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변화의 격동기를 겪다 1894년. 이
해는 우리나라에서 크고 굵직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던 역사적인
해였습니다. 흔히 역사적 사건이라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기는 일상 속에
은폐된,
전혀 당연하지 않은 비합리적이고 비상식적인 허점을 발견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런 뒤틀린 구조를 바로잡으려 하는 힘은 대부분
그 시대에 억압받고 소외
되었던 변두리에 놓여진 사람들 한 명 한명의 점조직 모여 하나의 거대한 조직으로
발전하는 데에서
비롯됩니다. 조선왕조 500년 역사동안 정치권력의 부조리한 횡포에
착취될 수밖에 없었던
약자는 이에 맞설 힘을 제대로 가져본 적이 없는 농민들이었습니다. 임진왜란을
비롯한 국가의 대내외적 위기를 겪으면서
해이해진 국가기강을 틈타 농민착취가
만연하던 당시 농민의 경제는 서서히 무너져 갔습니다. 삼정의 문란, 곧 조세의
부정은 농민으로서의 삶을
더없이 할퀴었습니다.
산발적으로 시작된 농민운동은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라는 필연적인 역사적
사건을 낳게 됩니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이념과
함께 동학농민운동은 그 후에
전개될 굴곡진 역사의 전조 역할을 하게 됩니다. 정부군은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나는
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청에 군을
요청하고, 청은 즉시 요청을 받아들여 군대를
조선에 상륙시킵니다. 청의 군대와 합세한 정부군의 농민군 진압이라는 예상
시나리오는 그러나, 일본의
개입으로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됩니다.
일본은 청보다 많은 군대를 조선에 파견해 청과 대립각을 세웁니다. 청과 일의
대립으로 위기감이
팽팽해진 조선은 농민군과 정부군이 전주화약을 맺음으로
사건을 일단락하지만, 공동 철수를 어기고 조선에 남아 조선 내정에 간섭하던
일본은 결국
청군을 공격해 청일 전쟁을 일으키게 되죠.
일본의 압박으로
고종이 물러나고 새롭게 권력을 쥐게 된 흥선 대원군은 새로운
정권을 수립할 세력으로 '온건 개화파'와 손을 잡습니다. 1894년 6월, 김홍집을
필두로 새 정권이 수립되고 이른바 '개화 정권' 시대가 펼쳐집니다. 청의 속국이
된 조선의 형세를 바꿔, 청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개화 정권은
과감한 개혁을
추진합니다. 1894년 6월부터 1986년 2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추진된 이 개혁이
바로 '갑오개혁'입니다. 갑오개혁은 왕조
체제를 대신할 국민 국가 체제를 지향함
으로써 다방면에서의 개혁을 꾀하는데, 이는 전근대적인 사회제도를 유지해온
조선을 근대화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갑오개혁은 조선의 주체적인
세력으로 추진되지 못하고, 일본의 손을 잡은 친일 내각으로 조직된 세력들에
의해 일어나게 됩니다.
천하를 다스리는 큰 원리- 홍범14조
군국기무처를
중심으로 한 1차 갑오개혁이후, 2차 갑오개혁에서 바로
「홍범14조」가 선포됩니다. 「홍범14조」는 일본공사의 설득과 권고에서
비롯돼 일본의
입김이 남아 있었지만, 개화파 관료들의 개혁의지가 반영된
우리나라 최초의 헌법적 성격을 지닌 것으로서 그 역사적 함의가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1894년 12월, 정치제도의 근대화와 자주독립국가를 천명한
「홍범14조」가 제정됨으로써 1894년, 조선의 굴곡진 역사적 해가 마무리
됩니다. 자, 이제 그럼「홍범14조」에
어떤 조항들이 있는지 알아볼까요?
홍범
14조
1. 청에 의존하는 생각을
버리고 자주 독립의 기초를 세운다. 2. 왕실 전범(典範)을 제정하여 왕위 계승의 법칙과
종친과 외척과의 구별을 명확히
한다. 3. 임금은 각
대신과 의논하여 정사를 행하고, 종실(宗室), 외척의 내정 간섭을 용납하지 않는다. 4. 왕실 사무와 국정 사무를 나누어 서로 혼동하지
않는다. 5.
