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인 : 박상훈 대표는 정치학자라서 유권자 선택은 언제나 올바르다고 보고, 그런 선택의 배경과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보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지난 대선은 대중의 탐욕의 결과라며 유권자를 비판하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라고 보겠지만, 경제학자인 내 입장에서 보면 (탐욕의 결과라는) 그 입장이 맞다.
우리 국민이 지금처럼 경쟁 일변도의 투기에 가까운 심리를 갖게 된 것은 역시 외환위기 이후부터다. 내가 어떤 조직이나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내 일만 열심히 하고 살면 상당히 괜찮은 삶을 누릴 것이라는 믿음과 기대가 사라지고, 나만이라도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이런 생각에 금융이 결합됐다.
이런 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무도 2등은 기억하지 못한다.”는 삼성의 광고와 2002년부터 시작된 “부자되세요.”라는 자산 관리 광고다. 이 광고 문안들은 당시 대중들의 심리를 잘 반영한 것이다. 이게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 때도 지속됐다. 두 정권은 시대적 한계라는 조건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집행했지만, 국민들도 극단의 경쟁 속에서 벼락부자 꿈을 꾸게 됐다.
2010년 선택부터 대중들은 바뀌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결국 양극화로 귀결됐다.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면 내가 소수의 승리자가 되는 길을 열어줄 것 같다는 또 한 번의 환상과 기대를 걸었던 것이다.
그런데 2008년 세계금융의 위기로 이런 기대와 환상은 깨졌다. 만약에 미국 발 세계 금융위기가 일어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부동산 버블이 깨지면서 위기가 닥쳤을 것이다. 세계적인 금융 경제 위기 때문에 이명박 정권의 문제가 덜 드러난 셈이다.
그러다가 2010년 지방선거 때부터 사람들은 “나만 잘 살 수 있다.”에서 “나도 루저가 될 수 있다.”는 쪽으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무상급식이라는 작은 이슈가 보편복지로 번져갈 수 있었던 것은 국민들의 이 같은 변화된 생각 때문에 가능했다. “혼자서 잘 살 수는 없겠구나, 다 같이 잘 사는 방법을 찾아야겠다.” 이렇게 발전한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전혀 먹혀들어갈 것 같지 않던 경제민주화가 핵심 이슈로 떠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직 국민들의 심정은 계기만 주어지면 경제적 투기를 선택할 수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사회적 안전망의 중요성도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만약 새누리당 박근혜가 집권하고, 지배동맹의 이해를 충분히 따르면 국민들은 또 한 번 투기 쪽으로 방향을 돌릴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경제는 완전히 붕괴될 수 있다.
“나만 살자”에서 “같이 살자”로
이런 점에서 볼 때 시대정신은 처음에 말한 위기 극복 방법과 같은 것이고, 국민들도 어느 정도 같은 인식을 갖고, 그런 방향으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강연하고 있는 정태인 원장의 모습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경제사회적 요구보다 정치적 요구와 개인적 매력이 더 큰 요인이었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사회경제적 요구가 부각된 것이고, 이명박의 성공신화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시작했다.
“나만 살자.”에서 “다 같이 살자.”로 방향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소수의 승자가 아니라) 다수의 루저 중 한 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체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이 위기를 극복하고 우리 사회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가도록 만드는 희망이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지금 이슈가 되고 있는 사회경제적 민주주의가 시대정신이라고 볼 수 있는데, 문제는 정치권이나 정책 생산자들이 그걸 실제로 만들어내고 관철시킬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세계적 위기 속에서도 그런 시대정신을 관철시킬 수 있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선택해야 할 것이다.
박근혜 복지, 당선되면 사라진다
이광호 : 각 캠프에서 영입한 경제 분야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캠프 색깔이 드러나고 있는 것 같은데.
정태인 : 문재인 캠프에는 시장개혁론자들 많이 들어가 있다. 이정우 교수가 자리를 잡고 있어서 정책 기조에서 크게 문제가 될 건 없을 것으로 본다. 그런데 많은 정책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 적재적소에 잘 활용을 못하는 것 같다. 왜 그런지 궁금하다.
박근혜 쪽은 정책에 관해서는 많은 부분에서 두 방향으로 소리를 내고 있다. 보수와 개혁의 주장이 동시에 나오고 있다. 정책 완성도도 나쁠 것 같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정책을 다듬을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복지의 경우 안종범, 경제는 이혜훈이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종인은 ‘마담’이다. 아무튼 이명박 때 내걸었던 747공약 같은 어설프고 엉성한 것은 만들지 않을 거로 본다.
경제민주화, 보편복지에 대해서는 수세적일 수도 있지만, 자신들이 좀 더 (정책의) 실현 가능성이 높은 후보라는 이미지를 채워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경제민주화와 보편복지에 대한 어떤 공약이 나오더라도, 박이 당선되면 그런 정책들은 다 버릴 것이 거의 확실하다. 지배동맹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그랬다. 굵은 방향에서 옳았다고 본다. 나를 포함한 참모들이 구체적인 방향을 확실하게 주지 못했다.(참여정부 당시 노 대통령이 이정우, 이동걸, 정태인 등 개혁파 노선이 아니라 경제 관료들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결과적으로 개혁파가 밀려남) 노무현보다 안철수 쪽이 경제에 더 취약할 수 있다. 중소기업 벤처 사장으로서의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거시정책 결정은 경제 관료가 중심이 돼서 만들어진다.
