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지 않았던 과거, 때까치는 우리네 삶과 친숙했다. 도시가 확장되지 않고 논밭이 더러 남았던 1980년대, 서울 시내의 대학 교정에서 작아도 날카로운 부리를 과시하는 때까치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매부리처럼 구부러진 부리로 개구리를 잡아 철조망에 끼워두었던 때까치는 요즘 시골에 가도 통 보이지 않는다. 농약과 화학물질에 땅과 물이 오염되면서 먹이가 사라졌기 때문이리라.
선행학습으로 몰라도 되는 지식을 짊어지고 사는 도시 어린이들은 경칩이 무슨 날인줄 알겠지만, 책이나 다큐멘터리가 아니라면 개구리를 본 적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극성스런 엄마 손잡고 서울대공원의 개구리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거나 관광버스를 대절해 생태기행을 떠나야 한다. 개구리가 많다면 때까치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카메라는 엄마가 들 테니, 기왕이면 쌍안경까지 챙기면 더 좋겠지. 때까치와 개구리의 생태적 연관성을 이해한다면 아이의 교육을 위해 흔쾌히 희생하겠지.
개구리와 때까치가 서울 시내에 있다면? 1980년대 이전의 아이들이 그랬듯, 엄마 몰래 찾아가 자연을 만끽할지 모른다. 그 기억은 뇌리에 온전히 남아, 시나 소설을 쓰지 않더라도, 애인이나 아내, 또는 입대한 아들에게 편지를 보낼 때, 하다못해 직장에서 사업계획서를 만들 때라도 감성이 묻어날 것이다. 보는 이에게 따뜻한 마음을 긍정적으로 전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어떤 자연주의 학자는 권한다. 학교에 얽매이는 아이를 자연에 풀어놓으라고. 아이의 상상력이 달라진다면서.
1992년 ‘LA폭동’의 현장에서 한 리포터는 소년이 과시하는 솜씨에 절망한다. “소리만 들어도 무슨 총인지 단숨에 알죠!” 그 나이라면 소리만 들어도 무슨 새인지, 보기만 해도 어떤 꽃인지 알아야 하는 게 아닌지 고심하면서 그는 어긋나는 미국의 사회와 교육현실에 몸서리쳤는데, 초등학교부터 제 아이를 임시지옥에 가두는 우리는 어떤가. 북방산개구리와 참개구리, 때까치와 황조롱이를 구별할 수 있을까. 학교가방 내려놓기 무섭게 학원가방 들어야 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자연에 관심 가질 여유가 허용될까.
항공기 소음에 시달리던 주민들의 민원을 완충녹지로 해소하고자 1997년부터 매입해오던 땅이 서울에 있다. 김포공항 북서쪽의 강서구 오곡동과 부천시 고강동 일원 100만 제곱미터 가까운 면적의 땅으로, 오래 방치해두자 습지로 변화해갔고, 사람이 곁을 주지 않자 어느새 온갖 개구리들과 그 개구리들이 매개하는 생물들의 터전으로 변했다. 때까치가 찾아왔을 뿐이 아니다. 곤충이 많은지 청딱따구리가, 물고기가 많은지 도요새와 물떼새 무리와 해오라기가 왔다. 맹금류인 개구리매와 새홀리기와 황조롱이가 들어오자 큰말똥가리와 털발말똥가리가 덩달아 들어왔고, 밤에 잡을 먹이가 많은지 쇠부엉이와 칡부엉이까지 동참했다.
아직 생태계가 완벽할 리 없지만 무척 자연스럽다. 서울에서 습지로 자연스레 복원된 땅은 시방 없다. 무려 100만 제곱미터에 가까운 땅이 습지 생태계로 저절로 복원되다니! 예전 그 일원에 오래토록 터 잡았던 동식물에게 횡재가 되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모이고 또 모여들면서 자연의 생명들은 해마다 생태적 향연을 더욱 활발하게 구가하게 되었다. 그러자 기억을 더듬는지, 철원평야에 내려앉던 천연기념물 재두루미가 왔고 희귀조 황오리가 따라왔다. 그뿐이랴. 텃새화를 위해 수백억의 예산을 쏟고 있는 천연기념물 황새도 찾아왔다. 올해 타진해보았으니 내년에는 더 많은 식구를 데리고 찾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이게 도대체 무슨 해괴한 소린가. 저절로 복원된 생태계에 골프장이라니! 공영기업인 한국항공공사가 2014년 개장을 목표로 기업에게 골프장 사업을 위임한데는 게 아닌가. 지난해 3월 국토해양부의 중앙도시계획위원회는 심의까지 통과시켜주었다고 한다. 도시계획위원회에 생태계의 가치를 인식하는 이가 그리 없다는 겐가. “"골프장 건설이 공사의 설립목적과 맞지 않다”며 난색을 표하는 재정경제부 덕분에 공사가 아직 착공되지 않고 있지만 국토해양부는 “항공기 소음 및 이착륙 완충녹지 조성 등을 위해 골프장을 건설하는 만큼 재정부에서 법 해석을 적극적으로 해 주길” 재정경제부에 바란다는 소문이 언론을 타고 들린다.
