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사도행전 2장 41-45절『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그 말”은 2장 40절의 말로서『너희가 이 패역한(스콜리아스)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스콜리아스는 휘어진, 완고한 등의 의미를 갖는다. 빌립보서 2장 15절『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스콜리아스)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예수님은 패역하고 완고한 세대를 유대 율법주의자들을 상대로 말씀하셨으나 제자들에게도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17장 17절『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니라.』패역한 세대가 바로 믿음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
마태복음 17장 20절『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겨자씨 만한 믿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믿음은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한 것을 믿는 믿음이다. 성도가 현재적으로 부활한 것을 믿으면, 성도의 심령 속에 옛성전(이 산)을 저리로 옮겨버린다. 그래서 저 산(새성전)을 저기서 여기로 옮겨버리라고 하면 옮겨지는 것이다. 이 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해 주신다. 현재적 부활을 믿는 자는 심령 속에 새성전이 들어서고 그리스도가 심령 속으로 재림해 들어오므로, 성도 역시 하나님의 권능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 권능은 병을 치료하고 죄를 사해주는 권능이다. 따라서 제자들이 간질병 들린 자를 치료하지 못하는 이유는 부활의 능력이 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간질병 들린 자는 죄인을 상징한다. 부활생명을 가진 성도는 죄를 사해주는 권세가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현재적 부활의 능력이 없는 자는 십자가에서 죽어야 할 죄인으로 머물러 있게 된다. 그래서 패역한 세대가 되는 것이다.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프슈카이 ψυχαὶ)가 삼천이나 더하더라』그래서 유대인들은 부활생명이 없는 패역의 의미를 깨닫고 세례를 받았다. 이 날에 세례를 받은 수가 삼천명 이상이 되었다는 말이다. 이 부분을 헬라어로 보면, προσετέθησαν ἐν τῇ ἡμέρᾳ ἐκείνῃ ψυχαὶ ὡσεὶ τρισχίλιαι.
다시 번역하면『그 날에 약 삼천의 살아있는 생명(영어:soul)이 더하더라』프슈카이(프슈케)는 신도의 혼이라고 번역된다. 그런데, 프슈케는 혼이라고 하지만, 히브리어로는 “네페쉬 하이”(살아있는 생명)이다. 네페쉬 하이는 육체적으로 살아있다는 말도 되지만, 영적으로는 부활생명을 의미한다.
창세기 2장 7절에서『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네페쉬 하이)이 되니라』개역개정은 생령이라고 번역했으나, 살아있는 생명이다.
첫사람은 성전과 부활생명을 가진 그리스도라는 말이다. 그리스도의 몸이 성전이며, 부활생명을 가졌으나, 남자와 여자로 분화되면서 부활생명은 사라졌다. 몇몇의 믿음의 선진들만 부활생명을 유지했으나, 온 세상의 사람들은 부활생명을 잃어버린 것이다. 마지막 사람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생명을 다시 찾아주시는 것이다. 세례는 바로 부활생명을 찾아주는 것이다. 성도가 예수와 함께 죽고, 부활하신 예수와 함께 부활한 것을 믿는 것이 구원이라는 말이다. 이 믿음이 겨자씨와 같은 믿음이라는 말이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코이노니아) 떡을 떼며(클라세이) 오로지 기도하기(프로슈카이스)를 힘쓰니라.』성령세례를 받은 성도들은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기도하는 것을 힘쓴다. 교제한다는 코이노니아(κοινωνίᾳ)는 사도들이 하는 복음사역에 참여한다는 의미다. 복음사역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죄를 사해주는 하나님의 은혜이고, 그래서 예수와 함께 죽어야 하며, 하나님하나부터 부활생명을 받아야 영적으로 살아나며, 성도 역시 부활하신 예수와 연합하여 현재적으로 부활하였음을 믿게 하는 것이다.
떡을 떼는 것(클라세이 투 아르투)은 성찬을 의미한다. 성찬 역시 잔을 마시고 떡을 때는 것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고, 성도 역시 이에 참여한 자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기도하는 것(프로슈케)은 성도의 심령 속에 새성전이 세워지고, 그 성전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재림해 들어와 주인으로 임재하시므로, 성도 역시 그 성전에 기도로서 들어가 주인이신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다. 이게 프로슈케 기도인 것이다.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ἐγίνετο(모이다) δὲ(그때) πάσῃ(모든) ψυχῇ(살아있는 생명) φόβος(놀라운)』이를 다시 번역하면,『모든 살아있는 생명이 모이고 있으며』, 즉 부활생명을 가진 자들이 모인다는 표현이다.
『사도들로 말미암아(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디아는 ~통하여 라는 의미다. 사도들을 통하여 많은 기사와 표적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부활생명을 가지면, 죄를 사해주는 권능과 하늘 문을 여는 권세가 주어진다. 이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병든 자를 치료하고, 귀신을 쫒아내고,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이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다 함께 모였으며, 같은 믿음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 믿음이다. 모두가 예수와 함께 죽었으며, 예수와 함께 부활한 것을 믿는 자들이 모인 것이다. 이게 교회 공동체라는 것이다.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καὶ εἶχον ἅπαντα κοινὰ 』다시 번역하면『모두가 공감대를 가지고 있으며』이다. 물건이 아니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공감대를 의미한다.
『또 재산(휘파르케이스)과 소유(크테미타)를 팔아(에파프라스콘) 각(안) 사람(티스)의 필요(크레이안)를 따라(카도티) (파신) 나눠 주며(디에메리존)』
휘파르케이스는 존재, 재산을 의미하며, 히브리서 10장 34절에서『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휘파르코)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휘파르코는 물질적 소유가 아니라, 육적인 종교심(사륵스)을 의미한다.
크테미타는 재물, 소유이지만, 물질에 대한 소욕을 의미한다. 에파프라스콘은 거래하다, 노예를 처분하다 라는 의미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 속량임을 나타낸다. 티스는 관계대명사(who)이며, 크레이안은 결핍으로서, 누가복음 5장 31절에서『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크레이안)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카도티는 ~만큼 이라는 관계부사(as)이다. 파신은 번역이 되지 않았는데, 만유(예수 그리스도)라는 의미다. 디에메리존은 나누어주다, 채워주다 라는 의미다.
결국 죄를 처분하는 것이다. 육적 종교심과 소욕에 대한 죄를 처분하게 되면, 각 사람의 영적인 필요만큼 예수 그리스도께서 채워주신다는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