 가지고 선과 색을 배열하여 일종의 교향곡과 화음을 만든다”고 하였다.
대위법(對位法, counterpoint)은 음악에서 두개 이상의 선율(멜로디)을 동시에 결합하는 다성음악(多聲音樂)이다. 규칙적인 시차를 두고 같은 음을 주고받는 형식으로 연주되기 때문에 연결이 자연스럽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여러 성부(聲部)가 일정한 규칙에 따라 결합하여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며, 각 성부가 선율적 독립성을 지니고 있다. 음악에서는 일반적으로 음의 수직적 결합(화성, 화음)과 수평적 결합(선율, 멜로디)을 통해 아름다움을 극대화하고 있는데, 대위법은 수평적 결합에 해당한다. 캐논과 푸가는 대위법의 일종이다. 캐논은 하나의 성부에서 주제가 노래되면, 시간의 차이를 두어 다른 성부가 그 주제를 그대로 ‘모방’하여 뒤따른다. '돌림 노래'는 캐논형식의 전형이다. 푸가는 하나의 성부에서 주제가 제시되면, 이어서 제2의 성부가 이것을 모방하는데 이것을 ‘응답주제’라 한다. 그 동안에 제1의 성부는 응답주제에 대위(對位)하는‘대주제(對主題)’를 부르면서 진행한다. 주제, 응답주제, 대주제의 관계가 모든 성부를 중심으로 반복되는 것이 푸가형식이다.
문학에서의 대위법은 서로 다른 감정이나 주제를 병치시키는 기법으로, 서로 상반되거나 모순되는 어구를 연결하여 대비의 느낌을 강하게 강조하는 동시에 그 대립 자체가 하나의 통일성을 갖게 한다. 김종삼의 시에서 이러한 음악기법들이 잘 활용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으며(조용훈, 「김종삼 시에 나타난 음악적 기법 연구」, 『국제어문』, 2013, 321-346쪽), 푸가 형식을 활용하여 시의 의미를 한층 풍성하게 한 사례를 첼란의 시에서 찾을 수 있다(박미리, 「음악과 문학의 상호 매체성 – 한 예로서 푸가 형식과 첼란의 시 ‘죽음의 푸가’」, 『독일어 문학』제56집, 2012, 121-146쪽).
클레의 그림 <고속도로와 샛길들>에서 그림의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고속도로는 곧게 뻗고 안정적인 길이다. 그 옆의 수많은 샛길들은 좁고 불안정하고 아무렇게나 생겨난 오솔길이다. 우리의 삶은 고속도로처럼 평탄한 한 평생을 보내든, 불안정하고 흔들리며 어렵게 살든 결국은 하나의 지평선에서 만나게 된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고, 살고 있고, 살게 될지 사람마다 다 다르지만, 결국은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만났을 때, 후회 없는 삶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인은 클레가 그린 <고속도로의 샛길들>을 보면서, 대위법을 염두에 두고 <길,길,길>을 썼다. 이 시에서 시인은 주어진 길이 어떤 길이더라도 예술가의 길을 가겠다고 다짐한다.
푸른 바다로 향하는 길
모두에게 넓고
모두에게 좁은
모든 길
가지각색으로
가지각색의
길을 닦고 있다
바다 건너
아주 먼 바다 건너
내가 온 별자리를 향해
층층마다 다른 색깔로
비틀거리기도 하며
뜀박질도 하며
때로는 목적지를
환히 보기도 하고
때로는 목적지를
잊기도 하지만
멈출 수 없는 길
점. 선. 면. 색을 통해
가야할 길
가는 길을 알기 위해
한 평생을 바치는
화가의 붓질 속에
아득하게나마 찾을 수 있는
나의 모습을 붙들자
붉고 푸른 오렌지 빛깔들
안개 속으로 사라져 버리더라도
- 김철교 <길,길,길 – 파울 끌레 ‘고속도로와 샛길들’>(『무제2018』,시와시학,2018) 전문
첫째 연과 둘째 연.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푸른 바다를 향하는 길을 가는 길손이며 각각의 길은 다르다. 푸른 바다란 각각이 지향하는 낙원, 본향, 고향인 것이다. 인간은 태어난 고향을 그리워하며, 연어도 알을 낳고 죽기 위해 고향으로 회귀한다. 물론 그 고향, 즉 삶의 목적, 가고자하는 종착지는 모든 사람에게 다르다. 또한 가는 방법(삶의 노정)도 다르다. 어느 것이 정답이고 옳다고 할 수 없다.
