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5부 흔들리는 이성의 제국, 새로운 철학의 등장
1. 산업혁명의 진전과 사상의 동향
19세기가 갖는 시대적 특징은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과도기라는 점이다. 모든 분야에서 아직 근대적인 면을 지닌 채 현대라는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여는 이중적인 면을 보이면서 새로운 가치와 도덕을 추구하는 변화의 시기였다.
1815년 나폴레옹이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하고 빈 회의가 신성동맹을 결성함에 따라, 유럽대륙의 여러 나라는 강력한 반동적 정치체제의 태동을 경험하게 되었다. 프랑스에서는 부르봉왕조가 부활하고 독일도 오스트리아를 지도자로 하는 독일연방이 성립되었으며 자유주의, 민족주의는 철저하게 탄압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반동체제도 역사의 흐름을 막을 수 없었으며 상승해가는 신흥 부르주아지의 성장과 발전을 억압할 수도 없었다. 영국에서는 일찍이 1770~80년대에 일어난 산업혁명이 시작되어 생산력은 급속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었으며, 대륙의 여러 나라에서도 이 산업혁명의 영향이 점차 나타나기 시작했다.
1830년의 프랑스 7월 혁명은 부르주아지의 왕, 루이 필립을 왕위에 앉히는데 성공했다. 영국에서 시작되어 전 유럽에 파급된 산업혁명이 미친 영향으로 근대적인 공장제 생산양식이 성립되고 근대 자본주의와 시민사회의 발전은 정점에 도달했다.
사상적인 측면에서 이러한 산업 부르주아지의 의도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 영국에서의 공리주의와 프랑스에서의 실증주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근대 시민사회를 발전의 정점에까지 이르게 한 산업혁명의 과정에서 부르주아지는 필연적으로 새로운 적대자를 맞이하게 되었다. 즉 그들이 만들어 낸 근대적 공장에서 작업을 하는 많은 노동자 프롤레타리아트가 바로 그것이다.
산업혁명의 본격적 전개에 앞서 영국에서 소위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의 이상적 사회상의 구상이 나타났고 이것이 후진국 독일의 사상가에 계승되면서 보다 철저한 형태로서의 과학적 사회주의가 등장하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18세기 시민철학의 성과를 그대로 계승하여 더욱 발전시킨 산업 부르주아지의 사상으로서 공리주의·실증주의 철학이 번성하였고, 다른 한편에는 현존 자본주의사회에 대한 비판으로 새로운 사회상을 제시하고 있는 사회주의사상이 대두하였다.
2. 영국 공리주의와 공상적 사회주의
공리주의란 19세기에 주로 영국에서 일어난 윤리설로, 공중적(公衆的) 쾌락주의와 같은 의미로 이해하면 된다. 공리주의는 다음과 같이 구분된다.
첫째, 신학적 공리주의로 그 강령은 “신이 바라는 대로 인류의 행복을 위하고, 공중의 복지를 위해서 행동하라.”이다.
둘째, 경험적 공리주의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표어로 삼으며, 벤담과 밀이 이에 속한다.
셋째, 진화론적 공리주의다. 생물의 진화에서 쾌락의 증진이라는 자연적 사실을 윤리학에 적용한 것으로 스펜서와 스티븐이 이에 속한다.
넷째, 합리적 또는 직각적 공리주의다. 쾌락주의에서 벗어나 실천이성의 직각적인 공정(公正)의 원리를 도덕의 기초로 삼으며, 시지윅이 대표적인 철학자다.
경험론은 공리주의를 낳았다. 보통 공리주의 하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명제를 기억하고 효용성을 떠올린다. 공리주의가 영국의 산업혁명과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프레임과 딱 맞아 떨어진 사회윤리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해로 공리주의는 강자와 부자의 욕망 실현에 충실한 것이 되고 말았다.
제러미 벤담
벤담의 원형 감옥
<벤담의 원형 감옥>
가운데 커다란 홀을 만들고 감방을 모두 벽 쪽으로 빙 둘러 배치하였다. 이런 구조에서는 간수가 홀 가운데 서서 둘러보기만 하면된다. 죄수를 필요 이상으로 잔인하게 하지 않으면서 효과적이다. 고통은 최소화, 효과는 극대화한 것이다. 이런 감옥 구조는 우여곡절 끝에 근대적 감옥구조로 정착되었다.
