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글
8월 무더위 기간에는 트레킹을 쉬기로 했다.
그런데 두발이 근질거려 못참고 나가기로 했다.
한주에 하루 정도 걸어 보기로 했고 오늘 세번째 트레킹을 떠났다.
아직도 날씨는 무덥지만 땀나게 걸어 볼 각오였으며
오늘은 보성구간 율포에서 장흥구간으로 들어가는 여정이다.
-걸었던 날 : 2026년 8월23일(일요일)
-걸었던 길 : 보성~장흥구간 78코스(보성 율포해수욕장~수문항~해창마을~원등마을)
-걸었던 거리 : 19km( 28,000보. 5시간)
- 누계거리 : 1,195km
-글을 쓴 날 : 2026년 8월25일.( 수요일)
오늘 걸어야 할 거리는 19km 거리이다.
트레킹 거리로는 먼거리가 아니다.그러나 8월 한 더위에 만만치 않은 거리지만
정오쯤이면 완보 할 예정이어서 큰 부담없이 출발했다.
나는 백두대간을 걷고 나서 막연히 해파랑길을 걷고 싶었고
기왕에 걷는 것이라면 코리아 둘레길을 완성하고 싶었다.
오래전 어느날 황안나님의 "내 나이가 어때서" 라는 도보 여행기를 읽었다.
그분는 평범하게 사셨던 초등학교 교사이셨다.
그런데 교사 정년을 하고 나서 65세때 평생 꿈꾸었던 국토종단길을 나서셨고
자신의 도보 여행기를 책으로 내셨다.
그리고 걷는것에 자신이 붙은 그분는 지리산 둘레길과 제주 올레를 걸으셨고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코리아 둘레길를 완보(完步)하셨다.
75세 무렵에는 젊은 산악인도 힘들어하는 지리산 화대종주를 하셨다.
그리고 해외 트레킹도 도전하셨는데
산티아고,네팔 히말라야,홍콩,몽골,등등 무수히 많은 길을 걸으셨다.
그리고 그분은 책과 시를 쓰셨고 강연을 하셨다.
그분의 처음 직업은 교사이셨지만 제 2인생은 도보 여행가이셨고 작가와 시인이셨다.
그분은 뜨거운 열정으로 한 인생을 사셨던분이시다.
나는 그분를 만나지는 못했으나 인터넷 공간에서 글을 읽었고
2020년 무렵 산악인과 작가,시인들이 "백두대간 평화 트래일"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북녁의 백두대간을 열어보자는 활동할 때 회원으로 같은 시기에 활동을 한 인연이 있다.
북녁의 백두대간을 민간 단체에서 열어보겠다는 활동은 몹시 제한적이어서
큰 활동을 못하고 단체의 활동은 멈추었지만 의미있는 시작이었다.
나는 걷다가 황안나님 그분를 자주 생각하곤 한다.
첫 국토종단 보행을 해남 땅끝에서 강원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어리석고 무모하여 오롯이 혼자 걸었지만 그분는 강한 여인이었다.
65세라는 늦은 나이에 걷기를 시작했던 여인!
책을 쓰고 시를 읇었던 작가!
나이는 숫자에 불과 하다고 희망을 주었던 사람!
내가 살아 온 세월 만큼 길 위에 버릴것도 많드라!
"길은 어디에도 있으니 걷는 것이다" 라며 말했던
그분을 나는 조금이나마 닮고 싶었다.
그런데 황안나님은 2026년 4월 16일 향년 86세를 일기로 하늘의 별이 되셨다.
이제 그분은 그만 쉴수 있게 된것이며 편히 영면하기길 바랬다.
나는 오늘 그분이 생각났었고 내가 걷는 이 길도 그분이 걸었던 길을 걷고 있었다.
나는 오늘 무엇을 얻고 무엇을 털어낼까?
7시 30분 보성 율포 송림에 도착하여 걷기 시작했다.
요새 지엽적으로 소낙비가 쏟아지곤 하지만 오늘 아침 율포는 바람이 없어 바다는 숨죽은듯 고요하고 무덥다.
양산으로 햇빛을 가리고 해안 데크길을 걷기 시작하는데 기분은 짱이다.
멀리 일림산(668m) 마루에 하얀구름이 쌓여있는 모습을 본다.
해양의 기운이 구름을 만들고 일림산에 수분을 공급해주니 일림산 철쭉이 그렇게 화려했었나?
언젠가 일림산 철쭉제에서 봤던 만개한 철쭉의 향연이 기억에 선하다.
그리고 산 위 하얀구름은 머물다가 점차 사라지는 모습이다.
지나는 차가 드문 도롯가의 가로수는 백일홍나무이다.
진한 분홍꽃이 100일 동안 피울것이니 심심한 도로가 한참동안 화사할듯 하고~
남해안은 충무공의 흔적이 많은데 지금 이곳은 보성군 회천면 군영구미 군학마을이다.
1597년 8월 17일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 장군이 출항한곳이란다.
당시 이곳에서 군사와 무기, 군량과 병선을 모아 출정을 했다.(현판글 참고).
그리고 재미없는 도룻가를 걸었다.
어느새 햇살은 뜨겁고 도로의 반사열에 땀이 비 오듯 하니 재미는 없지만 걸어야 할 길이니 묵묵히 걷는다.