둘째 연에서는 가는 길을 멈출 수 없는 숙명을 말하고 있다. “내가 온 별자리를 향해/ 층층마다 다른 색깔로/ 비틀거리기도 하며/ 뜀박질도 하며/ 때로는 목적지를/ 환히 보기도 하고/ 때로는 목적지를/ 잊기도 하지만/ 멈출 수 없는 길”인 것이다.
셋째 연은 예술가의 길을 노래하고 있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의 길이 어떤 길인지, 어떻게 가야 좋은지 고민 없이 그저 간다. 그러나 예술가들은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자기가 가야할 길을 만들어 가려고 한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다른 길들은 어떤 길들일까? 길 너머에는 어떤 길이 있을까? 끊임없이 질문하며 가는 사람이 예술가다. “점. 선. 면. 색을 통해/ 가야할 길/ 가는 길을 알기 위해/ 한 평생을 바치는/ 화가의 붓질 속에/ 아득하게나마 찾을 수 있는/ 나의 모습을 붙들자/ 붉고 푸른 오렌지 빛깔들/ 안개 속으로 사라져 버리더라도” 꼭 그림 속에서 만이 아니다. 모든 예술, 더 넓혀 모든 학문 속에서 삶의 목표를 향해 애쓰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될 것이다. 그저 아무 할 일 없이 세월을 소비하는 것을 시인을 참지 못한다.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는 듯한 인생은 얼마나 불쌍한가? 목적, 꿈, 소망(죽음을 앞에 두었더라도 천국에 대한 소망이라도 가져야 한다)이 없는 삶은 동물과 다름이 없지 않은가. 물론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는 동물들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시는 음악적 기법 중에 대위법을 잘 활용하였다. 대위법을 통해 리듬을 살리고 있고 내용을 풍성하게 하고 있다. 또한 색채 이미지 ‘붉고 푸른 오렌지 빛깔’은 도, 미, 솔을 색채로 나타낸 것이다. 러시아 작곡가 스크리아빈(Alexander Scriabin, 1871-1915)은 음과 색채와의 상응관계를 연구한 바 있다.
삶의 조화로운 것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행복이 비록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아무 것도 볼 수도 기대할 수도 없는 삶이라 할지라도 나의 모습을 찾아 예술 속에 한 평생을 던지겠다는 것이다. 이 시의 형식적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리듬과 색이 합쳐진, 즉 ‘보는 리듬’도 클레의 이론에 따라 도입한 것이다.
5. <무제 1 – 피카소 ‘무제’ 1967> 읽기
<피카소 , 무제 1967>
피카소의 15m의 조각 작품 <무제, 1967>는 시카고 시청 앞에 세워져 있다. 이 조각상을 보고 쓴 시 <무제 1>에서, 시인은 거대한 조각 앞에 서 있다가, 자신이 조각 작품이 되어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앞을 지나가는 다양한 인종, 다양한 나이, 다양한 모습의 인간들을 관조하면서, 대위법적 구성을 통해, 삶의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는 나름의 해답으로 자족한다. 반야심경에서 세상 모든 삶의 질문에 대한 해답은 ‘없다’라고 단언하고 있는 것을 기억하면서, 그저 있는 자리에서 자족하며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작품화 하였다. 없는 해답을 찾아 애쓰는 고통으로부터 해방이, 구원이요 행복의 지름길이 아닐까 자문자답하면서.
거대한 몸짓이
우리를 저 아래로 내려다보며
안쓰러운 듯
행복한 듯
무심한 듯
거리를 초점 없이 거닐고 있는
노인들
손잡고 휘파람 부는 정다운
애인들, 애인들,
천방지축 재잘대는
아이들, 아이들, 아이들
존재마다
무슨 제목을 붙일 수 있나요?
사람마다
딱 맞는 옷이 있나요?
행복으로
가는 길은 어데 있나요?
도서관에 꽉 찬 책들이
해답을 줄 수 있나요?
책장마다 역사의 뒤편에 감춰진
그림자를 알 수 있나요?
책 속에 뭔가
있긴 있나요?
그냥 저 거리에 부는
매연 섞인 바람 속이지만
웃고 싶은 웃음이나 실컷 웃지요
- 김철교 <무제 1 – 피카소 ‘무제’ 1967> (『무제2018』,시와시학,2018) 전문
6. <무제 2 – 호안 미로 ‘무제’ 1974> 읽기
미로, <무제 1974>
호안 미로의 그림(<무제>, 1974, 216x174Cm, 캔버스에 아크릴과 목탄, 마요르카 호안 미로 재단)은 사람의 얼굴을 단순화 시킨 모습이다. 위쪽에는 머리를 표현하는 듯한 검은 색이 있고, 그 아래 검은 눈, 그리고 그 아래는 회색 얼굴빛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림의 크기는 제법 커도 아주 간결한 그림이다.