최대 다수의 최대의 행복을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소수 약자의 희생은 따라야 한다고 오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공리주의에서 먼저 주목할 것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라는 선언이다. 공리주의의 모토인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정치학자인 허치슨(1694~1746)의 구호였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그 맥락이 바로 보통선거권의 요구였기 때문이다.
보통 선거권은 지금은 당연한 것이라 여기지만 당시로는 경천동지할 주장이었다. 공리주의는 이런 사상들의 결합이고 호응이다.
생각이, 철학이 혁명을 이끌어낸다는 것은 그저 선언적 구호가 아니다. 어떤 사상과 철학을 갖느냐 하는 것은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모든 철학은 명제와 반명제 혹은 액션과 리액션의 관계로 이어진다.
합리론에 대한 반명제가 경험론이고, 이 둘에 대한 종합적 리액션이 칸트의 비판철학이었다. 또한 헤겔의 변증론은 아리스토텔레스와 밀을 중심으로 한 기존의 논리체계를 뒤엎는 혁명이었다. 토마스 쿤(1922~1996)은 과학 또한 그런 혁명의 연속 과정이라고 주장했다.
3. 유물론적 방향
유물론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이 세계의 궁극적인 근본요소를 물질로 보는 가치관을 말한다. 심지어 정신적인 것마저도 모두 물질로 바꿀 수 있다는 입장으로, 유심론(唯心論)이나 관념론과 대립되는 경향을 말한다.
유물론의 역사는 길다. 먼저 고대 그리스의 자연 철학자들부터 시작해서 중세 시대의 유명론을 거쳐 근세의 영국 경험론에 이르기까지 때로는 실재론과 대립하고, 때로는 합리론과 다투면서 그 명맥을 유지해 왔다.
이 유물론은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기계론적 유물론과 변증법적 유물론이 그것이다. 기계론적 유물론이란 원자·분자·원소와 같은 어떤 불변의 물질을 인정하고, 그것의 운동으로 모든 현상을 설명하려는 입장이다. 이에 반해, 변증법적 유물론이란 어떤 고정적인 물질적 실재를 인정하지 않고, 이 세계를 오직 물질의 변증법적 변화의 과정으로 이해한다. 다시 말하면, 이 세계란 인간의 사회적 실천까지를 포함해서 서로 관련이 있는 물질 운동의 통일체라는 것이다.
1) 포이어바흐
유명한 법률가의 아들로 태어나 넉넉한 집안에서 모범생 시절을 보냈던 포이어바흐(1804~1872)는 독일의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신학 공부를 하다가 이에 실망하고 철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포이어바흐는 먼저 “헤겔이 말한 절대자란 그의 철학 안에서 유령처럼 떠돌아다니는 말라죽어 버린 신학의 정신, 즉 성령에 불과하다”라고 비판했다. 이어서 그는 헤겔을 극단적인 관념론자라고 선언해 버렸다. 실제로 이 세상의 모든 존재(사물)들이 우리의 감각을 통해 알려지는데도, 헤겔은 감각을 철저히 무시해 왔다. 그러므로 이제 감각에게 본래의 권리를 되찾아줘야 한다는 것이 포이어바흐의 생각이다.
물론 정신이 우리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한쪽(정신)만 보고 다른 쪽(물질, 육체)을 보지 못하면 안 된다. 다시 말해서 정신이 육체를 규정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우리의 정신세계는 이미 무의식적으로 육체에 의해 규정된다고 할 수 있다.
포이어바흐에 의하면, 진실로 우리 눈앞에 존재하는 것은 신이나 존재의 개념 등이 아니라 우리의 감각이 느끼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란 신이 실제로 존재해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의 존재를 믿고 싶어 만들어 낸 것이다. 말하자면 종교란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능에서 발생했다. 인간의 행복하고자 하는 본능이 신을 만들어냈다. 신이 인간을 창조한 것이 아니고, 인간이 신을 창조했다는 것이다.