의정부(議政府) 및 각 아문(衙門)의 직무, 권한을 명백히 규정한다. 6. 납세는 법으로 정하고 함부로 세금을 징수하지
아니한다. 7. 조세의
징수와 경비 지출은 모두 탁지아문(度支衙門)의 관할에 속한다. 8. 왕실의 경비는 솔선하여 절약하고 이로써 각 아문과
지방관의 모범이 되게
한다. 9. 왕실과
관부(官府)의 1년 회계를 예정하여 재정의 기초를 확립한다. 10. 지방 제도를 개정하여 지방 관리의 직권을
제한한다. 11. 총명한
젊은이들을 파견하여 외국의 학술, 기예를 견습시킨다. 12. 장교를 교육하고 징병을 실시하여 군제의 근본을
확립한다. 13. 민법,
형법을 제정하여 인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전한다. 14. 문벌을 가리지 않고
널리 인재를 등용한다.
홍범 14조는
크게 ▲청나라의 간섭 배제 ▲왕권 강화와 외척 견제 ▲세금 제도 개선
▲ 훌륭한 인재의 유학 장려 ▲ 군사 제도 개선 ▲ 능력에 따른 인재 등용
등으로
그 내용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홍범 14조가
가지는 헌법적 성격을 알아보기에 앞서 헌법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
정의를 짚어보겠습니다.
헌법이란 흔히
'법 위의 법'이라고 하는 국가 최고법으로서 국가 통치 체제의
기초를 정한 근본법의 총체입니다. 국가의 통치조직과 통치작용의 기본원리 및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근본 규범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국가 기관의 행위
작용과 관계 및 활동을 규정하는 근본조직법은 고유한 의미로의 헌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헌법은 일정한 이념과 가치를 실현하는 '이념성'을 지니고 그 이념은
일정한 역사적 상황과 조건을 통해 만들어지는 '역사성'을
가집니다. 그러므로
헌법에는 시대와 역사라는 과정을 거쳐 형성된 시대정신과 역사정신이 서려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 그럼 다시 홍범 14조
이야기로 되돌아가서, 홍범 14조를 최초의 헌법으로 볼
수 있는 헌법적 성격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홍범 14조는 그 첫 조항에서도
주지하듯이, 엄연한 자주국으로서의 성격을 분명히
선포하고 있습니다. 청의 의존에서 벗어나 대외적으로 나라의 주권을 확립한 조항
인데요, 이 조항에
대한 구체적인 시행으로 중국 연호를 폐지하고, 대조선국으로
국호를 개칭하게 됩니다.
또한 왕실
사무와 국정 사무를 분리해 혼동을 막고, 왕실의 정치 참여를 금지하고
6조 체제를 폐지함으로써 근대적인 내각제도 확립하고자 합니다. 탁지아문
관할하의
재정 일원화, 조세법정주의 및 예산제도 수립, 지방제도 개편을 통해 근대 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됩니다. 신분제를 폐지하고,
군사제도를 확립하며 신교육을 장려함으
로써 '국민' 의식을 높여가는 것 역시 근대 국가로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권리의 보장이 확보되지 않고, 권력분립이 규정되어 있지
않은 사회는 헌법을 가진
것이라고 할 수 없다(프랑스 인권선언 제16조)는 프랑스의 인권선언으로 대두된
근대적·입헌주의적 의미의 헌법정신이
읽혀지는 대목들입니다. 특히 13조항에서
천명한 근대 사법(司法)의 대원칙에서 홍범 14조의 역사적인 의의를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공식적으로 '헌법'이라는 이름으로 헌법이
제정된 것은 일제시대를 거쳐
광복 후입니다. 1948년 5월 10일 남한만의 총선거로 구성된 국회에서 제1공화국
<헌법>이 제정, 그해 7월
17일 공포되었습니다. 헌법은 국민이 결정하도록 국민
투표에 따라 제5차 개정 헌법(1962.12.26)부터 국회에서 먼저 의결한 후 국민
투표를
하여 헌법 조항들을 정했습니다. 2013년 현재의 헌법은 9차례의 개정으로 만들어진
제9차 개정 헌법입니다.
헌법에 담긴 인류의 가치와 정신을 따라
우리나라 최초의
헌법 성격을 지닌 홍범 14조를 통해 지금까지 이어져온 헌법의
정신과 헌법이 앞으로 지향해야 할 가치와 정신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셨나요? 앞서 언급했듯이, 헌법은 그 시대와 역사의 정신을 담고
있습니다. 헌법이라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