이 그림을 시로 쓴 <무제 2>에서는 빛의 3원색이 등장하고, 그러한 밝고 맑은 색깔에서, 다장조의 화음까지 읽어낼 수 있다. 사방에서 우리는 지켜보는 하나님의 눈을 염두에 두면서 그림을 응시하고 얻은 이미지를 시로 옮긴 것이다. 검은 색과 회색으로 그려진 그림 앞에 서면, 수용자의 마음에 검은 그림자를 드리울 수도 있을 법하지만, 시인은 이 그림에서 항상 우리를 따뜻한 눈으로 보살피는 창조주의 마음을 읽고, 삶을 평화롭게 관조하는 행복한 얼굴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 시도 대위법을 염두에 두었으며, 색깔의 이미지도 도입하여 미술과 음악 기법을 동시에 활용하려고 시도한 작품이다.
하늘에도 눈
뒤에도 눈
앞에도 눈
바다에도 눈
마음 깊은 곳에도 눈
너머 저 너머에도 눈
온 세상에 눈 눈 눈
정염이 맴도는 빨간 눈
세상 빛으로 가득한 파란 눈
교회 종소리 가득한 초록 눈
도 · 미 · 솔 저 너머 투명한 눈
때로는 차갑게
때로는 따뜻하게
바라보는 눈
그분의 눈
- 김철교 <무제 2 – 호안 미로 ‘무제’ 1974> (『무제2018』,시와시학,2018) 전문
우리 주위에는 많은 눈들이 있다. 하늘도 바다도 미지의 세계도 시인을 응시하고 있다. 주위 온갖 세상 사람들의 눈도 시인을 향하고 있다. 내가 어떤 대상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은 그 대상과 내가 눈을 마주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 우리에게 평안을 줄 수 있는 인식의 눈은 그 분의 눈 밖에 없다는 것을 시인은 확인한다. 이해할 수도, 내 마음대로 할 수도 없는 삶의 속박 속에서 평안을 얻을 수 있는 길은 그 분의 눈과 마주치는 것이다.(*)2019년 06월 20일 21시 13분 조회:1635 추천:0 작성자: 강려
음악의 옷을 입은 시
- 예술 융복합을 활용한 시 창작(3)
김철교(시인, 평론가)
4. <길·길·길 – 파울 클레 ‘고속도로와 샛길들’> 읽기
* 클레 (Paul Klee, 1879~1940) <고속도로와 샛길들, Highways and Byways>,
1929, 캔버스에 유채, 83.7×67.5Cm, 루드비히 미술관, 쾰른, 독일.
<고속도로와 샛길들>은 <파르나소스로 가는(Ad Parnassum, 1932, 캔버스에 유채와 카세인, 100x126Cm, 베른미술관)>과 함께 클레가 음악의 대위법(對位法)을 활용하여 그린 그림이다(김광우,『칸딘스키와 클레』, 미술문화, 2015, 321~323쪽). 크고 작은 사각형 모양의 돌들이 반복되어 쌓이면서 길을 만들고 있다.
‘예술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라는 신념을 가진 클레는 스위스의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화가가 되었다.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와 클레는 색을 소리처럼 사용하였다. 칸딘스키와 클레 모두 음악을 자신들의 추상화에 적용했지만, 사실상 이를 먼저 주장한 사람을 고갱(Paul Gauguin, 1848-1903)이었다. 고갱은 “생활이나 자연에서 가져온 주제를 가지고 선과 색을 배열하여 일종의 교향곡과 화음을 만든다”고 하였다.
대위법(對位法, counterpoint)은 음악에서 두개 이상의 선율(멜로디)을 동시에 결합하는 다성음악(多聲音樂)이다. 규칙적인 시차를 두고 같은 음을 주고받는 형식으로 연주되기 때문에 연결이 자연스럽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여러 성부(聲部)가 일정한 규칙에 따라 결합하여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며, 각 성부가 선율적 독립성을 지니고 있다. 음악에서는 일반적으로 음의 수직적 결합(화성, 화음)과 수평적 결합(선율, 멜로디)을 통해 아름다움을 극대화하고 있는데, 대위법은 수평적 결합에 해당한다. 캐논과 푸가는 대위법의 일종이다. 캐논은 하나의 성부에서 주제가 노래되면, 시간의 차이를 두어 다른 성부가 그 주제를 그대로 ‘모방’하여 뒤따른다. '돌림 노래'는 캐논형식의 전형이다. 푸가는 하나의 성부에서 주제가 제시되면, 이어서 제2의 성부가 이것을 모방하는데 이것을 ‘응답주제’라 한다. 그 동안에 제1의 성부는 응답주제에 대위(對位)하는‘대주제(對主題)’를 부르면서 진행한다. 주제, 응답주제, 대주제의 관계가 모든 성부를 중심으로 반복되는 것이 푸가형식이다.