그리고 보성군 회천면을 벗어나며 장흥군 지역으로 들어가 또 한 고을을 만난다.
장흥군은 작가들의 고을이다.
녹두장군의 송기숙,현대문학의 한승원과 이청준 등등 문인들이 많다.
도롯가에 문인들의 언어가 있어 발길을 잠시 멈추고
평소 독서량이 적은 나는 이렇게라도 시비(詩碑)의 글을 읽는다.
새벽달
바다쪽 유리창 밖으로
모가지가 금가루 장식하고 어디론가 날아가는
학 같은 득량섬
키조개 캐는 배와 바지락 파는 아낙들
해류와 달과 별 휘도는 것 내다보는
그 재미 하나 보고 토굴에 사는 자네
외롭지 않은가 하고
스페인 싸움소의 뿔 같은 새벽달이 물었다
흰 잠옷 바람의
어둠 속 떠도는 혼령 같은 내가 말했다.
슬픈 사유 한과 한과
진창같이 질퍼덕거리는 길 바닥에 깔고
영생할 무덤집 열심히 도배하는
살과 뼈 속에는 외로움 기생할 틈바구니가 없네
작가 한승원님의 시비(詩碑) 글이다.
득량섬은 율포 해변 앞의 가장 가까운 섬이다.
수문 해수욕장에 햇살은 가득하고 빛이나는데 해수욕을 하는 사람이 없다.
해수욕장에서 모래 찜질을 하고 비닐튜브를 안고 파도를 타던 사람들은 어디에도 없다.
자녀에게 수영을 가르치던 사람들도 이 휴가철에는 더 시원한 워터파크로 가 버리고
수문 해수욕장엔 사람이 없어 수상 안전요원은 핸드폰 게임에 열중이다.
어느새 수문해수욕장 근처에서 쉬어가야 할 타임이었다.
이왕이면 남파랑길 카페 "남파랑78" 찾아 가려고 한참을 더 걸어 갔는데 주인장이 없었다.
영업을 중단하였으면 설치한 광고 간판까지 제거했어야 하는데 사소한 관심이 아쉽다.
남파랑카페 78은 휴업중!
우리 다음 생에는 시계가 되자
너는 발 빠른 분침으로
나는 발 느린 시침으로
한 시간마다 뜨겁게 만나자
중 생략~
이 세상 한 복판에서 너의 영원을 부등켜 안은 미이라가 되자.
한승원 문학산책 길에서 "시계" 라는 열애일기를 읽는데 무슨뜻인지 잘 모르겠다.
한승원은 노벨문학상 수상 한강작가의 부친이시다.
해창리 포구를 향하여 간척 제방길을 걷는다. 거리가 짐작이 안되는 긴 제방이다.
해창포구는 안양면과 용산면 내륙으로 깊게 들어가야 하는데.
장재도를 거쳐 "정남진 대교"을 건너면 10km 쯤을 단축하여 갈수 있어 장재도로 갈까?
라고 말했더니 제 길로 가야 한다며 은자여사는 단호하다.
덕분에 충무공 이순신이 수군을 재건했던 해창포구, 해창마을을 거쳐 걸었다.
1597년 8월 17일 백의종군 했던 충무공이 해창포에 이르러 재정비를 하고
회룡포로 건넜다는 수군 재건로 이다.(현판글 참고)
이 길은 충무공 이순신이 고단하게 걸었던 "이순신 역사의 길"이다.
2026년 남파랑길을 걷는 트레커들은 곳곳의 현판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역사 공부가 되고 영웅 이순신의 고단했던 상황들을 조금이나마 느끼게 해준 날이기도 하다.
그래서 길은 스스로를 깨우치는 시간이기도 하고
반성하는 시간이기도 하며 용서와 다짐의 시간이기도 하다.
또한 배려의 시간이기도 하고 깨우침의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걷는것을 좋아 할수 밖에 없다.
장흥군 용산면 원등마을 회관에 도착하였는데 현판이 보이지 않았다.
가로등 기둥에 있는 종점 QR을 한참 동안 헤메이다 찾았다.
장흥 안양면 개인택시를 콜하고 기다리며 수백년 정자나무 아래 그늘에서
휴식중인 할머니(86세)를 만나 인생 이야기를 나누다가 율포로 이동하려고 택시를 탔다.
그런데 갑자기 택시기사님이 마시고 싶은 커피를 주문하라신다.
뜬금없는 일이었으나 목이 말랐고 마실물도 떨어진 상황이어서 갈증이 심하던 차였다.
그리고 전화로 자신의 아내에게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잔을 주문하신다.
"아내분이 카페 하시나요?" 라고 물었더니
가는 길이 자기 집을 지나는 길이어서 주문한거란다.
사소한 일 같지만 대단한 일이다.사모님 또한 귀찮은 일이지만 불편없이 아이스 커피 두잔을 들고
나오시는 품이 한두번이 아닌 폼세이다.
안양면 개인택시 기사님부부에게서 친절과 배려를 배우고 감사하다.
이렇게 길에서 또 한분의 스승를 만난 기분이다.
율포로 돌아와 해수 사우나에서 씻고 귀가 했다.
2026년 8월 23일(일) 걷고
8월 24일(월)에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