철학은 유신론을 버리고 인간학의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진정한 철학은 인간학이어야 한다. 그리고 다시 그 인간학이란 추상적인 관념론의 입장이 아니라, 구체적인 유물론의 입장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사유 속을 헤매는 유령이 아니라,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존재하며 행동하는 인간에 관한 학문이어야 한다. 바로 이것이 포이어바흐가 말하는 인간학적 유물론이다.
2) 마르크스
칼 마르크스(1818~1883)는 스스로 ‘헤겔의 충실한 제자’로 말하고 다닐 만큼 헤겔 철학의 핵심적인 부분, 특히 변증법적 사상을 잘 보존했다. 그러나 헤겔의 관념론적 경향에는 반대해서, ‘거꾸로 물구나무선’ 헤겔의 관념론을 유물론적 바탕 위에 바로 세우고자 했다.
마르크스는 독일의 트리어에서 유대인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학창시절 그리 모범생이 아니었다고 한다. 스물세 살에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대학교수가 되려고 했으나 좌파적인 급진적 성향으로 그것이 좌절되자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자유기고가로 활동하는 동안 좌경적 부르주아 민주주의 사상을 표현하는 바람에 결국 당국의 신문검열을 받고 할 수 없이 파리로 망명을 떠났다.
귀족 가문 출신의 아름다운 여인 예니 폰 베스트팔렌과 결혼하여 여섯 명의 자녀를 두었으나, 그 가운데 둘은 지독한 가난으로 죽고 말았다. 그 후 너무나 사랑했던 부인마저 죽자 그는 매우 슬퍼했다.
프랑스에서마저 쫓겨난 마르크스는 벨기에의 브뤼셀로 가서 열일곱 명의 회원을 모아 세계 공산당을 창당했다. 이것이 또다시 문제가 되어, 그는 마지막 종착지인 런던에서 나머지 인생을 보냈다. 런던에서 그는 극도로 가난한 생활을 했다.
파산 신고 직전에 그의 충실한 친구였던 엥겔스의 도움을 받아 필생의 대작인 <자본론>을 쓰기 시작해 1867년 제1권을 출판했으며, 제2권과 제3권은 그가 죽은 후 엥겔스에 의해 출판되었다.
마르크스 철학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세 가지 이론의 원천이 있다.
첫째, 철학적으로는 헤겔의 변증법적 사상과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에 바탕을 둔 변증법적 유물론이 그것이다. 마르크스는 헤겔 철학으로부터 변증법을 받아들이되, 절대정신 자리에 물질을 갖다 놓았다. 자신의 표현대로 ‘물구나무서 있던 헤겔 철학을 땅에 바로 딛고 서게’ 함으로써 관념론적 성격을 유물론적 철학으로 바꿔 놓았던 것이다.
둘째, 경제학적으로는 아담 스미스로부터 데이비드 리카도에 이르는 영국 고전 경제학으로부터 노동가치설과 잉여가치설을 배웠다. 마르크스는 “상품의 가치란 그것을 만드는데 들어간 노동의 양으로 결정된다”라는 노동가치성과, “노동자에 의해 생산된 상품의 실제 가치와 그 노동 자체에 대한 가치(임금) 사이에는 액수의 차이가 생긴다”라는 잉여가치설에서 착취 이론에 대한 암시를 받았다. 말하자면, 노동자는 그 잉여가치만큼 자본가로부터 착취를 당한다는 것이다.
셋째, 정치학적으로는 생시몽과 푸리에 등과 같은 프랑스의 공상적사회주의자들로부터 무계급사회라는 이상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공상적 사회주의자’들과는 달리 역사의 정확한 통찰에 바탕을 둔 자신의 방법을 ‘과학적 사회주의’라고 부르고, 앞으로 인류 역사에서 사회주의를 거쳐 공산주의가 다가오는 것은 역사적인 필연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그 시기를 앞당길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 노동자인 프롤레타리아(무산계급)에 의해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고 역설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동상
철거되는 마르크스와 엥겔스 동상
그렇다면 그의 가장 중요한 철학인 변증법적 유물론에 대해 알아보자.
