탠트와 침낭 같은 야영 장비를 구입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 친구 이 나이에 새삼스럽게 뭔 돼지 풀 띁어 먹는 소린가 했었는데
오토 캠핑장에 몇 번가더니 재미가 붙었는지 이번엔 좀 멀리 남해의 섬으로 캠핑여행을 함께 하자는 제의를 해왔다.
섬 여행을 좋아하는 나였기에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오지여행 책자에서 추천하였다는 연화도는 통영에서 50분가량 걸리는 통영과 욕지도 사이에 있는 아담한 섬이다.
3시에 출발하여 4시쯤에 내린 연화도는 남해의 여러 섬들처럼 주봉인 연화봉 주위로 크고 작은 섬들을 군데군데
거느리고 있는 자그맣한 섬이었다.
삼 일치 식량과 야영장비 그리고 카메라 장비를 챙겨 넣은 배낭은 두 손으로도 들기 힘들 정도의 무게가 된다.
배낭 무게가 만만치 않지만 오늘 올라 갈 연화봉의 높이가 217m밖에 안된다기에 별생각없이 짐을 꾸려서 부두의
오른쪽 산길을 따라 오르기 시작했다.
산을 오른지 1분도 안되 등에 멘 짐 때문에 무모한 만용을 후회하기 시작한다.
200m 가 아니라 2000m처럼 느껴졌다
tv에서보았던 중국 황산의 짐꾼 이야기가 생각났다.
이 개고생을 하며 올라간 꼭대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 미친 짓을 결코 용서 못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초죽음이 되서야 아미타 여래불이 우뚝하게 높이 서있는 섬의 주봉인 연화봉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연화봉 정상에는 20-30m정도는 될 것 같은 화강암조각의 아미타여래불이 우뚝서있고 전망이 좋은 곳에
망해정이란 정자가 세워져 있었다.
서쪽으로는 연화도의 랜드마크인 용머리 돌절벽이 둘러져있고 산 아래 중턱엔 연화사 그리고 바닷가 쪽으로 보덕암이
자리 잡고 있고 이름 모를 섬들이 눈길 가는 곳곳이 멀리 가까이 떠있는 모습은 바다를 자주 못 본 우리들에겐
가슴 설레게 하는 환상적인 풍광이 아닐 수 없다.
조금 전에 대불 앞을 쓸고 연화사로 내려간 젊은 승려이외엔 산을 올라오는 사람이 없으니 이왕이면 저 망해정 정자위에다
탠트를 치자고 염치없는 모의를 하고 하루밤을 준비한다.
정자마루에 친 탠트는 바람 잘 통하고 마루바닥이니 습기가 올라 올 염려도 없고 무엇보다도 탠트안에서 사면으로 보이는
어두워가는 밤바다의 풍광은 단연 압권이다.
게다가 저렇게 큰 부처님이 떡 버티고 서서 우리를 살펴주니 세상의 어떤 호텔도 이만한 잠자리를 챙겨주지는 못 할 것이리라.
구름이 전체 하늘에 드리워 감동스런 저녁노을은 볼 수 없었지만 저녁 무렵의 바다는 낮에 보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순간순간 하루의 열정을 사그러 트리고 있다.
말없이 어두워지는 밤바다를 내려다보던 친구가 내뱉는다.
“내가 집사람에게 약속을 잘하지 않는데 말이야 방금 전화를 걸어 이 연화도를 꼭 한번 구경시켜주겠다고 약속을 했네”
이 친구의 감동의 크기를 알겠다.
바다 쪽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숲속에서 우는 새소리도 점차로 잦아지고 밤바다에 불이 하나 둘 켜지면서 밤이 깊어간다.
사람삶의 존재를 알리고픈 저런 불빛들을 보니 섬은 낮보다 오히려 밤이 덜 외로울 것 같다.
섬의 아침은 새소리와 은은히 들리는 아랫 쪽 연화사의 목탁소리가 묘한 하모니를 만들며 시작된다.
잠은 깨었으나 눈을 감고 새소리를 들어본다.
도대체 어떤 진화의 곡절을 거쳤기에 저렇게 맑고 예쁜 곡조의 소리가 된 걸까.
연화도는 불처님의 땅이다.
연화봉 꼭대기의 아미타 여래불과 보덕암, 그리고 연화사 등이 섬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어
섬 어디에서 보더라도 여기가 불국토의 영역안이라고 느껴진다.
다시 하산하여 무거운 짐을 식당에 맡겨놓고 섬의 동쪽용머리 해안쪽으로 걸어간다.
용머리해안의 바위절벽들의 절경을 구경하면서 천천히걷는 3시간정도의 길은 해안가 바위벼랑위로
길을 다듬어 놓아서 걸어가면서 때론 아찔한 높이의 바위절벽과 잩은 군청색이 맑은 바다위에
고기잡이 배들이 떠있는 멋진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
소매물도의 등대섬도 감동적인 풍광이었지만 여기 이 용머리 해안의 바위 벼랑길 또한
그에 못지않는 절경이다.
별로 힘들지 않는 오르내리막 길이니 지나다니는 관광객들도 거의 4-50대나 여자들이 많다.
다시 돌아와 보덕암, 연화사를 끝으로 보고 선착장이 있는 마을로 돌아온다.
[ 친구 넉살 덕분에 등산객들로 부터 막걸리 도 몇잔 얻어 마시고.....]
4시 통영에서 들어온 배는 우리를 싣고 20분가량 운항하여 어제 연화봉에서 본 욕지도로 향한다.
욕지도는 꽤 큰 섬이다.
하루에 6차례 뱃 시간에 맞춰 섬을 일주하는 마을버스도 있고 대중목욕탕도 있어 연화도에 비긴다면
여긴 대도시나 다름없다.
친구는 책에서 본 파라다이스 캠핑장으로 가자고한다.
섬의 남서쪽 유동마을,
버스에서 내린 우리는 파라다이스를 금방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파라다이스가 파라다이스가 아니었다.
폐교된 초등학교를 대충 수리하여 민박과 캠핑장으로 활용하려는 모양인데 아직 시즌이 아니라서
개장을 안했다고 탠트도 못 치게 하니 좀 난감하다.
할 수 없이 방파제 안쪽 시멘트 바닥의 낚시꾼 탠트 옆 한쪽에 우리도 자리 잡는다.
낚시꾼들이 버린 쓰레기와 방파제에서 부서지는 파도소리가 머리를 두드리는 것 같아
불안하지만 탠트 속에 들어가 누우니 그런데로 견딜만하다.
이 얇은 천 조각 하나를 둘렀다고 바깥의 환경을 모두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의 감각이란 것이
참으로 별거아니란 생각을 해본다.
어제 저녁이 연화봉 꼭대기의 천상의 잠자리라면 오늘은 쓰레기 통 옆의 노숙자 잠자리다.
이 친구 해수욕장 서쪽 바다로 지는 일몰을 보며 또 감동이다.
모름지기 여행자는 매사에 쉽게 감동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게 평소에 생각해왔던 생각인데
그런 관점에선 더 없는 착한 여행자이다.
자고나니 찌푸리던 하늘에서 비가 온다.
벌써 3일째 세수도 제대로 하지 않은 얼굴은 거울을 안 봐도 친구를 보면 내 꼴도 알수있겠다.
빨리나가 목욕탕에서 샤워라도 하고 나면 행복할 것 같다.
11시20분 섬을 도는 버스를 타고 섬을 한 바퀴 돌아 본 다음 섬을 떠난다.
언제 또 올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