다만 장하성은 주주 자본주의 이론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모피아와 재벌과 대립해온 사람이이 때문에, 정치적 영향력은 없을지 모르겠지만, 일정 부분 역할을 할 것이라고 본다. 정책적으로 보면 장하성의 주주이론은 안철수의 ‘생각’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
이밖에 홍종호, 박원암 등이 있는데 그들은 모두 KDI 출신이다. 안철수의 ‘생각’에서 나타난 경제관과는 어울리지 않는 인물들이며, 박원암의 경우 완전 반대쪽이라고 봐야 된다. 장하성이 가서 이들의 영향력을 일정 부분 차단하는 역할을 할 수는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노동자, 지역주민, 중소기업 등 이해당사자 목소리가 의사결정에 반영되는 경제민주화 정책을 입안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시민사회, 대선 과정 정책 매개로 참여해야
이광호 : 문재인 후보나 안철수 후보가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기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사회 운영 원리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나?
정태인 : 둘 중에 한 사람으로 단일화가 된다면 아슬아슬 하겠지만 정권 교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정권 교체가 된 다음에 과연 경제민주화나 보편복지, 협동조합까지, 이런 것들이 정책적으로 잘 실행될 것이냐 하는 점이다. 현재로서는 이에 대한 정책 실행이 잘 될 것이라는 보장이 전혀 돼 있지 않다.
일단 경제 상황이 안 좋을 것이기 때문에 특히 엄청나게 늘어난 가계 부채 문제를 틀어막기 위해서라도 1~3년은 족히 걸릴 것이다. 이거 하면서 개혁을 힘 있게 밀고나가는 게 힘들 것이라는 게 객관적 상황이다.
대선 과정에서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반영되고, 정권 교체가 된 이후에는 이를 실행하도록 시민사회가 강요하고 참여하는 구조를 만들지 못할 경우 새로운 정권은 3각 동맹에 포위돼 고립되면서 노무현 정권 후반기 같은 상황을 맞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문재인 캠프 인사들 노무현 정권 성공했다고 생각
지금은 대선 시기이기 때문에 개혁적 목소리를 반영하지만, 이를 들어주는 것처럼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실행이 어렵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꽤 있을 거다. 유시민도 그렇고 민주당 쪽 사람들은 무상급식은 점차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책임 있는 것이라는 태도를 보여줬다.
내가 의심한 것처럼 그는 이헌재가 그리고 있는 전체 그림 속에 움직이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건 반개혁적이다. 무너진 신자유주의를 다시 한 번 세우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박근혜 정책보다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너무 심했나?(웃음)
이헌재는 자신이 쓴 책에서 “패자부활전이란 말이 싫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한두 번 실패하는 것은 실패가 아니며, 충분히 기회가 주어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이헌재의 머릿속에 있는 사모펀드에 의한 투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광호 : 노무현 정권 후반기 같은 상황이라면?
정태인 : 국가 균형발전 사업 같은 것은 정치적 목적이 없지는 않았지만 꼭 필요한 정책이었다. 클러스터(특정 지역에 상호 연관성이 있는 기업과 관련 기관들이 모여 정보를 교류하고 새로운 기술을 창출하는 ‘산업집적지역’. 대덕단지, 실리콘밸리가 대표적인 사례)를 수단으로 삼은 것도 맞다.
원래 클러스터는 작은 규모 하나를 만드는 데도 10년, 20년이 걸리는 사업이다. 그런데 이헌재 부총리가 들어오면서(2004~2005년), 빨리 빨리를 외치며 혁신도시, 기업도시 형태로 추진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돈을 끌어들여 부동산 투기 바람을 일으켰다. 투기 일어나는 순간 뭐가 되는 것 같다. 돈도 움직이고, 청사진도 나오고, 소비도 늘어나는 등 초기에는 뭔가 되는 것 같았다.
시대교체론이 중요하다
경제가 나쁠수록 정부는 재벌과 함께 빨리 성과를 내고 싶어 하는 유혹을 받는다. 노무현 정부 초기의 정책 방향은 카드 위기 문제를 빼면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카드 위기 역시 이헌재가 (김대중 정권 재경부 장관 당시) 일으킨 것이다. 성장률이 5% 수준을 기록했는데, 보수 진영에서는 이것이 낮다고 두들겨 패면서 대기업 투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 참여정부 인사 중 정동영 전 의원 정도만 확실하게 ‘시대적 한계 속에 잘못된 정책’이라는 것을 인정했을 뿐 나머지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자꾸 노무현과 이명박의 FTA는 다르다고 말한다. 이렇게 계속 주장하면 박근혜 쪽에 말려들 가능성이 높다.
박근혜가 참여정부 시절을 욕하고 비판하는 것은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만, 문재인이 이명박을 실정을 비판하는 것은 설득력 없어 보인다. 박근혜 책임이 아닌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깨끗하게 정리하고, 말 그대로 시대가 변했으므로 시대를 교체해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그리고 (변화된 시대를 대변하지 못하는) 지배동맹의 대변자 역할을 하고, 곳곳에 남아있는 말 지배동맹의 역사인식을 그대로 주장하는 것을 정확하게 공격해야 한다.
원문 글 :
http://www.redian.org/archive/430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