마르크스는 물질의 변증법적 발전이 결국 사회체제의 변증법적 발전으로 이어진다고 봤다. 여기에는 세 가지 법칙이 있다.
첫째, 부정(否定)의 부정법칙이다.
엥겔스에 의하면, 가령 보리씨 하나를 땅에 심고 그것이 적당한 환경을 만나면 싹이 튼다. 보리씨 그 자체가 부정되는 대신에, 거기에서 한 식물의 줄기가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이 줄기가 자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많은 보리씨를 생산한다. 즉 ‘부정의 부정’을 통해 한 알의 보리씨가 열 배, 서른 배 결실을 얻는 것이다. 또한 양적으로 더 많은 씨를 얻을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더 개량된 씨를 얻는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원리를 인간사회에 적용한다. 가령 자기 노동(가내수공업) 등에 근거한 사유재산을 첫 번째로 부정한 것이 자본주의(대규모 공장) 아래에서 나타난 사유재산이다. 그리고 이것은 자유노동자들이 서로 돕고 그들이 생산수단을 공동으로 소유함으로써 다시 개인적 소유를 불러일으킨다. 바로 부정의 부정을 통해 공산주의 사회가 도래하는 것이다.
둘째, 대립물의 투쟁과 통일 법칙이다.
우리는 자연세계에서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서로 싸우다가 다시 통일되면서 거듭 발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치 생명체의 세포 분열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예는 수없이 많은데, 수학의 미분과 적분, 역학의 작용과 반작용, 물리학에서 양전기와 음전기, 화학에서 원자의 화합과 분해, 사회과학에서 무산계급과 유산계급 등의 예이다.
이러한 엥겔스의 이론을 마르크스는 곧 사회에 적용시킨다. 즉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의 두 계급이 처음에는 서로 협력하지만, 결국에는 두 계급 사이에 모순이 생겨나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의해 자본주의 사회가 무너지고 만다는 것이다.
셋째, 양에서 질로의 변화다.
눈에 띄지 않는 점진적인 양의 변화가 쌓여 일정한 단계에 이르면, 갑자기 질적 변화를 일으켜 낡은 질은 없어지고 새로운 질이 나타난다. 예컨대, 물을 끓일 경우 그것이 일정한 온도를 넘어서지 않는 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다가 섭씨 99도에서 100도에 이르는 순간 액체는 기체로 변하여 질적 변화를 일으킨다. 철광석의 경우 아무리 잘게 부숴도 여전히 철의 성질을 지니고 있지만, 일정한 한계점에 도달하면 더는 철의 성분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우라늄도 한계량에 도달하면 핵분열을 일으키고 순간적인 연쇄작용에 의해 원자의 폭발과 파괴 현상을 가져온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사회의 발전 역시 점진적으로 어느 단계에 도달하면 갑자기 질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자본주의사회의 모순이 어느 시점까지는 아무리 많이 쌓이더라도 그 체제가 변하지 않다가, 일단 한계를 넘어서면 스스로 내적인 모순이 폭발해 아주 새로운 사회로 변모하는 것과 같다.
마르크스 생전에 영국의 경제적 상황은 자본주의의 말기 증세를 보이며 많은 악들을 드러내고 있었다. 저임금 노동이나 부녀자와 어린이의 노동 착취, 기계화로 인한 수많은 실업자의 발생, 단순 노동으로 인한 인간성 상실 등과 같은 문제점들이 일찍이 산업혁명을 겪은 영국에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것을 보고 마르크스는 오직 자본주의 사회를 무너뜨려야만 인간 해방이 가능하다고 믿었으며, 이러한 그의 사상은 변증법적 유물론에 기초한 혁명이론으로 표출되었던 것이다.
물론 마르크스 철학에는 몇 가지 지적되어야 할 측면이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경제적 요인에 의해 사회생활이 결정된다는 점과 역사에서 계급투쟁이 갖는 의의에 주목했다. 게다가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을 높임으로써 어느 시대에나 있기 마련인 모순과 부조리에 대해 끊임없이 대항해 나갈 것을 가르쳤다.

