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악 산 대 청 봉
곽수택
천고의 가을 하늘 뭉게구름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어디로 가야 할지 중심이 흔들린다. 가을 산행은 단순히 신체적 활동을 넘어 비움과 채움이라는 깊은 정서적 의미를 지닌다. 설악산과 같은 명산을 찾는 이들이 가을 산행에 느끼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가을의 설악산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먼저 단풍이 시작되는 곳이자 그 색이 가장 깊고 화려하기로 유명하다. 가장 큰 매력은 단연 단풍이다. 초록빛 생명력이 붉고 노란 결실의 색으로 변하는 과정은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동시에 떨어질 잎이라는 점에서 순간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가장 짧게 머무는 그 풍경을 보며 우리는 번잡함을 잊고 시각적인 위로를 얻는다. 산은 나에게 답을 주지 않는다. 오로지 향기만 준다.
이번 가을 산행은 설악산 대청봉으로 계획을 세웠다. 어느 산행보다 마음의 준비가 많다. 심리적 부담도 크다. 오늘은 설악산 산행하는 날 장거리 산행이라 이것저것 빠짐없이 준비에 잠잘 시간도 없었다.
새벽의 도심을 가르는 시동 소리 새벽 네 시 대구의 거리는 아직 잠에 취해 있었다. 분지의 눅눅한 공기를 뚫고 고속도로에 몸을 싣는다. 차창 밖 풍경은 어둠에서 옅은 보랏빛으로 다시 푸르스름한 새벽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가을이지만 밤공기는 겨울이나 다를 바가 없다. 중간 휴게소에서 시락국에 조졸 한 아침 식사 이지만 진수성찬이나 다를 바가 없다. 강원도 인제군 북면 한계령 해발 1.000m 한계령 휴게소 8시40분경 도착하였다. 차 문을 여는 순간 대구의 열기는 이미 전설 속 이야기처럼 아득해진다. 코끝을 스치는 공기의 한기가 다르다.
휴게소에는 등산객으로 인산인해 이었다. 눈에 보이는 사람 모두가 등산객이다. 아주 보기 더문 진풍경이다. 버스에 내려서 준비 과정을 그쳐 아홉 시 등산이 시작되었다. 같은 버스에 타고 온 일행은 나와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다. 각자 뿔뿔이 흩어져 누가 누구인지 모른다 단지 배낭의 명찰을 보고서야 일행인지 겨우 알 수 있다. 많은 인파에서 일행을 보기는 쉽지 아니하다.. 각자의 능력껏 정상을 향해 걸어야 한다. 나는 한계령에서 대청봉 코스는 초행길이다 초입에 가파른 돌계단 때문에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는 " 여기는 설악산이다." 라고 선언하는 듯 매우 고압자세이다. 나는 옆 사람들에게 계속 물어보면서 가야 한다. 나는 옆 사람인 여성에게 또다시 길을 물었다. 그 여성은 서울 사람으로 혼자 왔다면서 오늘은 중청대피소에서 하룻 밤을 지내고 내일 서울로 간다고 하였다. 참 대단한 여성이다. 남자도 혼자서 대피소에서 하룻 밤을 보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여성은 시간이 충분하다면서 천천히 간다고 하였다. 나는 궁금한 점이 너무 많았다. 초행길이라 상세한 설명에 가이드 역할을 잠시나 해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연신 하면서 불안한 마음에 안도감을 받았다. 스쳐 지나가는 인연 끝에 요란한 말보다 깊게 각인되는 은은한 사람의 향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장 강력한 연결고리다. 사람은 떠나도 향기는 기억 속에 남아 있다. 혹시나 길을 잘못 들면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바윗길이 많다. 서릿발이 녹으면서 바위가 매우 미끄러웠다. 