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시이소)
세상은 기브 앤 테이크
신근식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저울이 하나 놓여 있다. 누군가에게 받으면 마음 한쪽이 기울고, 무엇인가를 건네면 다시 조금 평평해진다. 우리는 그것을 굳이 의식하지 않고 살아간다. 그것은 부모에게 받은 사랑, 스승에게 받은 가르침, 친구에게 받은 위로와 격려 등이 있다. 받은 것은 많지만, 정작 무엇을 받았는지 하나하나 세어본 경우는 별로 없다.
젊은 날 나는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내어놓았다. 누군가 어려움에 처하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고, 부탁을 받기 전에 먼저 나섰으며, 내가 조금 더 할 수 있는 것은 내 몫까지 내어주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넓은 오지랖 때문에 남의 일에 너무 깊이 관여한다는 핀잔을 들었다. 그때는 그것이 손해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사람 사는 일이란 서로 돕고 나누며 사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낌없이 주는 마음이 언제나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한 번의 도움을 당연하게 여기거나 거절하지 못하는 성정을 이용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느 순간 나는 ‘호구’라는 말까지 들었다. 처음에는 그것마저 사람을 믿고 사는 일이라 여겼지만, 남 돕는 데 익숙한 나머지 정작 나 자신을 돌보는 데는 서툴렀다. 몇 번의 경험 뒤에는 마음속의 계산기까지 생겼다. 그러나 셈을 할수록 사람 사이의 온기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사람 사이에는 주기를 좋아하는 기브(giver), 받는 것을 먼저 생각하는 테이크(taker), 받은 만큼 돌려주려는 매처(matcher)가 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세 가지 부류로 나누기는 어렵다. 나 역시 때로는 아낌없이 주다가도 내 몫을 먼저 챙겼고, 받은 만큼 해야 한다고 셈을 하였다. 결국 사람의 마음은 관계와 삶의 무게에 따라 흔들리고 움직인다. 중요한 것은 어떤 이름으로 자신을 규정하느냐가 아니라 서로를 헤아리며 함께 살아가는 태도이다.
그렇다고 주는 사람이 언제나 좋은 사람인 것은 아니다. 나 역시 젊은 날에는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내 몫까지 내어주는 일이 많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남을 돕는 것과 나를 희생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브는 자신을 내어주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지키면서도 필요한 순간 기꺼이 나눌 줄 아는 사람이다. 때로는 “아니요”라고 말하고, 때로는 어려운 사람에게 마음을 보태는 것, 그것이 오래 나누며 살아가기 위해 내가 늦게 배운 지혜이었다.
나 역시 혼자의 힘으로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한마디가 길을 바꾸었고, 작은 도움 하나가 어려운 시간을 건너게 했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 도움이 내 삶 곳곳에 남아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받은 것을 반드시 그 사람에게 되돌려주어야 할까? 꼭 그럴 필요는 없다. 강물이 자신에게 물을 준 샘으로 되돌아가지 않듯, 받은 것은 다른 곳으로 흘러가도 된다. 한 사람의 친절이 또 다른 사람에게 이어진다면 작은 배려도 보이지 않는 물길을 따라 멀리 흘러갈 수 있다.
이런 생각은 성공을 바라보는 내 마음도 바꾸어 놓았다. 젊었을 때는 더 많이 가지고 더 높은 곳에 오르는 것이 성공인 줄 알았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내가 오른 높이가 온전히 내 힘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누군가는 사다리를 잡아주었고, 누군가는 길을 열어주었으며, 힘들 때 기다려준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높은 곳에 올라섰다면 아래에서 올라오는 사람 위해 사다리를 잡아주는 것이 당연하다. 성공은 혼자 올라서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올라설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줄 때 비로소 깊어진다.
나는 살아오면서 인생은 한쪽으로만 기울어 살아가는 일이 아니라는 것도 배웠다. 어느 날은 내가 기대고, 어느 날은 내가 누군가를 받쳐주었다. 부족할 때 도움을 받고, 힘이 있을 때 다른 사람의 짐을 함께 들었다. 늘 똑같이 나누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형편을 헤아리고 자기 자리 지키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삶의 중심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일상은 거창한 기브와 테이크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침의 인사, 누군가의 말을 들어주는 시간, 서툰 사람을 기다려주는 배려, 낯선 이에게 건네는 작은 친절처럼 셈할 수 없는 것들이 사람 사이를 이어준다. 무엇을 주고받을지 계산하는 순간 관계는 거래가 된다. 그러나 대가 없이 건내는 것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새로운 의미를 만든다. 그래서 서로의 삶을 스쳐 지나며 받은 것이 다시 다른 누군가에게 이어지는 흐름이다.
나이가 들수록 무엇을 더 가질 것인가 보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시간과 경험, 실패와 배움까지도 누군가에게는 길이 될 수 있다. 받은 것을 모두 갚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그것이 내 안에서 멈추지 않게 하는 것, 내가 얻은 것을 필요한 곳에 다시 건네는 것, 그렇게 하나의 경험이 다음 사람의 용기가 되고, 한 사람의 배려가 또 다른 배려로 이어진다. 그래서 내가 살아온 시간도 누군가에게 의미가 될 수 있다.
뒤돌아보니 주는 사람도 나이었고, 받는 사람도 나이었다. 때로는 도움을 청했고, 때로는 누군가의 짐을 함께 들었다. 어느 한쪽이 나의 전부이었던 때는없다. 그래서 이제는 많이 주는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보다, 필요할 때는 받을 줄 알고 줄 수 있을 때는 기꺼이 내어놓으며 그 사이에서 나 자신을 잃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간다. 삶의 중심은 어느 한쪽을 고집하는 데 있지 않고, 서로 다른 무게를 받아들이며 제자리를 찾아가는 데 있기 때문이다.
마음은 돌려받기 위해 건네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에게서 받은 것이 다른 사람에게 이어질 때, 비로소 그것은 새로운 삶의 힘이 된다. 내가 살아온 시간도 그렇게 흘러가기를 바란다. 삶의 높이는 내가 얼마나 높이 올라섰느냐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 누구를 돌아보았느냐에 있다. 결국 사람의 삶을 깊게 만드는 것은 손에 남은 것이 아니라 내가 기꺼이 놓아준 것들이다.
오늘도 문득 생각한다. 내가 받은 마음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아마도 내 안에만 머물러 있지 않을 것이다. 오래전 누군인가가 내게 건넨 한마디가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에게 이어졌을 것이고, 내가 건넨 작은 도움 또한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누구인가의 하루를 조금 따뜻하게 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주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건너가며 또 다른 마음으로 피어날 뿐이다.
(20261005)
첫댓글 수고 하셨습니다.
한비수필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