문학에서의 대위법은 서로 다른 감정이나 주제를 병치시키는 기법으로, 서로 상반되거나 모순되는 어구를 연결하여 대비의 느낌을 강하게 강조하는 동시에 그 대립 자체가 하나의 통일성을 갖게 한다. 김종삼의 시에서 이러한 음악기법들이 잘 활용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으며(조용훈, 「김종삼 시에 나타난 음악적 기법 연구」, 『국제어문』, 2013, 321-346쪽), 푸가 형식을 활용하여 시의 의미를 한층 풍성하게 한 사례를 첼란의 시에서 찾을 수 있다(박미리, 「음악과 문학의 상호 매체성 – 한 예로서 푸가 형식과 첼란의 시 ‘죽음의 푸가’」, 『독일어 문학』제56집, 2012, 121-146쪽).
클레의 그림 <고속도로와 샛길들>에서 그림의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고속도로는 곧게 뻗고 안정적인 길이다. 그 옆의 수많은 샛길들은 좁고 불안정하고 아무렇게나 생겨난 오솔길이다. 우리의 삶은 고속도로처럼 평탄한 한 평생을 보내든, 불안정하고 흔들리며 어렵게 살든 결국은 하나의 지평선에서 만나게 된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고, 살고 있고, 살게 될지 사람마다 다 다르지만, 결국은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만났을 때, 후회 없는 삶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인은 클레가 그린 <고속도로의 샛길들>을 보면서, 대위법을 염두에 두고 <길,길,길>을 썼다. 이 시에서 시인은 주어진 길이 어떤 길이더라도 예술가의 길을 가겠다고 다짐한다.
푸른 바다로 향하는 길
모두에게 넓고
모두에게 좁은
모든 길
가지각색으로
가지각색의
길을 닦고 있다
바다 건너
아주 먼 바다 건너
내가 온 별자리를 향해
층층마다 다른 색깔로
비틀거리기도 하며
뜀박질도 하며
때로는 목적지를
환히 보기도 하고
때로는 목적지를
잊기도 하지만
멈출 수 없는 길
점. 선. 면. 색을 통해
가야할 길
가는 길을 알기 위해
한 평생을 바치는
화가의 붓질 속에
아득하게나마 찾을 수 있는
나의 모습을 붙들자
붉고 푸른 오렌지 빛깔들
안개 속으로 사라져 버리더라도
- 김철교 <길,길,길 – 파울 끌레 ‘고속도로와 샛길들’>(『무제2018』,시와시학,2018) 전문
첫째 연과 둘째 연.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푸른 바다를 향하는 길을 가는 길손이며 각각의 길은 다르다. 푸른 바다란 각각이 지향하는 낙원, 본향, 고향인 것이다. 인간은 태어난 고향을 그리워하며, 연어도 알을 낳고 죽기 위해 고향으로 회귀한다. 물론 그 고향, 즉 삶의 목적, 가고자하는 종착지는 모든 사람에게 다르다. 또한 가는 방법(삶의 노정)도 다르다. 어느 것이 정답이고 옳다고 할 수 없다.
둘째 연에서는 가는 길을 멈출 수 없는 숙명을 말하고 있다. “내가 온 별자리를 향해/ 층층마다 다른 색깔로/ 비틀거리기도 하며/ 뜀박질도 하며/ 때로는 목적지를/ 환히 보기도 하고/ 때로는 목적지를/ 잊기도 하지만/ 멈출 수 없는 길”인 것이다.