소음을 방지하기 위해 골프장을 조성하는 행정, 과연 납득할만한가. 온갖 생물로 어우러지는 습지는 소음을 차단하지 못한다는 건가. 인간의 간섭 없이 생긴 습지를 반기는 생물들은 소음이 짜증스럽더라도 이게 어디냐며 찾아왔을 텐데, 습지가 태부족한 국제적 대도시에 법 해석을 왜곡하면서까지, 기껏 찾아온 생물들을 내쫓으면서 골프장을 반드시 지어야 한다는 겐가. 수익을 논하는 모양인데, 강원도 생태계를 41군데에서 더 파괴하는 골프장 고객의 상당수는 서울시민일 거라 기대한다. 서울 시내에 골프장을 만들면 강원도는 더 소외될 것이다. 궁할 게 없는 한국항공공사의 추가 이익을 위해 지금도 적자에 허덕이는 경기도의 무수한 골프장은 어떻게 될까.
서울시는 3년 전 불법으로 포획해 공연에 동원해왔던 서울대공원의 돌고래를 자연으로 돌려보내기로 결정했다. 제국주의 유물인 동물원의 시대는 갔으므로 “진정한 선진국, 품격 있는 사회”를 성찰하는 기회로 ‘제돌이’라 이름붙인 돌고래를 제주도 남쪽 바다로 방사하겠다는 것이다. 그를 위해 서울시는 적지 않은 예산을 편성해야 할 텐데도 대부분의 시민들은 납득하고 있다. 억지 공연을 눈요기하기보다 제주도 남쪽이나 울산 장생포 앞바다에서 자유를 만끽하는 돌고래와 고래 떼를 바라보는 편이 훨씬 가슴 벅찬 경험으로 이어진다는 걸 충분히 인식하기 때문이리라. 그 만큼 우리 시민사회는 성숙했다.
곳곳에 생태공원을 가꾸어온 서울시는 시민을 위해 규모가 큰 숲을 조성하느라 많은 예산을 쓴다. 지구온난화가 심화되면서 국제도시의 위상은 철근콘크리트 건물의 화려한 외관이나 내부의 첨단성보다 소음과 오염을 차단하는 녹지의 면적과 그 상태에서 매겨진다. 소득 규모에서 이제 세계 여느 도시보다 뒤지지 않는 서울시지만, 녹지 차원에서 내세울 게 아직 없다. 녹지를 더 조성할 필요가 큰데 녹지는 습지 없이 건강하지 못하다, 습지가 많으면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덮인 도시는 풍수해에 완충할 능력을 키울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김포공항 주변의 저절로 생긴 습지는 서울시의 커다란 자산이다. 생태학습장으로 활용할 가치는 또 얼마나 높은가.
습지의 새가 비행기와 새가 부딪힐까 염려하는 이가 없지 않겠지만, 아니다. 오히려 숨고 쉴 습지가 없는 공항이 더 위험하다. 엽총으로 몰아내거나 죽이려 들지 않아도, 사람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새들은 비행기 길을 여간해서 접근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국가와 정부는 저 저절로 생긴 습지를 보전할 필요가 충분하다. 인위적 간섭을 최소화하며 어린이와 청소년과 시민의 자연학습장으로 활용하고 동시에 풍수해를 완충하는 습지로 간직하면서 자연의 생물들을 보듬을 가치가 넘친다. 저절로 생긴 습지 생태계를 계기로, 콘크리트보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서울시와 국가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바로보고 싶다.
첫댓글 서울시에서 나타난 총선 결과가 골프장에서 습지 생태계로 보전될 수 있을까요? 그랬으면 좋겠는데, 잠잠한 게 수상합니다. 수많은 자연의 친구들이 모여드는 습지에서 싯귀는 떠오르겠지만 골프장은 아닐 듯 싶습니다.
'잠잠한 게 수상하다'는 말에 갑자기 웃음이 터져나왔는데.... 다섯번째 단락은 생태가 복원되는, 혹은 관계의 그물이 살아나는 과정이네요. 그게 자세하게 서술되면(일반적으로라도) 제겐 참 좋은 공부가 되겠습니다. 저 또한 생태적 감수성이 없어서...^^
어제 저녁무렵 고층빌딩 사이로 중간에 걸쳐있는 석양를 봤습니다.사람의 손이 가지 않는것은 모두가 아릅답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절로 생긴 습지에 살고 있는 생명들을 보고 싶네요.