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옥봉동 성당 (순례지/성지)
간략설명: 진주 본당으로 설립된 서부 경남의 중심 본당
도로주소: 경상남도 진주시 향교로42번길 5
옥봉동(玉峯洞) 본당은 마산교구 소속 본당으로 1926년 5월 10일 문산(文山) 본당 소속의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그리스도의 도움이신 마리아이다. 설립 당시에는 진주(晋州) 본당이었으나, 1967년 현재의 본당 이름으로 개칭되었다.
전사 및 공소 시대 진주 지역에 복음이 전파된 경로는 대략 두 갈래이다. 하나는 경북 지역에서 박해를 피해 낙동강을 따라 남하하여 동쪽 사봉면에 복음의 씨앗을 뿌린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전라도 지역에서 박해를 피해 지리산과 덕유산을 넘어 남강을 따라 내려와 문산에 복음을 전파한 경우이다. 이러한 두 경로를 통해 진주 지역에 천주교 신앙이 전파되고 교우촌이 형성된 것은 1860년대 초였다. 1866년 병인박해(丙寅迫害) 때 진주에 사는 양반 정찬문(鄭燦文, 안토니오)과 중인 구한선(타대오)이 순교한 것으로 보아도 알 수가 있다.
문산 지역에는 신자 최(崔) 루도비코가 전라도 달구산에서 그곳으로 이사 와 살면서부터 복음이 전해졌다고 한다. 그는 이웃에 살고 있던 강(姜)문주와 교분이 두터웠는데, 함안에 살고 있던 강문주의 사위 구(具)필경이 처가에 내왕하는 동안 최 루도비코에게 감화를 받아 입교하게 되었다. 그는 함안으로 돌아가 본가의 가족과 친지들에게 전교하였는데, 병인박해 때 순교한 그의 아들 구한선이 문산으로 이사 와 활발히 전교하였다. 구한선은 경상도 지역을 전담하던 리델(Ridel, 李福明) 신부와 함께 1865년경 거제도를 방문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문산에 뿌리를 내린 천주교 신앙은 다시 진주의 비라실(현 진주시 장재동) 인동 장씨(仁同張氏) 집안으로 전해졌다. 문산의 교우 제 씨(諸氏)는 1871년 딸을 진주의 비라실에 사는 외인 장익금(張益今)에게 출가시켰다. 삼 형제 중 막내인 장익금이 부인의 권유로 처가에서 교리를 배워 입교한 후 그의 전교로 두 형제들도 모두 신자가 되었다. 병인박해의 피해가 비교적 적었던 진주의 교우촌들은 1880년대에는 이미 다시 안정을 찾았다. 문산 소촌(召村, 현 진양군 문산면 소문리) 교우촌과 진주의 비라실 교우촌은 박해 이후 경상도를 전담하게 된 로베르(Robert, 金保祿) 신부에 의해 1883년에 모두 공소로 설정되었다. 이들 진주 지역 공소들은 조조(Jozeau, 趙得夏) 신부가 1890년 초에 부산 절영도에 정착하면서 부산 본당(정식 명칭은 초량 본당) 소속이 되었다.
성당을 들어서면 초입에 서 있는 예수성심상이 먼저 환대하는 옥봉동 성당은 뾰족한 종탑을 갖춘 로마네스크 양식의 벽돌조 건물로 고색창연한 붉은 벽돌조의 작은 건물은 초기의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근현대 성당 건축의 변천과정을 잘 보여준다. 1997년 부임한 정중규 신부는 대대적인 성당 미화작업을 진행하여 창문 유리화를 교체하고 마당 조경도 새롭게 단장했다. 1933년에 봉헌된 성당이 모태가 되어 몇 차례 보수와 증축을 거친 현 옥봉동 성당은 2005년 4월 15일 문화재청으로부터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154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