바위 사이로 스틱이 끼면서 몇 차례나 부러질 뻔 하면서 발목부상도 염려가 되었다. 대청봉 까지는 다섯 시간 삼십분 정도 소요 된다. 중간중간에는 죽어서 천 년. 살아서 천 년인 주목이 무한 영감을 안겨 주었다. 체력 소모가 상당 하였다. 그만큼 압도적인 설악의 파노라마를 선사한다. 시간의 부담감에 영롱한 단풍을 사진 한번 찍는 것도 쉽지 아니하다. . 나는 중간에 휴식은 서서하고 간단한 간식과 물 한 잔 먹는 것 전부이다. 가져간 막걸리 한잔 먹을 시간도 없었다, 중간 중간에 식사 하는 사람이 많다. 나는 식사하는 사람들에게 체면은 뒤로 하고. "술 있으면 한잔 만 주세요?" 하면 "아. 예." 하면서 서슴없이 소주 한 잔을 준다. 서서 한잔을 먹고 나면 또 한잔 권한다. 그러나 이 한잔으로 만족하였다. 소주 한잔은 그 사람의 깊은 내면에서 배어 나오는 아름다운 향기로 바람을 따라 백 리. 천 리를 간다. 사람의 향기는 지워지지 않는 여운으로 남는다. 가슴에 스며들어 산행길은 더욱 가벼워진다. 나는 중간에 또 소주 두 잔이나 먹었다. 산행 인심은 천심이다. 나는 중간에서 다리에 쥐가 났다. 아 큰일 났다. 불안한 마음이 앞선다. 아직도 산행 중 다리에 쥐가 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잠깐 휴식을 취하면서 그래도 다리에 쥐 난 게 쉽게 풀리었다.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산행 중 이상이 생기면 급기야는 헬기 신세 져야 한다.
가을 산행은 결국 자연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며 나의 내면을 다시 세우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물든 단풍을 보면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제 몫의 아름다움을 피워내는 생명력을 배우게 된다. 나는 중청대피소에서 급히 점심을 먹으 면서 막걸리 한 잔으로 잠시나 피로를 풀었다. 막걸리를 흔들다 뚜껑을 급히 열리어 술이 거의 반 정도 쏟아졌다. 옆에서 식사하던 등산객이 "아유 아저씨. 여기까지 왔는데 아까워서 어떡합니까? 라 한다. 한계령의 가파른 오르막을 견뎌 내고 설악산의 주봉인 대청봉이 그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다. . 마주하는 대청봉(1708m) 다섯 시간 삼십분의 고통 뒤의 찬란한 보상이라는 인생의 진리를 몸소 체험한다. 대청봉 사진 한번 찍는 것도 길게 줄이 생겨서 기다려야 하였다. 사진을 찍고 난 후 뒤 사람이 만세 포즈로 찍는 것을 보고서 "와. 멋있다 라는 생각에 또다시 온다는 기약 없기에 나는 기다렸다 만세 포즈로 다시 찍었다. 그때의 사진이 아주 만족해서 지금도 많이 활용하고 있다. 혼자 오르는 산행을 통해 기분 좋은 고독 즐기며 스스로 다독이는 시간 갖기도 한다. 가을 산의 공기는 밀도가 다르다. 차갑고 건조한 공기는 머리를 맑게 해주고. 능선에서 맞는 서늘한 바람은 산을 오르면 흘린 땀을 식혀주며 정신적인 해방감을 선사한다. 나는 대청봉에서 우리 산대장을 만났다. 여기서 우리 일행을 처음 본다. 얼마나 반가운지 피로가 풀리는 것 같다. 대청봉을 찍고 오색으로 하산하는 급경사에 악명 높은 돌 계단으로 무릅이 비명이다. 등 뒤로는 겹겹이 쌓인 산맥들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대자연의 서사시 속에 나라는 존재는 한 점에 불과함을 깨닫는다. 그 겸손한 깨달음은 오히려 마음을 넉넉하게 채운다. 오색 도착은 아홉 시간 소요 되었다. 설악산은 화려한 정답을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묵묵히 걷는 법과 자신의 한계를 마주하는 용기를 가르쳐 주었다. 기약 없는 설악산은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영원한 풍경화로 남을 것이다.
그 향기가 그립다.
첫댓글 수고 하셨습니다.
한비수필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