셋째 연은 예술가의 길을 노래하고 있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의 길이 어떤 길인지, 어떻게 가야 좋은지 고민 없이 그저 간다. 그러나 예술가들은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자기가 가야할 길을 만들어 가려고 한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다른 길들은 어떤 길들일까? 길 너머에는 어떤 길이 있을까? 끊임없이 질문하며 가는 사람이 예술가다. “점. 선. 면. 색을 통해/ 가야할 길/ 가는 길을 알기 위해/ 한 평생을 바치는/ 화가의 붓질 속에/ 아득하게나마 찾을 수 있는/ 나의 모습을 붙들자/ 붉고 푸른 오렌지 빛깔들/ 안개 속으로 사라져 버리더라도” 꼭 그림 속에서 만이 아니다. 모든 예술, 더 넓혀 모든 학문 속에서 삶의 목표를 향해 애쓰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될 것이다. 그저 아무 할 일 없이 세월을 소비하는 것을 시인을 참지 못한다.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는 듯한 인생은 얼마나 불쌍한가? 목적, 꿈, 소망(죽음을 앞에 두었더라도 천국에 대한 소망이라도 가져야 한다)이 없는 삶은 동물과 다름이 없지 않은가. 물론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는 동물들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시는 음악적 기법 중에 대위법을 잘 활용하였다. 대위법을 통해 리듬을 살리고 있고 내용을 풍성하게 하고 있다. 또한 색채 이미지 ‘붉고 푸른 오렌지 빛깔’은 도, 미, 솔을 색채로 나타낸 것이다. 러시아 작곡가 스크리아빈(Alexander Scriabin, 1871-1915)은 음과 색채와의 상응관계를 연구한 바 있다.
삶의 조화로운 것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행복이 비록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아무 것도 볼 수도 기대할 수도 없는 삶이라 할지라도 나의 모습을 찾아 예술 속에 한 평생을 던지겠다는 것이다. 이 시의 형식적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리듬과 색이 합쳐진, 즉 ‘보는 리듬’도 클레의 이론에 따라 도입한 것이다.
5. <무제 1 – 피카소 ‘무제’ 1967> 읽기
<피카소 , 무제 1967>
피카소의 15m의 조각 작품 <무제, 1967>는 시카고 시청 앞에 세워져 있다. 이 조각상을 보고 쓴 시 <무제 1>에서, 시인은 거대한 조각 앞에 서 있다가, 자신이 조각 작품이 되어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앞을 지나가는 다양한 인종, 다양한 나이, 다양한 모습의 인간들을 관조하면서, 대위법적 구성을 통해, 삶의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는 나름의 해답으로 자족한다. 반야심경에서 세상 모든 삶의 질문에 대한 해답은 ‘없다’라고 단언하고 있는 것을 기억하면서, 그저 있는 자리에서 자족하며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작품화 하였다. 없는 해답을 찾아 애쓰는 고통으로부터 해방이, 구원이요 행복의 지름길이 아닐까 자문자답하면서.
거대한 몸짓이
우리를 저 아래로 내려다보며
안쓰러운 듯
행복한 듯
무심한 듯
거리를 초점 없이 거닐고 있는
노인들
손잡고 휘파람 부는 정다운
애인들, 애인들,
천방지축 재잘대는
아이들, 아이들, 아이들
존재마다
무슨 제목을 붙일 수 있나요?
사람마다
딱 맞는 옷이 있나요?
행복으로
가는 길은 어데 있나요?
도서관에 꽉 찬 책들이
해답을 줄 수 있나요?
책장마다 역사의 뒤편에 감춰진
그림자를 알 수 있나요?
책 속에 뭔가
있긴 있나요?
그냥 저 거리에 부는
매연 섞인 바람 속이지만
웃고 싶은 웃음이나 실컷 웃지요
- 김철교 <무제 1 – 피카소 ‘무제’ 1967> (『무제2018』,시와시학,2018) 전문
6. <무제 2 – 호안 미로 ‘무제’ 1974> 읽기
미로, <무제 1974>
호안 미로의 그림(<무제>, 1974, 216x174Cm, 캔버스에 아크릴과 목탄, 마요르카 호안 미로 재단)은 사람의 얼굴을 단순화 시킨 모습이다. 위쪽에는 머리를 표현하는 듯한 검은 색이 있고, 그 아래 검은 눈, 그리고 그 아래는 회색 얼굴빛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림의 크기는 제법 커도 아주 간결한 그림이다.
이 그림을 시로 쓴 <무제 2>에서는 빛의 3원색이 등장하고, 그러한 밝고 맑은 색깔에서, 다장조의 화음까지 읽어낼 수 있다. 사방에서 우리는 지켜보는 하나님의 눈을 염두에 두면서 그림을 응시하고 얻은 이미지를 시로 옮긴 것이다. 검은 색과 회색으로 그려진 그림 앞에 서면, 수용자의 마음에 검은 그림자를 드리울 수도 있을 법하지만, 시인은 이 그림에서 항상 우리를 따뜻한 눈으로 보살피는 창조주의 마음을 읽고, 삶을 평화롭게 관조하는 행복한 얼굴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 시도 대위법을 염두에 두었으며, 색깔의 이미지도 도입하여 미술과 음악 기법을 동시에 활용하려고 시도한 작품이다.
