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숙
고속도로를 내린 시외버스가 반짝이는 네온간판과 밤바다처럼 출렁이는 야경을 뒤로하고 정류장 진입로에 들어섰다. 분주한 회색빛 도시를 떠나 새 삶의 터전을 찾아왔다.
밤늦게 퇴근하는 남편은 아는 사람도 없이 낯선 곳에 혼자 있는 나를 생각해 강아지 한 마리 얻어왔다. 순한 생김새에 눈이 똘망똘망 예뻤다. 마당 한 편에 강아지 집을 만들어 주고 이름도 ‘예삐’라고 지었다. 하루종일 넓은 마당을 놀이터 삼아 집을 지키다가 퇴근하는 나를 반겨주고 기다려 주었다. 강아지 사료가 많이 보급되던 시절이 아니다 보니 먹고 남은 음식으로 충당하기 어려웠다. 이웃 정미소에 가서 쌀보다 가격이 싼 보리쌀을 삶아서 먹였다. 생선을 손질해서 팔던 도시의 상설시장과는 달리 오일장에는 생선을 손질하지 않고 팔아 생선 머리나 내장을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생선 손질 경험이 없던 나는 남편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생선 반찬을 장만하고 나머지로 예삐밥도 준비하였다.
강아지를 기르다 보니 나들이가 쉽지 않았다. 다들 농사일에 바쁜 이웃이라 맡길 곳도 마땅히 없었다. 모처럼 연휴에 예삐밥과 물을 잔뜩 장만해 놓고 집안일로 서울을 다녀왔다. 이틀 만에 집에 왔더니 예삐는 목줄을 푼 채 반갑다고 이저리 꼬리를 흔들어댔다. 마당을 휘저어 놓아 제 밥그릇과 물통, 화분이 널브러져 있었다. 텅 빈 밥그릇을 보니 미안한 마음에 서둘러 예삐밥부터 챙겨 주었다. 나날이 예삐가 통통해지는 것을 보며 ‘내가 밥을 잘 챙겨 주어서 살찐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예삐가 낑낑거리며 잠을 못 자게 했다. 아무래도 예삐가 이상하다고 생각되어 자던 남편을 깨워 나가 보라 했다. 남편이 나가자마자 예삐가 새끼를 낳았다고 했다. 깜짝 놀랐다. 강아지를 제대로 키워본 경험이 없는 나는 예삐의 낑낑대는 소리를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잠도 자지 못하고 냉장고에 있는 우유를 몽땅 내어 주고 푹 삶은 보리쌀과 미역국을 끓여 예삐 가까이 갔더니 평소와는 달리 심하게 짖었다. 밤새 낑낑대던 일은 출산의 고통을 이기며 일곱 마리 새끼를 위한 울부짖음이란 걸 알았다. 안타깝게도 한 마리는 예삐집 모퉁이에 죽어 있었다.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남편이 예삐 몰래 뒷마당 한구석에 묻어주었다. 출근한 뒤 동료들과 차 한잔을 나누다 ‘어미 강아지가 새끼 낳았다’라고 자랑하며 ‘미역국을 끓여 주었다’라고 하니 ‘무슨 강아지에게 미역국을 끓여주느냐’며 다들 박장대소하며 놀렸다. 나는 ‘강아지도 사람 먹는 걸 먹으니 당연히 산모처럼 여겨서 그랬노라’라고 의기양양 했었는데 할 말이 없었다.
그 당시 시골에서는 강아지를 반려견으로 키우기보다는 식용으로 키우는 경우가 많았고 드물게 애완용으로 키우기도 했다. 텅 빈 집을 지켜주고 예쁜 새끼를 낳은 예삐의 수고를 생각해 퇴근길에 단골 정육점에 들러 돼지고기와 뼈를 사 왔다. 돼지뼈 용처를 묻는 주인아주머니 물음에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서툰 살림 솜씨에 예삐가 새끼를 낳은 후 얼마 동안은 정신이 없었다. 어미젖을 제대로 못 먹는 새끼도 있어 우유를 챙겨 주기도 했다.
목줄을 묶어 두었는데 제 발로 뛰쳐나가 새끼를 품었다고 생각하니 결혼 후 낯선 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예삐에게 조롱조롱 매달려 젖을 먹는 새끼를 보며 어릴 적 우리 육남매 생각이 나기도 했다. 예삐는 털 색깔이 황색이었는데 새끼들은 황색에 검은색이 섞인 것도 있었다. 가끔 집 앞을 서성이던 이웃집 검둥이랑 정분이 났다고 생각했다. 퇴근해 집에 오면 검둥이가 제 새끼를 찾아온 듯 자주 들락거렸다. 예삐랑 여섯 마리 새끼를 돌보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웠다. 새끼를 시장에 데려다 파는 일도 있었지만 내키지 않았다. 우리 육 남매가 부모님 슬하에서 자랐듯이 여섯 마리 새끼도 힘이 닿는 대로 다 키우고 싶었다. 새끼들은 털 색깔로 구분하여 불러주며 정 떼기 힘들까 봐 이름도 지어주지 않았다. 3개월쯤 키우다 예삐와 새끼 한 마리만 남기고 다섯 마리는 분양을 결정했다. 다행히 가까운 동네에서 닮은 강아지들을 자주 볼 수 있어 좋았다.
이듬해 우리 집에도 큰딸이 태어났다. 아장아장 걸을 때쯤부터 마당에 있는 예삐네 모녀랑 함께 놀았다. 큰딸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대구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집안에 강아지 키우는 일은 거의 없어서 예삐네 모녀를 이웃에 보내려고 했다. 이사를 앞둔 어느 날, 예삐와 새끼가 한참을 보이지 않다가 마당에 들어오더니 평소와는 달리 맥없이 쓰러졌다. 기가 막혔다.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은 모양이었다. 예삐는 우리가 이사 갈 때 따라갈 수 없는 줄 알고 그랬을까? 지금 생각해도 너무 아픈 예삐 모녀와의 이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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