첫댓글 공산당, 어릴 때 625동란을 겪으며 소름돋치는 이단 집단이지요.
유물론은 하나의 좌파적 철학사조지만 불쾌한 느낌은 지울 수 없네요.
비난으로 어지럽히는 댓글이 튀어나올까 싶어 생략하려다,
노동자와 농민이란 다수집단의 횡포가 득세하는 사회적 오염 때문에
자유민주주의의 정의를 수립하기 위하여 몇 자 정리해봅니다.
서양철학사를 좀더 단순하게 정리하면
1. 설화시대 - 탈레스부터 아리스토텔레스까지의 일상통속구조
2. 로고스시대 - 헬레니즘부터 중세까지의 1차단순구조
3. 파토스시대 - 르네상스부터 독일관념론까지의 2차2중구조
4. 탈근대시대 - 후기 헤겔학파부터 정보시대 이전까지의 3원입체구조
5. 양자정보시대 - 21세기 특이점 이후
1차단순구조는 주로 스토아학파나 수도원처럼
금욕적인 생활(action)로써 영혼의 평안을 보상 받지요.
주체의식 보다 하늘이 굽어보고 도와준다는 식입니다.
2차2중구조는 이성(logos)에 감성(pathos)을 넣어 복소수화한 의식입니다.
선험에 후험을 짜넣어(reaction) 개인이 자기책임을 완수하는 거지요.
그 결과로서 산업혁명이 인류에게 혜택으로 주어지는데
그것은 기계가 자연동력이 아닌 인공의 기계동력을 활용했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공리주의는 신흥 부르주아 계급의 갑질적 무장으로 볼 수 있어요.
마르크스가 보기에 인민 모두가 평등하게 한 표씩 투표한다면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반드시 시민 다수를 점하는 플로레타리아가
정권을 잡고 권력을 쟁취할 수가 있다는 것이 뻔한 것이지요.
자본주의는 필멸하고 공산주의가 최후 승리한다는 신념이 들겠지요.
"인간의 의식이 존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
마르크스의 역사적 유물론 첫번째 명제입니다.
헤겔의 지향점인 절대정신의 개념을 뒤집은 것입니다.
유물론은 정신을 사회적 다수집단의 생산력으로 대체한 사상이라 보겠는데
그 실체인 공산주의는 어차피 공산당이 유일체제로 집단을 지배해야 합니다.
유일체제는 자유가 결코 허용되지 않아요.
어차피 독재체제나 전제국가가 될 수밖에 없지요.
오늘날 주사파 북의 김씨 세습정권은 그 대표적입니다.
중공의 시진핑이가 또 마각을 드러내는데 자멸을 재촉하는 거죠.
금요바둑 다녀왔더니 낙솔의 장문 해설이 올라와 있네요. 감사합니다.
사실 실재론과 유명론, 관념론의 유심론과 유물론 등 정말 복잡하고 난해합니다.
오늘 낙솔의 자세한 설명으로 서양 철학사 이해에 큰 도움이 되었어요.
특히 낙솔께서 '양자정보시대의 철학'을 언급하셨는데,
사실 저는 '미래의 철학 방향이란 어떤 것인가?'가 무척 궁금합니다.
앞으로 '서양철학사 입문' 대한 글은 5회 정도 더 올릴 예정이지만,
미래의 철학, 즉 양자정보시대의 철학은 다루지를 못했어요.
마땅한 책이나 자료를 구할 수 없었지요.
혹시 좋은 책이나 관련 자료 있으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제가 소장한 책 중에
만물해독 DECODING THE UNIVERSE
찰스 세이프 지음 지식의숲 펴냄 2008년 발행
을 권합니다.
십년 전의 지식이라서 그 후의 변화를 담아내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저자의 전공이 AI라서 그런지 매우 최신 정보를 대하는듯 합니다.
그러나 본인에게는 깊은 통찰력을 제공했기 때문에 근래 다시 정독했지요.
그렇지만 저 역시 근래 최신 서적이 나왔는지 확인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