하늘에도 눈
뒤에도 눈
앞에도 눈
바다에도 눈
마음 깊은 곳에도 눈
너머 저 너머에도 눈
온 세상에 눈 눈 눈
정염이 맴도는 빨간 눈
세상 빛으로 가득한 파란 눈
교회 종소리 가득한 초록 눈
도 · 미 · 솔 저 너머 투명한 눈
때로는 차갑게
때로는 따뜻하게
바라보는 눈
그분의 눈
- 김철교 <무제 2 – 호안 미로 ‘무제’ 1974> (『무제2018』,시와시학,2018) 전문
우리 주위에는 많은 눈들이 있다. 하늘도 바다도 미지의 세계도 시인을 응시하고 있다. 주위 온갖 세상 사람들의 눈도 시인을 향하고 있다. 내가 어떤 대상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은 그 대상과 내가 눈을 마주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 우리에게 평안을 줄 수 있는 인식의 눈은 그 분의 눈 밖에 없다는 것을 시인은 확인한다. 이해할 수도, 내 마음대로 할 수도 없는 삶의 속박 속에서 평안을 얻을 수 있는 길은 그 분의 눈과 마주치는 것이다.(*)
음악의 옷을 입은 시
- 예술 융복합을 활용한 시 창작(3)
김철교(시인, 평론가)
4. <길·길·길 – 파울 클레 ‘고속도로와 샛길들’> 읽기
* 클레 (Paul Klee, 1879~1940) <고속도로와 샛길들, Highways and Byways>,
1929, 캔버스에 유채, 83.7×67.5Cm, 루드비히 미술관, 쾰른, 독일.
<고속도로와 샛길들>은 <파르나소스로 가는(Ad Parnassum, 1932, 캔버스에 유채와 카세인, 100x126Cm, 베른미술관)>과 함께 클레가 음악의 대위법(對位法)을 활용하여 그린 그림이다(김광우,『칸딘스키와 클레』, 미술문화, 2015, 321~323쪽). 크고 작은 사각형 모양의 돌들이 반복되어 쌓이면서 길을 만들고 있다.
‘예술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라는 신념을 가진 클레는 스위스의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화가가 되었다.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와 클레는 색을 소리처럼 사용하였다. 칸딘스키와 클레 모두 음악을 자신들의 추상화에 적용했지만, 사실상 이를 먼저 주장한 사람을 고갱(Paul Gauguin, 1848-1903)이었다. 고갱은 “생활이나 자연에서 가져온 주제를 가지고 선과 색을 배열하여 일종의 교향곡과 화음을 만든다”고 하였다.
대위법(對位法, counterpoint)은 음악에서 두개 이상의 선율(멜로디)을 동시에 결합하는 다성음악(多聲音樂)이다. 규칙적인 시차를 두고 같은 음을 주고받는 형식으로 연주되기 때문에 연결이 자연스럽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여러 성부(聲部)가 일정한 규칙에 따라 결합하여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며, 각 성부가 선율적 독립성을 지니고 있다. 음악에서는 일반적으로 음의 수직적 결합(화성, 화음)과 수평적 결합(선율, 멜로디)을 통해 아름다움을 극대화하고 있는데, 대위법은 수평적 결합에 해당한다. 캐논과 푸가는 대위법의 일종이다. 캐논은 하나의 성부에서 주제가 노래되면, 시간의 차이를 두어 다른 성부가 그 주제를 그대로 ‘모방’하여 뒤따른다. '돌림 노래'는 캐논형식의 전형이다. 푸가는 하나의 성부에서 주제가 제시되면, 이어서 제2의 성부가 이것을 모방하는데 이것을 ‘응답주제’라 한다. 그 동안에 제1의 성부는 응답주제에 대위(對位)하는‘대주제(對主題)’를 부르면서 진행한다. 주제, 응답주제, 대주제의 관계가 모든 성부를 중심으로 반복되는 것이 푸가형식이다.
문학에서의 대위법은 서로 다른 감정이나 주제를 병치시키는 기법으로, 서로 상반되거나 모순되는 어구를 연결하여 대비의 느낌을 강하게 강조하는 동시에 그 대립 자체가 하나의 통일성을 갖게 한다. 김종삼의 시에서 이러한 음악기법들이 잘 활용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으며(조용훈, 「김종삼 시에 나타난 음악적 기법 연구」, 『국제어문』, 2013, 321-346쪽), 푸가 형식을 활용하여 시의 의미를 한층 풍성하게 한 사례를 첼란의 시에서 찾을 수 있다(박미리, 「음악과 문학의 상호 매체성 – 한 예로서 푸가 형식과 첼란의 시 ‘죽음의 푸가’」, 『독일어 문학』제56집, 2012, 121-146쪽).
클레의 그림 <고속도로와 샛길들>에서 그림의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고속도로는 곧게 뻗고 안정적인 길이다. 그 옆의 수많은 샛길들은 좁고 불안정하고 아무렇게나 생겨난 오솔길이다. 우리의 삶은 고속도로처럼 평탄한 한 평생을 보내든, 불안정하고 흔들리며 어렵게 살든 결국은 하나의 지평선에서 만나게 된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고, 살고 있고, 살게 될지 사람마다 다 다르지만, 결국은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만났을 때, 후회 없는 삶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인은 클레가 그린 <고속도로의 샛길들>을 보면서, 대위법을 염두에 두고 <길,길,길>을 썼다. 이 시에서 시인은 주어진 길이 어떤 길이더라도 예술가의 길을 가겠다고 다짐한다.
푸른 바다로 향하는 길
모두에게 넓고
모두에게 좁은
모든 길
가지각색으로
가지각색의
길을 닦고 있다
바다 건너
아주 먼 바다 건너
내가 온 별자리를 향해
층층마다 다른 색깔로
비틀거리기도 하며
뜀박질도 하며
때로는 목적지를
환히 보기도 하고
때로는 목적지를
잊기도 하지만
멈출 수 없는 길
점. 선. 면. 색을 통해
가야할 길
가는 길을 알기 위해
한 평생을 바치는
화가의 붓질 속에
아득하게나마 찾을 수 있는
나의 모습을 붙들자
붉고 푸른 오렌지 빛깔들
안개 속으로 사라져 버리더라도
- 김철교 <길,길,길 – 파울 끌레 ‘고속도로와 샛길들’>(『무제2018』,시와시학,2018) 전문
첫째 연과 둘째 연.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푸른 바다를 향하는 길을 가는 길손이며 각각의 길은 다르다. 푸른 바다란 각각이 지향하는 낙원, 본향, 고향인 것이다. 인간은 태어난 고향을 그리워하며, 연어도 알을 낳고 죽기 위해 고향으로 회귀한다. 물론 그 고향, 즉 삶의 목적, 가고자하는 종착지는 모든 사람에게 다르다. 또한 가는 방법(삶의 노정)도 다르다. 어느 것이 정답이고 옳다고 할 수 없다.
둘째 연에서는 가는 길을 멈출 수 없는 숙명을 말하고 있다. “내가 온 별자리를 향해/ 층층마다 다른 색깔로/ 비틀거리기도 하며/ 뜀박질도 하며/ 때로는 목적지를/ 환히 보기도 하고/ 때로는 목적지를/ 잊기도 하지만/ 멈출 수 없는 길”인 것이다.
셋째 연은 예술가의 길을 노래하고 있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의 길이 어떤 길인지, 어떻게 가야 좋은지 고민 없이 그저 간다. 그러나 예술가들은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자기가 가야할 길을 만들어 가려고 한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다른 길들은 어떤 길들일까? 길 너머에는 어떤 길이 있을까? 끊임없이 질문하며 가는 사람이 예술가다. “점. 선. 면. 색을 통해/ 가야할 길/ 가는 길을 알기 위해/ 한 평생을 바치는/ 화가의 붓질 속에/ 아득하게나마 찾을 수 있는/ 나의 모습을 붙들자/ 붉고 푸른 오렌지 빛깔들/ 안개 속으로 사라져 버리더라도” 꼭 그림 속에서 만이 아니다. 모든 예술, 더 넓혀 모든 학문 속에서 삶의 목표를 향해 애쓰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될 것이다. 그저 아무 할 일 없이 세월을 소비하는 것을 시인을 참지 못한다.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는 듯한 인생은 얼마나 불쌍한가? 목적, 꿈, 소망(죽음을 앞에 두었더라도 천국에 대한 소망이라도 가져야 한다)이 없는 삶은 동물과 다름이 없지 않은가. 물론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는 동물들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시는 음악적 기법 중에 대위법을 잘 활용하였다. 대위법을 통해 리듬을 살리고 있고 내용을 풍성하게 하고 있다. 또한 색채 이미지 ‘붉고 푸른 오렌지 빛깔’은 도, 미, 솔을 색채로 나타낸 것이다. 러시아 작곡가 스크리아빈(Alexander Scriabin, 1871-1915)은 음과 색채와의 상응관계를 연구한 바 있다.
삶의 조화로운 것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행복이 비록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아무 것도 볼 수도 기대할 수도 없는 삶이라 할지라도 나의 모습을 찾아 예술 속에 한 평생을 던지겠다는 것이다. 이 시의 형식적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리듬과 색이 합쳐진, 즉 ‘보는 리듬’도 클레의 이론에 따라 도입한 것이다.
5. <무제 1 – 피카소 ‘무제’ 1967> 읽기
<피카소 , 무제 1967>
피카소의 15m의 조각 작품 <무제, 1967>는 시카고 시청 앞에 세워져 있다. 이 조각상을 보고 쓴 시 <무제 1>에서, 시인은 거대한 조각 앞에 서 있다가, 자신이 조각 작품이 되어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앞을 지나가는 다양한 인종, 다양한 나이, 다양한 모습의 인간들을 관조하면서, 대위법적 구성을 통해, 삶의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는 나름의 해답으로 자족한다. 반야심경에서 세상 모든 삶의 질문에 대한 해답은 ‘없다’라고 단언하고 있는 것을 기억하면서, 그저 있는 자리에서 자족하며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작품화 하였다. 없는 해답을 찾아 애쓰는 고통으로부터 해방이, 구원이요 행복의 지름길이 아닐까 자문자답하면서.
거대한 몸짓이
우리를 저 아래로 내려다보며
안쓰러운 듯
행복한 듯
무심한 듯
거리를 초점 없이 거닐고 있는
노인들
손잡고 휘파람 부는 정다운
애인들, 애인들,
천방지축 재잘대는
아이들, 아이들, 아이들
존재마다
무슨 제목을 붙일 수 있나요?
사람마다
딱 맞는 옷이 있나요?
행복으로
가는 길은 어데 있나요?
도서관에 꽉 찬 책들이
해답을 줄 수 있나요?
책장마다 역사의 뒤편에 감춰진
그림자를 알 수 있나요?
책 속에 뭔가
있긴 있나요?
그냥 저 거리에 부는
매연 섞인 바람 속이지만
웃고 싶은 웃음이나 실컷 웃지요
- 김철교 <무제 1 – 피카소 ‘무제’ 1967> (『무제2018』,시와시학,2018) 전문
6. <무제 2 – 호안 미로 ‘무제’ 1974> 읽기
미로, <무제 1974>
호안 미로의 그림(<무제>, 1974, 216x174Cm, 캔버스에 아크릴과 목탄, 마요르카 호안 미로 재단)은 사람의 얼굴을 단순화 시킨 모습이다. 위쪽에는 머리를 표현하는 듯한 검은 색이 있고, 그 아래 검은 눈, 그리고 그 아래는 회색 얼굴빛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림의 크기는 제법 커도 아주 간결한 그림이다.
이 그림을 시로 쓴 <무제 2>에서는 빛의 3원색이 등장하고, 그러한 밝고 맑은 색깔에서, 다장조의 화음까지 읽어낼 수 있다. 사방에서 우리는 지켜보는 하나님의 눈을 염두에 두면서 그림을 응시하고 얻은 이미지를 시로 옮긴 것이다. 검은 색과 회색으로 그려진 그림 앞에 서면, 수용자의 마음에 검은 그림자를 드리울 수도 있을 법하지만, 시인은 이 그림에서 항상 우리를 따뜻한 눈으로 보살피는 창조주의 마음을 읽고, 삶을 평화롭게 관조하는 행복한 얼굴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 시도 대위법을 염두에 두었으며, 색깔의 이미지도 도입하여 미술과 음악 기법을 동시에 활용하려고 시도한 작품이다.
하늘에도 눈
뒤에도 눈
앞에도 눈
바다에도 눈
마음 깊은 곳에도 눈
너머 저 너머에도 눈
온 세상에 눈 눈 눈
정염이 맴도는 빨간 눈
세상 빛으로 가득한 파란 눈
교회 종소리 가득한 초록 눈
도 · 미 · 솔 저 너머 투명한 눈
때로는 차갑게
때로는 따뜻하게
바라보는 눈
그분의 눈
- 김철교 <무제 2 – 호안 미로 ‘무제’ 1974> (『무제2018』,시와시학,2018) 전문
우리 주위에는 많은 눈들이 있다. 하늘도 바다도 미지의 세계도 시인을 응시하고 있다. 주위 온갖 세상 사람들의 눈도 시인을 향하고 있다. 내가 어떤 대상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은 그 대상과 내가 눈을 마주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 우리에게 평안을 줄 수 있는 인식의 눈은 그 분의 눈 밖에 없다는 것을 시인은 확인한다. 이해할 수도, 내 마음대로 할 수도 없는 삶의 속박 속에서 평안을 얻을 수 있는 길은 그 분의 눈과 마주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